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시대에는 영·호남을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장관직을 마친 뒤 경선에 나설 것이고 정통 야당의 법통을 잇는 유력주자로 떠오를 것입니다.”
노장관은 이런 판단 아래 일찌감치 민주당의 8·30 전당대회 최고위원 출마를 포기하고 입각을 희망해왔다. 특히 해수부장관직은 부산·경남 지역의 ‘바다 민심’을 잡을 수 있는데다가 노동부나 보건복지부처럼 첨예한 이해집단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따르는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운행능력’을 검증받기에 다소 부담이 덜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장관직이 준 ‘기회’
그러나 경남 김해 출신인 노장관이 김대중(金大中)정권의 각료로 일하기까지는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고졸(부산상고)인 그는 75년 제17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대전지법 판사를 지냈으며 78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해오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87년 대우조선 이석규사건으로 투옥, 그 해 11월 변호사업무를 정지당하기도 했다. 88년 13대 총선 때 원내에 진출, 5공 청문회를 통해 스타로 화려하게 떠올랐으나 14대 총선과 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소속으로 부산에서 출마, 낙선했고 대선을 앞둔 97년 11월 국민회의에 입당, 98년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했지만 지난 4·13총선에서는 ‘지역감정 타파’를 명분으로 내걸고 다시 부산(북·강서을)에서 출마를 강행, 석패했다. 비록 ‘지역바람’에 밀려 낙선했지만 일관되게 명분있는 도전을 감행, 선전했다는 점에서 여권에서는 일찍부터 중용설이 나돌았다.
노장관은 장관직에 취임하면서 정부내에서 그 동안 한일어업협정 후유증 등으로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인 해수부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앞으로 야당의원의 입장이 돼 꼬치꼬치 질문하고 필요하면 전문가도 동원할 테니 모든 것을 솔직하고 자세히 답변하라.”
취임 직후 노장관의 일성이었다. 노장관은 실제 실·국별 업무보고를 장관실에 앉아서 받지 않고 한·중어업협정 후속협상 등 현안이 가장 많은 수산정책국을 시작으로 실·국장실을 직접 찾아다니며 받기 시작했다. 간부들이 내용을 상세히 모르거나 어업인 등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부분에 대해서는 담당 사무관을 그 자리에 직접 불러 사실을 파악하거나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정책이 실제 효과를 얻으려면 현장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게 노장관이 강조하는 현장행정론이다. 해수부직원들은 노장관의 이런 스타일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노장관이 청사 17층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직원들 옆자리에 식판을 놓고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노장관은 출퇴근 시간에 현관문에서 ‘의전’을 갖추는 경비직원의 ‘중요업무’도 하지 못하게 했다.
─처음으로 정부에 들어와 일해보니 어떻습니까. 국회의원 할 때와 장관직 할 때, 어느 게 나은 것 같습니까?
“국회의원은 자유로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리라면 장관직은 주어진 직무상 많은 제약을 받지만 하나하나 구체적 성과물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데 보람이 있는 거 같아요.”
반(反)DJ 정서가 개혁 막아
─최근 김대중정부의 각료나 핵심인사들은 신문 보기가 겁난다고 할 정도로 국정위기론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벌써 레임덕이 온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김대중정부는 분명 역사에 기록될 만한 업적과 의미를 갖고 있지만 현재는 문제점과 부정적 측면이 더 부각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정권운용에서 몇몇 핵심측근 또는 가신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운용한다든지 권위와 결정이 대통령에 너무 집중돼 있다든지, 대통령만 있고 장관도 주요 당직자도 사실상 없다든지 등등. 하지만 저는 그런 문제들이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럼 이 정권의 근본 위기랄까 레임덕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보세요?
“이 정권은 출발부터 레임덕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거죠. 지지기반이 협소한 데서 출발했어요. 정책이나 논리를 갖고 비판당하는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비판당하고 비토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개혁이란 게 본디 그 가짓수가 많아질수록 반대세력이 많아지는 면이 있지만 이 정권의 경우는 무조건적인 반대세력이 두텁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것이 개혁을 지지부진하게 하고 순조롭지 못하게 한 큰 원인 중에 하나라고 봐요.”
─영남지역 정서가 김대중정부의 개혁정책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말로 들리는군요. 이 정부가 국민들로 하여금 거부정서를 강화시킨 경우는 없다고 보세요?
