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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 연구 400년 가업 잇는 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장

禮 연구 400년 가업 잇는 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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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을 할 때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올리고, 부부의 생일에는 맞절을 해야 한다는, 지금은 잊힌 규범들도 새롭지만, ‘부자 되세요’가 최고의 덕목인 시대에 배려와 절제, 검약과 여유의 선비정신을 배운다는 것이 사람들을 전례연구원에 몰리게 하는 진짜 이유가 아닐는지.
禮 연구 400년 가업 잇는 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장
“대관절 예절이 뭡니까?” 이 질문은 예절 회의론자의 것이다. 기민하게 미래를 예측해도 급변하는 상황에 적응할지 말지 불안하기만 한 세상에서 새삼 전래하는 의식과 절차를 따지는 게 도무지 불합리하거나 케케묵은 노릇이 아니냐는 힐난이 일정 분량 담겨 있다. 평생을 예(禮)의 재건에 바쳤다는 김득중(金得中·76) 원장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처음 뱉은 말도 바로 이것이다.

“농경시대의 유교식 예(禮)가 산업화 사회를 지나 정보화 시대로 접어든 지금에도 그대로 유효할 수 있을까요?”

외람되게도 김득중 원장과 마주앉아 나는 이 질문을 반복했다.

“예가 뭐냐고요? 아이들에게 예를 설명할 때는 그냥 ‘버릇’이라고 말해요. 무례하다고 할 때 ‘무례’는 버릇없다는 뜻이잖아요. 중학생쯤 되면 ‘법’이라고 설명해요. ‘그런 법이 어딨어?’ 할 때의 법이 민법이나 형법을 말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 법은 예법을 말하는 거거든요. 어른들이 예가 뭐냐고 물어오면 ‘사회적으로 약속해놓은 생활양식이다’고 대답해요. 여럿이 모여 사는 더불살이(‘더불어 함께 산다’는 공생의 의미로 그가 만들어낸 말이다)에서 꼭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요?”

매우 합리적이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그는 질문을 금방 내게 돌려놓았다. 단정한 몸가짐과 맑은 음성, 조용하면서도 확신에 찬 태도, 은발에 온화한 표정, 구의재(九宜齋)라 이름 붙인 구의동 그의 사랑방에 앉은 김득중 선생은 천생 선비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선비란 학행일치하고 외유내강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칭호라고 평소 생각해왔다. 벼슬이 다락같은 조상을 여럿 가졌다고 선비일 수 없으며 한문 해독력이 빼어나다고 반드시 선비일 리 없다. 하물며 도포 자락에 흰 수염을 휘날린다 하여 어찌 다 선비일 수 있으랴.



내가 지닌 선비에 대한 이미지는 어릴 적 고향 안동의 바깥사랑에서 뵙던, 흰 대님을 정갈하게 치고 앉은 학 같으신 어른분들한테서도 유래됐겠지만 가까이는 서울대 정옥자 교수를 만난 이후 더욱 강화된 것 같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우리 선비’라는 책을 들고 찾아간 내게 정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난 조선 선비 ‘마니아’예요. 21세기에 다른 나라 사람에게 우리가 내놓고 자랑할 만한 정신유산이 바로 ‘선비’라는 캐릭터라고 주장하곤 해요. ‘조선 선비’그룹은 일상생활을 종교 이상의 엄숙한 경지로 이끌어 올린, 세계 문화사에 유례없는 ‘그룹’이거든요.”

그 선비 그룹의 일상생활 실천 요강이 바로 예라는 것일 텐데, 빠르게 변하는 현대인의 일상에 그걸 적용하는 것이 도대체 가당키나 할까 나는 회의했다. 그러나 김득중 원장은 몇 마디 질문과 설명과 실례로 의심 많은 내 마음의 왜곡과 경직을 간단하게 풀어버렸다.

예(禮)는 실천이다

게다가 나는 호기심이 과도해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인터뷰이에겐 별 매력을 못 느낀다. 그게 지식이든 체험이든 이야기보따리 안에 생전 처음 듣는 내용이 그득해야 상대방 앞으로 바짝 다가앉는다. 이렇듯 성정(性情) 경박한 인터뷰어에게 김득중 선생은 촌철살인하는 새롭고 풍성한 이야기보따리를 유쾌하고도 진지하게 펼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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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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