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대포동미사일 시험발사, 재처리시설 재가동이 미국의 레드라인

북핵문제 관련 퍼그워시 워크숍 참가기

  • 글: 강정민원 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핵공학박사 jmkang55@hotmail.com

    입력2003-03-24 18: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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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월21일부터 사흘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스웨덴 퍼그워시(Pugwash)와
    • 국제 퍼그워시 주관으로 비공개 브레인스토밍 워크숍이 열렸다.
    • 세계의 저명한 핵과학자들이 참석한 이번 모임의 주제는
    • ‘한반도 주변상황을 배경으로 한 북핵 문제의 해결책 검토’.
    • 한국 대표로 참가한 원자력정책센터 강정민 박사의 참가기를 싣는다(편집자).
    대포동미사일 시험발사, 재처리시설 재가동이 미국의 레드라인

    지난 3월5일 촬영된 북한 영변의 5MWe 원자로. 굴뚝에서 나오는 희뿌연 연기(원안)가 원자로 가동중임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지난 2월21일부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퍼그워시의 비공개 브레인스토밍 워크숍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지난해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의 방북 이후 날이 갈수록 긴장감이 더해가는 한반도 주변 상황과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북핵 문제의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참석자는 필자를 포함해 일본, 중국, 스웨덴, 유럽연합, 러시아의 핵 및 안보문제 관련 민간 전문가 15명이었다.

    당초 미국과 북한에서도 몇 명의 전문가가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각자의 사정으로 돌연 참석을 취소했다. 특히 기대가 컸던 북한 전문가들은 베이징까지 나왔다가 되돌아가야 했던 것으로 전해져 참석자들을 더욱 아쉽게 했다.

    “켈리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았다”

    회의는 비공개 원칙 아래 개개인의 발표와 자유토의 위주로 진행됐다. 각국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정보들이 쏟아져나왔다. 각국의 최고위급 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눈 바 있는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은 민감한 수준의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이 글은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필자가 이번 워크숍에서 오고간 논의내용과 평소 분석해둔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인용된 일부 정보는 미국, 북한, 유럽연합 등의 고위급 정책결정자들과 논의를 거친 믿을 만한 소식통(사정상 신분을 밝힐 수 없는 관계로 이 글에서는 Mr. Q로 칭한다)으로부터 확인한 내용이다. 회의가 비공개를 원칙으로 진행됐던 만큼, 일부 정보와 분석은 출처를 밝히지 못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부디 이 글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위기상황의 심각성을 환기시키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 바란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그간의 진행상황을 간략히 살펴보자. 주지하다시피 북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지난해 10월 부시 미 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켈리 차관보가 같은 달 16일 “북한이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비밀 개발 계획을 시인했으며, 이는 북미간 제네바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미국은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시인에 대한 대응으로 12월 분부터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했고, 이에 북한은 12월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동결한 핵시설의 봉인 및 감시 장치를 제거하고 사찰단을 추방함으로써 맞대응했다.

    이후 양국 정부의 대립이 가속화되면서 북한은 올해 1월10일 지난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이래 두 번째로 NPT 탈퇴를 선언했다. 더욱이 2월 말에는 동결 핵시설인 영변의 5MWe 흑연로를 재가동했으며 3월9일 현재 재처리시설도 가동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대(對) 이라크전 개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 2월말부터 동해상 미사일 발사시험, 전투기 남하사건 등을 일으키며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은 미국대로 대북 경고용인 동시에 유사시 공격용으로 사용할 B1, B52 폭격기 24대를 괌에 배치하는 등 한반도는 1994년 이후 최대의 위기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번 퍼그워시 워크숍의 주요 논제 중 하나는 북핵 사태의 시작이 타당했는가 하는 부분이다. 직접적 발단이 된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 켈리 특사가 북한에 제시했다는 ‘증거’는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였다.

    켈리 특사는 “북한이 이를 시인했다”고 주장한 반면,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관한 켈리 특사의 추궁에 “(북한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고만 말했다고 주장할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실체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는 셈이다.

