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도입된 닥터헬기 1호기 이름 ‘아틀라스’
페르세우스·헤라클레스 모험 이야기에도 등장
‘아트라스’ 초콜릿, ‘아트라스’ 배터리…
사람 몸속 뼈에까지 깃들어 있는 아틀라스

아틀라스 조각상. 헬레니즘 시대 진품을 로마 시대에 복제한 것이다. 위키피디아 커먼스
2019년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가 경기도의 후원을 받아 국내 최초로 도입한 닥터헬기 1호기의 이름도 ‘아틀라스’다. 이는 같은 해 2월 4일 근무 중 사망한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콜사인을 딴 것이다. 평소 윤 센터장과 친분이 있던 이 교수는 윤 센터장을 기리기 위해 닥터헬기 1호기 아랫면에 그의 콜사인을 새겼다.
오대양 육대주 그려진 지구본은 오류, 천구가 맞아
그리스 신화에서 아틀라스는 티탄 12신 중 하나인 이아페토스와 오케아노스의 딸인 아시아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이다. 그에겐 메노이티오스, 프로메테우스, 에피메테우스 등 세 명의 동생이 있었다. 천하장사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힘이 셌던 아틀라스는 티탄 신족과 올림포스 신족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티탄 신족 편을 들었다.제우스는 ‘티타노마키아’라고 하는 10년 동안 지속된 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자신에게 적대적이던 티탄 신족을 지하 세계에서 가장 깊은 타르타로스 감옥에 가뒀다. 하지만 괴력을 지닌 탓에 가장 애를 먹였던 아틀라스에게만큼은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세상의 서쪽 끝자락에서 선 채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으라는 형벌을 내렸다.
아틀라스가 두 손으로 하늘을 잡고 어깨에 멘 모습을 상상하다가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장난을 치다 걸려 복도에서 손 들고 벌을 서던 필자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당시 하늘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제우스는 아틀라스에게 왜 하필이면 하늘을 떠받치게 했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제우스는 하늘이 대지 위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그런 조치를 취했을 수 있다.
다른 이유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역학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태초에 모자(母子)였다가 부부로 맺어진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결혼 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우라노스가 자식들이 태어날 때마다 가이아의 몸 가장 깊은 곳인 타르타로스로 다시 밀어 넣는 폭력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이아는 티탄 12신 중 막내였던 크로노스와 합심해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권좌에서 밀어냈다. 이때부터 우라노스는 가이아와 인연을 끊고 살았다.
하지만 제우스는 우라노스가 언제든지 다시 폭력적 본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괴력을 지닌 아틀라스를 이용해 하늘인 우라노스가 대지인 가이아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은 아닐까.
아틀라스를 소재로 한 그림이나 조각을 보면 마치 그가 어깨에 둥근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지구가 아니라 천구(天球)다. 천구는 하늘이 지구를 감싸고 있다고 가정해 만든 가상의 구로서 지구는 그 안쪽 한가운데에 있고, 별자리나 행성은 그 표면에서 떠다닌다. 그래서 아틀라스가 벌 받고 있는 모습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그는 천구 안에서 지구에 발을 디딘 채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 아틀라스의 모습은 천구에 가려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의 모습을 드러내려면 어쩔 수 없이 아틀라스가 천구 밖에서 그것을 든 모습으로 그리거나 조각할 수밖에 없다. 아틀라스가 어깨에 오대양 육대주가 그려진 지구본을 떠받치고 있는 게 더러 눈에 띄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지구가 아니라 게자리, 양자리 등 별자리가 그려진 천구여야 맞다.
메두사 머리 보고 산맥으로 변한 아틀라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 개막을 하루 앞둔 1월 5일(현지 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시제품이 손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뉴스1
당시 세상의 서쪽 끝자락은 어디였을까. 바로 지금의 지브롤터해협 근처 북아프리카 해안이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페르세우스에 의해 참수를 당하는 괴물 메두사의 소굴도 그곳에 있었다. 메두사는 얼굴이 하도 흉측해서 살아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보기만 해도 돌로 변했다.
페르세우스는 긴 여정 끝에 세상의 서쪽 끝자락에 당도해 모험을 떠나기 전 아테나가 건네준 방패 거울에 비친 메두사를 보고 그녀의 머리를 잘라냈다. 이어 머리를 마법 자루에 담아 공중을 날아 귀환하다가 근처에서 벌을 받 고 있던 아틀라스와 마주쳤다. 마침 날도 저무는지라 그에게 하룻밤 묵기를 간청했다. 아틀라스는 벌 받고 있는 처지라도 궁전이나 부하들까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틀라스는 페르세우스가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언젠가 법의 여신 테미스가 아틀라스에게 제우스의 아들 중 하나가 자신의 딸들인 헤스페리데스가 관리하는 정원에서 황금 사과를 훔쳐갈 것이라 경고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세우스는 아틀라스의 냉대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힘으로는 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재빨리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채 갑자기 마법 자루에서 메두사의 머리를 꺼내 아틀라스의 눈앞에 쳐들었다. 아틀라스는 그 순간 정상이 구름에 가려진 엄청나게 높은 산맥으로 변했다. 그게 오늘날의 아틀라스산맥이다.

