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호

나라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어느 원로 언론인의 충정

[서평] ‘대한민국 100년 통사(1948~2048)’에서 찾은 미래 해법

  • 김학준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입력2024-10-1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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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회에 경종 울리며 자극 준 언론인

    • 전통적·통상적 발상 벗어난 창의적·도발적 역사서

    • 국가 성공·실패의 궁극적 원인은 ‘정치’…개혁할 때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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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김진현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약한 언론인이다. 1962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정경부·경제부 등을 거쳐 편집국 부국장에 올랐다가 논설주간을 맡았고, 한국경제신문사 회장에 이어 문화일보사 회장을 역임했다. 다른 한편으로, 1990년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정부에서 봉직했고, 1995년 서울시립대학교 총장으로 교육계에서도 봉직했다. 이후 세계화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과 대한민국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집행위원장 및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창립회장과 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 창립회장 등을 비롯해 다수의 민간단체 창립을 이끌며 대표로 봉사했다. 올해 우리의 통상적 셈법으로 90세를 맞은 그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직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번영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통시적(通時的)·통장적(通場的) 통합사

    저자는 그사이 ‘김진현 회고: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나남출판사, 2022)을 포함해 국문과 영문의 많은 저·역서, 100여 편의 논문과 약 3000편의 글을 발표하면서 조국의 현실에 관해 고뇌하는 지식인으로서 식견을 보여줬다. 미래에 대한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때로는 경종을 울렸고, 때로는 자극을 줬다. 이번에 출판한 책 ‘대한민국 100년 통사(1948~2048): 과거사·현재사·미래사의 통시적·통장적 통합사’(사진)는 그러한 축적의 연장선에서 쓰였다.

    김진현 지음, 218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김진현 지음, 218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첫째, 이 책은 전통적이거나 통상적 발상에서 벗어난 매우 창의적이면서 도발적 발상으로 가득 차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100년이 되는 2048년을 염두에 두고 ‘대한민국 100년 통사(1948~2048)’라고 책 이름을 정한 것부터가 상식을 뛰어넘은 것이다. 과거사·현재사·미래사를 ‘통시적(通時的)·통장적(通場的) 통합사’로 접근한 것 역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독창적 발상의 산물이다. ‘통시적’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통장적’이라는 말은 처음 접했다. 지리학자인 서울대학교 이기석 교수와 숙의해 만든 통지리적(通地理的) 개념의 이 용어를 영어로 ‘trans geo’로 옮겼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이 땅 넓이에서 1등 러시아, 3등 미국, 4등 중국, 62등 일본에 둘러싸인 101등의 나라이자 인구에서 1등 중국, 3등 미국, 9등 러시아, 11등 일본에 둘러싸인 28등의 나라”라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은 네 나라 인구, 즉 40배의 인구와 더불어 경쟁하며 살아야 한다”라는 엄혹함을 늘 생각하며 생존해야 한다는 취지로 ‘황해·동해지역’ 또는 ‘첫 번째 히말라야권’과 ‘두 번째 히말라야권’ 등의 표현을 만들었다.

    김진현. [동아DB]

    김진현. [동아DB]

    ‌필자는 저자 김진현의 ‘통장적’ 역사관을 처음 접하면서도 곧바로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린다면, 우리 겨레는 “세계 최고(最古·最高)·최장(最長)의 대륙 문화와 아시아 최대 해양 세력 사이에서 부대끼며” 생존해 왔다. 이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저자는 “역사적으로 대륙과 해양 국가가 단수(單數)·단극(單極)적이어서 그 사이에 낀 한반도가 단극 사이에 낀 양극적 특징과 2000년 가까운 문화 교류 등 동아시아 황해·동해지역의 지리와 역사를 관찰·분석하는 데는 근대서양(oxbridge)식 접근, 다극지리 다국·다민족, 일신교(一神敎) 문화에서 보는 세계 그리고 그러한 세계 접근과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일제의 ‘대동아공영권지도’를 비롯해 ‘중국영향권지도’ 등 무려 10개의 지도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들 가운데 다섯 개는 저자가 만들었다. 특히 한민족에 의한 개벽을 설파한 탄허(呑虛) 큰스님의 말씀을 저자가 지도로 작성한 ‘탄허 스님의 후천 지도’와 몽골반점 등 혈연과 언어 구조에서 공통점을 가진 국가들, 예컨대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로부터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및 몽골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 이르는 국가들을 연결해 저자가 작성한 ‘한국판 실크로드 지도’는 글자 그대로 독창적이다. 이 지도들을 저자의 주장과 대비하며 보노라면 우리나라가 겪은 불행한 역사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 그러한 관점의 일환으로 “대한민국은 자강의 힘, 통일의 숙원이 이루어지기까지 절대 일본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주어진 강제된 조건’의 결과적 선순환

