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지금은 작고한 SK그룹 최종현 회장과 신입사원 간의 상견례 자리. 대화를 이어가던 중 한 사원이 이런 질문을 했다. “회장님, 어떤 차를 타고 다니시는지요.” 최 회장이 답했다. “벤츠를 탑니다. 비싸고 좋아서가 아니라 튼튼한 차로 정평이 났기 때문이지요. 내 안전이 곧 회사의 안전이고, 또 국가적 차원에서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신입사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는 자못 숙연하기까지 했다.
2000년 4월, 당시의 최회장과 비슷한 재산을 형성한 30대 후반의 한 벤처기업 사장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사장님, 어떤 차를 타십니까.” “체로키요. 옛날부터 무척 갖고 싶던 거였거든요. 멋있잖아요. 한마디로 ‘돈 값’을 하는 차죠.” 최회장 이야기를 했더니 반응이 즉각 온다. “웃기네요.”
세상이 변했다. 돈 버는 길이 달라지고, 돈 몰리는 곳도 달라졌다. 벤처신흥갑부로 불리는 새로운 부자들이 탄생했다. 첨단 분야에서 단기간에 엄청난 부를 쌓은, 이른바 디지털 부자들이다. 이들은 최회장과 같은 아날로그 부자들과 전혀 다른 특질을 지니고 있다. 돈을 번 방법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그러하다.
얄밉도록 젊은 나이는 또 어떤가. 4월 7일 현재 코스닥 폭락으로 주식평가액이 반 토막 난 시점인데도, 여전히 로커스 김형순(39) 사장의 재산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4000억원(평가액 기준)을 저만큼 앞지른 4811억 원이다. 그 밖에 1000억~3000억원 대의 고만고만한(?) 벤처기업 사장들, 예를 들어 새롬기술의 오상수(36), 버추얼텍의 서지연(37), 다음 커뮤니케이션 이재웅(33) 사장 등도 모두 30대다. 세상이 뒤집힐 때나 가능하다는 청년 갑부의 신화가 21세기 초입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레 너무 많은 억만장자들이 생겨난 탓일까. 걱정스레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벤처 졸부’라는 말도 들린다. 해놓은 일은 없으면서 재벌 흉내부터 내고 다닌다는 비아냥이다. “세상에 착한 돈, 나쁜 돈이 따로 있나. 돈은 그저 돈, 부자도 똑같은 부자”라는 냉소적 시선이다. 디지털 부자는 거품인가, 아니면 우리 경제의 큰 틀을 바꿀 젊은 피, 21세기의 신인류인가.
어떤 사람들인가
구(舊)재력가의 대표격은 아무래도 재벌 사주다. 70년대 말 등장한 부동산 졸부들도 무시할 순 없지만, 이들 역시 종자돈을 움켜쥔 뒤에는 은행 빚을 얻고 공장을 지어 그룹으로 변신을 꾀했다.
재벌 창업주들에겐 대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어린 시절, 혹은 창업 비화가 있다. 하긴 비슷한 연배 가운데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던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빈농 집안 6남 2녀 중 맏이였던 정주영 명예회장은 채 열 살이 되기 전부터 ‘새벽 별 보고 나와 저녁별 보고 들어가는’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은 15세 무렵부터 신당동시장에서 열무를 팔고 신문 배달을 해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역시 빈농의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양털 깎기와 돼지 사육으로 하루 하루를 연명했다.
