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덴마크의 ‘코펜하겐 콘서트홀’
공연 당일을 상상해보자. 무대 리허설을 마쳤지만 뭔가 불안하고, 팸플릿에는 여전히 오타가 남아 있다. 관객이 얼마나 들지는 비관적이다. 자신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이 지인이며, 그들에게서 수익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간신히 관심 있는 평론가나 기자 몇몇을 초청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의 참석 가능성은 언제나 희박하다. 긴장 속에서 무대에 서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연주를 끝마친다. 그동안의 긴장이 풀어지고 힘들었던 일들은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연주자나 공연기획자는 이 행복한 순간을 계획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짓궂은 생각을 해야만 한다. ‘내가 이 공연을 왜 하는 거지?’ 어느 공연이든 많은 시간과 노력의 투자로 치러지는데, 그 대가로 경험과 추억 이상의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모든 행동에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도 나이가 찼으니 결혼을 한다는 식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아무 의식 없이 공연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한 공연이 아주 간단한 것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 없지만, 많은 비용과 장기간의 노력을 투자하는 공연이라면, 기량 향상의 기회로만 삼기에는 적절치 못하다. 아티스트와 공연기획자는 공연으로 창출될 수 있는 이득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금전적인 수익일 수도 있고, 팀을 알리는 홍보의 기회를 얻음과 동시에 음반이나 매스미디어로 진출하는 기회일 수도 있다.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준비과정도 달라져야 한다.
공연을 상품화할 제목
처음에 가장 비중을 둬야 할 부분은 바로 ‘원하는 이미지로 알리는 것’이다. 단순히 팀이 새로 창단됐다가 아니라, 새로운 아티스트가 뭔가 색다른 것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물론 과장이 아닌 사실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로 앞선 예술가들과의 차별화에 성공해야 한다. 레퍼토리가 달라야 하며, 연주하는 방식과 기량 면에서도 인정받아야 하고, 자신들의 예술적 사상도 충분히 표현돼야 한다. 그러면 당신과 뜻을 함께할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기 시작할 것이다.
하나의 공연에서 그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한 번에 전부를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한 공연은 작게라도 반드시 그 효과를 낸다. 미리 두 번째 공연 포스터의 카피문구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데뷔공연에서 ○○한 연주로 이목을 끌며 화려하게 등장한 팀” “첫 공연, 기립박수를 받다” “평론가들이 극찬한 팀” 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으려면 첫 공연에서 원하는 그것들을 얻어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개개인의 연주 기량 외에 다른 노력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향후 공연에 밑거름이 된다.
‘제○회 정기연주회’ ‘창단 연주회’ ‘귀국 독주회’ 등의 제목은 그들만의 용어다. 연주자들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한 식품회사가 아이스크림을 광고하면서 ‘우리 회사의 몇 번째 제품’ ‘창사기념 빙과류’ 같은 상품명을 쓴다면 누가 그것을 사겠는가? 음악과 같은 아름다운 예술을 전달하면서 청중의 감수성을 무시한 형식적인 제목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성의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