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 古典 강의’<br>강유원 지음/ 라티오/ 573쪽/ 2만7000원
사람 품격을 읽는 책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의 지도층이 애독서라고 밝히는 책들을 보면 ‘국격(國格)’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품위 있는 고전을 보기 어렵다. 난마처럼 얽힌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도의 통찰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 원천인 고전을 읽지 않는다니…. 이게 한국의 수준인가.
한국의 정치, 경제 권력층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지나치게 쓴다. 온갖 행사장이나 경조사에 얼굴을 내민다. 조찬, 오찬, 만찬 약속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조용한 공간에서는 사색보다는 골프 퍼팅 연습에 열을 올린다. 주말이면 골프장에 오가느라 한나절을 보낸다. 이런 곳에서 인맥을 넓히는 것이 유능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뇌 대신 더듬이가 발달한 이런 권력자에게 고전을 읽으라고 권유하면 “이 바쁜 세상에 케케묵은 그 따위 책이 무슨 소용인가”라며 시큰둥하리라. 이래서는 한국은 선진국이 되기 어렵고 한국기업은 진정한 글로벌 강자가 되지 못한다.
2007년 여름, 어느 고전 읽기 강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매주 1회, 10주 동안 진행됐는데 교재는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였다. 20여 명의 수강자는 대학생, 대학원생, 직장인, 주부 등 다양했다. 상·하권으로 나뉜 두꺼운 책을 꼼꼼히 읽으며 내용을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재야 철학자’인 강사는 열강했고 인류가 쌓은 지혜에 목말라 하는 수강생들은 진지하게 경청했다. 학점 따기 위주의 여느 대학 강의 분위기와 달랐다. 과연 소문대로 명강의였다. 핵심을 요약하라는 숙제가 주어져 끙끙거리며 써냈더니 빨간 볼펜으로 성의 있게 첨삭한 종이가 돌아왔다. 그때 쓴 숙제의 일부를 보자.
투키디데스는 진실된 사료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연설의 경우 가능한 한 실제로 발언한 연설대로 정리하려 애썼다. 직접 듣거나 목격한 사건이 아니면 객관적 정황을 추정하여 사실에 가깝게 기술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차후에도 반복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겐 투키디데스의 전쟁사는 유익할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한때 갈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멸의 재산으로 길이 남을 책을 저술했다.
지혜의 빛을 뿜는 고전 12권
그 후 그 강사의 다른 강좌를 들을 시간 여유가 없어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최근 서점 신간 코너에서 그의 새 저서를 발견했다. ‘인문 古典 강의’가 그것이다. 부제로 붙은 ‘오래된 지식, 새로운 지혜’도 눈길을 끈다. 저자 강유원 박사가 2009년 서울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2월부터 11월까지 40주 동안 매주 2시간씩 강의가 열렸다고 한다. 강좌에서 다룬 고전은 12권. 한결같이 세계사에서 찬란한 빛을 낸 명저들이다.
책 이름을 나열해보자. ①일리아스(호메로스) ②안티고네(소포클레스) ③니코마코스 윤리학(아리스토텔레스) ④신곡(단테) ⑤군주론(마키아벨리) ⑥방법서설(데카르트) ⑦통치론(로크) ⑧법의 정신(몽테스키외) ⑨직업으로서의 정치(베버) ⑩파놉티콘(벤담) ⑪거대한 전환(폴라니) ⑫논어(공자)
교양인이라면 이들 고전에 대해 귀동냥으로 들었으리라. ‘필독 고전 100선’이니 ‘명사들이 추천하는 고전 100선’ 따위의 책이 난무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한두 권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읽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읽었다 해도 요약본 정도가 아니겠는가. 한국의 교육 제도나 가정 분위기상 진득하게 앉아 고전을 읽는 환경이 아닌 탓이다. 저자는 강의 첫 시간에 고전을 읽는 방법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고전은 통합적 사유를 요구하는 텍스트입니다. 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에는 우선 말의 뜻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독서가 완결될 수 없습니다. 텍스트가 만들어진 시대의 맥락도 함께 살펴보아야 하고 더 나아가 그 텍스트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도 궁리해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텍스트 자체, 텍스트의 맥락 즉 콘텍스트, 그리고 그것들을 읽고 있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시대, 이렇게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서 읽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