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회적 물의’ 또한 연예계 중심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의 전유물 아닐까. 주변부만 맴도는 무명 연예인은 늘 대중의 관심 밖이다.
그래서일까. 대중음악계 음지에 공고히 뿌리내린 먹이사슬에서 벌어지는 광포한 일화를 가감 없이 써내려간 근작 소설 한 편이 눈길을 잡아챈다. ‘나는 22년간 늑대의 젖을 먹고 살았다’(책과나무).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저자는 이영아(43) 씨. 공식 앨범을 낸 트로트 가수. 그럼에도 아는 이 적다. 이른바 ‘무명 가수’여서다.
처녀작이자 자전적 작품인 이 소설엔 지방 출신에다 중앙 연예계와 하등 연고가 없는 이 씨가 ‘노래가 좋아’ 무작정 밤무대로 뛰어든 후 겪은 갖가지 체험이 적나라하게 녹아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자궁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다정했던 어머니, ‘아가씨’ 둔 다방을 운영하면서도 딸이 가수가 되는 걸 한사코 말렸던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한 정신적 지주였던 작은언니의 간암 투병, 자신의 공황장애 발병, 그런 악조건에서도 결코 놓지 않았던 인기 가수를 향한 꿈, 밤무대와 지방 행사 공연 때마다 쏟아지던 성 상납 강요, 이벤트 업자의 빈번한 출연료 떼먹기, 밤업소 주변을 서성대는 조직폭력배….
그는 왜 아픈 가족사를 비롯해 입 밖으로 끄집어내기 힘든 얘기들을 굳이 들춰냈을까.

궁금증은 만남을 부르곤 한다. 인터넷에서 이 씨에 관한 정보를 검색했지만, 별다른 게 없었다. e메일로 받은 프로필 역시 간결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출생. 1971년생. 경북항공고등학교(풍기읍 소재) 졸업. 밤업소 활동을 오래하다 서른 넘어 첫 앨범 발매. 2005년 1집을 시작으로 총 3장의 앨범을 냄.’ 이러니 더 궁금하지 않은가. 그를 만나 “왜 책을 썼느냐”고 ‘돌직구’부터 날렸다.
“내 속에서 뭔가 가득 치밀어 올라 ‘악악’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올 만큼 미칠 것 같았다. 누구라도 붙들고 내 얘기를 하소연하고 싶은데 그럴 데가 전혀 없었다. 그나마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결국 책 출간 방식을 택했다.”
이 씨는 2005년 1집 ‘딱 한 번’, 2007년 2집 ‘흔들리지 마’, 2010년 3집 ‘잊혀지질 않아요’를 발매했다. 전통 트로트가 아닌 세미 트로트 곡. 7080세대 취향에 어울리는 노래들이다.
집필을 결심한 건 자신이 음원(音源) 관련 사기 피해자란 사실을 알고부터. 3집 앨범 녹음 후 음원을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하라는 작곡가 말을 떠올리고 협회를 찾은 그는 크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걸 알았다. 특정 기획사 소속이 아니라 직접 자비 들여 만든 앨범인데 휴대전화 컬러링, 벨소리 다운로드 등을 통한 무선 음원 판매수입을 고작 6개월쯤 고용했던 전(前) 매니저가 가로채는 기막힌 현실을 접하게 된 것. 자신이 가족, 친구, 지인에게 보내주는 음원의 수입조차 제작자를 사칭한 그에게 고스란히 빼돌려지고 있었다.
억울함은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게 했다. 처음엔 두 권 분량. 탈고를 거듭하니 출간까지 2년쯤 걸렸다. 직접 제목을 단 원고 완성본은 출판사로 보내졌다. 1쇄 500부는 다 팔렸다. 2쇄를 준비 중이다.
미미한 판매량. 하지만 읽어보니 문체가 감각적이고 스피디하다. 원고 감수는 받지 않았다. 초·중·고교 시절 글쓰기 대회에서 거의 매번 상을 받았단다. “공부 좀 더 해서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하라”는 선생님의 잦은 조언에도 그 길을 가지 않았다. 노래에 미쳐 나대는 이 씨를 그 무엇도 제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