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애버리진이 호주 땅의 원소유권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은 호주 식민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영국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자유와 평등사상이 자연스럽게 유입된 것. 그 결과, 호주인의 끈끈한 동지애(Mateship)를 잉태하게 만든 평등주의(Egalitarianism)는 호주의 건국이념이면서 200년 넘게 이어지는 국가이념이 됐다.
호주를 일컬어 ‘계몽주의가 낳은 사생아’라고 표현하는 역사학자들이 있다. 식민지 건설 당시의 유럽 상황에 빗댄 태생적 특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중세적 질서에 저항하면서 과학적·합리적인 사고로 산업혁명을 일으켜 세계 최초의 자본주의를 태동시킨 영국이 지구 반대편 호주대륙에 죄수 유형지를 만든 까닭이었다.
그래서일까. 식민지 첫 도시였던 시드니는 우울한 구석이 있다. 눈부시게 강렬한 시드니 햇빛으로도 낙오자들(Underdogs)의 절망감, 모국에서의 추방과 유형(流刑)의 경험에서 생겨난 트라우마(trauma)를 지울 수 없었던 것. 호주가 1인당 맥주 소비량 1위, 1인당 도박 액수 1위를 기록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호주인의 특성 중에서 영국적인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초기 정착민(죄수·Convicts)이 산업혁명의 뒷전으로 밀려난 ‘올리버 트위스트의 후예들’과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구빈원(Work House) 출신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영제국에 태어났으면서도 하층민 계급의 열패감에 시달렸던 그들은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호주 신대륙에 도착하면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mono class society)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호주의 건국이념이 된 평등주의가 탄생한 배경이다.
호주는 태생적으로 영국과 미국의 영향 아래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영어권 국가인 캐나다, 뉴질랜드 등과 함께 영국 역사와 문화를 공유했고, 20세기 패권 국가로 등장한 미국과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그런 가운데 형성된 호주인의 특성을 모아봤다.
# 사투리가 없는 호주 : 적은 숫자의 인구가 드넓은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사투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놀랍게 받아들이는 언어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호주인은 독특한 억양과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언어 습관(파리가 입안으로 들어가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있음)을 갖고 있어서 외국인들로부터 알아듣기 힘들다는 불평을 듣는다. 호주인의 발음 습관은 사회계층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1) 약 40%가 런던 노동자 계층이 사용했던 발음 습관을 갖고 있다. 2) 약 50%가 영국 발음과 미국 발음의 중간에 해당되는 호주 표준 발음을 한다. 3) 약 10%의 호주 국민이 ‘퀸스 잉글리시(Queen′s English)를 구사한다. 음절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호주 ABC방송 방송인들의 발음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속물들의 영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한다.
# 삶의 태도 : 힘들게 살면서 목표를 성취하는 성공/출세 지향적인 사람의 숫자가 많지 않고, 단순하게 살면서 인생을 즐기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역사학자 매닝 클라크는 이런 성향에 대해 “호주인 대부분이 야심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낙천적인 방식으로 살면서 일상적인 행복을 추구할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 호주인의 개방성과 열패감 : 호주 서민은 집과 집 사이에 울타리가 없고, 존칭 대신 이름만으로 통하는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경찰관을 적대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관료, 정치가, 학자, 직장상사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그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성향이 강하다.
반면, 평생 광산지역을 떠돌았지만 단 한 번도 행운을 맞지 못한 사람(리처드 마호가니)을 높이 평가하고, 은행을 털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던 의적(네드 켈리)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등 열패자의식(underdog)을 떨쳐내지 못한다.
# 동지의식과 평등사상 : 음식과 의복을 훔치는 등의 작은 죄 때문에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호주(Never, never land)로 내동댕이쳐진 초기 죄수들(Convicts)은 간수와 경찰의 잔혹함을 견뎌내기 위해서 힘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 또한 오지를 떠돌면서 황무지를 개간하기 위해서도 동지가 필요했다. ‘호주 문학의 아버지’ 헨리 로슨의 작품 ‘조 윌슨과 그의 동지들’의 테마가 고립(isolation)과 동지애다.
순수한 동지애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한 동지의식이었다. 그런 연유로 갑자기 성공한 동지와 신분상승을 꾀하는 친구를 배반자로 취급했다. 이를 두고 ‘키 큰 양귀비 증후군(Tall Poppy Syndrome)’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키가 웃자란 양귀비를 쳐내듯 혼자만 잘나가는 사람을 좋지 않게 보는 현상을 말한다. 그 결과, 호주의 평등주의에 의구심을 표하는 학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