“물론 우리 정부도 문제점이 있었죠. 권력 내부에서 일어난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좀 깔끔하지 못한 점이 있었어요. 게다가 과거 권력이 해온 행태를 답습한 경우도 있어요. 예컨대 검찰조직을 통제하에 두려고 하거나 특검제 등으로 검찰을 무조건 비호하려는 인상을 준 겁니다. 검찰과 같은 공권력을 칼처럼 사용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시민들의 여론과 정서에 맞추는 획기적 전환이 있었어야 하는데….”
─특히 인사문제가 영남권에서 반DJ정서를 온존·강화시켰다는 지적이 많은데….
“호남 사람들을 많이 기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어요.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아닌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또 이 정부 들어서던 시기에 많은 구조조정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 떠나야 했던 사람들은 결국 불만의 화살을 호남 쪽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어요. 이런 정서는 어쩔 수 없어요. 중대선거구제가 됐더라면 지역구도를 좀 희석시킬 수 있었겠지만 국민들은 이를 거부해버렸어요.”
노장관은 이 대목에서 영남의 반DJ정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현실을 사례를 들어가며 탄식조로 말했다.
영남인들 맘에 들려면 DJ하야 밖에 없어
“제가 얼마 전에 부산에 가서 시민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여론주도층에 속하는 한 사람이 이래요. ‘아, 이거 부산의 민심이 너무 안 좋습니다. 대통령한테 가서 좀 잘하라 하이소’ 라고 말이죠.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물었더니 별방안은 없이 ‘그냥 좀 잘하라고 그래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어요. ‘(DJ가) 노벨평화상을 받아도 (영남 사람들은) 심기가 불편한 판인데 김대중대통령의 무슨 정책인들 당신들 맘에 들겠소. 딱 한 가지 길이 있기는 있겠지. 김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그만두면 기분이 좋겠죠? 그것밖에 없다는 거죠?’라고. 그 사람이 아주 미안해하면서 ‘듣고 보니 그렇네요’라고 말해요. 이런 판인데 김대통령에게 무슨 정책수단이 있겠어요?”
노장관은 이 대목에서 한숨을 깊이 내쉬고는 또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런 (영남의) 정서적 벽은 엄존한다고 치더라도 정부와 대통령은 이를 완화하려고 노력할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요? 더욱이 영남권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민심이 이반해가는 현실이라면.
“물론 원인이 어디에 있건 지도자에게 책임이 있고 책임을 느껴야죠. 그러나 지도자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닙니다. 무엇을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처음부터 풀기 어려운 문제여서 여기까지 온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어요. 지도자 문제도 이 땅에 있는 지도자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지 뭐 하늘에서 떨어진 지도자를 갖고 문제를 풀어갈 수는 없는 겁니다. (김대통령이 아니라면) 다른 선택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 말이에요.”
─물론 김대통령이라는 제품 자체를 바꿔버릴 수는 없고, 이 제품의 성능을 가장 좋게 하기 위해 어떤 방도가 있는지가 논의의 초점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김대통령이 총재직과 당적을 내놓고 정쟁에 초연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게 좋지 않으냐는 지적이 적지 않은데….
“있을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고 봐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사항이에요. 꼭 당을 떠나지는 않더라도 미국식 대통령-여당 관계로 정비하는 방안 등의 정치적 결단도 있겠죠.
문제는 어떤 시대든 그 시대에 맞는 지도자가 있는 겁니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경제개발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갖고 있었던 거고 김대통령은 당 밖의 민주화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맞는 리더십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이 양반에게 다음 시대에나 있을 법한 완전한 당내 민주화 리더십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예요. 물론 대통령이 당에 역할과 힘을 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고 이런 구시대적 의식과 관행은 대통령이 깨주셔야 해요. 그러나 그걸 잘 할 수 없는 것도 김대중 대통령의 한계예요. 그 한계를 인정하고 이 김대중시대에는 그가 맡은 시대의 임무를 잘 완수해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어요.”
노장관은 “정치시험(총선을 의미하는 듯)에서 낙방한 낙방생의 얘기”라고 전제한 뒤 최근 유행처럼 번진 DJ비판 사조를 겨냥, 김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변론하는 자세를 취했다. 당내에서까지 ‘잘못됐다’ ‘통촉하옵소서’라는 비판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시점에 노장관이 ‘DJ를 위한 변명’을 자청하고 나선 것은 퍽 대비돼 보였다. 노장관은 DJ의 철학과 노선, 그리고 역사의식에 명분을 걸고 동참했으므로 DJ에 대한 존경과 옹호의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지금 국민들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경제입니다. 정치가 경제를 어쩐다지만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데는 한계가 있단 말이죠. 정치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제거하지 못하고 사회심리적 불안을 야기한 데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통령이 만능은 아니잖아요. 오늘의 정치구조 자체가 불안하고 대결적인 구도입니다. 대통령에 대해 논리가 아니라 극단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게 누구입니까? 영남정치인들입니다. 거기에 대해 호남인들은 또 극단적 반감을 보이고요.