    둘째, 이 책은 저자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참으로 많은 통계와 수치로 가득 차 있다.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숫자로 설명하는데, 필자로서는 처음 대하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다. 미국 스타벅스의 2024년 2월 전 세계 매장 수 3만8587개 가운데 한국이 1893개로, 인구 비례로 따지면 한국이 북미권을 제외하고 압도적으로 세계 1위라는 통계, 2022년 6월 기준 전국 커피 음료점을 헤아려 보면 “인구 비례로는 커피하우스의 원천인 선진국도 상상할 수 없는 고밀도 1위의 커피왕국이 되었다”라는 분석 등이다. 곳곳에 등장하는 이러한 통계는 놀라움을 선사하며 필자의 논지에 신뢰를 높이고 책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저자는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으로 2002년부터 매년 ‘세계평화지수(WPI)’를 발표해 왔다. 경제부 기자로 뉴욕타임스의 연감을 비롯한 각종 통계자료에 친숙하게 지내온 저자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논점이 있다. 저자의 발상이 독창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돈키호테적 발상이라는 뜻을 함축한 건 절대로 아니라는 점이다. 책 곳곳에 나타났듯 저자의 독서 폭은 참으로 넓다.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의 ‘서구의 몰락’, 스즈키 다카시(鈴木崇司)의 ‘왜 한국은 크리스트교 나라가 되었나’,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의 ‘코리아와 그 이웃들’,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Donabet Kristof) 부부의 ‘동방으로부터의 천둥’, 한스 싱어(Hans W. Singer)의 ‘변화하는 세계에서 한국 모델의 미래는 있는가’, 알렉산더 거센크론(Alexander Gerschenkron)의 ‘역사적 관점에서 경제 후진성’,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의 ‘신이 된 인간’, 에즈라 보겔(Ezra Vogel)의 ‘일본 세계 1등’, 로마 클럽의 ‘성장의 한계’,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다음 사회의 경영’, 슈마허(Schumacher)의 ‘중국 국력의 지도’,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의 ‘21세기의 역사’ 등 당대 정상급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의 저술을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저자가 외국 명사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은 건 아니다. 국내 지도자와 지식인의 저술과 발언에도 귀를 기울였다. 구한말 이후 항일민족운동을 이끌었던 신채호 선생과 김영삼 대통령 및 노무현 대통령, 정운찬 국무총리·김병준 부총리·한승주 외무장관 그리고 김호기·민두기·박명림·이문영·정재정 교수와 김훈·이문열 작가 등이 그 사례다. 저자는 특히 함석헌과 탄허에 대해서는 경의를 나타내면서 “한민족에 의한 개벽을 설파한 탄허 큰 스승의 이름을 붙여 ‘탄허교’라 할까. 기독교의 한국 전래를 ‘역사를 준비하러 오는 것’이라 했던 함석헌의 이름을 붙여 ‘함석헌교’라고 할까. 탄허와 함석헌 두 스승을 합쳐 ‘한교(韓敎)’라고 하자”라고 부연했다.

    셋째, 저자는 우리 겨레가 8·15 광복 이후 걸어온 길을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으로 요약하고 요인을 철저히 분석했다. 그 해답을 “‘주어진 강제된 조건’의 결과적 선순환”에서 찾으며 “역사적 조건-당대적 조건, 내생적 조건-외생적 조건, 자발적 조건-외압 타율적 조건, 국내 조건-국제 조건이 선순환했다”라고 부연했다. 부분적으로 소개한다면 저자는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 요인 가운데 기독교의 전래와 그것에 따른 ‘한국의 동양 예루살렘화’, 한국인의 정주성(定住性) 전통을 깨뜨린 ‘강요된 이동’에 따른 ‘한인의 노마드(nomad)화’, 한국인의 ‘강제된 해양화(海洋化)’, 미국 주도의 근대화, 베트남과 중동 및 중국에서의 ‘특수(特需)’ 등의 영향을 상세히 분석했다. 베트남 특수를 가능하게 한 1960년대 베트남전 참전에 관해서는 한국에 ‘자신감을 갖는 해외 진출의 표시’로 평가했으며, 그것이 1970년대 중동 진출로 연결되면서 ‘1980년대 한국 호황의 결정적 기회’가 마련됐고, 1992년 중국과의 수교는 2021년에 30년간 ‘일방적 수출 초과 현상’이라는 ‘중국 특수’를 낳았다고 봤다.