    핵심 변수 중 하나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해 북·미 양측의 주장이 크게 어긋나는 것은 현 위기의 해결책 모색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당시 북미간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회의에 참석한 일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켈리 특사가 제시했다는 ‘증거’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Mr. Q에 의하면 켈리 특사가 방북했을 당시 북한은 미국이 호의적인 제의를 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켈리 특사가 아무런 증거 제시도 없이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북한의 자백을 강요했다는 것. 이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북한측 대표는 그날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등과 긴급히 협의했고, 이튿날 강석주 부상은 켈리 특사에게 북한은 그러한 계획을 확보할 권리(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함하여)를 가진다는 표현으로 대응했다는 설명이다.

    켈리 이후 북 강경파 득세

    켈리 특사가 북한측에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측 상황에 정통한 미 핵비확산정책교육센터의 헨리 소콜스키도 인정하고 있다. 소콜스키가 지난 1월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에 의하면, 켈리 특사는 북한측 대표에게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을 농축하여 제네바합의를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만 말했다는 것. 이와 함께 북한이 (미국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그에 따라 혜택과 원조를 받으려면 우라늄 농축을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미국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관련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정보원을 잃을 염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아래는 소콜스키의 이메일 중 관련 내용이다.

    ‘Kelly simply told DPRK officials that the USG knew North Korea was violating the agreement by covertly enriching uranium and that if the DPRK ever wanted to receive the benefits of normal relations and other aid, it would have to stop. The USG has decided not to share the actual intelligence with anyone other than its friends since to make it more available would risk losing the sources and methods that allow the US to keep track of the program.’

    이밖에도 Mr. Q는 당시 북한의 강석주 부상은 핵문제 일괄타결을 위해 북한체제 보장을 담보로 하는 김정일-부시 양국 정상회담을 켈리 특사에게 제의했다고 전했다. 또한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저명한 핵군축 전문가에 따르면 이때 북한측은 일괄타결 협상의 일부로 플루토늄을 25~30kg 가량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용후 연료 8000여 개를 즉각 북한 국경 밖으로 반출하겠다는 제안도 켈리 특사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강석주 부상의 제의는 끝내 미국측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와 같이 켈리 특사 방북 당시의 북미간 협의 상황을 고려할 때,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의한 북한의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양측 주장의 신빙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없다고 단언하지 않고 있다.

    한편 켈리 특사의 방북에서 미국의 강경자세를 확인한 이후 북한의 정책·의사결정 과정에는 온건·개방파가 발언권을 상실한 대신 강경파(강석주 부상, 조명록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등)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고 최근 북한을 다녀온 일부 참석자가 밝혔다. 최근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측의 행위들, 즉 지난 2월20일 북한의 MIG19 전투기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 2월25일 동해상 지대함 미사일 발사, 3월2일 동해상에서 발생한 북한 전투기들에 의한 미 정찰기 위협비행 사건, 3월10일 동해상 지대함 미사일 2차 발사 등도 이러한 북한의 정세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핵 위기 해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쟁점은 북한의 핵물질 현황 및 생산능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1~2기 분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으며 재처리에 들어갈 경우 수개월 내에 핵무기 4~6기 분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분석은 과연 어떤 경로를 통해 도출된 것일까.

    먼저 북한의 플루토늄에 대해 알아보자. 공개 자료에 의하면 현재 재가동중인 영변의 5MWe 흑연로는 1986년부터 가동을 시작했고 1989년 3개월간 운전을 정지해 사용후 핵연료를 상당량 방출했다. 이때 방출된 사용후 핵연료에는 6~8kg 정도의 플루토늄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965년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영변의 IRT-2000 연구용 원자로에서 방출한 사용후 핵연료는 2~4kg 정도의 플루토늄을 포함하고 있을 것으로 IAEA는 추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1~2기 분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핵무기 1기당 필요한 플로토늄의 양은 대략 5kg 내외).

