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청와대 복지수석 아직도 사태본질 파악 못해”

  • 하태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8-17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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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달의 계도기간을 거쳐 8월1일 실시된 의약분업을 두고 혹자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말한다. ‘진료는 의사가, 처방은 약사가’ 하면 된다는 의약분업이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2차에 걸친 의사들의 집단 폐업사태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신상진(申相珍·44) 대한의사협회 의권쟁취 투쟁위원회 위원장이 사법당국의 소환에 불응해 잠적한 뒤 처음으로 ‘신동아’에 ‘목소리’를 냈다. 》
    ‘삐리리리∼.’ 8월14일 오후 6시 ‘신동아’ 9월호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 기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저 신상진입니다.”

    지난 7월초 검찰의 소환에 불응, 도피생활을 시작한 뒤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신상진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이하 의쟁투)위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 ‘신동아’는 성난 의료계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신상진 위원장에게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해 두었던 터였다.

    1달 반 정도의 도피생활로 많이 지쳐 있었을 법한데, 신위원장의 목소리는 시종 생기가 넘쳤으며 자신감에 차 있었다. 지난 6월 강행했던 1차 집단폐업 때보다 여론이 나빠졌고 일반 국민들의 저항이 거세졌지만 이제는 많은 의사들 사이에 개악(改惡)된 약사법이나 불완전한 의약분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됐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

    수배중인 신위원장은 검경(檢警)의 포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크고 작은 집회에 자신의 육성이 담긴 투쟁지침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 또한 의협 지도부에 지도력 공백의 조짐이 있다고 느낄 경우 인터넷을 이용, 회원들의 분발을 독려하는 글을 게재해 기세를 올리는 등 ‘잠수’중에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발신지 추적을 피하기 위해 10여개의 휴대전화를 번갈아 가면서 사용한다고 알려진 신위원장은 2시간 여에 걸쳐 진행된 기자와의 전화인터뷰 도중에도 서너차례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거는 치밀함을 보였다.

    “난 강경파가 아니다”

    “감옥에 가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악법을 어겼다 해서 무고하게 범법자가 되고 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한 신위원장은 “개악된 약사법이 재개정되고 올바른 의약분업이 실시될 때까지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검찰에 자진 출두하지는 않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신 위원장은 “의사들이 집단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은 정부가 강제로 시행하는 잘못된 의약분업을 거부하고 올바른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신위원장은 “이유야 어찌됐건 의사들의 집단행동 과정에 생겨나는 의료사고나 크고 작은 불편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강성 이미지로 비치고 있는 신씨는 집에 두고 온 두 딸은 물론 아내를 보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보고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미 철이 든 큰 딸이 수배자로 TV에 비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에 대해서도 “아마 내 딸은 나를 존경할 것이다”라며 태연한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렵사리 2차 폐업을 감행했습니다. 1차 폐업 때보다 여론이 악화된 것도 사실입니다. 김재정(金在正) 회장 등 의협 간부나 의쟁투 지도부가 구속되고 수배되는 등 공개적인 활동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러모로 여건이 불리한 상황인데 앞으로 의료계의 파업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이번 의약분업은 의사에게서는 조제권을 송두리째 빼앗은 반면 약사에게는 배타적인 조제권을 부여하는 한편 의약분업 이전에 누리던 의사의 처방권마저 일부 부여하는 등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개정된 약사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불평등이 치유되지 않는 한 의료계의 투쟁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아울러 현재 상태의 의약분업이 시행될 경우 많은 개원의들과 앞으로 병원을 열거나 대학병원에서 활동할 의사들의 생존권이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의료보험 수가의 현실화도 반드시 관철되어야 합니다.”

    ―폐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목소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데다 2차 폐업에는 그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는데도, 신상진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일부 강경파가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저는 결코 강경파가 아닙니다. 저는 오직 의사협회 회원들의 종합적인 의견을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즉 대다수 회원이 이번 의약분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강경하기 때문에 그들 의견을 대변하는 제가 강경한 것으로 비칠 뿐입니다. 2차 폐업 결정만 해도 대다수 회원들의 의견이지 신상진이나 의쟁투 간부들의 의견은 아니었습니다. 사법당국에서는 제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데 저는 그 법을 위반한 적이 없습니다. 집행부나 제가 강제로 폐업을 유도한 것이 아니고 대다수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한 행동입니다. 폐업에 동참하지 않은 분들에 대해 의협 차원에서 불이익을 준 경우도 없습니다.”

