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호

은퇴 후 격차는 퇴직 첫날부터 시작된다

[4050 은퇴플랜] 마흔과 쉰, 지금이 은퇴 준비 골든타임

  • 최익성 플랜비디자인 대표

    입력2026-04-13 17: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준비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격차

    • 가장 많이 벌지만, 은퇴 준비 가장 소홀한 4050

    • 퇴직자가 맞닥뜨리는 명함·시간·인정 철수의 충격

    • 4050이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할 네 가지

    • ①재정의 ②평판 ③느슨한 연대 ④아내와 대화

    다방면으로 은퇴 준비를 한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의 일상은 큰 차이를 보인다. AI생성 이미지

    다방면으로 은퇴 준비를 한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의 일상은 큰 차이를 보인다. AI생성 이미지

    박성진과 이재훈. 두 사람은 같은 해에 태어나 유사 업종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박성진은 H자동차 계열사 팀장, 이재훈은 S전자 협력사 부장. 회사는 다르지만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은퇴에 대한 불안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 그리고 2023년 말 54세에 희망퇴직이라는 같은 선택지 앞에 섰다.

    퇴직 첫날부터 시작된 삶의 격차

    당시 두 회사는 대규모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박성진은 1년 가까이 ‘버텨야 하나, 나가야 하나’를 두고 고민했다. 50대에 접어들고 나서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행히 두 자녀 모두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시점이었다. 학자금 대출 걱정도 없었고, 지원해야 할 것도 더는 없었다. 위로금과 퇴직금을 합치면 3억8000만 원. 계산을 거듭한 끝에 그는 희망퇴직 신청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재훈도 비슷한 시기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일찍 결혼해 낳은 두 아이 모두 졸업 후 여러 차례 시도 끝에 취업해 지원 부담도 없었고, 퇴직 패키지도 나쁘지 않았다. 희망퇴직 위로금과 퇴직금도 회사를 더 다니는 것보다 이득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사인을 했다. 

    퇴직 후 2년이 지난 시점에 두 사람의 하루는 완전히 달라졌다. 박성진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중소기업 두 곳의 경영 자문을 맡아 진행했고, 월 180만 원의 고정 수입을 확보했다. 수요일 저녁에는 재즈 감상 동호회 모임에 참석했다. 퇴직 전부터 2년 넘게 나간 모임이라 회원들과 제법 깊은 우정이 쌓였다. 금요일 저녁이면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어 수업에 간다. ‘언젠가 이탈리아 한 달 살기를 해보자’며 퇴직 3년 전부터 함께 시작한 수업이다. 달력에는 약속 메모가 빼곡하고, 휴대전화에는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

    이재훈의 하루는 그에 비하면 공허하다. 퇴직 후 6개월은 그래도 견딜 만했다. 오래 꿈꿨던 여행도 다녀오고, 책도 읽고, 오랜만에 느긋한 아침을 즐겼다. 그런데 7개월째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갈 곳이 없었다. 연락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오전 10시에 아내가 나간 뒤 혼자 남겨진 거실에서 TV를 켜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재취업을 알아봤지만 이력서를 보낼 곳이 없었다. 그가 30년간 쌓아온 것은 ‘S전자 협력사 이재훈 부장’이었지, ‘인간 이재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두 사람의 은퇴 후 인생이 이처럼 차이가 난 원인은 퇴직금도 위로금도 아니었다. 단 하나, 은퇴 이후의 인생을 준비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있었다.

    가장 많이 벌지만, 은퇴 준비 가장 소홀한 4050

    박성진의 불안은 47세 생일이 지나고 나서 시작됐다. 회식 자리에서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나오는 이야기들, 누가 명예퇴직을 했다더라, 어느 팀이 구조조정 대상이라더라 등등 그런 이야기가 예전과는 다르게 들렸다. ‘저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감각이 서늘하게 그를 덮쳤다. 

