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고 보니 너희들 동갑이다.”
문득 머리를 든 김정일이 말했으므로 이동일은 먼저 김정은부터 보았다. 식탁에는 셋뿐이었으니 김정은과 자신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스물아홉 살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그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쇠고깃국을 한 모금 떠먹은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그런데 하나는 대장이고 또 하나는 대위로군, 하하하.”
어제 김정일이 묻기에 나이, 집안 내력, 경력까지는 말해주었다. 주위는 조용하다. 오늘은 8월4일 월요일, 오후 12시 반, 개전 11일째가 되는 날. 셋은 주석궁 지하 벙커의 주석용 소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중이다. 김정일의 초대, 더구나 두 부자만의 식탁에 초대받은 이동일은 잔뜩 굳어 있다. 김정일이 웃음 띤 얼굴로 이동일을 보았다.
“대위, 어떠냐? 배 아프지 않으냐?”
“아닙니다, 위원장님.”
수저를 내려놓은 이동일이 정색했다.
“그런 생각, 한 적이 없습니다.”
“남조선에서는 3대 세습이 세계적 웃음거리라고 했어.”
식사를 마친 참이어서 김정일이 의자에 등을 붙이며 말을 잇는다.
“그 삐라도 내가 읽어보았어. 나하고 얘를 돼지로 그려놓은 삐라 말야.”
김정일이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이동일은 등이 으스스했다. 그때 김정일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지도자는 인민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돼. 그러나 인민 비위를 맞추려고 들다가는 그 욕구를 다 채워줄 수가 없어.”
“… ….”
“그러면 인민들에게 끌려가게 되는 거야.”
김정일의 시선이 김정은에 이어서 이동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부터는 일이 힘들어져. 그러니 조금씩 맛을 보여줘야만 해.”
이동일은 엉덩이가 쑤시는 느낌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옆에 앉은 김정은은 경청하고 있다. 이틀간 전선은 답보상태였지만 가을 땡볕에 오곡이 익어가듯 안에서는 변화가 진행되는 것이었다. 물론 주석궁 상황실에서도 쉴 새 없이 아군의 결속을 확인했고 고무시켰으며 적정(敵情)을 살폈다. 이제 이곳의 적은 김경식 일당과 중국군이 되었다. 머리를 든 김정일이 이동일을 보았다.
“이 대위, 다시 한 번 방송해주지 않겠나? 이번에는 북남 양쪽을 향해서네.”
2014년 8월4일 월요일 오후 2시, 개전 11일째. 거대한 상황판에 이동일의 상반신이 드러난 순간 주위는 조용해졌다. 이곳은 오산의 연합사 지휘벙커 안이다. 그때 이동일이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남북한 국민 여러분, 그리고 남북한 장병 여러분.”
“쟤가 왜 저래?”
하고 불쑥 나선 것은 한국군 육참총장 조현호. 이동일의 역할을 공수부대나 특전사 장교가 맡았다면 육군의 명예가 대번에 올랐을 것이라고 은근히 시샘하던 참이다. 그때 이동일의 말이 이어진다.
“저는 평양 주석궁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를 받고 남북한 양국 국민과 장병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어럽쇼.”
조현호가 다시 거들었을 때 옆에 앉은 합참의장 장세윤이 시선을 주었다. 그 옆쪽의 미군 장성들은 헤드셋을 낀 채 통역해서 듣느라고 정신이 없다. 조현호가 입을 다물었고 이동일의 목소리가 상황실에 울려 퍼졌다.
“김정일 위원장께서는 2014년 8월4일 오후 3시 정각을 기해 북한 영토에 주둔한 중국군의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중국군은 반역 집단과 함께 북한을 중국 영토로 흡수할 공작을 꾸미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군이 5일 후인 8월10일까지 북한 영토에서 철수해줄 것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