    흩어지면 죽는다

    ―경찰에서는 신위원장을 잡기 위해 체포 전담조가 조직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위원장을 비롯한 의쟁투 간부들에 대해 서둘러 수배령을 내리는 등 활동을 위축시키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들이 주장하는 ‘강경파’ 신상진 하나 잡는다고 활화산처럼 일어난 의사들의 분노를 꺾을 수는 없습니다. 2000년 6월 이전의 의사들과 현재의 의사들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전공의들이나 개원의들이 싸워봐야 며칠 안 갈 것이라고 복지부 관리들이나 청와대 복지수석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검찰에 자진 출두할 의사는 없습니까?

    “검찰 소환에 불응해 잠수한 이유도 부당한 공권력에는 따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제대로 된 의약분업이 시행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의쟁투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고, 저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사회에 남아 할 일이 있습니다.

    또 한가지 의료인 내부에 있는 강경파와 온건파를 아울러 하나의 목소리를 내도록 조율해 나가는 일도 해야 합니다. 현재 집단폐업에 참가한 의료인 구조는 지도부 일부에 온건파가 있고 나머지 대다수는 강경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뢰받는 지도부가 극소수 온건파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소수의 온건파가 주도권을 잡고 대다수의 강경파를 끌고 갈 경우 일시적인 봉합은 될지언정 진정한 사태해결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2차 폐업을 두고 의료계에 불협화음이 표면화된 것은 사실이다. 폐업 자체에 반대하는 경우도 많았고, 폐업에 참여하면서도 다른 의견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6월 폐업 때와는 달리 이번 재폐업에는 다른 목소리들이 구체적으로 나왔다.

    7월25일 의쟁투의 반발을 묵살하고 의협이 의료계 재폐업 유보를 선언했고, 같은 달 30일에는 각 병원 전공의들의 재폐업 결의가 잇따르는 가운데 일부 전공의들이 대학로에 모여 재폐업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기도 했다.

    다음날인 7월31일 의사들의 회원제 사이트인 메디게이트(www.medigate.net)에 ‘재폐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이라는 토론방이 열렸고, 일부 개원의도 PC통신 하이텔에 ‘폐업투쟁을 반대하는 의사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폐업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 대열에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도 동참했다.

    반면 신위원장은 7월23일 경기도 과천에서 열린 ‘약사법 개악 규탄 및 의협회장 석방 촉구대회’에서 ‘녹음연설’로 의사회의 폐업투쟁을 촉구했다. 또한 7월31일자 투쟁지침에서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일부 광역시도 의사회가 폐업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사실은 벼랑에 내몰려 있는 우리 의료계의 단합을 크게 해치는 일이며, 이는 위험천만한 사태로 인식됩니다… 그 어떠한 이유로도 우리 의사 사회에서 단결이 훼손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의료계의 전시상황입니다. 적전분열의 책임은 엄중히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의료계 내부에서 감지되고 있는 분열조짐에 대해 내린 추상 같은 ‘대동단결’ 지침이었고, 이후 의료계는 전공의를 필두로 재차 폐업이 돌입했다.

