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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GO의 한국 낙선운동 따라배우기

일본 NGO의 한국 낙선운동 따라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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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3총선을 뜨겁게 달궜던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오는 6월25일로 중의원 선거를 앞둔 일본에 전파돼 다시 정치개혁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정치 무관심의 표상인 일본에서 낙선운동과 정치개혁의 새바람은 성공할 것인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총리가 4월2일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진 후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시기를 두고 자민당의 각 파벌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4월 하순.

자민당 내부는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일본의 주간지인 ‘슈칸 호세키(週刊 寶石)’가 지식인 5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낙선하게 만들고 싶은 국회의원’ 50명 명단을 공개한 것. 일본 시민단체들이 한국의 낙선운동을 도입해 추진하고 있었지만 낙선대상자의 명단이 발표된 것은 처음이었다.

자민당 발칵 뒤집은 슈칸호세키

게다가 이 낙선대상 명단은 대학교수 변호사 평론가 언론인 등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 50명이 자신의 실명(實名)을 내걸고 의견을 밝힌 것이어서 더욱 충격을 주었다.

자민당 임원연락회는 “아무리 보도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고 해도 이는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며 법적대응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내용중 일부는 사실무근인데다가 낙선운동 대상자의 선정 기준도 모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자민당이 발끈한 것은 이번 낙선대상 명단에 자민당 의원이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

상위 20명 중 14명이 자민당 의원이었으며 모리 요시로(森喜朗·6위) 총리(당총재)를 비롯해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2위) 간사장,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3위) 정조회장 등 거물 정치인도 포함됐다.

게다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가 낙선대상 1위로 꼽힌 데 이어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4위)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8위·현 대장상)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18위) 등 역대 총리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물론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7위) 자유당 당수와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9위)공명당 대표, 도이 다카코(土井たか子·11위)사민당 당수 등 각 당의 거물급 정치인들도 다수 포함됐다.

‘시민연대·물결21’이 낙선운동 첫 테이프

낙선시켜야 할 이유도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1위의 다케시타 전총리는 1년 이상 병원에 입원해 의정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도 막후에서 자기 파벌을 움직여 정치를 불투명하게 한다는 것이 낙선 이유로 거론됐다. 현총리인 모리에 대해서는 ‘지력 담력 어느 면에서 보나 총리감과는 거리가 먼 존재’ ‘말도 안 되는 내각의 책임자’라는 신랄한 평가가 내려졌다.

낙선대상 명단을 발표한 것은 슈칸호세키가 처음이지만 실제로 일본의 낙선운동에 불을 지핀 사람은 시민운동가 사쿠라이 젠사쿠(櫻井善作·65)씨였다.

도쿄(東京) 고가네이(小金井)시에서 자비(自費)를 들여 15년째 ‘노비(野火)’라는 월간신문을 만들고 있는 그는 ‘시민연대·물결21’이라는 시민단체를 조직, 지난 4월 초부터 낙선운동을 시작했다.

시민연대·물결21은 지난 4월10일 낙선운동 전개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한 데 이어 17일부터 도쿄 유락초(有樂町), 도쿄 역, 우에노(上野) 역 등에서 가두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전국 유권자들에게 낙선대상 후보자들의 이름과 이유를 전화나 이메일 엽서 등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낙선시켜야 할 후보를 뽑는 이른바 ‘낙선투표’인데 4월30일 현재 유권자들의 참여는 1500건에 이른다.

이 단체의 낙선운동 대상 선정기준은 우선 크게 ‘기본적인 결격자’와 ‘생명과 생활을 위협하는 자’의 두 부문. 기본적인 결격자는 ▲오직(汚職) 탈세 등의 전력이 있거나 ▲선거법 위반 전과가 있고 ▲의회 출석률이나 국회질문횟수, 입법제안활동이 부진한 의회활동태만자 등이다.

또 생명과 생활을 위협하는 자는 ▲평화나 인권 환경 복지 등에 대해 적대적인 발언을 하거나 ▲전쟁책임이나 전후보상 강제연행 종군위안부 등의 문제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 교육을 파괴하려고 한 자 등을 포함한다.

이 단체에 들어온 낙선투표 내용도 주로 정치원로들에 대한 비판이 많다. 예를 들면 한 시민은 나카소네 전총리에 대해 ‘실제로는 국회 활동이 거의 없는데 자민당 비례구 종신 1순위는 이상하다’고 지적했고 또 다른 시민은 미야자와 대장상에 대해 ‘거품경제의 책임자’로 지목했다.

이 단체는 변호사 등을 포함한 ‘100인 위원회’를 구성해 낙선투표에서 많은 표를 얻은 문제후보들에 대한 검증작업을 거친 뒤 부적격 후보를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시민연대·물결21의 낙선운동을 계기로 비슷한 유형의 낙선운동이 일본 곳곳에서 시작됐다.

시민들의 낙선운동 확산

4월24일 저명인사 11명으로 결성된 ‘정치가 평정회의’는 ‘지연 혈연 등 개인적인 인연이나 호감만으로 투표하지 말고 정책비전을 엄격히 따진 뒤 제대로 된 국회의원을 선출하자’는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임에는 논픽션 작가인 이시카와 요시미(石川好), 평론가 사타카 마코토(佐高信), 저널리스트 다카노 다케시(高野孟), 작가 다나카 야스오(田中康夫)를 비롯해서 변호사 작곡가 등 일본 사회를 이끄는 저명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이번 중의원선거 입후보 예정자를 대상으로 헌법개정이나 환경보호정책 등 6개항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유권자들이 이 자료를 토대로 부적격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않도록 한다는 계획.

특정정당에 몸을 담지 않고 있는 ‘무당파(無黨派)’ 지방의회 의원들도 낙선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즈오카(靜岡)현 무소속 지방의회 의원들은 최근 ‘무지개와 녹색의 500인 리스트’를 조직하고 시즈오카현 입후보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낙선운동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또 도쿄도 기타(北)구 의회의 후루자와 구미코 (古澤くみ子)의원도 ‘자민-공명-보수당 반대 수도권 네트워크’를 만들어 도내 23구에서 낙선시키고 싶은 후보에 ‘×표’를 하는 운동을 시작했으며 오사카 등 간사이지역에서는 ‘파수꾼’ 등 시민단체 10여개가 최근 ‘결함의원을 낙선시키는 시민연대’를 결성해 공동으로 낙선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낙선운동에 자극받아 전국 선거구에서 시민단체 주최의 공개토론회도 속속 열릴 계획이다. 4월23일 마이니치신문 조사에 따르면 전국 300개 소선거구 중 226개 선거구가 시민단체 주최로 공개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일본은 1983년 이후 합동연설회를 폐지했다.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야유가 심하다는 이유였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을 한 자리에서 비교평가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었는데 이를 보완하자는 것이 시민단체의 공개토론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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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이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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