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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안고 사는 삶…무데뽀로 뛰어들지 마라”

경력 22년 무명 女가수 이영아 육성 고백

“폭탄 안고 사는 삶…무데뽀로 뛰어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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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방, 여성, 트로트…가요계 약자의 조건
  • ● 입 떨어지면 가수? 국내 무명 가수 10만 명
  • ● 앨범 제작, 노래방 등록 한 곡당 1000만 원
  • ● 출연료 떼먹기, 성 상납 강요, 스폰서 제의는 일상
  • ● 케이블 가요프로그램은 ‘수백만 원짜리 노래방’
  • ● 인기 가수, 조폭, 진상 손님의 횡포 삼중주
스타들이 명멸하는 연예계에선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 최근 드러난 억대 스포츠 도박을 비롯해 프로포폴 상습 투약, 연예병사 군기문란 사건 등도 그렇다. 마약 투약, 병역비리, 성범죄 등도 끊이지 않아 수위를 넘은 ‘연예인 일탈’ 소식도 이젠 그저 일상의 파편처럼 무감해질 정도다.

그런데 ‘사회적 물의’ 또한 연예계 중심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의 전유물 아닐까. 주변부만 맴도는 무명 연예인은 늘 대중의 관심 밖이다.

그래서일까. 대중음악계 음지에 공고히 뿌리내린 먹이사슬에서 벌어지는 광포한 일화를 가감 없이 써내려간 근작 소설 한 편이 눈길을 잡아챈다. ‘나는 22년간 늑대의 젖을 먹고 살았다’(책과나무).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저자는 이영아(43) 씨. 공식 앨범을 낸 트로트 가수. 그럼에도 아는 이 적다. 이른바 ‘무명 가수’여서다.

처녀작이자 자전적 작품인 이 소설엔 지방 출신에다 중앙 연예계와 하등 연고가 없는 이 씨가 ‘노래가 좋아’ 무작정 밤무대로 뛰어든 후 겪은 갖가지 체험이 적나라하게 녹아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자궁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다정했던 어머니, ‘아가씨’ 둔 다방을 운영하면서도 딸이 가수가 되는 걸 한사코 말렸던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한 정신적 지주였던 작은언니의 간암 투병, 자신의 공황장애 발병, 그런 악조건에서도 결코 놓지 않았던 인기 가수를 향한 꿈, 밤무대와 지방 행사 공연 때마다 쏟아지던 성 상납 강요, 이벤트 업자의 빈번한 출연료 떼먹기, 밤업소 주변을 서성대는 조직폭력배….

그는 왜 아픈 가족사를 비롯해 입 밖으로 끄집어내기 힘든 얘기들을 굳이 들춰냈을까.



“폭탄 안고 사는 삶…무데뽀로 뛰어들지 마라”
공고한 먹이사슬

궁금증은 만남을 부르곤 한다. 인터넷에서 이 씨에 관한 정보를 검색했지만, 별다른 게 없었다. e메일로 받은 프로필 역시 간결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출생. 1971년생. 경북항공고등학교(풍기읍 소재) 졸업. 밤업소 활동을 오래하다 서른 넘어 첫 앨범 발매. 2005년 1집을 시작으로 총 3장의 앨범을 냄.’ 이러니 더 궁금하지 않은가. 그를 만나 “왜 책을 썼느냐”고 ‘돌직구’부터 날렸다.

“내 속에서 뭔가 가득 치밀어 올라 ‘악악’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올 만큼 미칠 것 같았다. 누구라도 붙들고 내 얘기를 하소연하고 싶은데 그럴 데가 전혀 없었다. 그나마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결국 책 출간 방식을 택했다.”

이 씨는 2005년 1집 ‘딱 한 번’, 2007년 2집 ‘흔들리지 마’, 2010년 3집 ‘잊혀지질 않아요’를 발매했다. 전통 트로트가 아닌 세미 트로트 곡. 7080세대 취향에 어울리는 노래들이다.

집필을 결심한 건 자신이 음원(音源) 관련 사기 피해자란 사실을 알고부터. 3집 앨범 녹음 후 음원을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하라는 작곡가 말을 떠올리고 협회를 찾은 그는 크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걸 알았다. 특정 기획사 소속이 아니라 직접 자비 들여 만든 앨범인데 휴대전화 컬러링, 벨소리 다운로드 등을 통한 무선 음원 판매수입을 고작 6개월쯤 고용했던 전(前) 매니저가 가로채는 기막힌 현실을 접하게 된 것. 자신이 가족, 친구, 지인에게 보내주는 음원의 수입조차 제작자를 사칭한 그에게 고스란히 빼돌려지고 있었다.

억울함은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게 했다. 처음엔 두 권 분량. 탈고를 거듭하니 출간까지 2년쯤 걸렸다. 직접 제목을 단 원고 완성본은 출판사로 보내졌다. 1쇄 500부는 다 팔렸다. 2쇄를 준비 중이다.

미미한 판매량. 하지만 읽어보니 문체가 감각적이고 스피디하다. 원고 감수는 받지 않았다. 초·중·고교 시절 글쓰기 대회에서 거의 매번 상을 받았단다. “공부 좀 더 해서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하라”는 선생님의 잦은 조언에도 그 길을 가지 않았다. 노래에 미쳐 나대는 이 씨를 그 무엇도 제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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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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