    ―많은 의사들이 폐업에 반대의사를 밝히거나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의견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투쟁지침에서 말한 것처럼 ‘적전분열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우스갯소리로 들리겠지만 의사들 간에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는 것이 의쟁투 지도부나 제가 강제로 폐업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1차 폐업 때는 사법처리에 대한 위협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폐업을 논의할 시간도 비교적 충분해 내적 단결을 이뤄낼 조건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2차 폐업을 앞두고는 투쟁 지도부가 폐업 시기와 방법, 의약분업 참여 여부 등 현안에 대해 혼란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1차 폐업으로 경제적 곤란을 실감한 중소병원이나 소규모 의원들이 생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폐업에 적극 참여하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폐업에 동참하지 못한 분들도 개악된 약사법에 찬성하거나 잘못된 의약분업에 동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7월31일 발표한 ‘폐업투쟁에 임하여 회원께 드리는 글’에서 “정부와 언론, 약사회와 일부 시민단체들의 무지와 무성의로 인하여 약사 위주의 약사법 개악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이를 재파업의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7월31일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약사법에는 그동안 ‘실질적인 임의조제 허용’이라며 논란을 빚어왔던 제39조 2항(약국 개설자가 일반의약품을 직접의 용기 또는 직접의 포장 상태로 한가지 이상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삭제됐습니다. 물론 제39조 2항의 삭제에 대해 5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두긴 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의료계의 요구가 관철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5개월의 유예기간을 둔다는 것은 그 기간만큼 의약분업 시행을 유보한다는 의미입니다. 1차 폐업을 철회할 때 39조 2항에 대한 삭제를 약속했던 정부지만 사실상 삭제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정부는 1차 폐업 철회시 약속했던 것을 지켜야 합니다.”

    ―신위원장은 여야영수회담 직후 1차 폐업을 철회할 당시 회원들에게 폐업철회를 호소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2차 폐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데요.

    “1차 폐업 당시 여야영수회담에 이어 약사법을 개정하겠다는 발표가 나왔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는 70% 이상이 폐업철회를 거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부의 의지를 믿고 회원들에게 폐업을 철회하자고 호소했습니다. 물론 폐업철회 찬반투표를 하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정부 안을 검토하는 한편, 약사법 개정안 내용을 문서로 받아두는 등 신중하게 처리하자는 의견이었지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의협집행부가 폐업철회를 서둘렀고 결국 약사법 개악 등을 통해 다시 폐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두 차례의 불신임 그리고 재신임

    ―7월초에 의쟁투에서 불신임을 당했다가 재신임을 받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실은 두 차례 불신임을 당했습니다. 첫 번째는 의약분업에 대해 의협, 약사회, 정부의 3자간 협의내용이 문건으로 나온 때였습니다. 그 내용이 임의조제 및 대체조제를 근절하기엔 불충분한 것이었는데, 협상단이 전권을 위임받아 국회 약사법 개정소위에서 열리는 논의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내용대로 협상에 들어갈 경우 회원들의 반발을 살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의장직을 사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의쟁투 중앙위원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입니다.

    또 한번은 의쟁투 중앙위원회와 운영위원회의 투쟁노선에서 갈등이 빚어질 경우 위원장이 운영위원회만 감싸고 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제가 불신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 다 전국 의협 회원들이 중앙위에 불신임을 철회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해 철회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같은 일들이 제가 수배중인 관계로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 보니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아 벌어진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쟁투 내의 갈등이라고 보지 말아 주십시오.”

    1차 폐업과 철회, 그리고 의협집행부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와 수배 등으로 지도력에 구멍이 생긴 의료계는 약 한달간 정부와의 대화창구를 만들지 못할 정도로 혼란에 빠졌다. 의료계는 8월12일 의협, 의쟁투, 전공의, 전임의, 의대교수 등 10인이 모인 의료계 비상 공동대표소위를 구성하고 8월14일 정부와의 협상테이블에 다시 나섰다. 이 소위는 이해를 달리하는 의료계내 각 직능단체가 참여하는, 정부와의 단일 창구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사실상 의쟁투와 전공의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공동대표소위가 꾸려진 것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그 이전에 의협 상임이사회는 ‘비상공동 대표자회의’를 만들려고 했지만 회원들의 절대적인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급조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의쟁투내 중앙위원회는 전체 33명으로 의사결정의 신속성 면에서 허점을 보였고 전체 인원 중 개원의가 차지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많은 반면 전공의의 참여는 2명에 그치는 등 문제가 있었습니다.

    공동대표소위는 투쟁의 선봉에 있고 회원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의쟁투와 전공의가 중심이 된 조직입니다. 정부와의 협상에서도 회원들의 민의를 수렴해 협상에 임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의쟁투가 리더십 부재를 드러내면서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도부가 마땅히 해야 할 비전 제시나 투쟁 방향성 설정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탓에 사안별로 회원들의 의견만 물어볼 뿐 독자적인 목소리가 없다는 지적인데요….