    저자는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의 ‘그림자’에 대해서도 시선을 돌렸다. 낮은 출산율과 높은 낙태율에 따른 인구 저하를 지적하면서, 뉴욕타임스가 2023년 12월 5일에 게재한 ‘한국은 소멸될 수 있다’는 칼럼에 주의를 환기했다. 저자는 ‘도착적 변형과 잘못된 근대화’로 말미암아 사회갈등이 늘어나고 사회신뢰가 추락한 현실을 직시했다. 특히 사회신뢰의 추락과 관련해, 런던 레카툼연구소가 세계 167개 국가를 대상으로 평가한, 사회관계망과 개인 상호 신뢰 및 제도 기관 신뢰 등으로 구성된 ‘사회자본’에서 한국은 147위에 오른 사실에 주목했다.



    시작과 끝은 정치

    저자는 1987년의 6월항쟁 이후 진전될 것으로 평가돼 온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주한 로마교황청 이반 디아스 대사가 1989년 9월 26일에 한국의 민주주의를 ‘유치원생의 민주주의’로 낮추며 ‘데모에 미친 민주주의’, 즉 ‘데모크레이지(Democrazy)’로 규정한 사실을 떠올리면서, ‘대통령도 장관도 NGO(비정구기구)도 시민도 좌도 우도 거리에 나서는 기형’을 비판하고, 그것을 ‘대한민국다운 역발전, 반근대화 도착, 역진(逆進)의 극단성’으로 규정했다. 국내 정치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당연히 국회와 정당으로도 향했다. 그는 “소득수준이나 인구 비례로 보면 세계 최고의 연봉에 많은 비용을 쓰는 특권 카르텔이 된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국회는 이제 민주주의의 상징이 아니라 반(反)의회주의, 반민주주의, 반정치, 반국익, 반정치인 집단이 됐다”라고 질타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한국의 ‘체제중심축(Establishment)’은 1961~1993년의 ‘군관산(軍官産) 복합체’로부터 이후 ‘산관교문(産官敎文) 복합체’로 바뀌었다고 봤다. 대기업, 관료, 교수, 문화예술인 등이 재벌 중심의 거대한 복합체를 낳았다는 진단이었다. 저자는 21세기 중반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시대의 새바람과 세계 문명사적 대전환을 찾기 위해서는 정치의 팬덤 현상과 이 복합체가 빚어낸 모순을 교정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저자는 새로운 출발의 기점을 정치개혁에서 찾았다. ‘시작과 끝은 정치다’라는 항목에서 대한민국이 ‘국가의 해체와 소멸로 가는 실패와 패배자의 길’로 가지 않고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의 성공을 이어 인류 지구촌, 세계 위기 해결의 선구자로 등장하는 길’로 가기 위해서는 ‘주류의 반성과 참회를 통한 주체적·자발적 국가개혁’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 땅의 주류를 자부하는 엘리트, 주류파, 기득권층은 반성과 성찰을 통한 거듭나기로 동서고금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 길, 엘리트의 길, 상호부조, 이타(利他), 희생, 권부(權富) 분리, 종교의 경지까지는 요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기본 보편윤리에 충실한 새 중심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호소했다.

    정치개혁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는 저자의 자세는 대런 애쓰모글루(Daren Acemoglu) 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가 공저해 2012년에 출판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떠올리게 한다. 공저자는 국가의 성공과 실패의 궁극적 원인을 ‘정치’에서 찾았다.

    필자는 정치학 연구자로, 오랜 기간에 걸쳐 국가흥망론과 그 연장선에서 “빈곤에서 출발한 남한은 비록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해도, 놀라운 흥기(興起)를 과시했으나 잘나가던 북한은 어째서 쇠락의 길에 빠져들었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남북한비교론에 관심을 쏟아왔다. 이 책은 그러한 필자에게 새로운 자극을 줬다. 북한에 대한 “사이비 종교집단이며 최빈국의 실패한 국가”라는 저자의 논평은 후학들에게 연구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을 관류하는 하나의 큰 흐름은 나라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저자의 이 나라 원로로서의 충정이다. 그 우국지심(憂國之心)이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질책으로, 그러나 마지막으로는 지도층의 ‘내 탓이오’ 운동 제의로 나타났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음을 덧붙이는 것으로 서평을 마치도록 한다.

    김학준
    ● 1943년 출생
    ●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전 한국신문협회 부회장, 전 동아일보 회장, 현 단국대 석좌교수, 현 인천대 이사장
    ● 저서: ‘혁명가들’ ‘매헌 윤봉길 의사 평전’ ‘러시아 혁명사’ ‘동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이상’ ‘위기의 남북한’ ‘북한이 열리면 21세기가 보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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