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립’이냐 ‘사후분담’이냐…금융회사 시스템적 위험 정확한 측정이 중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감독체제 개편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어왔다. 이 중 일부는 이미 일반적인 합의사항이 도출돼 세계 각국에서 이행 작업이 추진 중이다. 예를 들어 헤지펀드와 장외파생상품 관련 규제 강화, 금융회사의 보상체계 개선, 신용평가회사에 대한 구조 개혁, 조세피난처 및 비협조지역(non-cooperative jurisdiction) 관련 규제 등은 국제 감독기구를 중심으로 개혁의 기본 방향이 제시됐고, 세계 각국은 이를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단계에 있다.
하지만 아직 국제적 합의 도출에 이르지 못한 이슈도 상당수다. 금융회사의 건전성 규제(prudential regulation) 강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s)에 대한 규제 신설, 금융권의 위기 관련 손실분담(burden sharing) 방안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것이 손실 분담과 관련한 은행세(bank levy) 신설 논의다.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부실 금융회사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다양한 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1월4일 은행의 비예금성 부채에 세금을 부과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로 투입된 공적자금을 보전하는 방안(financial crisis responsibility fee)을 제시했는데, 이를 통칭해 오바마세 또는 은행세라고 한다.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이 미국의 입장에 동조해 유사한 내용의 은행세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세를 포함한 금융권의 손실분담 방안은 금융위기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부담 주체, 부담 방법을 어떻게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지금까지 각국은 금융기관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부담금을 부과해 정리기금(resolution fund)을 적립해 금융기관이 부실화하거나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 이 기금을 사용하는 방안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나라마다 약간씩 다르다.
미국은 자산 규모 500억달러 이상인 50여 개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대형 금융회사에 부보예금(예금보험공사가 보호하는 예금) 및 Tier 1 자본(자기자본) 등을 제외한 비예금성 부채에 대해 0.15%를 과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대로라면 미국은 이번 금융위기 때 지원된 공적자금 1170억달러를 향후 12년에 걸쳐 회수할 수 있게 된다.
‘은행세’ 도입 세계적 추세
영국과 프랑스는 은행세 도입에는 찬성하지만, 아직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진 않고 있다. 단지 영국은 글로벌 차원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은행세 도입과 관련된 8개항의 원칙을 발표했다. 독일은 3월31일 보험사를 제외한 저축은행 및 상업은행에 대해 은행세를 징수해 안정펀드(stabilisation fund)를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세율은 은행의 규모 및 위험 수준 등과 연계해 결정될 예정이다.
스웨덴은 지난해 10월부터 은행세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현재는 총부채에서 자본, 후순위채권 등을 제외한 순부채에 0.018%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으나, 2011년부터는 세율을 0.036%로 인상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향후 15년 동안 GDP 대비 2.5% 수준의 정리기금을 적립한다는 계획이다. 오스트리아는 안정세(solidarity tax) 명목으로 은행의 총자산에 대해 0.07%의 세율을 2011년부터 부과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