    “의료계에는 그동안 민주적인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 타성에 젖은 사람들의 볼멘 소리입니다. 민의에 따라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줄 아는 책임있는 단체로 거듭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을 지금 학습중입니다.”

    ―의료계는 이번 의약분업 사태에 대한 단일 협상안이 있습니까?

    “단일안이 엄연히 존재하며 직능별로 목소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차 폐업에 따른 수배자에 대한 수배해제와 구속자 석방, 개악된 약사법에 대한 재개정 요구란 측면에서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물론 언론이나 시민단체에 대한 감정적인 대응도 자주 눈에 띄는 데요….

    “의약계가 직능단체별로 조금씩 다른 의견을 개진할 때마다 언론은 마치 내부에 큰 분열이라도 있는 듯 침소봉대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일부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계의 감정적인 대응을 막으려면 현재와 같이 그릇되고 준비되지 않은 의약분업을 입안한 정부관리에 대한 문책이 따라야 합니다. 왜 의료계 지도자들만 사법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의료계와 의료계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정부가 버티고 있는 한 의약분업 시행으로 인해 촉발된 의료대란은 당분간 해결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양쪽이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주장은 간단합니다. 의약분업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의료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의료관행에 변한 것이 없으며 의보수가도 제대로 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점진적인 시행도 아니고 갑자기 강제적으로 의약분업을 서두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됩니다.

    저희도 정부에 대해 100% 완벽한 의약분업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실하게 지켜낼 수 있는 청사진을 내놓고 의사의 역할을 보장하라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 의사들은 정부가 내놓는 거짓 당근에 너무 많이 속아왔습니다. 이제는 정부가 하는 말은 어떤 말도 믿지 못하는 불신이 뿌리깊게 자리한 것입니다.”

    ―싫든 좋든 신위원장은 전국의 의료계를 대표해 대규모 폐업을 주도한 혐의로 범법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상태입니다. 실제로 의료계 파업으로 많은 환자들이 피해를 감수하고 있기도 합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파기한 것입니까? 이제 어떤 얼굴로 환자들의 곁에 가려고 합니까?

    “의약분업사태로 인한 피해의 1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습니다. 정부는 90%의 의사가 반대하는데도 잘못된 정책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였습니다. 의료계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폐업을 한 것은 아닙니다. 정부에 약사법 개정을 요구했고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3일간 휴진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7월1일로 예정된 의약분업을 아무런 준비없이 강행해 사고를 자초한 것입니다. 환자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저를 비롯한 대다수 의사들의 소망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의약분업 방식에서는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의사들이 잃은 것 그리고 얻은 것

    인터뷰 내내 국가의 잘못된 의약분업 추진이 의료계의 집단폐업을 불러왔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던 신상진 위원장도 의료대란으로 인한 국민 불편과 그에 따른 여론악화를 우려한 탓인지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겪는 불편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위원장은 “의약분업이 한번 잘못 시행될 경우 영원히 고칠 수 없을지도 모르고 그 경우 잘못된 의약분업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의 몫이 된다”며 “제대로 된 의약분업 시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충심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신씨는 또 “당면한 의약분업 문제가 해결되면 미련없이 감방에 들어갈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신상진. 의쟁투라는 이름과 더불어 일반 국민에게는 물론 의사들에게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지만 두 차례의 폐업을 거치면서 전국민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지난 4월 실시된 의사협회장 선거에 출마, 대의원 240여명 중 30여명의 지지를 받아 꼴찌에 그쳤지만 의약분업이라는 비상사태를 맞아 의협회장을 능가하는 실권을 행사하게 된 것.

    신씨는 시종일관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국민의 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충심의 발로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불합리한 제도를 강제로 시행하려는 정부나, 환자를 거리로 내몬 책임자로 병원과 의사를 지목해 ‘희생을 강요하는’ 언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남북한 이산가족이 서울과 평양의 하늘에서 혈육과 뜨거운 상봉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8월15일의 대한민국. 하지만 같은 시각 대한민국의 병원에서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뒤로 한 채 환자의 곁을 떠난 의사와 그 의사를 원망하는 환자와 그 가족이 있다. 신씨가 주장하듯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신상진 위원장을 비롯한 의쟁투, 그리고 7만 의사에게는 의료인으로서 환자를 돌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게 국민 대다수의 생각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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