가난했던만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이도 드물고 또 학창시절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다. 비교적 늦게 재벌 대열에 합류한 김우중 전 회장만 경기중·고, 연세대를 졸업한 정도다. 대신 교우관계들은 좋은 편이었는데, 쾌활하건 내성적이건, 독특한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장남이라는 것도 특징이다. 위에 언급한 세 사람 외에 LG그룹 구인회, 한진그룹 조중훈, 효성그룹 조홍제, 국제그룹 양정모도 장남이다. 이는 우리나라 재벌의 성격과 기업 문화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 전통사회에서 장남은 한 집안의 기둥으로 가족을 건사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권위도 막강한데, 이로 인해 대개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동생들을 불러모아 생계를 책임져주는 대신 몸을 던져 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사업이 성장하면 형 밑에 있던 동생들은 산하 기업들의 경영주가 돼 그룹 회장인 형을 보필하거나, 경우에 따라 분리해 나와 새로이 소그룹을 형성했다. 재벌 특유의 족벌 체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이들 형제간의 위계질서 뚜렷한 협업체제에 힘입은 바 크다. 경영권 계승도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장자에게 돌아갔다. 직원들이 ‘회장님’을 한 집안의 가장처럼 어려워하고 떠받드는 식의 기업 문화도 가부장적 사고에 젖은 총수들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10대 중·후반의 어린 나이에 상점 점원 등 주로 거간꾼이나 장사꾼으로 일하며 이재에 눈떴다는 사실이다. 18세부터 쌀가게 점원으로 일한 정주영, 역시 16세 때 가출해 봇짐장사를 시작한 삼호그룹 정재호, 15세 때 함흥물산 점원으로 취직한 동양그룹 이양구, 19세 때 협동조합 설립으로 소매업에 뛰어든 구인회, 일본에서 전당포 점원으로 일한 신격호. 50~60년대 물자 부족 해결과 이윤 극대화를 위해 가장 성행했던 것이 무역업임을 생각할 때, 장사에 밝은 이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거부의 발판을 마련했음은 우연이 아니다.
빈한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상술을 익힌, 성실성 남다르고 카리스마 빛나는 의지의 화신이자 조직의 절대권력자. 대강 이 정도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자수성가형 재력가의 전형이라 하겠다.
신흥갑부의 대명사는 벤처기업가다. 이들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나이가 젊다는 것. 개중에는 40대, 50대 인사도 끼여 있지만 대부분은 30대, 심지어 20대 중·후반도 눈에 띈다. 창업 후 길게는 10년, 짧게는 1~2년 만에 웬만한 대기업 총수에 버금가는 부를 쌓아올렸다. 200억, 300억 대의 재산을 형성한 이는 셀 수 없을 정도다.
벤처 언저리에서 부를 쌓은 이들의 과반수는 이공계 전공자다. 최근 각광받는 분야가 정보통신 등 기술집약형 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장도 60% 이상이 이공학도다. 아이월드네트워킹 허진호(39), 아이빌소프트 진교문(37), 제이텔 신동훈(39) 사장은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왔다. 나눔기술 장영승(38), 지식발전소 박석봉(38), 새롬기술 오상수, 네이버컴 이해진 사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 버추얼텍 서지현,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은 연세대 전산학과를 졸업했다. 경영학 전공자는 10% 안팎. 재벌 총수들이 후계자를 대부분 미국 대학의 MBA과정에 유학시킨 것과 대비되는 현상이다.
벤처기업가들은 스스로를 ‘마니아’라 칭한다. 밥 먹는 것보다 컴퓨터 만지는 게 좋아, 소프트웨어 개발이 연애보다 더 재미있어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네트워크 게임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 김택진(34) 사장은 “대학 (서울대 전자공학과) 시절부터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했다. ‘작품’이 하나씩 탄생할 때마다 짜릿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컴퓨터가 아닌 그 어떤 것도 나를 이토록 가슴 뛰게 만들지 못한다”고 말한다. 같은 회사 송재경(34) 이사도 마찬가지다. “카이스트 재학 시절부터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었습니다. 먹고 자는 최소한의 시간 외에는 모니터에 붙어 앉아 세월을 보냈죠. 그 때의 맹렬한 몰두와 열정이 오늘날의 ‘리니지’를 있게 했습니다.”
마니아 기질 풍부한 30대 공학도. 신흥벤처갑부들의 평균상이다.
왜 돈을 버는가
작고한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1960년대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거부가 됐다. 이 때까지 그의 목표는 분명 부의 축적이었다. 배고프고 잠잘 곳이 없는데 실리 외면한 명분 쌓기가 무슨 소용이냐는 요지의 이야기도 가끔 했다.
