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7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과 만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돌이켜볼 때 한미 관계는 공조와 협력이라는 큰 틀 속에 갈등과 마찰이 내재된 구조였지만, 북한이라는 실재하는 위협과 그에 대한 공동봉쇄라는 목표 하에서 동맹은 무난히 유지될 수 있었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1998~2003)가 추진했던 ‘햇볕정책’은 북한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교류를 통해 남북한 관계에 관한 한 한국을 주(主)조종사의 자리에 앉혔으며, 클린턴 행정부는 이러한 한국의 주도성을 상당히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0년 6월의 역사적인 남북한 정상회담도 이러한 맥락에서 성사될 수 있었다.
2001년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의 ‘상호주의를 결여한’ 대북 정책에 대해 견제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2001년 9월11일의 테러참사는 미국이 바라보는 국제정치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았으며 북한이 이라크나 이란과 같은 ‘악의 축’ 성원으로 분류되면서 한반도에 대한 한미간의 시각에 가시적인 차이가 두드러지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2002년 10월 북한이 비밀리에 진행하던 농축우라늄 계획이 밝혀지고 이어 미국이 중유공급을 중단하면서 소위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에 따른 북핵 동결의 구조가 깨졌다. 그 후로 북핵 문제의 완전하고도 ‘불가역적인’ 해결을 위해 3자 회담 및 6자 회담이 열렸으며 한미간 공조와 협의가 강조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북한에 대한 압력 사용에 대해 한국과 미국 사이에 적잖은 차이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 와중에 국내에서는 한미 동맹에 대한 관점 차이로 보수와 진보 간의 논쟁과 대립이 가열되고 있다. 동맹 대(對) 민족이라는 이분법적 논의의 구도도 잘못된 것이지만 국가전략에 대한 논의가 북핵에 대한 해법만을 놓고 이루어지고 있는 점도 매우 아쉽다.
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한미 동맹을 보려면 중국 변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바라보는 워싱턴이 한국 대외관계의 최소한 절반 이상이라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동아시아 정책의 부분집합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현재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은 중국에 대한 ‘은밀한’ 경계이기 때문이다.
한미 관계의 중국 변수
3자 회담뿐 아니라 6자 회담에서까지 중국이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자 북핵 문제의 다자적 해결을 주장해온 미국은 이를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를 계기로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높이게 될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2000년 6월15일 남북한 정상간에 발표된 공동성명이 중국의 입장과 매우 비슷한 ‘자주’에 기반한 평화통일을 포함했을 때 미국이 보인 불쾌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02년 여름 한중 수교 1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 가운데 여중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반미집회가 열린 것도 미국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 해 말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의 배미(拜美)적 발언과 북핵 협의과정에서 노정된 한미간의 차이는 한국이 미국을 벗어나 전략적 대체재(strategic supplement)를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북한이 한미 동맹의 강화를 위한 접착제이기보다는 오히려 장애물로 작동하고 한국 내에서 중국에 거는 기대가 급격히 커지면서 미국의 대표적 보수논객인 사파이어(William Safire)나 크라우테머(Charles Krauthammer) 등은 한국이 더이상 ‘동맹’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정도의 ‘중립국’일 뿐이라며 미군 철수를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