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상태에서는 기업가 정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이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 세계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미국경제는 2002년 3분기에 8.2%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고, 중국 역시 9% 안팎의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며 세계경제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 동남아는 물론 유로지역과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해외경기의 호황 속에 유독 한국경제만 뒷걸음질치고 있는 셈이다.
새해의 전망도 그리 밝지 못하다. 모든 연구기관들이 세계경제를 낙관적으로 전망하지만, 한국에 대해서만큼은 조심스런 예측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OECD는 새해 선진국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한국경제도 수출 호전에 힘입어 2003년보다는 나아질 것이지만, 내부의 불안요인이 여전히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처럼 세계경제가 회복되는데 국내경기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지난 40년 동안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수출은 크게 늘고 있지만 내수 위축은 외환위기 직후보다 더 심각하다는 지적도 많다. 수출과 달리 투자와 소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출과 내수부문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일반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갈수록 어렵기만 하다. 예전처럼 수출의 파급효과가 내수부문에 확산되는 효과도 크지 않다. 1960년대 이후 수출주도형 전략으로 역동적 성장을 지속해온 사실에 비추어보면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이런 추세가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다. 무엇이 우리 경제를 이렇게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과연 한국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서부터 경제 활력을 찾고 성장의 동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인가.
지난 1년의 경제성과에는 참여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 사실이다. 동북아 경제중심을 내걸고 국가의 균형발전을 추진하겠다는 참여정부의 정책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새 정부의 정책은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찾아보기 어렵다. 그 동안 수많은 로드맵(road map)이 발표되었지만 정작 제대로 해결된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도 표류하고 있고, 스크린 쿼터 문제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미국과의 투자협정도 미결과제로 남아 있다.
‘정책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문제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만 무성할 뿐, 수도권에 대한 공장 증설이나 출자총액제한 문제도 달라진 게 없다. 그렇다고 노사관계가 개선된 것도 아니며, 규제완화와 시장의 자율성이 확대된 것도 아니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오히려 노사간 갈등만 증폭되고, 정치개혁도 말만 무성한 채 구체화된 정책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부동산 투기대책이 경제정책의 전부였다고 힐난하는 지적이 많다. 한국경제가 서울시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정부는 말과 토론의 성찬으로 먼 달나라의 지도(로드맵)만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동북아중심 경제에서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정부혁신과 세제개혁 등 굵직굵직한 정책들이 현 정부 들어 많이 거론되었지만 정작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말만 들으면 틀린 얘기가 없고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마땅한 내용들로 가득 찼지만 정작 성장의 동력을 만들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일부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참여정부는 그림이나 그리는 ‘로드맵 정부’이며, 말만 무성한 ‘토론공화국’이며, 모든 것을 정체시키는 ‘스톱공화국’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