    북한이 이번에 동결을 해제한 5MWe 흑연로에서 나온 8000여 개의 사용후 핵연료는 25~30kg의 플루토늄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북한은 이들 사용후 핵연료를 3월10일 현재 가동을 준비중인 영변 재처리시설에서 언제든 재처리해 단기간 내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재가동중인 영변의 5MWe 흑연로는 열출력이 20~25MWth로 알려져 있으므로 다음과 같은 플루토늄 생산량 계산식에 의거하여 북한의 연간 플루토늄 생산량을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원자로의 연간 가동률을 70% 혹은 80%로 가정했을 경우의 추정 결과는 과 같다.

    플루토늄 생산량 = 원자로 열출력 × 단위 열출력당 일일 플루토늄 생산량 × 365일 × 연간 원자로 가동률

    흑연로의 경우, 단위 열출력당 일일 플루토늄 생산량은 약 0.9g/MWth-d. 이를 대입해보면 영변의 5MWe 흑연로는 연간 약 5~7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네바합의로 1994년 공사가 중단된 영변의 50MWe(열출력 200MWth) 및 태천의 200MWe(열출력 800MWth) 흑연로는 건설을 재개하면 각각 1년 및 2~3년 내에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원자로는 5MWe 흑연로에 비해 출력에 비례하는 만큼 더 많은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데, 연간 가동률을 80%로 가정할 때 50MWe 흑연로는 연간 53kg, 200MWe 흑연로는 연간 210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것으로 추정된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재처리시설은 위에서 설명한 사용후 핵연료에서 어느 정도 속도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을까. 1992년 IAEA가 영변의 재처리시설을 처음 방문했을 때 첫 번째 공정 라인은 이미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재처리를 수행한 이후였다. 1994년 3월 IAEA 사찰관은 영변의 재처리시설 내에 첫 번째 공정 라인과 거의 같은 규모의 두 번째 공정 라인이 완공 직전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제조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북한의 보고에 따르면 영변 재처리시설 첫 번째 공정 라인의 재처리 규모는 1일 8시간, 연간 200일 동안 가동한다고 보면 연간 25t의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 미국의 정통한 북한핵문제 전문 연구소는 “북한의 보고는 실제를 다소 축소한 것일 것”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이를 감안하면 영변 재처리 시설의 재처리 능력은 대략 와 같이 추정할 수 있겠다.

    종합해보면 영변 재처리시설은 첫 번째 공정 라인만으로도 연간 약 25~113 t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그 속에 포함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영변 재처리시설의 첫 번째 공정 라인을 24시간 가동하면 약 50t 무게인 8000여 개의 사용후 핵연료는 133일(약 4.5개월)이면 전량 재처리해 그 속에 들어 있는 25~ 30kg의 플루토늄 중 90%(플루토늄 추출시 약 10% 정도의 공정손실이 발생한다고 가정)에 해당하는 22.5~27kg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핵무기 4~5기에 해당하는 분량. 즉, 영변 재처리시설의 첫 번째 공정 라인의 가동으로 대략 한 달에 핵무기 1기 분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1994년 3월 당시 거의 완공 직전 단계였던 비슷한 규모의 두 번째 공정 라인이 완공되면 영변 재처리시설의 사용후 핵연료 처리량은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이다.

    북한이 추출한 플루토늄을 핵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내폭형 고폭장치가 필요하다. 내폭형 고폭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뛰어난 공학적 기술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프린스턴대학에 재직중인 한 저명한 핵군축 전문가는 핵무기의 폭발효율에 구애받지 않을 경우 그동안 수십 회의 고폭실험을 해온 북한 정도의 수준이면 내폭형 고폭장치를 ‘제조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북한이 자기기술로 만드는 플루토늄 핵무기는 비록 폭발효율은 낮더라도 폭발은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미다. 플루토늄 핵무기의 경우 최소 TNT 수백 t에 맞먹는 폭발력을 가지므로 이 정도 핵무기라도 대규모 도시에서 터지면 그 파괴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히로시마 핵폭발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심각할 것이다.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만든다?

