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르메르가 그린 ‘델프트의 풍경’
“세계는 신이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조금은 불경스럽고 오만하게 들리는 얘기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의 ‘바다와의 목숨 건 싸움’을 알고 있는 사람이면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다. ‘낮은 땅(low land)’이란 뜻의 네덜란드는 해수면보다 낮은 국토를 보호하기 위해 바다를 막고 둑과 운하를 만들면서 살아온 나라다. 국토의 25%가 수면보다 낮아 방파제, 방수제, 방조제로 물을 막지 않을 경우 국토의 60%가 물에 잠긴다. 또 국토의 25%가 간척사업을 통해 넓힌 땅이다.
다소 의외일지 모르지만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감각은 다른 어떤 나라 사람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도자기와 다이아몬드 세공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렘브란트, 고흐, 베르메르 등 미술계의 거장들을 많이 배출했다. 델프트는 네덜란드에서도 예술적인 감각이 높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델프트의 풍경’ ‘회화의 우의’ 등의 명작을 남긴 17세기 거장 베르메르의 고향이 바로 델프트다.
델프트 역시 네덜란드의 다른 도시들처럼 북해를 막아 만든 운하로 이뤄진 도시다. 시내는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며 구시가는 오래된 도시 특유의 독특한 정취를 풍긴다. 도시의 크기는 시민들이 ‘마을’이라고 부를 정도로 작다. 자전거로 한두 시간 정도면 시내를 훑어보기에 족하다. 그러나 네덜란드 황금시대 중심도시였던 이곳에 녹아든 문화와 예술의 숨결을 제대로 느끼려면 1주일도 모자란다.
델프트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풍스러운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다. 중세풍의 건물들이 운하를 따라 늘어서 있는 광경은 마치 한 폭의 완벽한 풍경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베르메르가 17세기에 그린 명화(名畵) ‘델프트의 풍경’은 도시 곳곳에 그림이 아닌 현실로 살아 숨쉬고 있었다. 동화책을 떠올리게 만드는 아기자기한 작은 집들, 주택가 현관 앞에서 헤엄치는 철새 떼, 벽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형 창문에 놓인 형형색색의 꽃들…. 이러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예술적 감수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