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샤는 유명 수입 제품과 당당하게 겨루겠다는 모토로 비교품평을 제안하는 광고를 진행했다.
수많은 기업이 마케팅을 통해 각축을 벌이지만, 화장품 시장이야말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세계 유수의 화장품 회사들도 한국을 테스트 마켓으로 삼아 새로운 제품과 브랜드를 가늠해본다는 것은 업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 그만큼 화장품 시장에는 굵직한 마케팅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최근 눈에 띄는 혁신으로 마케팅 강자로 새롭게 우뚝 선 두 기업의 사례가 흥미롭다. 에이블씨엔씨의 ‘미샤’와 ‘이니스프리’가 그 주인공이다.
혁신의 아이콘 ‘미샤’
미샤는 한국에 저가 화장품 돌풍을 몰고 온 브랜드다. 2000년 ‘뷰티넷’이란 인터넷 전용매장을 통해 화장품 시장에 데뷔한 후, 대부분의 제품을‘정직한 가격 3300원’에 출시하며 브랜드를 알렸다. 3300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한 과정 역시 여느 기업들과 달랐다. 소비자에게 원하는 가격을 직접 들었다. 뷰티넷 회원에게 “미샤의 제품을 얼마에 사겠느냐”고 묻자 많은 고객이 3000원을 꼽았다. 미샤에서는 부가세 10%를 더해 3300원으로 제품 가격을 정했다. ‘미샤 3300원의 신화’라는 책을 통해 알려진 이 이야기는 미샤가 고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2002년, 미샤는 화장품 유통시장의 구조를 뒤흔든 혁신을 단행한다. 국내 최초의 단일 브랜드숍을 설립한 것이다. 당시 화장품 유통매장은 다양한 회사의 다양한 브랜드가 함께 진열되는 곳이었다. 소비자는 매장에서 여러 회사의 브랜드를 한눈에 비교해보고 구매했다. 기업과 소비자 모두 매장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서영필(49) 미샤 대표는 이 상황을 중간 유통단계가 복잡해져 화장품 가격에 거품이 생기는 원인으로 판단했다. 과감하게 단독 매장을 열었다. 유통단계가 줄어들며 기존의 3300원 정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미샤 브랜드숍 1호점은 젊은 여성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이화여대 앞의 패션 거리에 세워졌고 2년 만에 200여 개가 넘는 분점이 생겼다.
이러한 노력은 미샤만의 차별화된 강점이 됐고 성공으로 이어졌다. 자본금 1000만 원으로 출발한 회사가 5년 만에 연 11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기업이 됐다. 2005년 코스닥 상장 때는 청약경쟁률이 700대 1에 달할 정도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상장 후 1년 만에 예상하지 못한 고비가 찾아왔다. 후발주자들이 잇달아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영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단일 브랜드숍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겼다. 거대 화장품 그룹들도 속속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5년에는 후발주자인 더페이스샵에 매출액 1위 자리를 내줬다. 심화되는 경쟁과 해외 투자로 인해 2006년, 2007년에는 순손실이 연이어 발생했다. 300명의 직원 중 6분의 1인 50여 명을 구조조정하며 경영 쇄신을 단행했지만 항간에서는 ‘미샤가 끝났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비교품평 마케팅, “세계 1위 나와”
미샤가 7전8기의 저력을 보이며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지난해 9월 ‘Why Missha’ 캠페인을 시작하면서다. 미샤 마케팅기획팀에서는 향후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왜 미샤여야만 하는지”란 질문을 던졌다. 미샤만이 갖는 차별성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고가 화장품이 반이 넘는 기형적인 한국 화장품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고객에게 전해야 한다”는 답을 얻었다.
미샤 임직원은 제품의 품질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다만, 다수의 고급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미샤 제품에 대한 사용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 미샤의 품질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고객에게 제품 사용 기회를 제공해야 했다. 품질은 사용해본 고객이 직접 평가할 것이었다.
2011년 9월 1일 ‘부담 없이 경험하고 냉정하게 평가하자’라는 슬로건으로 최초의 캠페인이 펼쳐졌다. 스킨을 구매하면 동일한 라인의 로션을 함께 줬다. 대형 마트에서 볼 수 있는 1+1 마케팅이었다. 고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화장품 사용 경험을 확대한다는 미샤 마케팅팀의 전략이 시장에 통하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난 10월, 후속 캠페인이 시작됐다. ‘Why Missha’에 대한 답인 ‘I′m Missha’캠페인이었다. 이번 캠페인의 핵심은 ‘비교품평’이었다. 세계 2위 화장품 회사인 ‘P·G’의 제품과 미샤 신상품의 품질 비교를 요청하는 광고를 한 것이다. 미샤가 지목한 제품은 P·G의 브랜드 중에서도 최고급에 속하는 ‘SK-II’였다. 출시 후 30년 동안 세계시장에서 고급 화장품으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SK-II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와 미샤의 신상품 에센스를 비교품평하자는 내용이었다. SK-II 에센스 공병을 가져오면 미샤의 에센스 제품을 공짜로 주는 파격적인 이벤트도 실시했다.
광고는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기존의 SK-II 고객이 공병을 들고 미샤 매장을 찾았다. 두 에센스를 같이 써본 사람들은 인터넷에 비교 체험한 결과를 올렸다. 고객들은 향, 질감, 효능 등의 구체적인 기준을 들어 상세하게 비교했다. 사용 후 1일, 3일 일주일 등 시간이 지나며 나타나는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피부사진을 직접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미샤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찾아줬다. 전통적인 제품 홍보 방식은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 소비자는 왜 이 제품을 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에 많은 비용을 들였다. 반면 미샤는 제품의 품질을 직접 주장하지 않고 고객이 평가할 수 있게 기회를 열어뒀다.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품평 권한을 줬다. 소비자는 이에 열광하고 자발적으로 제품에 대해 평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