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66년 7월부터 판매에 들어가 그해 3000대, 67년 5000대, 68년에는 1만1000대를 팔았다. 신진은 새나라와 달리 처음부터 부품의 21%를 국산품으로 썼고 차츰 더 많은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대만과 교류하는 나라와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이른바 ‘저우언라이 4원칙’이 발표되자 중국 진출을 원하던 도요타는 신진과 기술제휴를 중단하고 한국시장에서 철수했다. 도요타의 기술과 부품 공급이 끊긴 신진은 이후 GM코리아, 새한, 대우로 유전하는 운명을 겪었다.
한편 ‘삼천리호 자전거’로 유명한 기아산업은 59년 마쓰다의 전신인 동양공업과 삼륜차에 대한 기술제휴를 맺고 자동차사업에 뛰어들었다. 62년 소형 삼륜차 K360을 생산한 데 이어 74년에는 마쓰다 파밀리아의 보디를 기초로 한 첫 승용차 브리사를 내놓는다. 81년 마쓰다에서 들여온 원박스카 봉고는 ‘봉고 신화’를 탄생시키며 당시 경영위기를 겪던 기아를 소생시키는 데 큰 몫을 하게 된다. 마쓰다는 83년부터 기아에 자본참여를 해왔다.
후발국이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차를 개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술력을 쌓을 동안에는 남의 차를 조립하는 방식을 택하는 게 보통이다. 일본도 처음에는 수입한 외제차를 모방하거나 조립하면서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의 자동차업체들도 초기엔 이 조립방식을 택했다. 문제는 일본 메이커들이 일찌감치 모방과 조립단계를 벗어난 데 비해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 일본차 개방에 대해 한 자동차 전문가는 “걱정할 게 뭐가 있나. 우리나라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가 일본차인데…”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조금 과장되기는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티코 엑셀 세피아 엘란트라 캐피탈 쏘나타 콩코드 그랜저 아카디아 포텐샤 갤로퍼 싼타모 등 한때 베스트셀러였거나 지금까지도 잘 팔리는 차의 상당수가 일본차를 그대로 들여왔거나 엔진 등 주요 부품은 일제를 가져다 썼기 때문이다. 미국차와 유럽차가 한국시장에 상륙했을 때는 별로 동요하지 않던 우리 자동차업계가 일본차 진출에 대해서는 바짝 긴장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일본의 자동차업체들은 세계 각국에서 판매가 급증하자 지난해까지 미국과 유럽에 대한 수출물량을 자율적으로 규제했다. 수출물량이 너무 많을 경우에 발생할 부작용을 막기 위해 미리 손을 썼던 것. 하지만 일본 업계는 이 틈을 메우기 위해 해외 생산으로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으며, 2000년 이후 더욱 치열해질 경쟁에 대비해 해외 공장을 꾸준히 증설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일본 업계는 83년에 해외 생산 100만 대를 처음 돌파한 뒤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 96년 이후에는 연 600만 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메이커 별로는 도요타(130만 대), 닛산(107만 대), 혼다(105만 대) 등 일본 빅3가 엇비슷한 수준. 지역별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280만 대가 생산된다. 특히 캠리 어코드 알티마 등 수출물량이 많은 차종은 어김없이 현지 생산을 통해 판매량을 늘리는 게 특징이다.
‘고객이 원하는 차를 만든다’
판매 면에서도 해외시장, 특히 북미지역에서 활약이 눈부시다. 97년 한 해 미국시장에서 판매된 일본차는 모두 357만 대. 시장점유율은 승용차 기준으로 31%에 이른다. 이는 미국차의 절반 수준이며 유럽차(6.1%)에 비하면 5배나 많은 수치. 승용차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른 도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 등 중형 세단이 호조를 보였고 도요타 RAV4, 혼다 CR-V, 인피니티 QX4 등 RV(레저용 차량)도 강세를 이어갔다. 고급차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등 전차종에서 일본차는 미국시장의 맹주로 인정받았다.
일본차는 EU 연합권에서도 성가를 높이고 있다. 일본차 회사들이 97년 이 지역에서 판매한 차는 157만대로 시장점유율은 11.7%였다. 특히 서유럽에서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소형차와 RV가 많이 팔렸다. 닛산이 40만 대로 1위, 도요타와 혼다가 각각 37만 대와 21만 대로 뒤를 이었다.
이렇듯 부동의 세계 정상권을 유지하는 일본 자동차업계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많은 국내외 자동차 전문가들은 일본차 특유의 철저한 서비스 마인드를 첫손에 꼽는다. 일본차는 초기의 모방단계를 거쳐 ‘실용적인 차’라는 독창적인 이미지와 싼 값으로 세계시장을 파고들었다. 여기에는 진출하는 나라의 고객 취향에 맞춰 오밀조밀하게 고안된 마케팅 전략과 철저한 품질관리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이 보태졌다.