2019년 9월 6일 오후 경기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열린 경기도 응급의료 전용 헬기 출범식에서 비행하는 닥터헬기 아랫면에 고(故) 윤한덕 센터장을 기리는 ‘아틀라스’가 새겨져 있다. 뉴스1
얼마 후 헤라클레스는 흑해 연안 카우카소스산맥을 지나치다 우연히 그곳에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고 있던 프로메테우스를 구해 주었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보답으로 그에게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으로 직접 가서 황금 사과를 얻을 생각을 하지 말고, 소재가 분명한 아틀라스를 찾아가 부탁하라고 충고했다.
헤라클레스는 계속 서쪽을 향해 길을 재촉하다가 마침내 아틀라스가 벌을 받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는 아틀라스에게 자신이 대신 하늘을 어깨로 떠받치고 있을 테니 근처에 있는 딸들의 정원에 가서 황금 사과를 하나만 좀 얻어달라고 간청했다. 아틀라스는 헤라클레스의 명성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부탁을 흔쾌히 들어줬다.
헤라클레스에게 하늘을 건네주고 딸들의 정원에 들러 황금 사과를 가지고 돌아오던 아틀라스는 그제야 어깨가 가벼워진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발걸음이 이렇게 가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더는 무거운 하늘을 어깨에 떠메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헤라클레스에게 돌아오자 자신이 직접 그 일을 시킨 에우리스테우스 왕에게 황금 사과를 갖다주겠다고 말했다.
헤라클레스는 난감했지만 금세 기발한 꾀를 생각해 냈다. 아틀라스의 제안에 동조하는 척하면서 자신이 하늘을 떠메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무척 아프다며, 어깨에 쿠션을 올려놓을 때까지 잠시만 하늘을 다시 떠메고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우직한 아틀라스는 그 말을 듣고 얼른 황금 사과를 땅에 내려놓더니 헤라클레스에게서 하늘을 덥석 넘겨받고 말았다.
미국 최초의 ICBM 이름도 ‘아틀라스’
국산 유명 초콜릿 중에 ‘아트라스’가 있었다. 아트라스는 아틀라스의 우리식 표기다. 아마 그 초콜릿을 만든 제과업체는 소비자에게 그것을 먹으면 엄청난 괴력을 지닌 아틀라스처럼 강력한 에너지가 솟아날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트라스 초콜릿은 한때 꽤 인기를 누렸다. 필자도 등산을 갈 때면 늘 배낭에 넣고 다니며 즐겨 먹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외국산 유명 초콜릿에 밀려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그럴 때면 마치 올림포스 신족에게 밀려 신화의 뒤안길로 사라진 티탄 신족의 모습이 연상돼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우리나라 차량용 배터리에도 ‘아트라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필자는 어느 날 우연히 아트라스 배터리를 차량 아랫부분에 매달고 도로를 달리는 트럭을 발견하고는, 불현듯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미국 최초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이름도 ‘아틀라스’다.
별자리에는 아틀라스와 플레이오네 오른쪽으로 그 부부의 딸 7명의 이름을 딴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자리하고 있다. 남극 동쪽 휴화산 무리 중에도 아틀라스의 아내와 딸들의 이름을 딴 ‘플레이오네’와 ‘플레이아데스’가 있는데, 그중 가장 높은 휴화산이 ‘아틀라스’다. 아틀라스는 하늘의 별자리에서처럼 지상에서도 아내와 딸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오순도순 살고 있는 것이다.
독일엔 ‘아틀라스 전기’라는 1902년 설립된 해양 전문 전기 회사가 있다. 미국의 항공화물 수송 회사 중에 ‘아틀라스 에어’가 있는데 로고가 아주 이채롭다.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메고 있는 것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북부엔 2300여 ㎞에 걸쳐 아틀라스산맥이 길게 뻗어 있다. 그중 가장 높은 봉우리가 모로코에 있는 해발 4167m의 두브칼산이다. 규모나 높이로 보아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틀라스산맥 때문일까. 지도를 모아 만든 책도 ‘아틀라스’라고 한다. 심지어 우리 몸에도 ‘아틀라스’가 살고(!) 있다. 척추에서 머리를 받치고 있는 맨 위 목뼈 이름이 바로 ‘아틀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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