진달래는 참꽃이라 했다. 할미꽃과 참꽃, 어느 것이 먼저 피나? 거의 같이 핀다. 다만 어느 쪽을 먼저 보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양지쪽 따스한 곳이면 참꽃이든 할미꽃이든 일찍 핀다. 그리고 참꽃은 꽃망울을 가지째 꺾어 와서 병에 꽂아 방 안에 두고 몇 밤을 자고 나면 활짝 핀다.
참꽃이 한창 필 때는 살구꽃도 피고, 조밥꽃 이밥꽃도 피어나 온 산이 꽃천지가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날마다 참꽃을 보러 산에 올라간다. 꽃을 따 먹고, 꽃방망이를 만들고, 꽃싸움을 한다. 참꽃은 꺾어도 꺾어도 무진장으로 있고, 그렇게 산마다 온통 꽃으로 덮여 있는데도 참꽃만 보면 반갑고 노래가 나온다. 잔솔밭(이 잔솔밭이 그대로 참꽃밭이다)을 뛰어다니면서 꿩병아리를 쫓고, 멧새알이 들어 있는 둥지를 찾아내고, 딱주(잔대)뿌리를 캐 먹는 것도 즐거웠다. 우리들 어린 시절의 봄은 그렇게 해서 꽃동산에서 보냈던 것이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버들강아지도 할미꽃도, 참꽃이 필 때 찾아와서 빨랫줄에 앉아 재재골재재골 뭐라고 인사하던 그 오랜 옛 친구 제비들도 사라진 지 오래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 들었던 노래가 ‘보리밭의 종달새 봄이 왔다고’로 시작되는 윤복진 선생의 동요였다. 그 노래는 내가 아기로 누님 등에 업혀 다닐 때 누님이 불러 주시던 노래였다. 그런데 이제는 봄이와도 종달새 소리를 들을 길이 없다.
나를 키워 주고 내 영혼이 자리잡을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그 산천의 꽃들이며 새들이며 물고기들이 다 사라진 이 적막강산에, 그래도 진달래 참꽃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래서 해마다 봄이 와서 진달래 붉은 산을 쳐다보면 눈물이 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이땅에다만 있는 것은 납덩이 같은 하늘뿐인데들이고 산이고 물이고 모조리 다 삼키고무섭게 입을 벌리고 있는도시라는 괴물뿐인데그래도 너는 앞날이 있다는 것이지 꺾이고 뽑히고 밟히고 또 짓밟혀도살아남은 끈질긴 목숨이 강산 영원한 지킴이네 이름은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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