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신 술, 그 값은 어떻게 매겨질까. 술값에는 얼마나 많은 세금이 들어 있을까. 이런 것을 따진다면 꽁생원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드물다. 웬만한 주당들도 술과 세금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다. 더욱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요구에 따라 올해부터는 새로운 주세법이 적용되고 있는데, 술마다 세율이 제각각이다 보니 따져보려고 해도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우리네의 독특한 술자리 문화의 하나로 룸살롱 접대문화를 꼽는다. 네댓명이 접대부를 하나씩 옆에 앉혀 놓고 위스키 몇 병 마시고 나오면 술값이 200만 원에 육박한다. 언제부터 이런 문화가 생겼을까. 우리만 이러는 것일까.
다행인지 몰라도 우리와 비슷한 나라가 있다. 대만에도 이런 유의 접대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그로 해서 생겨난 두 나라의 공통점은 고급 위스키의 소비량이 엄청나다는 것.
룸살롱에서 흔히 찾는 양주는 고급 위스키다. 룸살롱에서 코냑이나 진을 찾으면 좀 엉뚱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위스키는 보리를 당화해 발효시켰다가 증류해 참나무통에서 3년 이상 숙성시킨 술이다. 룸살롱에서 마시는 위스키는 대개 국내 양주회사에서 수입한 완제품이거나, 혼합한 원액을 들여다 병입(甁入) 작업만 한 것이다.
세계 위스키 시장의 95%는 12년 미만의 스탠더드급 위스키가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과 대만은 배포가 크다. 12년 이하는 잘 상대하려 들지 않는다. 웬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12년 이상 숙성된 프리미엄급 위스키를 찾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위스키 시장의 80%는 프리미엄급이 차지한다. 이는 위스키 본고장인 영국의 스코틀랜드 지방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양조업자들은 “한국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8년짜리만 해도 상당히 고급술이고 주질에도 별차이가 없는데, 12년짜리가 아니면 수입해가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소주 KO시킨 위스키
접대라는 것이 그렇다. 할 바에야 최고급으로 하고, 확실하게 먹여서 아쉬움 없이 떨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동원된 무기가 프리미엄급 위스키다. 97년부터 3년 동안 영국과 미국이 중심이 되어 한국의 주세를 문제 삼은 WTO 주세분쟁은 바로 이 위스키를 지원하기 위한 공습이었다. 결국 100%였던 위스키 주세율은 72%로 떨어졌고, 35%였던 희석식 소주 주세율은 72%로 급등했다.
WTO 주세분쟁의 쟁점은 한국의 증류주 주세율에 유럽 증류주(위스키 브랜디 진 리큐르 따위) 주세율을 맞추라는 것이었다. 압축하면 위스키와 희석식 소주의 싸움이었다. 그 수혜자는 일견 위스키 강국인 영국 같아 보이지만, 영국 위스키 회사들에 막대한 자본을 대고 있는 미국도 그 못지 않은 이해당사자였다. 재판관 3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을 포함한 유럽대표 10명과 한국대표 10명이 번갈아가며 토론을 벌였다.
한국대표는 “희석식 소주와 위스키는 원료 제조법 도수 가격 소비자층 등 모든 것이 다르다. 같은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주세율을 같게 하라는 거냐. 조세는 주권이다. 그 나라 형편에 맞게 제정하는 것이다. 부당한 내정간섭을 철회하라”고 반박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이미 유사한 분쟁에서 일본이 패소한데다 국제사회는 철저하게 힘의 논리에 이끌리기 때문이었다는 게 한국대표로 참여한 국세공무원교육원 서현수 교수의 말이다.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 미국 대사관과 자기네 나라 대사관 직원들을 풀어서 국내시장 조사를 다 했습니다. 우리가 ‘위스키는 유흥업소에서 주로 소비하는 고급술’이라고 하면 그들은 한정식집에서 위스키 마시는 사진을 제시했습니다. 대사관 직원들이 음식점에서 위스키를 시켜놓고 찍은 기념사진이었죠. ‘희석식 소주와, 3년 이상 숙성시키는 위스키는 제조방법이 다르다’고 하면 저쪽에서는 ‘참나무통 맑은 소주’의 광고가 실린 신문을 내보이더군요. 위스키도 참나무통에서 보관하고 소주도 참나무통에서 보관하니 같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억지 주장을 폈습니다. 재판관들도 서양 사람들이라 그런지 팔이 안으로 굽더군요.”