    이재훈도 마찬가지였다. K은행 거래처 담당자가 갑자기 희망퇴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 한편이 답답해졌다. 그 담당자는 자신과 나이가 비슷했다. ‘내가 버텨봤자 얼마나 버티겠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게 바로 그때였다.

    4050은 모순의 세대다. 가장 많이 벌고 가장 많이 쓰는 세대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준비에는 가장 소홀한 세대다. 위로는 부모 부양, 아래로는 자녀 교육이 동시에 압박한다. 자녀 대학 등록금, 부모 병원비, 대출 이자 등등을 감당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이재훈은 평소 ‘설마 나까지?’ 하는 생각으로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지만, 별문제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 학자금은 다 냈고, 퇴직금과 위로금을 합치면 3억5000만 원 정도 손에 쥘 걸로 보였다. 주변에 퇴직한 선배들이 잘 사는 것 같았고, ‘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서 생긴 여유를 더 잘 먹고 더 잘 쉬는 데 썼다. ‘나중에 하면 되지’ 하는 안일한 태도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박성진도 상황은 비슷했다. 위로금과 퇴직금을 합치면 3억8000만 원이 예상됐다. 아이들 둘이 대학을 마쳤고, 더는 손 벌릴 일이 없었다. 그도 회사에 남아 버틸까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재훈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나가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이미 어느 정도 그려져 있었다. 재즈 동호회 활동, 중소기업 사장의 자문 요청, 아내와 함께 다니는 언어 수업 등 할 일이 떠올랐다. 퇴직 후의 일상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같은 숫자 앞에서도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 차이는 퇴직 후 2년 만에 눈에 보이는 격차로 돌아온다.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맞닥뜨리는 세 가지 충격

    퇴직 후 경제적인 충격이 먼저 찾아올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은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심리적 충격’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고 한다. 크게 세 가지 충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명함 충격이다. 퇴직 다음 날 아침, 출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의 무게는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아침 7시에 눈이 떠진다. 30년의 습관이다. 그런데 갈 곳이 없다. 명함이 사라졌다는 것은 종이 한 장의 문제가 아니다. 30년 동안 ‘나’를 정의해 준 모든 것이 사라지는 사건이다. S전자 협력사 이재훈 부장도 없고, H자동차 계열사 박 팀장도 없다. 남는 것은 그냥 ‘나’인데 그 ‘나’가 누구인지 모른다. 

    두 번째는 ‘시간의 역설’이다. 직장인들은 평생 시간이 없는 삶을 살았다. ‘바빠서 못 해’ ‘나중에 시간 나면 할게’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들이 막상 시간이 무한정 주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은퇴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긴 하루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시간은 그냥 주어지면 공포가 된다. 의미 있게 채울 무언가가 없는 시간은 공허함으로 가득 찬다. 은퇴 후 TV 시청과 수면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미리 그 시간을 채울 준비를 해두지 않은 결과다. 여가를 누리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갑자기 주어진 자유는 선물이 아니라 형벌처럼 느껴진다.

    세 번째는 ‘인정 철수의 충격’이다. 직장에서는 매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보고를 받고, 결재를 하고, 의사결정을 내리고, 회의를 이끌었다. 내 한마디에 팀이 움직였다. 그런데 퇴직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 아무도 전화하지 않는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인정 철수’의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은 정신 건강의 핵심이다. 이것이 갑자기 사라지면 자존감이 무너지고, 정체성이 흔들리고, 삶의 의미를 잃는다. 단순한 ‘심심함’이 아니라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경로다. 

    반면 퇴직 후에도 연락이 오는 사람들이 있다. 후배들이 조언을 구하러 오고, 동호회 회원들이 다음 약속을 잡고, 자문을 구하는 전화가 온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퇴직 전 몇 년 동안 무엇을 쌓았느냐에서 온다. 평판은 퇴직 전에 만들어진다. 퇴직 후에는 이미 늦다.