    미국은 북한이 지난 1990년대 말부터 원심분리기를 비밀리에 도입해 우라늄 농축을 시도해왔으며 지난해 켈리 특사의 방북 당시 북한이 시인했다고 발표했지만, 앞서 기술한 대로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않는 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북한이 어느 정도 규모의 우라늄 농축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혹은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을 실제로 얼마나 생산하였는지 등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대신 고농축 우라늄 생산과 관련된 일반적인 핵공학적 사실에 근거해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 능력을 추정해볼 수는 있다.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는 플루토늄 핵무기와는 달리 비교적 간단한 기폭장치인 건타입(gun-type)으로 제조할 수 있으며 사전 핵실험 없이 실전에 사용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더군다나 원심분리기 시설은 전력소비가 적고, 200~300평 규모의 작은 공간에 분할 설치가 가능하며, 농축과정에서 방사능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탐사위성으로도 탐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을 지니는 고농축 우라늄을 상당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원심분리기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높이 1~2m, 직경 30~50cm 정도 크기인 원심분리기 1기는 100W 전등을 하루 7시간 켜놓는 정도인 약 250kWh의 전력으로 핵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연간 약 30g 생산한다.

    그러므로 건타입 우라늄 핵무기 1기분인 50kg의 핵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원심분리기 약 1700기를 1년간 가동시켜야 한다(참고로 핵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으로 최초 핵무장을 한 파키스탄의 경우 1990년경 2000여 기의 원심분리기를 보유해 연간 약 60kg의 핵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했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위해 레이저 분리법을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기술로는 농축 우라늄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힘들고 아직 세계적으로도 상용화가 안 되었으므로 북한이 이 기술을 이용하여 고농축 우라늄을 상당량 확보할 기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경우 황해도 평산과 평안남도 순천에 우라늄 광산이 있으며 연간 약 290t 처리용량의 우라늄 정련시설이 있으므로 고농축 우라늄 생산 조건은 갖추고 있다. 그러나 원심분리기 부품들은 원자력 수출통제 품목인데다 고도의 산업기술을 필요로 하므로, 북한이 이를 공개적으로 수입하거나 자체 제작한다는 것은 거의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비밀리에 원심분리기를 대량으로 구입하지 않는 한 향후 1~2년 내에 고농축 우라늄에 의한 핵무기 확보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고 볼 수 있다.

    3월10일 현재 북한은 5MWe 흑연로를 재가동중이고, 재처리시설의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으며, 두 차례에 걸쳐 단거리 지대함 미사일을 쏘는 등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련의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깊은 관심사는 미국이 외교적 노력보다는 경제제재 및 군사적 해결방안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될 ‘레드 라인’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점에 있다.

    미국이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최근 미국을 방문해 안보관련 당국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Mr. Q에 따르면, 미국의 레드 라인은 ‘재처리시설의 재가동과 대포동 미사일 시험 발사’다. 북한이 둘 중 어느 것이라도 넘어서면 미국이 북한에 대해 경제제재나 국부적인 군사공격을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국제 핵비확산체제의 연쇄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이 재처리를 통해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공식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으리라는 분석이다.

    만약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경우 그 동안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과 러시아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의 문제도 이번 퍼그워시 워크숍에서 논의된 주요내용 가운데 하나였다. 과연 이들은 사태해결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각국 대표들의 분석이 이어졌다.

    워크숍에 참석한 중국의 핵군축 전문가는 이 문제에 대한 필자의 개인적인 질문에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 시도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하지만 정작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에는 반대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북한에 대한 현재의 경제지원을 중단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중국은 북한체제가 붕괴할 경우 발생할 대규모 북한 난민의 중국 유입과 이로 인한 중국 동북부지역 경제악화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중국 내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과 맞물려 있어 참여가 쉽지 않다는 것. 이 때문인지 중국 정부는 “북핵문제는 북미간에 대화를 통해 해결하라”는 원칙론만 반복하고 있다. 북한 또한 이러한 중국의 처지를 잘 알고 있으므로 이를 충분히 활용할 것이라는 게 이 중국 전문가의 분석이었다.

