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재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성실한 선수였다. 파괴력과 순발력을 겸비하고 훅과 스트레이트를 두루 잘 썼던 것은 오직 ‘연습벌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와지마의 현란한 변칙플레이도 그의 ‘정직한 땀’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그는 7년 동안 한계체중을 유지하며 동양타이틀을 무려 21회나 방어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세계타이틀을 내준 뒤에도 실력 때문에 진 게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동양타이틀을 다섯 차례 더 방어하고 은퇴했다. 마땅히 운동할 곳이 없어 현역으로 뛰던 73년에 직접 체육관을 차려 개인 연습과 후배 지도를 병행했던 유씨는 그간 장태일, 차남훈, 양상혁, 장영순 등의 숱한 한국·동양챔피언들을 길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