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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리포트

‘낙태죄 폐지’ 한·미·중 대학생들의 생각

“한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 가장 억압”

  • | 류핑핑(중국) 교환학생, 앤서니 셴(미국) 교환학생, 정지은 고려대

‘낙태죄 폐지’ 한·미·중 대학생들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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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절 장면을 그린 한 ‘페미니즘’ TV드라마 장면. [동아DB]

임신중절 장면을 그린 한 ‘페미니즘’ TV드라마 장면. [동아DB]

지난해 무려 23만 명이 청와대에 ‘낙태죄 폐지’를 청원하자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이 응답했다. 조 수석은 11월 26일 유튜브와 페이스북에서 “내년에 임신중절 실태 조사를 실시해 현황과 사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낙태는 모자보건법상 ‘임신중절’로 표현된다. 임신중절 실태조사는 올 8월에 8년 만에 재개될 예정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움직임은 낙태를 반대해온 종교계 등의 반발을 불렀다. 특히 조 수석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 발언에 대해 천주교 측은 교황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조 수석은 천주교 측을 찾아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렇게 임신중절은 한국에서 청와대발(發)로 사회적 이슈가 됐다.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대학생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한국, 중국, 미국에서 임신중절 관련 규제나 실태가 어떠한지, 이 세 나라 대학생들이 임신중절 규제에 대해 주로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봤다. 

우리가 문헌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임신중절은 1953년 법으로 금지됐다. 한국에서 임신중절은 여성과 태아가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가질 때, 강간에 의해 임신이 됐을 때 등에 한해서만 허용됐다. 만약 이를 위반할 때에 여성은 징역형이나 200만 원 정도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시술한 의사도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현행법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불법 임신중절수술은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마지막 조사에서, 임신중절은 연간 16만9000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중 합법적 시술은 6%에 그쳤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위헌성 여부를 판단했는데, 위헌과 합헌이 4대 4로 갈렸고 합헌으로 결정됐다.

“태아 성별 감별한 중절만 제한”

중국의 경우,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임신중절은 1953년 법적으로 허용됐다. 태아의 성별 감별에 의한 임신중절만 아니면, 중국에서 여성은 자유롭게 인공 유산할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내 임신중절은 1983년 1400만 건으로 정점에 올랐고 2001년엔 680만 건이 이뤄졌다. 작은 개인 병원에서 이뤄진 수술은 통계에 안 잡혀서, 실제 임신중절 건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임신중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여대생을 포함한 25세 이하 여성의 임신중절이 전체 임신중절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우샹춘 국가보건가족계획위원회 교수는 “젊은 층의 인공유산은 우리의 큰 걱정거리”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연방대법원은 1973년 1월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 여부에 관한 독자적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후 ‘임신 12주 이내 중절’은 임신부의 판단에 따른다는 판례가 형성됐다. ‘임신 12주~6개월 중절’은 주마다 다르고 ‘임신 6개월 이후 중절’은 법으로 금지하는 추세다. 예컨대 뉴욕주는 임신 24주 이후 중절을, 텍사스주는 임신 20주 이후 중절을 제한한다. 알래스카주와 뉴저지주는 임신중절을 무제한으로 허용한다. 미국에서 가임 여성이 임신중절을 하는 비율은 한국보다 높은 편이다. 미국의 가톨릭과 개신교는 임신중절에 반대해 이 문제는 미국에서도 지속적인 이슈로 남아 있다. 

이렇게 우리가 한국, 중국, 미국을 비교해봤을 때, 한국이 임신중절을 다루는 일에서 가장 엄격하다는 점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중국이 임신중절을 거의 자유롭게 허용하고 미국이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반면, 한국은 거의 전면적으로 임신중절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먹는 중절 약’ 이슈

임신중절을 유도하는 알약 ‘미프진(Mifegyne)’ [프랑스 제약사 엑셀진(Exelgyn)]

임신중절을 유도하는 알약 ‘미프진(Mifegyne)’ [프랑스 제약사 엑셀진(Exelgyn)]

당연히 한국에선 임신중절을 유도하는 알약인 ‘미프진(Mifegyne)’을 구입해 복용하는 것도 불법이다. 물론 몇몇 한국인은 구글 등을 통해 불법으로 이 약을 구매하고 있고 한국 당국은 이를 추적해 처벌하려 한다. 미프진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대신 간단히 알약을 몇 번 삼키는 것만으로 임신중절을 가능하게 해준다. 청와대의 낙태죄 청원자가 이 약의 복용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이 문제도 이슈가 되고 있다. 

미국 의학연구기관인 ‘가이너티 건강 프로젝트’에 따르면, 중국, 미국, 영국, 프랑스, 베트남을 포함한 62개국은 이 약의 구입과 복용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 이 약은 심지어 ‘세계보건기구(WHO)’의 필수 의약품 리스트에도 포함돼 있다. 미국에선 미프진을 39만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불법으로 이 약을 사려면 훨씬 많은 돈(70만~120만 원)이 들지 모른다. 

