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열과 조를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차지 않은, 미량(微凉)한 물로 열을 식히고 눅진눅진한 진액성 물질을 보충해 오장이 안정되게 해줘야 한다. 맥문동은 성질이 조금 차고 맛이 달고 질이 윤택하다. 미량하면서도 진액이 풍부하다. 그래서 오장의 음(陰)인 체액을 보태고, 심장과 폐와 위장의 열(煩熱)을 맑게 한다. 이렇게 자음청열(滋陰淸熱)하는 약재로는 맥문동을 따라갈 만한 것이 없다.
중국 도홍경의 ‘명의별록’에는 맥문동이 ‘마른 몸을 살찌고 건장하게 하며(令人肥健), 얼굴색을 좋게 한다(美顔色)’고 적고 있다. 모두 열과 조로 인해 내부의 진액이 마른 증상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몇 마디 더 옮기면 이렇다.
‘족위(足·#54291;)로 종아리 근육이 마르고 힘이 빠져 불구가 되는 것을 다스린다. 위열(胃熱)이 심해 자주 허기지는 증상을 다스린다. 음정(陰精)을 보익해 정신을 진정시키고 폐의 기운을 안정시키며 오장을 편안히 한다.’
폐 윤택, 심장 안정
감기에 걸려 양방의원에서 한 달 가까이 감기약을 먹은 환자 이야기를 해보자. 독한 양약을 계속 먹었지만 차도가 없다. 기침만 더 심해졌다. 한번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기 시작하면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 거의 죽을 지경이 될 때까지 해댄다. 이로 인해 온몸이 결리고 가슴과 허리와 등짝이 꿈쩍을 못하게 아프다. 구역질을 하고 토하기도 하지만 가래가 많지는 않다. 야간에 더 심해 잠을 자다 느닷없이 기침을 하느라 숙면을 취할 수가 없다. 여기서 그냥 내버려두면 결국엔 병원으로 가서 갖가지 겁나는 질병 명을 달고 치료를 받다가 제풀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될 것이 분명하다.
맥문동탕(麥門冬湯) 열 첩에 기침이 잡혔다. 맥문동탕은 맥문동이 군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군약(君藥)으로 쓰인다. 반하(끼무릇), 인삼, 감초, 대추 등이 신하가 되어 맥문동을 보좌한다. 폐의 진액이 말라 해수(咳嗽)가 심해질 때, 특히 백약(百藥)이 무효일 때, 맥문동탕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낸다. 실제 주위를 보면 이런 환자가 꽤 많다. 아마도 진해제로 염산트리메토퀴놀, 염산슈도에페드린 따위를 과다하게 쓴 탓이리라. 감기를 고친다는 약이 오히려 기관지의 진액을 말려 더 심한 증상을 초래한 것이다. 맥문동은 이로 인한 폐의 조와 열을 다스렸을 뿐이다. 부족한 진액을 보태주고, 진액이 부족해 생긴 열을 가라앉혔다. 열이 더 심한 이는 여기에 죽엽(시누대 잎)이나 석고를 더 넣어 쓴다.
맥문동이 폐에 작용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양음윤폐(養陰潤肺)라고 한다. 그러나 진액이 부족한 곳은 폐만이 아니다. 소화기도 그렇다. 맥문동이 위장 등의 소화기에 작용하면 익위생진(益胃生津)이다. 인후와 혀(舌)가 건조하고 장조(腸燥)로 인한 변비가 있을 때 쓴다. 심장도 그렇다. 맥문동이 심장에 들어가면 청심제번(淸心除煩)을 한다. 현대적으로는 강심 및 안심작용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의 진액이 손상돼 나타나는 증상들, 예를 들면 부정맥이나 불면증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사무실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장인의 경우 맥문동을 차(茶) 대신 마시면 좋다. 그러나 조해서 바짝 마르고 정신적으로 불안한 이가 쓰면 좋지만, 습(濕)이 많아 소통이 잘 안되고 불안하다면 먹으면 안된다. 오히려 습을 더 조장한다. 병을 더 만드는 꼴이 된다.
양음익기(養陰益氣)의 생맥산

맥문동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고급 약재다.
‘맥을 못 춘다’는 우리말이 있다. 여름철에 땀을 많이 내는 데다 장마철의 꿉꿉한 무더위에 시달리다보면 영 기운을 차릴 수가 없게 된다. 식욕도 없고 숨이 차고 매사에 피곤해져 일을 해도 좀처럼 의욕이 안 난다. 역시 장(臟)의 진액이 조해진 까닭이다. 그러나 여름철에 미리 생맥산(生脈散)을 상복해 이 진액을 보충한다면 이렇게 맥을 못 출 일 따윈 없다. 맥문동 8g에 인삼과 오미자를 각각 4g씩 쓴다. 처방이 간단해 집에서도 쉽게 끓일 수 있다. 여기에 향유와 백편두를 적당량 넣으면 맛도 약효도 더 좋다. 인삼 대신 황기를 쓰기도 한다.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중국 금·원 시대 의학 학파) 중 한 명인 이동원의 양음익기(養陰益氣)하는 명방(名方)이다.
생맥산은 시들시들 생기를 잃어가는 오장의 맥을 팔팔하게 되살려낸다. 그래서 기력을 솟구치게 한다. 여름이라는 힘든 절기를 음식이나 약물을 통해 이겨낸다는 사유는 서양의 근대의학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적 세계관의 히든 카드들이다. 생맥산은, 그러나 단지 더위를 이기는 약인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당뇨로 갈증이 극심할 때도 생맥산이 대효(大效)하다. 또 충혈성 심부전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심계와 불면이 있으며 숨차고 땀이 그치지 않을(自汗) 때도 쓴다. 동계를 진정시키므로 부정맥에도 쓴다. 굳이 말하자면 강심제이고 안심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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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문동은 어디에 좋은 약인가. 부정맥, 당뇨, 심부전, 불면, 고혈압, 감기에 쓰는가. 아니다. 조와 열을 다스리는 맥문동의 의미를 알면 그 쓰임이 고정되지 않는다. 장자(莊子)의 말이 있다. ‘도(道)의 추(樞)가 환중(環中)을 얻으면 열고 닫는 것이 자유롭다.’ 무엇이 어디에 좋다는 식의 약물 이해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양방이 범한 오류들을 생약으로 거듭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병이 결코 낫질 않으며 터무니없는 부작용만 생긴다.
집 주변의 흔한 풀뿌리로도 병을 치료할 수 있으려면 가장 먼저 뉴턴-카르테시안의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논리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