위스키의 주세율은 최근 10년 사이에 128%나 낮아졌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88년에 200%였던 세율은 91년 150%, 94년 120%, 96년 100%, 그리고 올해 마침내 72%까지 내려와 모든 차별이 사라졌다. 이는 마치 우리 사회의 개방화 지수를 보는 듯하다. 그와 함께 위스키 소비량도 늘어났다. 스탠더드급이 주종을 이루던 88년에 6762㎘였던 위스키 출고량은, 프리미엄급이 주종을 이루는 올해엔 1/4분기에만 5300㎘나 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45%가 늘었다.
위스키 원가, 술값의 40분의 1
우리나라 사람들은 맥주 다음으로 소주를 많이 마신다. 98년 통계자료를 보면 맥주 출고량이 153만㎘, 소주 출고량이 86만㎘였다. 그런데 출고량으로 치면 맥주가 으뜸이고, 알코올 소비량으로 치면 소주가 으뜸인데, 술값으로 치면 위스키가 으뜸이다. 현재 수입 위스키를 포함한 위스키 시장 규모가 1조원 가량 된다고 추정하는데, 실제 유흥업소에서 지불하는 위스키 값은 그 10배인 10조원을 넘는다.
위스키값을 따져보자. 룸살롱에서 가장 많이 찾는 위스키는 500㎖ 국산 프리미엄급 위스키다. 350㎖는 술이 모자랄 것 같고, 700㎖짜리는 남을 것 같아서 500㎖를 잘 시킨다고 한다. 술집 마담들도 500㎖짜리를 선호한다. 500㎖를 주문했다가 약간 부족한 듯해 한 병 더 시켰다 남기는 것이 700㎖를 시켰다가 남기는 것보다 매출에서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내 위스키 시장은 진로 임페리얼 클래식과 임페리얼 인터내셔널, 두산 씨그램의 윈저 프리미어, 하이트맥주 계열사인 하이스코트의 딤플이 3각 편대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모두 12년 이상 된 프리미엄급이다.
서울 강남의 물좋은 룸살롱에서는 이런 술 한 병에 30만 원까지 받고, 그보다 못한 집에서도 대개 20만원 정도는 받는다. 특별소비세를 물지 않는 단란주점으로 내려오면 15만원선이 된다. 카페나 맥주 집에서는 10만원 이하지만 이런 곳은 위스키의 주요 소비처가 아니다. 국산 위스키 출고분의 80%는 주로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에서 소비되는 업소용이다(여기에서 국산이란 말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국내 마스터 블렌더가 현지에서 우리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위스키를 블렌딩할 때 입회한다는 정도의 의미를 지닐 뿐이다. 위스키는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고로 ‘국산 위스키’는 없다. 다만 국내 기업이 병째 수입해 파는 딤플 같은 술이 있는가 하면, 스테인리스 통에 블렌딩된 원액을 수입해 국내에서 병에 담아 파는 임페리얼 같은 술이 있다. 두산 씨그램의 윈저는 두 방식을 겸한다).
그러므로 가정용으로 소비되는 위스키는 전체 출고량의 20% 정도 된다. 500㎖ 프리미엄 위스키의 공장 출고가격은 3개 회사의 제품이 2만1885원 안팎으로 별차이가 없다. 유흥업소용이나 가정용이나 출고가격은 같다. 도매점을 거쳐 술집으로 가느냐 소매점으로 가느냐만 다를 뿐이다. 소매점에서는 평균 2만8500원에 팔린다. 도매마진 10∼15%와 소매마진 10∼15%가 붙었기 때문이다.
출고가격 2만1885원도 모두 순수한 술값은 아니다. 여기엔 주세가 붙어 있다. 원액 가격과 운송비, 광고·판촉비, 인건비를 합한 원가는 1만276원쯤 된다(술의 원가를 계산할 때는 ‘300원53전’ 하는 식으로 전(錢) 단위까지 헤아리지만 이 글에선 생략한다). 거기에 주세(72%) 7399원, 주세의 30%인 교육세 2219원, 부가가치세(10%) 1989원 등 1만1608원의 세금이 붙는다. 그런데 병값과 인건비, 운송비를 빼고 나면 원가 1만276원 중 순수하게 남는 원액값은 5000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룸살롱에서 최고급으로 접대했다고 여기는 20만∼30만 원짜리 고급 양주의 원액값은 겨우 5000원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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