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수는 여러 번 실축을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으면 영웅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골키퍼는 페널티킥 잘 막아내고, 결정적인 선방을 계속 해도, 까딱 잘못해 골을 먹으면 그냥 ‘죽일 놈’이 되는 겁니다. 어떤 순간이든, 종료 휘슬이 울리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말고 뛰어야 해요.”
“골키퍼가 실수를 하면 팀의 사기가 저하돼 경기 흐름이 달라지고, 승패가 뒤바뀔 수도 있다”고 말을 이어가던 그가 갑자기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씨익 웃었다.
“제가 그런 적 있잖아요. 드리블하면서 하프라인까지 나가다가…. 차라리 볼을 잡다가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는 거라면 모를까, 그때 그런 건 절대 하면 안 되는 실수였던 거죠.”
칼스버그컵의 추억
어떻게 이 얘기를 꺼낼까 망설이던 참이었다. 2001년 1월 홍콩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그가 하프라인 부근까지 공을 몰고 나가다가 상대 선수에게 빼앗겨 위험천만한 상황을 초래했던 일. 김병지는 이 ‘사건’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탈락했고, 2002년 한일월드컵 내내 벤치를 지켜야 했다. 마침 김병지를 만난 날은 2002년 월드컵 개최 10주년을 기념해 당시 대표팀 선수들과 K리그 올스타가 친선 경기를 벌인 뒤 닷새가 지난 때였다. 히딩크 감독이 내한해 다시 감독을 맡았다. 그를 만난 소회가 궁금했다. 당대 최고의 골키퍼였던 김병지를 대표팀에 선발해놓고 월드컵 본선에는 한 번도 출전시키지 않은 감독. 전 국민이 흥분에 들떴던 2002년을 아픈 기억으로 남게 한 히딩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그런데 김병지가 먼저 11년 전 그 사건을 들춰낸 것이다.
▼ 오랜만에 히딩크 감독을 만났는데 말씀은 좀 하셨나요.
“잠깐 인사는 했는데 이야기는 뭐…. 사실 지금도 미워요. 하하.”
그는 이가 다 드러날 만큼 크게 너털웃음을 지었다.
▼ 2002년 얘기는 안 해보셨고요?
“이제 와서 할 얘기는 없지만, 오랜만에 뵈니까 옛날 생각이 많이 납디다.”
김병지에 따르면 파라과이전에서의 드리블은 의도했던 일이 아니었다. 원래는 공을 잡고 바로 차려 했는데 스텝이 꼬이면서 계속 몰고 나가게 된 것뿐이라고. 갑자기 공을 빼앗겼을 때는 그도 당황했다.
“그날 전반전이 끝난 뒤 바로 교체됐어요. 다음 대표팀 선발 때 탈락했고요.”
그러나 김병지는 크게 괘념치 않았다. 당시 그는 명실상부한 K리그 간판 골키퍼였기 때문이다. 실점률 0점대를 유지했고, 2001년 FA컵 4강전에서는 울산의 페널티킥 2개를 모두 선방하기도 했다. 김병지를 다시 대표팀에 합류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뜨거웠다. 결국 히딩크는 2001년 10월 김병지를 다시 불렀다.
▼ 그런데 정작 그때는 부상 때문에 제대로 훈련을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무렵 허리가 안 좋았거든요. 나아졌다 다시 아프다를 반복했어요. 제가 2008년에 디스크 파열로 수술을 했는데, 그 문제가 이미 그 무렵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대표팀에 소집된 뒤 통증이 심해져서 거의 아무것도 못했어요.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이 보기엔 리그에서 훨훨 날던 선수가 훈련을 안 하고 있으니 오해가 생겼겠죠. 저도 굳이 설명을 안 했고. 그렇게 ‘기싸움’이랄까, 서로 뭔가 엇갈리는 일이 반복됐던 것 같아요.”
2002년 당시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를 맡았던 김현태 코치는 월드컵이 끝난 뒤 인터뷰에서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온 직후 어떤 골키퍼가 괜찮은지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국가대표팀 코치들이 적어낸 내용은 모두 똑같았다. 1등 김병지, 2등 이운재, 3등 김용대였다”고 한 적이 있다.
칼스버그컵에서의 드리블과 허리 부상이 없었다면 2002년 김병지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그는 “2002 월드컵은 꿈같은 축제였다. 다른 생각은 굳이 하지 않으려 한다”며, “다만 그때 좀 더 경륜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할 때는 있다”고 했다.
“지금의 저라면 파라과이전이 끝나자마자 감독님을 찾아뵙고 미안하다고 했을 겁니다. 다음 날 또 미안하다고 하고…. 그랬으면 될 일이에요. 그런데 그때 김병지는 그냥 김병지였거든요. 내 실력과 기량에 대한 확신이 넘쳐서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고 여겼어요.”
그 무렵의 김병지라면 그럴 만도 했다. 실력도 인기도, 리그 안에 비교 대상이 없는 최정상이었다. 김병지가 K리그 골키퍼로서는 사상 최초로 필드골을 넣었던 1998년 10월 25일자 동아일보를 보자. 스포츠면 헤드라인이 “넣고 막고…김병지의 날, 종료 직전 헤딩 결승골…승부차기 선방”이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김병지가 뛰고 있던 울산 현대는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공격에 가담한 골키퍼 김병지의 헤딩 결승골로 2대 1로 이긴 뒤 승부차기에서도 김병지의 선방으로 4대 1로 승리했다.” 북 치고 장구도 치고, 게임 전체를 혼자서 지배한 셈이다.
골 넣는 골키퍼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우리 팀의 상대는 포항이었어요. 1차전 원정에서 2대 3으로 진 상태였죠. 2차전에서 지거나 비기면 바로 탈락이고, 이긴다 해도 두 골 이상 차이를 벌리지 못하면 승부차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잘 안 풀렸어요. 1대 1로 비기고 있던 후반 45분, 미드필드 정면에서 우리 팀이 마침내 프리킥을 얻었죠. 시간상으로 볼 때 마지막 공격 기회였어요.”
김병지는 골문을 비우고 최전방까지 올라갔다. 지금은 세트피스 상황에서 골키퍼가 공격에 가담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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