일본차의 특징은 한마디로 ‘고객이 원하는 차를 만든다’는 것이다. 실용적이면서 잔 고장이 거의 없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또한 차종이 매우 다양하며 편안한 운전을 즐길 수 있도록 갖가지 편의장치를 구비했다. 또한 생산성도 높다. 최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조사기관 EIU가 발표한 세계 승용차공장의 생산성 순위에서 미쓰비시의 오카마현 제작소가 1위를 차지하는 등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일본 메이커가 차지했다.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차를 낮은 가격에 공급한다. 차는 잔 고장이 없으며 메이커는 최선을 다해 고객에게 서비스한다.’ 일본 자동차업계의 한국시장 공략도 이 원칙에 따라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항상 수요자를 먼저 생각하는 생산·판매 전략을 한국시장에서도 변함없이 보여줄 것이란 게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첨단 디자인과 기술, 판매기법 등은 오히려 그 다음 순서를 차지한다. 일본에서 20년간 근무한 한국 대기업의 한 일본지사장은 일본 기업 관계자들이 “한국시장에 진출하면 6개월 만에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고 한다. 자동차 같은 내구재도 ‘시장탈환’에 걸리는 기간을 2년 정도로 보고 있었다.
이런 자신감은 일본 최대의 전자제품 판매시장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산보다 뛰어난 디자인과 성능의 전자제품들이 한국의 절반 가격에 팔리는 그곳 말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차가 판매되기 시작되면 2년 안에 국내 수입차 시장의 30%, 5년 안에 6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주요 일본차 업체들의 한국시장 전략을 살펴보자.
2년 내 한국시장 장악 자신
도요타는 (주)한국도요타자동차를 설립하면서 서울과 부산지역 판매 및 서비스를 책임질 회사로 SK에너지판매 동양고속 매킴 등 3개 업체를 선정했다. 이 회사는 5월에 열릴 서울 수입자동차모터쇼를 통해 국내에 판매될 렉서스 LS430, GS300, IS200, RX300 등 4개 차종을 선보이고 딜러의 전시장과 애프터서비스망을 갖추는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갈 계획이다. 도요타는 내년 800대를 시작으로 차츰 판매대수를 늘려 2, 3년 안에 한국 수입차 시장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도요타와 함께 일본차 업계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혼다는 98년부터 한국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진출시기는 도요타보다 조금 늦은 내년 중반기 이후로 회사측이나 업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혼다는 “한 나라에서 시장 점유율 목표를 5% 이하로 세우는 전략은 전략이 아니다”고 장담할 만큼 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에 투입할 차종으로는 세단 위주의 도요타와는 달리 인기 RV인 오딧세이와 CR-V 등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도요타의 판매 결과에 따라 고급 브랜드인 어큐라를 조기 투입할 가능성도 보인다.
다른 업체들의 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도요타와 혼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 자동차 회사는 최근 급격한 합병·인수바람을 타고 있어 유동적이다. 르노, 다임러크라이슬러, 포드 등을 각각 모회사로 둔 닛산, 미쓰비시, 마쓰다 등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포드코리아는 마쓰다의 미니밴 MPV(다목적 차량)와 패밀리 세단 626을 내년부터 한국시장에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중이어서 도요타와 비슷한 시기에 판매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시기와 전략은 다르지만 일본업체들의 한국시장 진출 일성은 ‘고객만족 서비스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고객만족이란 일정한 유형이 없다. 모든 점에서 고객이 고개를 끄덕일 때 비로소 “고객을 만족시켰다”고 말한다. 한국 진출을 낙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동차의 품질은 물론 가격과 물류, 애프터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한국 고객들이 새로운 체험을 하도록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업체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두려운 시장이다. 한국시장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중에도 한·일 간의 과거사에서 비롯된 반일감정이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런 감정이 일본차에 상징적으로 투영될 경우, 더구나 그런 움직임이 조직적인 사회운동으로 확산될 때는 아무 대책이 없다는 것. 한일 어업협상,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교과서 왜곡, 일본 관리들의 망언 등 끊임없이 악재가 터져나오는 현실은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시장의 볼륨이 작다는 것도 고민스럽다. 잠재력은 크지만 현재로선 판매량이 너무 적어 수익성이 떨어지고, 따라서 적절한 투자규모를 결정하기가 어렵다. 늦게 들어오면 시장을 뺏길 것 같고, 일찍 들어오자니 투자부담이 큰 데다 차가 안 팔릴 경우 브랜드 이미지의 실추도 각오해야 한다.
독일차의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 미국차의 튼튼한 차체와 큰 배기량 같은 뚜렷한 카리스마가 부족한 것도 부담스럽다. 다양한 모델을 구비하고 있지만 모델 전부를 투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차는 물론, 다른 수입차와는 다른 초기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로선 자체검사를 인정해주는 미국차나 유럽차와는 달리 요구되는 모든 검사를 다 받아야 하는 인증제도도 장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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