국민들이 만들어놓은 이런 조건에 대한 고려도 없이 대통령보고 모든 것을 해결하라? 이것은 공정치 않죠. 이 시점에 국민의 선택은 역사적인 남북협력의 틀을 마련하고 경제구조를 더 개혁할 수 있도록 (김대통령을) 밀어줄 거냐, 아니면 어려운 경제상황 등에 대한 불만을 갖고 (김대통령을) 완전히 흔들어버릴 거냐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더 흔들어대면 남북관계도 진전되기 어렵단 말입니다.”
노장관의 톤은 점점 높아졌다. ‘국민들의 인내’를 설득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대처시대에 영국공항이 마비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탄광노조와 싸우느라 1년 이상 온나라가 벌집 쑤신 듯했어요. 사회구조 개혁에 그만큼 시간이 걸렸습니다. 국민의 인내심과 지지가 그 바탕이 됐던 거예요. 우리 국민은 말이죠, 5·6공 때는 그 가혹한 정치마저 잘도 참아내더니 요즘은 이거, 너무한 것 아녜요?”
당적이탈·중립내각 대통령 결단 있어야
노장관은 여권 안팎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동교동 2선 후퇴론’ ‘가신 퇴진론’에 대해서도 가신들에 대한 동정론을 폈다.
“물론 가신구조에 문제와 약점은 있어요. 하지만 대통령이나 가신들이 사태의 본질은 아니잖습니까? 권노갑씨가 뭐 경제정책을 좌우해서 어려움이 왔나요? 우리 모두가 만들어놓은 구조에서 가신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잘못입니다. (웃으며) 그 사람들도 고생해서 그 자리까지 온 사람들인데 쫌 묵고(먹고) 살게 놔두면 안 되나. 나는 그 사람들을 무조건 비판하는 사람들한테 묻고 싶어요. 당신들은 공정한가, 당신들은 과연 철저히 깨끗한가. 호남사람이 해묵어도(해먹어도) 기껏해야 5년이다, 이제 2년 뒤면 어차피 새로운 스타일의 리더십이 나타난다, 차세대 리더십에 가신은 없을 거다, 당신들은 김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그만둬야만 욕을 멈출 거냐, 이렇게 묻고 싶단 말이죠.”
─식자층에서는 난국극복을 위한 거국중립내각 구성도 요구하는데,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죠. 당적이탈이나 거국중립내각이나 대통령이 결단을 한다면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을 흔들지 않겠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죠. 야당에서든 언론에서든 대통령이 할 일을 한두 가지로 한정해놓고 이 부분에 관한 한 다른 이유를 들이대고 대통령을 흔들지 않겠다는 확고한 약속이 있어야 해요. 그런 합의 없이 당적이탈 등을 하게 되면 그나마 남아 있는 지지기반마저 무력해질 겁니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합리적 타협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의원은 얼마 전에 김대통령이 먼저 중립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면 야권에서도 참여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당히 의미있는 얘기로 봐요. 인위적 정계개편은 정치판을 망칠 수 있지만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한 정계개편도 있을 수 있어요. 정책이 아니라 지역정서만으로 만들어진 이 정치구도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자는 것으로 봅니다. 제가 현재 장관직에 있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만, 정치인인 김덕룡씨는 그런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거죠. 적어도 다음 시기에는 지역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그런 정계개편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김덕룡씨 같은 야당인사들 조직화 돼야
─김의원은 먼 미래의 이상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딜레마에 빠진 현재의 국정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런 방안을 내놓은 것 같은데….
“만일 그런 얘기가 현재형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먼저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이 국민 앞에 책임있게 표방되고 조직화돼야 해요. (야당의 그런 세력이) 결단의 수준까지 가야 여권에서도 책임있게 받아들일 거라고 봅니다. 자기들은 결단하지 않고 자꾸 대통령에게만 결단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죠. 대통령은 그 막중한 책임 때문에 먼저 개인적 결단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에게 제대로 직언하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 많은데 이것도 ‘시대적 한계’ 때문인가요? 노장관은 직언을 좀 하는 편인가요?