    4050이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할 네 가지

    골든타임은 무한하지 않다. 불안을 안고 있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지금 이 시기에 실제로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할 때다. 첫째, 직함을 떼고 나를 재정의해야 한다. 지금 당장 이력서에서 회사 이름과 직함을 지워보라.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진짜 경쟁력이다. ‘H자동차 계열사 팀장’이 아니라 ‘복잡한 공급망 문제를 30년간 해결해 온 사람’이어야 한다. ‘K은행 지점장’이 아니라 ‘중소기업 대출 심사와 자금 조달의 전문가’이어야 한다. 이 재정의 작업이 퇴직 후 2막의 출발선이다. 

    이 작업은 혼자 하기 어렵다. 신뢰할 수 있는 선배 퇴직자, 커리어 컨설턴트, 혹은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동료와 함께 해보라. ‘내가 없어진다면 조직에서 무엇이 가장 아쉬울 것인가’를 진지하게 물어보라. 그 답이 당신의 진짜 자산이다. 

    둘째, 직장 밖에서 쓸모를 만들어야 한다. 퇴직 후에도 연락이 오는 사람은 특별한 능력자가 아니다. 직장 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꾸준히 자신의 가치를 보여온 사람이다. 업계 세미나에 발표자로 나서보라. 후배 스타트업에 멘토로 등록하라. 전문 분야 블로그를 시작하라. 강의를 한번 맡아보라. 이 모든 것이 ‘퇴직 후에도 연락이 오는 사람’의 토대가 된다.

    재취업 전문가들은 말한다. 임원급 이상의 재취업은 취업 포털이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분야에서 신뢰받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지금 만들어두지 않으면, 퇴직 후에는 만들 기회가 없다. 평판은 재직 중에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느슨한 연대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 동호회에 가입하라. 평생교육원 강좌를 수강하라. 지역 커뮤니티에 얼굴을 내밀어라.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하다. 수십 년간 직장이라는 구조 안에서만 관계를 맺어온 사람에게 구조 없는 만남은 낯설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50대에 이겨내야 60대에 자연스러워진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매주 한 번, 같은 시간에,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이 예측 가능한 만남이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관계를 만들고, 관계가 기회를 만든다. 오늘 동호회에 처음 나간 사람은 2년 후 그 모임의 핵심 멤버가 된다. 오늘 시작하지 않으면 2년 후에도 새로운 사람이다. 

    넷째, 배우자와 지금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은퇴 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은 배우자다. 그런데 많은 부부가 은퇴 계획을 함께 이야기하지 않는다. 각자 머릿속에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이 전혀 다를 때, 퇴직 후 충돌은 예고된 것이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서 생긴 그 공백의 시간, 부부가 함께 채울 무언가를 지금 찾아야 한다. 박성진 부부의 이탈리아어 수업은 언어 공부가 아니었다. 은퇴 후의 공동 프로젝트를 미리 심어두는 일이었다.

    4050 은퇴 준비 골든타임, 두 번은 없다

    의학에서 골든타임은 치료 효과가 가장 극대화되는 시간의 창을 말한다. 뇌졸중 환자에게 골든타임이 3시간인 것처럼, 인생 후반전 준비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그리고 그 창은 마흔과 쉰, 이 시기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40대라면, 아직 골든타임의 한가운데 있다. 가장 좋은 시기다. 50대 초반이라면 골든타임의 후반부다. 서둘러야 하지만 늦지 않았다. 50대 중반을 넘겼다면, 지금이 은퇴를 준비할 마지막 순간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포기할 이유는 없다. 늦게 시작한 준비도 안 한 준비보다는 항상 낫다. 

    현장에서 만난 수백 명의 퇴직자 중 준비를 너무 일찍 시작했다고 후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후회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더 일찍 시작할걸”이었다. 거창한 계획은 필요 없다. 지금의 작은 결단이 쌓여 인생 후반전의 무대를 만든다. 마흔과 쉰, 이 시간은 두 번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