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이 ‘단결’ 강조한 張, 韓 손은 잡지 않아
제명, 세력 결집 위한 ‘본보기’…배신자 프레임
한동훈만 빼고 중도 인사 끌어안는다? 불가능
만연한 보신주의…非영남·강남 후보자 속 터져
한결같이 ‘단결’ 강조한 張, 韓 손은 잡지 않아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1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원 게시판 사건과 관련해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했다. 동아DB
그해 10월 17일엔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윤 전 대통령을 면회했다. 눈여겨봐야 했던 건 면회를 간 사실보다 그 형식이다. 당시 장 대표가 윤 전 대통령 면회를 간 건 금요일 오전이었다. 면회는 특별면회가 아닌 일반면회로 10분간 진행됐다. 장 대표는 이 사실을 금요일이 아닌 토요일 오후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렸다. 기자들도 토요일은 쉰다. 일요일에는 신문이 발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금요일에 면회 간 사실을 토요일 오후에 기습적으로 밝힌 건 화제성을 줄이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지지층 등쌀에 못 이겨 언젠가 한 번은 가야 할 면회였다면 그 나름대로 현명하게 대응한 것이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장 대표는 ‘찬탄’과 ‘반탄’, ‘친윤’과 ‘절윤(윤석열을 끊어냄)’ 사이에서 확고한 방향성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아마 본인도 결정을 못 내렸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비상계엄 1년이 되는 2025년 12월 3일은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상징적 시기에 내는 메시지는 평소와 무게감이 다르다. 이날 그가 낸 메시지는 곧 당의 향후 방향을 암시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도 확장은 없었다. 그는 당의 단결을 강조했다.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며 “분열이 아니라 단결이 절실한 때”라고 했다. 결속은 말보다 행동이 수반될 때 더욱 강력하게 이뤄진다. 장 대표는 이 시기 두 가지 액션을 취했다. 하나는 필리버스터, 다른 하나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징계다.
필리버스터 자체는 효과가 있었다. 그는 2025년 12월 22일 여권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며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제1야당 대표로는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그의 연설은 무려 24시간 동안 계속됐고, 보수진영의 많은 인사로부터 호응을 이끌었다. 한 전 대표와의 화해 무드도 조성되는가 했다. 한 전 대표는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에게 “노고 많으셨다”며 “(지금은)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내야 할 때”라고 손을 내밀었다. 이때 두 사람이 손을 잡았더라면 지금 정국의 양상은 꽤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 대표는 애초부터 그의 손을 잡을 생각이 없었던 걸로 보인다. 곧장 그에 대한 징계 절차에 돌입한 걸 보면 말이다.
제명, 세력 결집 위한 ‘본보기’…배신자 프레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1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자신의 제명 결정에 대해 입장 발표를 하기 위해 눈을 감은 채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동아DB
물론 당원 게시판을 빌미로 한 전 대표를 제명한 게 정당하냐 부당하냐 따지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당원 게시판 논란은 그것이 문제가 돼 징계로 이어진 게 아니다. ‘한동훈 징계’라는 퍼즐을 맞추기 위한 조각에 불과하다. 모로 가든 목적지가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한동훈 징계의 진짜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걸로 추측된다. 하나는 그간 갈등을 빚어온 한 전 대표에 대한 장 대표의 개인적 악감정, 다른 하나는 당내 세력 결집을 위한 ‘본보기’다. 전자라면 당대표가 사적인 분풀이를 위해 당 전체를 동원해 특정 인물을 몰아낸 셈이 된다. 대단히 부적절한 일이지만 정작 국민의힘에 미칠 장기적 충격은 크지 않다. 한 전 대표만 쫓아내면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장 대표가 취약한 당내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한 전 대표를 희생양 삼은 것이라면 제2, 제3의 한동훈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이 한 전 대표에게 강한 반감을 보이는 건 그가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 앞장서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적극적으로 찬성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의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판단했을 일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지지층은 ‘배신’을 용납지 않는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트라우마 때문이다. 그들은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비박계 때문에 당이 무너지고, 보수진영이 궤멸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 수사한 검사는 용서해도 ‘배신자’ 정치인은 용서하지 않는다.
