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가수로 데뷔했을 당시의 수지 버핏. 2. 3. 남편 워런 버핏과 함께 찍은 중년과 노년 시절의 모습.
회고록을 펴낸 적이 없는 그가 한 여성 애널리스트에게 털어놓은 ‘스노볼(snowball·랜덤하우스)’에는 그의 역정이 상세히 담겨 있다. 저자 앨리스 슈뢰더는 워런 버핏으로부터 받은 자료와 본인은 물론 가족, 친구, 사업 파트너들에 대한 무제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5년간 버핏에 매달렸다. 직장에 사표까지 쓰고 써 내려간 역작이었다.
저자는 버핏이 당부한 대로 “평이 엇갈릴 때는 아첨이 덜한 쪽으로 해달라”는 주문을 충실히 따랐다. 따라서 칭찬 일색이 아니다. 실수도 하고 상처도 주고받는 평범한 인간, 그러나 평생 돈을 향해 집요하면서도 정직하게 살아온 한 인간의 여러 면모를 ‘팩트’를 바탕으로 빼곡히 담았다.
그중에서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워런의 사생활이 눈길을 끈다.
워런 버핏 곁에는 두 여자가 있었다. 조강지처 수지와 그의 말년을 돌보고 있는 애스트리드다. 그중에서 수지 버핏은 오늘의 워런 버핏을 만든 ‘내조의 여왕’이자 그에게 끊임없이 영혼의 목소리를 들려준 ‘솔 메이트’였다. 일 중독자 남편 때문에 심한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자의식을 버리지 않고 뒤늦게 가수로 데뷔했으며, 별거를 선언하면서도 여자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남편을 위해 또 다른 여자를 소개해 줄 정도로 관대했다. 이번 호 주인공은 워런의 또 다른 자아, 수지 버핏 여사다.
첫눈에 반한 여자
워런은 10대 시절에도 여자보다 숫자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여덟 살 때 동네 술집을 돌아다니며 병뚜껑을 모아 종류별로 분류해 어떤 상품이 인기가 좋은지 알아내는 일을 즐겼을 정도로 사업가적 호기심을 타고난 그는, 고교시절 신문배달을 할 때에는 독특한 배달방식으로 고참 어른들보다 돈을 더 벌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늘 서툰 일이 있었으니 바로 ‘여자친구를 사귀는 일’이었다. 여자 앞에 서면 벌벌 떠는 부끄러움 때문에 데이트 신청하기를 끔찍이 싫어하던 그에게 첫눈에 반한 여자가 나타났다. 컬럼비아대학 경영대학원 입학 1년 전인 1950년 여름 여동생 버티가 소개해준 수전 톰슨이었다(‘수지’는 그녀의 애칭). 버티는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인 수지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수줍음 많은 오빠에게 소개한 것이었다.
워런은 수지를 보자마자 자기보다 내면적으로 훨씬 성숙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따뜻하고 상냥한 그녀에게 금방 호감을 느꼈다.
수지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그녀가 특히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릴 적 병치레가 잦았던 그녀는 각종 알레르기를 달고 살았고 만성 중이염 때문에 생후 18개월까지 고름제거를 위한 절개수술을 열두 번이나 받았을 정도로 병약했다. 류머티스로 고생해 유치원 생일 때는 다섯 달이나 집안에 갇혀 살기도 했다. 한창 뛰어놀 때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던 수지는 사람이 늘 그리웠다. 나중에 종교나 인종을 뛰어넘어 많은 친구를 사귀는 포용력을 갖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수지는 끼가 많은 여자였다. 고교 때는 연극 활동에도 열심이어서 ‘미스 센트럴(고등학교)’로 뽑히기도 했다.
워런을 만났을 당시 수지에게는 이미 다른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 친구는 아버지가 대학교수인 중산층 가정의 수지와 비교할 때 여러 면에서 처졌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러시아계 이민 노동자의 아들이었고, 유대인이었다. 당시 수지의 고향 오마하는 종교가 다른 사람끼리 만나 결혼하면 세금을 물어야 할 정도로 폐쇄적이고 편견이 많은 곳이었다. 소수자에 대한 연민이 깊었던 수지는 ‘말도 안 되는’ 전통에 반기를 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