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계급의 직업정신
종교개혁 이전 가톨릭이 대세였던 유럽에서는 노동을 그리 신성하게 여기지 않았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성월요일’(St. Monday)이라는 전통이 있었다. 토요일부터 술과 유흥에 빠져 지낸 노동자들이 월요일에도 일에 복귀하지 못한 채 쉬는 게 문화처럼 굳어져 있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노동에 대한 가치관은 지금과는 현격하게 달랐다. 더 많은 수입을 위해 지나치게 일하기보다는 적당히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자기 쾌락을 위해 쓰는 게 자연스러웠다. 경쟁도 치열하지 않았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 윤리가 ‘시민계급의 직업정신’도 낳았다고 베버는 말한다. 베버는 자본주의가 근대인의 삶의 운명을 가장 강력하게 결정하는 힘이라는 일반적인 관념을 논의의 전제로 삼는다. 반면에 그는 영리욕이나 화폐욕을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통념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베버가 주장하는 자본주의 정신을 짧게 간추리면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을 갖고 정직하고 근면하게 노동에 열중하라’ ‘항상 근검절약하는 자세를 가지고 살라’다.
베버의 탁월함은 이 책에서 자신의 견해를 객관적인 사회과학방법론에 따라 설명한 데 있다. 당대를 지배하던 가치 중심적 관점이었다. 그는 이 때문에 그때까지 일반적인 학문 영역에서 분화되지 않았던 사회학을 창시한 사상가로 학문적 업적을 높이 평가받게 된다. 베버는 관념적 동기가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을 만들어냈다고 정의하지 않고, 단지 관념적·종교적 동기가 근대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역사적 단계가 설립되는 데에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역설한다.
베버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에서 이 같은 자본주의 정신을 찾아냈다고 한다. 프랭클린의 자서전에서 드러난 윤리의 최고선은 과거와 달리 ‘더욱 더 많은 돈을 버는 것, 그것도 모든 향락을 엄격히 피하면서 행복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인 모든 단점을 전적으로 벗어나 돈 버는 것’에 있었다. 프랭클린은 근면·성실하고 금욕적이면서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베버는 이 책이 나온 뒤 이념과 종교를 불문하고 모든 분파로부터 화살을 받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생산수단의 소유가 아닌 정치·문화적인 영역으로 분석한 베버를 공격했다. 가톨릭 쪽에서는 구교 문화를 세속적 향락으로 매도한 것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프로테스탄트 사상가들로부터도 열렬한 박수를 받지 못했다. 책 곳곳에 나오는 자본주의의 우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묘사 때문이다.
이미 중세시대에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복식부기와 다양한 금융기법이 생겨난 지역이 이탈리아의 가톨릭 도시국가였다는 실례를 들어 베버의 논리적 취약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베버를 반박하는 학자들은 자본주의 정신이 전적으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든다.
종교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그럼에도 베버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은 역사였다. 1904~1905년 처음 논문으로 발표된 이후 베버의 견해는 청교도의 영향을 받은 유럽인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만든 미국이 근대 자본주의의 종주국이 된 것만으로 어느 정도 입증됐다. 미국은 지금도 이른바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가 주류 계층을 이루고 있다. 독일인들이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강한 것 역시 프로테스탄티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에서 꽃핀 자본주의는 베버의 주장과 거리감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동양의 차이도 직업과 노동에 대한 의식, 삶에 대한 태도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종교적 측면에 있다는 게 베버의 주장이었다.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이 대표적인 본보기다. 동아시아 국가에서 유교윤리가 후발 자본주의 발전에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는 두웨이밍(杜維明) 하버드대 교수의 주장이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 같은 새로운 견해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파생물이라는 논리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베버 사상의 영향 때문에 유교윤리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의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종교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선택적 친화력에 관한 베버의 문제의식을 동양사회에 접목하는 시도여서 베버 사회과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연구주제다.
최근 중국을 이끌어가는 학자들이 즐겨 읽는 책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도 이 책이 바꾼 세상을 실증하는 하나의 사례 다. 베버 연구에 천착하는 중국 오피니언 리더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동아시아의 발전과 관련된 학문적 연구에 미친 이 책의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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