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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끝난 마지막, 어젯밤

파티가 끝난 마지막, 어젯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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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끝난 마지막, 어젯밤

‘어젯밤’<br>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216쪽/9500원

외국 소설의 경우 작품의 명성에 비해 국내에 전혀 번역 소개되지 않거나, 제대로 된 번역본이 출간되어 있지 않거나, 늦게 번역되어 새로운 시간대에 소통되는 예가 종종 있다. 로알드 달과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들이 늦게 소개된 대표적인 경우고, 이번에 처음 번역되어 한국의 독자와 만나고 있는 제임스 설터의 작품도 이에 속한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그의 국제적인 명성에 비해 번듯한 한국어 번역본이 나와 있지 않은 경우다. 하드보일드 문체의 전범으로 불리는 그의 ‘살인자들(The killers)’이나 ‘킬리만자로의 눈(雪)’은 시사영어사의 영한 대역 시리즈로 읽을 수밖에 없다.

스타카토 문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신비로운 환상 동화로 유명한 영국의 로알드 달의 성인 단편 소설들은 성석제 작가의 열렬한 추천에 의해 강출판사에서 지속적으로 출간됨으로써 로알드 달은 소설 애호가들에게 능란한 이야기꾼과 ‘반전의 귀재’로 각광받고 있다. 성석제는 “이제까지 내가 읽었던 소설의 서열을 매기라고 한다면 로알드 달의 소설을 다섯 손가락 안에 놓겠다”고 공표할 정도다.

또한 헤밍웨이의 소설 문법을 충실하게 습득하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 문체를 넘어서는 스타카토 문체라는 독특한 단문 세계를 창조한 레이먼드 카버는 정영문과 김연수 작가의 번역에 의해 문학동네 출판사를 통해 독자와 소통해왔다. 젊은 시절 재미있게 읽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한국 작가들이 독자에게 소개하는 매우 이채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된 손님과 주인 사이에 아름다운 딸을 걸고 포도주 생산지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벌이는 로알드 달의 ‘맛’은 성석제의 안내로 읽을 때 감칠맛이 난다.

“그럼 먼저. 보르도의 어느 지역에서 이 포도주가 나왔느냐? 그것은 추측하기가 어렵지 않소. 생테밀리옹이나 그라브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진한 맛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오. 이것은 메도크가 분명하오. 그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소. 자. 그럼 메도크 가운데 어느 코뮌에서 나왔느냐? 그것 역시 소거법에 의해 어렵지 않게 판단을 내릴 수 있소. 마르고냐? 아니오. 마르고일 리는 없소. 마르고 산 특유의 강렬한 향은 없소. 포이야크냐? 포이야크일 리도 없소. 포이야크라고 하기에는 너무 연약하오. 너무 상냥하고 수심에 차 있지. 포이야크의 포도주는 그 맛이 거의 오만하다 할 수 있거든. 게다가 내 입맛으로 느끼기에 포이야크에는 약간의 심이 들어 있소. 포도가 그 지역의 땅에서 얻는 묘한 맛. 뭔가 탁하면서도 힘찬 맛이 있지. 아냐. 아냐. 이건…… 이건 아주 상냥한 포도주야. 새침을 떨고 수줍어하는 첫 맛이야. 부끄럽게 등장하지, 하지만 두 번째 맛은 아주 우아하거든. 두 번째 맛에서는 약간의 교활함이 느껴져. 또 좀 짓궂지. 약간, 아주 약간의 타닌으로 혀를 놀려. 그리고 뒷맛은 유쾌해. 위로를 해주는 여성적인 맛이야. 이 약간 경솔하다 할 정도로 너그러운 기분, 이건 생쥘리앵 코뮌 밖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 이건 틀림없이 생쥘리앵의 포도주요.”



-로알드 달, ‘맛’

그리고 먼 길을 떠나 찾아온 오랜 지인인 장님과 교감의 의미로 그가 알고 싶어하는 유럽의 대성당을 손등과 손바닥을 맞대어 그려나가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김연수의 번역으로 읽을 때 절제된 단단한 힘을 경험할 수 있다.



“계속하게나.” 그가 말했다. “멈추지 마. 그려.” 말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에 딱 붙어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이제 된 것 같은데. 다 그린 것 같아.” 그는 말했다. “한 번 보게나. 어떻게 생각하나?”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만 더 계속 그렇게 있어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때?” 그가 말했다. “보고 있나?”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한 작가의 작품이 사회 구성원들과 소통하려고 할 때, 일련의 과정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제임스 설터는 헤밍웨이에서 레이먼드 카버로 이어지는 미국 현대소설의 전통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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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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