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러에는 TACO, 약소국에는 FAFO?
닭 목을 쳐 원숭이 움직이는 ‘살계경후(殺鷄儆猴)’ 전략
항공모함 진입 불가...북한과 베네수엘라 다른 점
관세압박 美, 中 희토류 수출 규제로 효과 떨어져
약소 동맹국에는 방위비 증액, 투자 강권
결국 중국은 산업 경쟁국, 미국은 협력 대상국
韓, 美가 포기할 수 없는 동맹 거듭나야
김현욱 세종연구소장(전 국립외교원 교수 및 북미유럽연구부장)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두고 두 가지 상반된 평가가 있는데, 하나는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로 트럼프 대통령은 겁을 낸다는 평가고, 다른 하나는 ‘FAFO(Fuck Around and Find Out)’로 속된 말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까불면 큰 코 다친다’는 평가”라며 “평가가 상반된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은 강대국과 약소국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관세로 다스리지 못했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종전 협의도 끌어내지 못하고 있지만 약소국에는 관세를 올린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깡패 외교’에 설명했다.
1월 3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워리어라운지에서 열린 ‘제13회 KWO 나지포럼’에서 발표자로 나선 김 소장은 ‘베네수엘라 상황과 2026년 신국제질서 전망’을 주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외교 행보를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나지포럼은 ‘나라를 지키는 포럼’의 약칭으로 국가안보의 중요성과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전쟁기념사업회(KWO)가 개최하는 공론의 장이다.

1월 3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개최한 ‘제13회 KWO 나지포럼’. 왼쪽부터 서지영 KBS 정치외교팀장,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국방부 차관),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 김현욱 세종연구소장(전 국립외교원 교수 및 북미유럽연구부장), 조현규 신한대 특임교수(한국국방외교협회 중국센터장), 신석호 화정문화재단 연구위원. 홍태식 객원기자
이날 포럼 좌장을 맡은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시작으로 전 세계의 국제질서가 바뀌고 있는 현상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포럼 시작을 알렸다. 포럼은 김 소장을 비롯해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국방부 차관), 조현규 신한대 특임교수(한국국방외교협회 중국센터장), 서지영 KBS 정치외교팀장, 신석호 화정문화재단 연구위원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김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공격한 이유가 중국 견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은 관세로 중국을 압박하려 했으나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를 내걸며 대중국 압박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당분간 중국을 직접 자극하는 대신에 중남미와 서반구 장악에 몰두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 미국은 희토류의 대부분을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조사에 따르면 2020~2023년 희토류 수입국별 비중을 살펴보면 중국이 70%로 가장 높았다. 특히 희토류 중 반도체, 스마트폰, 군사용 레이더 등에 쓰이는 이트륨(Yi)은 거의 전량(93%)을 중국에서 수입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중국 강경 대응이 어려운 이유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할 가능성도 있다. 김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시화되거나 올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할 경우 미국은 다시 대중국 강경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며 “당장은 중국을 압박해도 원하는 바를 끌어내지 못하니 미국은 동맹국에 관세를 무기로 대미 투자나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며 중국과 경쟁할 힘을 키울 것”이라 내다봤다.

‘제13회 KWO 나지포럼’ 주제 발표를 맡은 김현욱 세종연구소장(전 국립외교원 교수 및 북미유럽연구부장). 홍태식 객원기자
그는 “미국이 그린란드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행보”라고 봤다. 김 소장 설명에 따르면, 그린란드는 미국의 러시아, 중국 견제의 요충지다. “러시아가 미국에 핵미사일을 쏘면 이 미사일이 북극, 그린란드,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온다. 미국이 그린란드에 미사일 방어기지를 짓는다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김 소장의 설명이다. 그린란드는 미국의 중국 희토류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김 소장은 “(그린란드는) 희토류 등 광물자원도 풍부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포기할 가능성은 작다”고 설명했다.
“美 베네수엘라 침공해 중국 길들이려 해”
조현규 교수도 김 소장의 분석에 동의했다. 조 교수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그린란드 흡수 시도가 광의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의 일환이라 생각한다”며 “미국은 베네수엘라 침공으로 중남미에서 중국 관련 세력을 축출하는 동시에 중국에 협조하던 나라에 경고를 한 셈”이라 지적했다. 조 교수는 “중국에서 자주 쓰는 사자성어 중 ‘살계경후(殺鷄儆猴)’라는 말이 있다. 곡예장의 원숭이가 재주를 부리지 않자, 주인이 닭의 목을 쳐 공포로 원숭이를 길들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라며 “미국은 베네수엘라라는 닭을 침공해 중국이라는 원숭이를 길들이려 한 셈”이라 말했다.
‘제13회 KWO 나지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한 조현규 신한대 특임교수(한국국방외교협회 중국센터장). 홍태식 객원기자
조 교수는 1월 24일 ‘중국군 2인자’ 장유샤(張又俠)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축출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장 부주석은 중국 핵무기 관련 정보를 미국에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교수는 “장 부주석은 시진핑 중국 주석의 가장 오랜 정치적 동지인 동시에 쓴소리를 담당하던 충신이었다”며 “문제는 이 쓴소리가 시 주석의 정책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장 부주석이 시 주석에게 했던 쓴소리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장기 집권을 최대한 피할 것, 두 번째는 대만을 무력으로 점령하려 들지 말 것, 마지막은 미국과의 대립을 피할 것이다.
조 교수는 “이미 시 주석은 2027년 제21차 당대회를 통해 4번째 연임을 노리고 있는 상태인데 이를 위해서는 대만 문제를 처리하거나 미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등의 확실한 성과가 필요하다”며 “정치적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장 부주석을 축출하며 4연임의 확실한 토대를 닦았다”고 부연했다. 앞으로는 시 주석 주도로 중국의 대만 통일 시도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날 포럼에서는 미국의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도 심고 깊게 논의됐다. 백 회장이 “미국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것처럼 북한 김정은도 체포가 가능할까”라며 논의의 장을 열자 신 연구위원은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대통령을 체포하면서도 미군 인명피해는 전혀 없었으니 북한 지도부도 미국의 군사력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자신을 체포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국방부 차관)이 ‘제13회 KWO 나지포럼’에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체포가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태식 객원기자
신 연구위원은 미 국방성이 1월 23일(현지 시각) 발표한 ‘2026 국가방위전략’에 대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한미 양국은 한국 국방비를 국내총생산의 3.5%까지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국도 국방비를 GDP 대비 3.5%로 증액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기간이 2035년까지로 명시돼 있다”며 “한국은 따로 정해진 기한이 없으니, 미국이 더 빠른 국방비 증액을 압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이 한반도 안보 위기에 대응할 수단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신 연구위원은 “2026 국가방위전략에는 ‘확장 억제’라는 표현이 빠졌다”며 “과거 미국의 확장 억제가 핵우산을 포함한 미사일, 첨단재래식 공격을 막아주는 방식이었다면 올해부터는 핵우산을 제외한 모든 분야를 한국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라고 말했다.
서지영 팀장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서 팀장은 “미국의 동맹국과의 안보 협력이 ‘유료 구독 서비스’가 된 셈”이라며 “결국 미국이 원하는 대로 국방비 증액이나 미국 투자를 하지 않으면 언제든 ‘안보’라는 ‘서비스’가 종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석호 연구위원도 “과거 동맹국을 지키려는 미국은 사라졌고 안보나 경제 등 모든 협력을 거래하려 드는 미국만 남아있는 모양새”라 짚었다.

제13회 KWO 나지포럼’에 참석한 서지영 KBS 정치외교팀장이 미국과 동맹국의 관계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홍태식 객원기자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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