그런데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이 회장은 부쩍 ‘국가’와 ‘사회’를 내세우는 발언들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으로는 자본금 1억원 이상의 회사라면 대소를 막론하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 공헌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1970년 합동참모대학 강연 중). 사업보국(事業報國), 수출보국(輸出報國)은 이회장이 가장 강조하는 삼성의 기업정신이 됐다. 마침내 이회장은 삼성과 국가를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삼성의 사장은 삼성의 사장이 아니라, 국가의 사장이라고 생각하고 일하자”(간부회의 석상에서).
글머리에서 언급한 SK 최종현 회장의 발언도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최회장은 특히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던 말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마찰을 빚어가면서까지 ‘국가경쟁력 강화 민간추진위원회’결성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측근들은 당시 최회장이 ‘아무도 안 하니 나라도 나서야겠다’며 그 일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이렇듯 구 재력가들은 새 사업을 펼치건 어디선가 강연을 하건, ‘국가와 민족을 위해’라는 수식어를 거의 빠뜨리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겠으나, 기본적으로 나라와 자신의 기업을 일종의 공동운명체로 생각했던 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문제는 대다수 재벌들이 “기업=국가”, “치부(致富)=애국”라는 등식을 내세워 정부로부터는 특혜를, 국민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는 사실이다. 줄기가 따로 없는 마구잡이식 사업 확장도 알고 보면 “우리 덩치가 이 정도인데 감히 홀대할 수 있겠느냐”는 배짱 퉁기기일 뿐이었다. 이쯤 되면 국민을 위한 애국인지, 자사 보호를 위한 애국인지 가리기가 쉽지 않아진다.
반면 요즘의 벤처 사장들은 여간해선 국가나 민족 같은 무거운 단어들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누군가 ‘나라를 위해 돈 번다’며 떠들고 다닌다면, 그 동네에선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대신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재미’다. 재미있어 일에 파묻혔다,더 재미있고 싶어 창업했다, 직원들이 재미있게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 돈 버는 일은 그 다음, 또는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한글과컴퓨터의 전하진(40) 사장. 그의 인생 목표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것’이다. “죽을 때 사람이 뭘 남긴다고 생각하세요? 돈? 명예? 아무 것도 아니죠. 그저 매일매일을 즐겁게,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기억 아닐까요. 저는 사업을 ‘엔조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선지 힘든 고비도 고통이라기보다는 극복의 희열이 예비된 장애물 경주같이 느껴져요.”
야후코리아 염진섭(46) 사장은 어떨까.
“정체돼 심심하게 산 기억이 없어요. 첫 직장이 국제상사 수출부였는데 당시로선 첨단인 텔레비전·오디오 같은 전자제품들을 취급했지요. 럭키금성에서도 컴퓨터 수출과장으로 최첨단, 삼보 컴퓨터에서도 독일 현지법인 지사장으로 최첨단, 다시 야후 코리아에서 최첨단. 지겨울 새가 어디 있어요. 새로운 일이 자꾸 생기는데….”
그래서일까, 벤처 사장들은 유난히 호기심이 많다. 같은 일을 2~3년씩 계속하는 걸 못 참는다. 아주 유망한 사업 아이템이라도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면 깨끗이 포기한다. 돈벌이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다니. 대개 ‘나 좋은 일 실컷 하고 싶어 독립했다’는 벤처 사장들에겐 웬만해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벤처에 250억 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는 SK주식회사 최태원 회장(42·고 최종현 회장 아들)도 측근들에게 “재미있어 죽겠다”는 말을 자주 한단다. 벤처, 재미있긴 재미있는가 보다.
왜 돈을 버는가
재벌 기업 성장사와 관련해서는 이미 나온 얘기들이 너무 많다. 때로는 미군, 때로는 군부정권과 밀월을 통해 기회와 시장을 독점하고 각종 특혜를 제공받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권부와 손잡지 않은 재벌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사업하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로비력, 주도면밀함, 권력의 향배를 가늠하는 동물적 감각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야 했다. 좋게 말해 특유의 직관과 도전정신으로 난세를 딛고 일어선 불세출의 승부사들이다.
