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마더’를 보면 김혜자씨가 연기한 ‘엄마’는 ‘수지침’을 놓아 푼돈을 번다. 비록 불법 유사 의료행위지만 오랫동안 가깝게 지낸 동네 사람들은 ‘엄마’의 수지침 효과를 신뢰한다. 가벼운 병치레로 병원에 갈 형편도 안 되는데다, ‘엄마’의 솜씨가 좋고 비용도 저렴하니 동네 사람들은 몰래 소매를 걷고 바지도 내린다.
오랜 세월 침을 놓은 그녀는 비장의 침 자리를 알고 있다. 일종의 히든카드다. 허벅지 어떤 지점에 침을 놓으면 인간의 고뇌와 무거운 짐 덩어리 같은 고통, 안 좋은 기억이 모조리 잊힌다. ‘엄마’는 순식간에 두 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살인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는 ‘엄마’는 영화 말미에 자신의 치마를 걷어 올리고 그 자리를 찾아 침을 놓은 뒤 관광버스 안에서 막춤을 춘다.
체하면 약국으로 달려가 소화제를 먹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정신과 상담을 받거나 약물로 치료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에게 이러한 행위는 미신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전 한의학이 있었다. 침과 뜸 탕약을 주로 쓴다. 권위 있는 한의사도 있지만, 이른바 ‘돌팔이’로 불리며 침을 놓는 사람도 있다. 가정에서 간단히 손가락을 바늘로 뜨는 것도 일종의 의술이라면 의술이다. 한의학은 오랜 세월을 우리와 함께했으니 그만큼 널리 퍼지는 건 당연하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면 불안한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고민과 고통의 기억을 잊게 해주는 ‘허벅지 침 자리’까지는 몰라도, 체했을 때 손가락 끝을 침으로 뜨면 효과가 있다는 그런 기억은 너도나도 있다. 이런 의술은 시대를 초월한다. 인간의 몸은 음식 등의 영향으로 겉모습이 변할지 모르나 근본적으로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는 중학생 딸아이의 손가락이나 옛날 양귀비의 손가락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사소한 집안 처방에까지 영향력을 미친 한의학의 원류는 편작과 창공이다.
춘추전국시대의 명의
사마천은 ‘편작 창공 열전’을 다 쓰고 나서 이렇게 총평했다. ‘여자는 아름답든 못생겼든 궁궐 안에 있기만 하면 질투를 받고, 선비는 어질든 어리석든 조정에 들어가기만 하면 의심을 받는다. 그래서 편작은 뛰어난 의술 때문에 화를 입었고, 창공은 자취를 감추고 숨어 살았어도 형벌을 받은 것이다. 그는 제영이 조정에 글을 올려 사정을 아뢴 뒤에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노자도 ‘아름답고 좋은 것은 상서롭지 못한 그릇이다’고 했다. 이는 편작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창공 같은 사람도 이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악착같이 추구하는 사회에서 사마천은 노자의 말을 빌려 의사로서 신적인 경지에 오른 편작과 창공의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사마천은 역사학자이기에 편작과 창공의 의술보다는 그 의술을 통한 인생을 본다.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편작은 그의 재능을 시샘하는 이에 의해 암살되고, 창공 역시 형벌을 받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인간사는 질병의 역사이기도 하다. 질병과 치료의 역사 속에서 인간은 살아가고 있다. 편작과 창공은 이러한 인간사에 등장해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시기와 모함이라는 질병에 희생됐다고 볼 수 있다.
편작과 창공은 동양의학, 즉 한의학의 원류로서 존재한다. 그들이 집필한 책이나 시술방법은 두 사람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건 없지만 한의학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황제내경’은 바로 이들의 의료방법을 집대성한 책이다. 한의학은 우리의 몸을 소우주로 보고, 인체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간주하며, 안색과 진맥으로 만병을 살핀다. 한의학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물 건너온 서양의학과 공존하며 전통을 이어왔다.
춘추전국시대의 전설적인 의사 편작과 창공은 현대의학과는 먼 거리에 있다. 그 먼 거리는 신비한 안개에 휩싸여있다. 자동차 보닛을 열 듯 환자의 몸을 열어 과학적으로 진단·처방하고, 수술하고 회복시키는 현대의학과 한의학은 기본 개념이 다르다. 유능한 의사는 인간의 몸을 굳이 열지 않아도 환자를 ‘척 보면’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안다. 이러한 경험이 자료로 축적되고, 그 경험을 공부한 의사들에 의한 환자 치료율이 높다면, 그래서 시대에 따라 변하는 질병에 대처할 수 있다면, 칼과 망치를 들고 환자의 몸을 열어 시술하는 외과수술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편작은 당대 외과수술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든 사람이다(편작 이전에 중국에도 외과수술 전문가인 유부라는 의사가 있었다).
죽은 태자를 살린다?
고대 중국 발해군 막읍에 진월인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마을 여관의 관리인으로 일하던 어느 날 장상군이라는 비범한 인물이 투숙했다. 장상군은 진월인이 비록 여관의 관리인으로 있지만, 보통 인물이 아님을 한눈에 알아봤다. 어느 날 장상군이 진월인에게, 비밀스럽게 전해오는 의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 자신은 늙어 쓸모없게 됐으니 전수해주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단, 다른 이에게 알려줘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진월인이 조건을 따르겠다고 다짐하자, 장상군은 품 안에서 약을 꺼내 진월인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약을 땅에 떨어지지 않는 물에 타서 마신 뒤 30일이 지나면 반드시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오.”
‘땅에 떨어지지 않는 물’ 즉 새벽 이슬을 받아 약을 복용하면 사물을 훤하게 보는 능력을 얻는다는 얘기다. 사마천은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그리고 비밀스럽게 전해오는 의서를 모두 꺼내 진월인에게 주고 장상군은 홀연히 사라졌다. 아마도 보통 사람이 아닌 듯하다. 진월인은 장상군의 말대로 약을 먹은 지 30일이 지나자 담장 너머 저편에 숨어 있는 사람이 보였다. 이러한 능력으로 사람을 보니, 오장 속 질병의 뿌리가 훤히 보였으므로 겉으로는 맥을 짚어보는 것으로 구실을 삼는 척만 했다. 그는 의원이 되어 제나라에 머물기도 하고 조나라에 머물기도 했는데, 조나라에 있을 때 편작으로 일컬어졌다.’
진월인에서 편작이라는 의사로 탄생하는 과정은 고대 전설과도 흡사하다. 이후 편작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의술을 펼치는데, 가장 유명한 일화는 ‘죽은 사람을 살렸다’고 알려진 괵나라에서의 일화다. 괵나라 태자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태자 교육을 담당하는 중서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작은 중서자를 통해 태자의 병세를 듣고, 아직 입관을 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다. 편작이 보기에 태자는 아직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이 태자를 살려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