    “만약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그때 중국은 대북제재를 가할 것인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고민할 것 같다”는 답변을 남겼다. 북한이 NPT 탈퇴 선언을 했음에도 적극적인 대북 압박책을 가하지 못하는 중국의 소극적 태도는 중국이 처한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칭화(淸華)대학에 재직중인 한 군축전문가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주었다. 우선은 북미간 직접 대화를 위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북한이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도록 에너지 공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북한의 체제안전이나, 경제, 에너지 등 현안에 대한 국제적 지원에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었다.

    관심의 또 한 축인 러시아는 북한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돌입하고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에 동참을 요구할 경우 어떤 행보를 보일까. 필자의 이같은 질문에 대해 워크숍에 참석한 러시아의 핵군축 전문가는 “러시아는 미국 단독의 대북 경제제재에는 동참하지 않겠지만, UN안보리에서 결의하면 동참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러시아는 지난 1월말 러시아가 미·중·러 3국의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골자로 하는 중재안을 내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 입장에서 전향적으로 노력하려는 자세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이 러시아 참가자는 “러시아의 중재안은 하나의 제스처에 불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북한을 위해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상황이 악화되고 UN 안보리 결의 같은 명분이 뒷받침된다면 이는 얼마든지 재검토될 수 있으리라는 설명이다.

    끝으로 워크숍에 참석한 유럽연합 관계자는 “EU의 경우 특히 북한의 경제문제에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참석자들은 지난해 7월 경제개혁 이후 배급제에서 월급제로 전환한 북한의 경제체제가 자본주의식 경쟁체제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유럽연합은 이러한 북한의 변화에 대해 깊은 관심과 지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전제 아래 주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방안에 의욕을 갖고 있다고 유럽연합 관계자는 말했다.

    한반도의 긴장상황은 이제 우발적인 군사 충돌의 위험성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러한 사태의 해결을 위해 북미 양국의 군사적 행동 중지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검증문제에 대한 협의 개시를 골자로 하는 중재안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불가침 문서보장, 대북 경수로사업 및 중유제공 재개, 북한의 전력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제3국의 협조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보장 등을 미국측이 취해야 할 조치로, NPT 탈퇴 번복과 핵시설 재동결, IAEA 사찰관 재복귀 및 보관중인 사용후 핵연료 8000여 개의 제3국 반출 등을 북한측이 해야 할 조치로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우선은 양자간의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설득이 필요하겠지만 보다 적극적으로는 북한이 현재 처해 있는 전력 위기를 역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전력사정이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 있다. Mr. Q에 따르면 북한에서 전력은 단순히 산업시설을 위해서뿐 아니라 식량문제 해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에서는 지역에 따라 식량문제의 심각성 차이가 엄청난데, 이는 다름아닌 수송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요 물자수송수단인 북한의 철도는 대부분 전기로 운행하고 있는데 전력 사정이 안 좋아 식량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러한 상황을 검토해보면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함으로써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단기적으로 상당량의 전력을 시급히 지원하고, 낙후한 북한의 송배전망 개선, 기존 발전소의 개보수, 신규 발전소 건설 지원 등 전력 인프라의 개선 및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남한에서 대북 경수로까지의 송전선을 우리 정부가 부담해 연결하고, 경수로가 완공되어 발전할 전력의 상당부분을 수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북한은 송배전망 개선 없이는 경수로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북한의 핵시설 해체 과정에 우리 기업이 비용을 부담하고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핵시설 해체는 가까운 장래에 전망 있는 원자력 사업 중 하나다. 이를 통해 우리 기업은 핵시설 해체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위기 해결을 위해 퍼그워시 워크숍 참석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한 내용을 기술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결국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누구인지에 대해 이 내용은 잘 보여주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참석자들이 합의한 것인 만큼 내용은 물론 원론적이지만, 언제나 진실은 그 원론에서 나오게 마련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북핵문제는 원칙적으로 북-미 상호간에 풀어야 한다. 그러나 접근 방법은 국제 다자간 협력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런 면에서 북한이 즉각 NPT 체제에 복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은 NPT 복귀를 통해 미국에 의한 위협을 줄일 수 있을 뿐더러 국제사회로부터 정치,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북한은 국제 다자간 채널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자국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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