임신중절을 위해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은 임신한 여성에겐 큰 정신적 후유증을 줄 수 있다. 또한 임신중절 수술은 흔적이 남으며 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접촉한 남녀 한국인 대학생 중 절대 다수는 ‘먹는 임신중절 약의 합법화’에 찬성하는 편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임신중절은 합법화되어야 할까? 이에 대한 의견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린다. 우리가 한국 언론에 보도된 한국 전문가 30명의 임신중절 관련 의견을 분석한 결과, 종교 분야 전문가들 중 대부분은 임신중절의 합법화에 반대했다. 이들은 “인간의 생명이 임신 첫 주부터 시작되며, 이런 생명의 파괴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법률가들과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대체로 합법화에 찬성하는 의견을 공유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미혼 여성이나 경제력이 없어 자녀 양육이 어려운 여성에겐 임신중절이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임신중절 권리를 옹호하는 다수의 미국인 전문가는 “임신중절은 여성이 선택할 문제이며, 임신중절 합법화는 불법적 임신중절에 의해 임신부의 건강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을 감소시킨다”고 말했다.

“임신부와 사회 모두에 불행”

조국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해 11월 29일 자신의 임신중절 및 교황 관련 발언이 천주교의 반발을 사자 천주교 경기 수원 교구를 찾아 이용훈 천주교 생명윤리위원장에게 해명하면서 깍듯이 인사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조국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해 11월 29일 자신의 임신중절 및 교황 관련 발언이 천주교의 반발을 사자 천주교 경기 수원 교구를 찾아 이용훈 천주교 생명윤리위원장에게 해명하면서 깍듯이 인사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우리는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임신중절에 관한 대학생들의 의견을 수집했고 인터뷰를 통해 몇몇 한국인·미국인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학생 대부분은 ‘낙태죄 폐지’에 공감했다.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에서의 임신중절에 대한 강한 법적 규제가 여성에게 공정하지 않은 일이라고 여겼다. 

고려대 커뮤니티인 ‘고파스’에서 임신중절은 찬반 의견이 나눠진 논쟁 주제였다. 그러나 임신중절에 동정적인 의견이 훨씬 많았다. 

‘고파스’에서 A 학생은 “임신부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모두를 무시할 수 없어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B 학생은 “임신중절의 전면적 허용은 태아의 인격에 대한 폭력이고 임신중절에 대한 전면적 제한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억압이므로 조건부 허용이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C 학생은 “임신부가 아기를 돌볼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출산은 임신부와 사회 모두에 불행일 것”이라고 했다. D 학생도 “이것은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시대에 뒤처진 낡은 법의 문제”라고 했다. 

인터뷰에서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재학생 정모(여) 씨는 “인간의 권리는 배아(수정 후 8주까지의 태아)뿐만 아니라 여성의 권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상명대 국어교육학과 김모(여) 씨는 “임신중절을 막는 현재의 법은 여성의 절박한 임신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않은 채 안락의자에 앉아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권리를 말하면서 여성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다”고 했다. 

서울 한 대학의 미국인 교환학생인 톰 S(22) 씨는 “임신중절이 임신부만 짊어져야 할 짐이 되어선 안 된다. 다만, 성교육 강화는 임신중절을 피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성행위로 이끌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계 미국인 교환학생인 애나 J(여·22) 씨는 “임신중절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본다. 그러나 임신부는 그녀 자신을 위해 중절을 선택할 권리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반면, 고려대 경영학과 재학생 이모(26) 씨는 “임신 12주 이전이면 생명이 아니고 이후면 생명이 되는 구분법에 동의하기 어렵다. 임신했으면 그 생명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며 낙태죄 존치에 찬성했다.

“중절 별것 아니라 여겨”

임신중절이 합법인 상황에서, 중국인 젊은이들은 연간 600만 건이 넘는 임신중절 건수와 중절 이유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중국 대형 소셜네트워크인 ‘주후(Zhuhu)’에서 ‘Gu Qing’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중국인 이용자는 젊은 중국인 여대생들 사이에서 임신중절이 만연한 현실을 문제시한다. 이 사례는 ‘임신중절이 허용되면 임신중절이 너무 일상화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임신중절을 선택하는 중국인 여성 대부분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어린 대학생이거나 근로자다. 임신중절을 홍보하는 상업광고들은 이들로 하여금 임신중절이 별것 아니라고 여기도록 만든다. 인공유산을 할 권리는 존중돼야 하지만 성교육의 발전도 병행돼야 한다.” 

‘주후’의 다른 중국인 이용자(Detective Peach)는 “남녀 커플이 아이를 키울 의사나 능력이 없을 때 임신중절은 합리적인 결정이다. 정말 문제는 안전한 성관계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지적했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미디어글쓰기(영어강의·담당 허만섭 신동아 기자)’ 수업의 수강생들이 작성한 영문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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