배신자 프레임은 당내 패권 경쟁에서 꽤 효과적이다. 당원들 사이에서 한번 찍힌 낙인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이유에서다. 배신자라는 공공의 적을 만들어 공격하면 그 반대편에 선 당원들의 지지를 끌어모을 수 있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 정치인일수록 그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2022년 윤석열이 이준석을 내쫓고, 2026년 장동혁이 한동훈을 몰아낸 건 그런 이유에서다. 무리한 축출의 결과는 국민의힘이 지난 3년여 동안 제대로 보여주었다. 장 대표는 그 시간을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일단 한동훈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동훈이 안 되니 친한동훈계 인사들도 안 된다.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장 대표를 향해 “영혼을 팔았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탈당 권유’ 처분을 받았고, 배현진 의원은 본인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울시당 차원에서 당 결정과 반대되는 입장을 냈다고 윤리위에 제소됐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당원들의 시선이 한 전 대표에게 쏠려 있으니 그를 ‘공공의 적’ 삼아 내치고, 오세훈·안철수·유승민 등 나머지 온건 보수 인사들과 손잡아 중도 확장을 도모하면 된다고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정말 한동훈이 마지막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럴 거란 보장이 없다. 장동혁 지도부 구성원들은 대체로 정치 경력이 짧아 기반이 취약하다. 배는 작을수록 풍파에 심하게 흔들린다. 이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세 결집을 위해 강성 당원을 호출할 테고, 윤석열 탄핵 찬반은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새로운 희생양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한동훈만 빼고’ 중도 인사를 끌어안는다는 게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만연한 보신주의…非영남·강남 후보자 속 터져
비단 인물뿐 아니라 정책 측면에서도 중도 확장은 필요하다. 정당이 진영의 기존 방향에서 벗어나 실용·합리성을 추구할 때 중간지대에 있는 유권자들은 반응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을 물려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자유시장경제를 주창하던 국민의힘이 정강·정책 첫머리에 기본소득을 넣었던 게 대표적 사례다.국민의힘이 윤석열 탄핵과 한동훈 징계 문제로 허우적거리는 동안 이재명 대통령은 보수 의제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고 있다. 원전에 다시 시동을 거는가 하면, 미국·일본과의 정상 외교에도 적극적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열풍에 노동조합이 반대 성명을 내자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며 “결국 그 사회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저관여층이 관심을 가질 만한 민생 이슈를 던지는 데도 열심이다. 설탕 소비 억제를 위해 설탕에 세금을 물리는 설탕세 논쟁이 대표적이다. 아마 윤석열 정부였다면 정책으로 대뜸 발표해 반발을 샀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의견을 물으며 논쟁을 유도한다. ‘아니면 말고’다. 손해 보는 것 없이 여론을 주도하는 데 따른 이익을 챙긴다.
국민의힘에선 이렇게 민생 이슈를 주도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광주 복합쇼핑몰’ 이슈를 주도했던 이준석도, ‘새벽 배송 금지’ 논쟁에 참전한 한동훈도 내쳤기 때문이다. 그나마 2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장동혁 대표가 누구처럼 “반국가 세력” 같은 단어를 남발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국제 정세를 진단하고 ‘16세 선거권’ 등의 이슈를 띄운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이런 시도가 얼마나 계속될지 모르겠다. 이러한 이슈들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타깃으로 하는 집단이 원하는 내용이 아닌 이유에서다.
장 대표와 그 주변 인사들은 여전히 보수 결집을 외치고 있다. 중도는 허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이토록 중도층을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건, 국민의힘 국회의원 구성이 영남 지역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의힘 지역구 의원은 모두 89명이다. 이 중 부산·경남, 대구·경북 등 영남이 58명이고, 서울 강남 3구가 7명이다. 무려 지역구 의원의 73%가 텃밭이라 불리는 영남·강남에 몰려 있다.
장동혁 지도부가 중도층을 내팽개친 데 대해 보수진영 안팎에선 지방선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6‧3지방선거 패배의 여파는 단지 지방선거에 그치지 않는다. 광역·기초의원들은 지역에서 당원과 유권자들을 조직한다. 지방선거에서 깨지면 총선에서도 깨지기 쉽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도 국민의힘 지도부가 보수 결집을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건 중도층 표심을 모두 날려도 자신들은 지역구에서 당선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이야 지든 말든 자기 자리만 지키면 된다는 보신주의다. 만일 이게 장동혁 대표의 계획이라면 영남·강남 외 지역에서 출마할 후보자들로선 속 터질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