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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먹고 사는 ‘자유로운 독수리’

여행가 한비야

호기심 먹고 사는 ‘자유로운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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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 위의 인생, 길 위에서 세운 뜻. 타고난 역마살도 없다는데 어느새 지구를 세 바퀴 반이나 돌고도 다시 그만큼의 길을 꿈꾸고 있다는 여행가 한비야씨. 여행을 하다보니 사람을 만나게 됐고 그러다보니 그들을 사랑하게 됐다는 그는, 난민을 위한 구호사업에 헌신하는 와중에도 요트를 타고 세계를 일주하는 또 다른 계획에 마음이 달뜨고 있다.
지금은 더없이 우스운 일이 돼버렸지만 예전에는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게 흉이었다. 왼손잡이인 필자의 여동생은 왼손으로 글씨를 쓰다가도 남이 보면 얼른 오른손으로 옮겨 쓰는 ‘위장술’을 보여주곤 했다.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는 나쁜 습관’이라는 인식 탓이었으리라.



온몸에서 뿜어 나오는 당당함


1958년생이니까 한비야(韓飛野)씨도 연령으로만 따지면 그 세대에 속한다. 그렇지만 그는 누가 보건 말건 당당하게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 세계를 누비는 이 당찬 여성은 작은 것 하나도 달랐다. 우리 나이로 45세, 늘어지는 나이일 법한 데도 공처럼 통통 튄다. 쫓기는 듯 빠른 말씨, 민첩한 행동 하나하나가 다부지고 탄력이 있다. ‘관록 있는 노처녀’지만 결혼 못해 안달하는 수준은 오래 전에 통과한 듯하다.

전세계 65개국의 오지를 찾아다닌 담력,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산전 수전 공중전 시가전’까지 모두 겪으며 세계여행을 척척 해낸 그의 모험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 의문을 풀어보겠다고 그가 일하고 있는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의 월드비전빌딩 10층 사무실을 찾아가는 길에 필자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여자가 겁도 없이 홀로 세계를 누비면 무섭지 않습니까?”

여성에게 ‘여자가 감히’라는 투의 말을 하는 것이 반(反)페미니즘적 태도인 것은 분명하다. 이 말 속에는 여성비하나 성차별의 뜻이 암묵적으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터뷰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궁금한 것이 사실이다. 여성을 노리는 범죄가 갈수록 극악해지고, 백주 대낮에 부녀자를 납치해 연쇄살인을 저지른 사건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지 않는가. 이쯤 되면 세계를 사방팔방 누비는 한비야씨라도 긴장감을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잘못 짚었다. 그는 간단명료하게 이북식으로 대답했다.

“일없습니다.”

일없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을까.

“남자들이 겁탈하고 강도짓을 하겠다고 덤벼든다 해도, 내 태도가 분명하면 99.9%는 예방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임하는 자세가 또렷하면 극복할 수 있어요. 사고는 어정쩡하게 대처하거나 미온적으로 나갈 때 당하는 거죠.”

그러면서 한씨는 멕시코를 여행할 때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현지의 한 미남청년이 호의를 베풀며 다가오더란다. 고적지, 시장통, 번화가 등을 안내해주는 그에게 자연스레 고마움을 느꼈다.

“그랬더니 다음날부터 저를 어떻게 해보려고 수작을 벌이는 거예요. 애인 역할을 하려는 거죠. 번화가를 걷는데도 저를 껴안으려고 해요. 그래서 냅다 뺨을 한 대 갈겨주었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더니 청년이 떨어지더라는 것. 겁 먹고 질질 끌려다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당하는 수가 있지만 자기 태도가 단호하면 위험을 얼마든지 돌파해나갈 수 있다는 게 한씨의 지적이다. 그는 해외여행을 할 때는 늘 가스총을 휴대하고 다닌다. 여차하면 발사해버릴 태세를 풀지 않는다. 한번도 써먹은 적은 없지만 대처능력을 완벽하게 갖추었기 때문에 범죄지역을 여행해도 자신만만하다.

“그렇다고 제가 마냥 무서운 여자는 아니에요. 알고보면 한없이 부드러운 여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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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 < 작가·용인대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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