2~3년 전까지 재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통용되던 믿음은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였다. ‘직원 많고 공장 크고, 문어발 경영을 하는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기업인들은 차입을 통한 공격적 투자로 고수익 사업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외형 부풀리기에 주력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인철 박사는 “정부보호 위주의 폐쇄적 시장경제 하에서는 파산 위험이 크지 않으므로 외형이 기업 순위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된다. 주식 시장이 미발달된 가운데 은행 역시 자산, 매출 등 외형으로 기업을 평가했다. 기업 쪽에선 어떻게 해서든 매출을 늘리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때도 물론 창업주의 부의 원천은 주식이었다. 그러나 증시에서의 주식 평가액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러 계열사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엄청난 배당금이 핵심이었다. 이렇게 생긴 현금은 다시 부동산으로 흡수됐다. 땅 부자가 현금 부자, 현금 부자가 땅부자였다. 재벌의 토지, 자본, 인재 독점은 신흥기업의 성장을 원천 봉쇄했다. ‘보통 사람’이 거부로 도약하기란, 복권에라도 당첨되지 않는 한 쉬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충격의 진원지는 디지털 혁명, 그리고 IMF 구제금융체제의 도래다.
디지털 혁명은 18세기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경제 패러다임의 대이동이다. 첨단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 인터넷이라는 경이로운 매체는 사람·기업·국가 간의 경계를 허물고, 넓은 매장이나 방대한 영업망 없이도 얼마든지 물건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신통한 길을 열어 놓았다.
디지털 혁명의 파도가 전지구적 현상이라면 우리나라에는 IMF구제금융체제가 있었다. 불황이 본격화되자 몇몇 대기업에만 대출을 몰아주던 은행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민간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우, 기아, 뉴코아, 한일, 거평…. 대마(大馬)도 뼈가 약하면 쓰러질 수 있음이 증명됐다. 대기업은 더 이상 최상의 파트너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적은 투자금으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술집약형 기업, 높은 미래 가치를 인정받는 정보통신 전문 기업, 주식시장을 무대로 투명한 경영을 할 준비가 돼 있는 기업. 바로 벤처였다.
벤처 열풍은 기업인 뿐 아니라, 이들에게 종자돈을 댄 투자자, 함께 회사를 키운 직원들, 펀드매니저와 컨설턴트들까지 골고루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한 회사 직원들이 몽땅 억대 재산가가 됐다거나, 어려운 친구를 돕기 위해 속는 셈치고 산 주식이 ‘황제주’가 됐다는 식의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재력가라 불릴 만한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다양해진 셈이다. 이전에는 상위 5% 이내에 집중됐던 부가 일부 ‘보통 사람들’에게까지 나눠지면서 자본가 혹은 재력가의 층이 훨씬 두툼해졌다. 이로써 재벌 주도 경제 체제에 대한 순응 구조도 상당부분 허물어졌다. 재벌의 ‘대안’이 생긴 것이다.
벤처 사장의 부의 원천은 철저하게 주식 평가액이다. ‘오늘 우리 회사 주식이 1주당 얼마에 거래되느냐’에 따라 매일의 재산이 달라진다. 상황이 이런 만큼 대강대강, 잔재주 피워가며 일했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고려대 경영학과 장하성 교수는 “재벌이 밀실 로비로 은행 빚을 얻어 사업을 벌였다면, 벤처기업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지나가는 시민들 주머니 돈을 밑천 삼아 시작한 격”이라고 풀이한다. “은행 한 곳의 감시를 받는 것과, 수많은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엄청난 차이지요. 벤처의 건강성은 여기서 나옵니다. 거품이든 무엇이든, 시장(코스닥)이 만들어 준 부가 아닙니까. 이것이 진짜 자유경제체제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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