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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름이 많으면 나무가 죽어요 아들딸도 나무와 같습니다”

육사에 7억 기부한 편동수 장군 부부

“거름이 많으면 나무가 죽어요 아들딸도 나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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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열 논란 행사 주인공은 전두환 아닌 편동수
  • ● 육사발전기금은 하나회 놀이터 아니다
  • ● 보은(報恩)하려 10년 전 기부 시작
“거름이 많으면 나무가 죽어요 아들딸도 나무와 같습니다”

편동수 박수애 부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30년 넘게 군대 밥을 먹은 한 인사가 6월 13일 전화를 걸어왔다.

“언론이 장님 코끼리 만지듯 보도하는 바람에 반듯한 길을 걸어온 선배마저 도매금으로 넘어갔어요. 선배가 마음이 아플 겁니다. 그날의 주인공은 전두환이 아니라 편동수예요.”

편동수(79) 예비역 소장. 생소한 이름이다.

“생도 욕보인 행위”

6월 8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정호용 전 내무부 장관과 함께 육사발전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행사에 참석한 후 열병식을 관람했다. 생도들이 ‘우로 봐’를 할 때 전 전 대통령이 거수경례로 답했다. 이 일이 알려진 후 여론이 부글거렸다. “내란 수괴가 사열을 한 것은 생도를 욕보인 행위”라는 비판이 나왔다.



편 전 소장은 이날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사열대에 서 있었다. 전 전 대통령(육사 11기) 보다 세 기수 아래다. 지금껏 7억 원이 넘는 재산을 육사에 기부했다. 육사발전기금 사상 최다 액수 기탁자. “육사발전기금은 하나회 놀이터”라는 비아냥거림마저 나왔으니 속이 상했을 법도 하다. 전 전 대통령이 육사에 낸 발전기금은 1000만 원.

7월 6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그의 집을 찾았다. 109㎡(33평) 아파트는 소박하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낡은 가구가 창을 넘어 들어온 볕을 받아 빛난다. 그가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내온다. 10년 전 아내와 함께 펴낸 수필집이다. 표지가 누렇게 바래 있다.

“아내가 오래전 쓴 글에서 ‘거목에 사는 파랑새 한 쌍’이라는 제목을 따왔어요.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 빛나던 문장인데, 내 삶에서 거목은 국가와 군대를 의미했어. 파랑새는 우리 부부를 뜻했고.”

부인 박수애(77) 씨는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문사(文士)다.

“나는 내 인생이 파랑새 한 쌍이 울창하고 단단한 거목 속에서 사랑과 행복을 일구는 것이라고 믿고 살았어요. 거목이 폭풍우, 회오리를 막아줬어요. 살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 나라와 군대에 보은해야 해요.”

은혜를 갚는단 말이 귀에 들어와 박힌다. 부부는 검박하게 살았다. 집안 가구 대부분이 남이 내다버린 것을 집어온 것이다. 방을 돌면서 주워온 가구를 자랑하는 노(老)장군의 얼굴이 꾸밈없이 수수하다. 부인 박 씨가 대화에 끼어든다.

“군인이 무슨 돈이 있겠어요. 기부하니 장군 출신이라 돈이 많은가보다 그러는데, 그렇지 않아요. 어저께 남편 동기생 부부 여럿이 모였어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탓에 애꿎은 사람이 늘 욕먹는다는 한탄이 나왔습니다. 보도가 이상하게 나와 정말로 서운했어요. 전 전 대통령과 한 묶음으로….”

남편이 그만하란 표정을 짓는다. 아내가 멈칫하다 말을 잇는다.

“14기 동기생들 사는 것을 보면 집 한 칸 구한 게 재산의 거의 전부인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아들 결혼할 때 집 팔아 전세 얻어준 장군 집도 수두룩하고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랑 엮어서 그렇겠거니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닌가요?”

박 씨가 박봉을 모아 돈 불린 얘기를 20분 넘게 했다. 채소, 과일 살 때 흠이 있는 것만 골랐다. 비틀어진 오이는 온전한 것의 5분의 1 가격이다. 썰어서 요리하면 똑같다. 호박, 감자도 마찬가지다. 고추도 딴 지 오래된 것만 구입했다. 값이 싼 고추를 필요할 때마다 구입해 당일에 해먹는 게 이득이다. 남이 5만 원 쓸 때 1만 원이면 족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트에 가지 않아요. 가락시장에서 흠 있는 놈을 구입합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 군인 봉급은 형편없었다. 베트남전이 도움이 됐다. 1년을 다녀오면 작은 아파트 한 채 살 돈을 벌었다. 남편은 맹호부대 소속으로 1년씩 두 번 베트남에서 근무했다. 남편이 전장에서 벌어온 돈으로 아내는 흑색·백색전화를 구입해 전화기 임대업을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남편 월급보다 아내 소득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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