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째 형에 대한 기억
가족이란 무엇인가. 정직하게 말하면, 20대 중반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가족의 의미를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재만이 존재를 증명한다고, 정작 가족과 떨어져 살아보니 그들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e메일이 없던 시절이라 직접 손으로 쓴 편지들을 주고받던 그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애틋해진다.
1980년대 후반 어느 해 겨울이 막 오기 직전 어느 날, 넷째 형으로부터 정태춘 노래가 담긴 테이프와 함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정태춘이 처연히 부른 ‘서울의 달’을 들으면서 밤하늘에 걸린 달을 바라보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 너 역시 저 달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떠올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저녁 세미나를 들으러 학교로 가면서 나는 이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늦은 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 겨울을 부르는 황량한 밤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북독일 저지대의 빈 하늘에 덩그러니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면서 워크맨으로 정태춘의 ‘서울의 달’을 들었다.
“저무는 이 거리에 바람이 불고 돌아가는 발길마다 무거운데
화사한 가로등 불빛 넘어 뿌연 하늘에 초라한 작은 달
오늘밤도 그 누구의 밤길 지키려 어둔 골목골목까지 따라와
취한 발길 무겁게 막아서는 아~ 차가운 서울의 달”
정태춘이 만든 다른 노래와 비교할 때 노랫말이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보는 저 달을 어쩌면 형도 잠들지 못하고 바라보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마음 한구석이 젖어오던 기억이 여전히 새롭다. 형의 편지가 언제나 큰 힘이 됐음에도 정작 직접 만나면 그저 무뚝뚝하게 몇 마디 말만 주고받는 관계가 다름 아닌 형제관계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언표적이라기보다는 비언표적 영역에 속한다. 진정한 진리는 투명한 언어로 전달될 수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천천히 깨달아왔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너무 직접적인 것이어서, 시인 김수영이 일찍이 말했듯이,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어 비켜서서만 바라봐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가족과 가족주의는 모더니티의 세계라기보다는 전통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가치이자 조직원리다. 삼강오륜을 보더라도 그 출발은 가족 간 관계의 윤리다. 이 점에서 가족주의로 대표되는 권위주의와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자유주의는 흔히 전통과 모더니티를 특징짓는 이분법적 기준으로 간주된다.
문제는 모더니티를 향해 사회변동이 급격하게 진행될 경우 가족은 거친 세상의 바람을 막아주는 일종의 바람벽과도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주의에 내재한 공동체주의적 요소는 합리성·계산성·효율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자본주의의 비인간화를 제어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해왔는바, 국가와 시장의 폭력을 약화시키는 스펀지와 같은 역할을 맡아왔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