“직언은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조언을 듣는 사람이 조언하는 사람을 신뢰하고 조언을 구할 때 직언이 효과를 갖는다는 말입니다. 직언 조언보다는 지금은 제가 김대중대통령 시대에 할 일을 도와드리고 그 다음 시대의 과제는 우리가 차분히 준비해가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대통령이 직언이 모자라서 무슨 일을 못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 가지 다른 이유 때문에 선택에 제약을 받고 있는 거예요.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 ‘직언을 위한 직언’으로 소리를 높인다면 그것은 다른 정치적 목적을 위한 쇼맨십에 불과할 수 있어요. 과거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시절에도 우리는 그런 경우를 봤잖아요. 떠나고 버리고 도망가기 위해 자신이 은혜를 입은 대통령을 때리는 경우를 봤어요. 그래서 우리는 자기과시형 직언보다는 내가 맡은 일이라도 대통령이 신경을 안 쓰도록 깔끔히 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의약분업이나 한전민영화 문제가 큰 진통을 겪으면서도 하나씩 정리되고 있잖습니까?”
─집권세력이 무기력증을 겪고 있는 것은 정권재창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야당에서 이회창(李會昌)총재라는 안정적인 차기 주자가 가시화돼 있는 반면 여권에서는 오직 DJ만 보이고 차기에 관해서는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만 가능성 있는 주자 반열에 올라 있는 게 현실 아닌가요? 나머지 인사들은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회창총재나 이인제 최고위원에 훨씬 못미치고 있고 이인제 최고위원은 이를 근거로 ‘대세론’을 확장시켜 나가려는 태세인데….
“자꾸 과거의 사고 속에서 상황을 바라보면 그런 측면밖에 안 보입니다. 옛날에는 여당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사가 다음 집권자가 된 적이 많았죠. 그래서 계보가 크거나 조직이 크거나 이런 것에만 관심을 가졌어요. 그러나 이제는 대중정치 시대입니다. 이인제씨의 지지가 올라갈 적에 보면 거의 폭발적이었잖습니까? 후보감으로 압도적으로 뜨는 데 3개월이 걸리지 않았어요. 이회창씨의 등장도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거예요. 차원은 좀 다른 얘기지만 제가 전혀 무명에서 청문회를 통한 ‘대중 스타’로 뜨는 데에도 단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지금 몇 사람만 보고 생각하면 틀릴 가능성이 많아요. 지금 1등이래봐야 지지율 20%를 겨우 넘는 정도잖아요. 그 사람들이 지명도가 낮아서가 아니에요. 검증을 거칠 만큼 거쳤는데도 국민적 리더라고 할 만한 반열에는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다른 데 있습니다. 앞으로 각 당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 국민들 앞에 새로운 흐름과 변화를 이끌어나갈 인물들이 나타날 겁니다.”
노장관은 현재의 지지도보다는 잠재적 폭발력, 즉 대중적 호감도가 차기 대선구도에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으로 들렸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나 민주당내 경쟁자의 현재 지지도는 어디까지나 불안정한 선두에 불과하다는 노장관의 말에서 간단찮은 그의 ‘야심’이 엿보였다. 노장관이 과거에 스스로 선택해온 험로 자체가 어찌 보면 ‘야심’이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1년 뒤면 여당도 대통령후보를 선출해야 하는데 장관직에 붙들려 있으면 다른 주자들처럼 적극적으로 경쟁대열에 뛰어들기도 어렵고 좀 갑갑하지 않겠습니까?
“난 대통령께서 정말 배려를 많이 해주신 걸로 봐요. 우선 입각시켜주신 것도 그렇고 영남지방에 많이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도 그렇고 절묘한 배려를 해주시는 거죠. 게다가 민주당(대통령)후보는 2002년 1월에 경선으로 뽑는다고 언명하신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것은 우리 민주당의 후보를 놓고 여러 사람이 경쟁할 거라는 얘기예요. 저는 결코 초조하지 않습니다. 저는 장관으로서 할 일에 온 정성을 다해서 객관적 성과를 거두어낼 때 ‘가능성’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고 봅니다.”
─다음 시대의 리더십은 어떤 형태가 돼야 한다고 보세요?
“이제는 김대통령이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하던 시대와 여건이 많이 다릅니다. 획일적인 명령 하나로 움직이는 시대가 아니에요. 공무원들이 자기 다칠 일은 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불법한 명령은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각 지역의 토착유지들도 이제는 중립이에요. 정권에 줄 안 서요. 언론도 거침없고.
이제는 절대적이고 전일적인 카리스마가 설 땅이 없어요. 어느 한 지역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줄 권위도 없어요. 그래서 다른 리더십을 갖고 문제해결을 모색해야 해요. 특히 지역적 통합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느 쪽으로부터도 배척받지 않을 수 있는 원칙과 철학, 도덕적 명분과 정서적 수용성을 갖는 리더십 말입니다. 적어도 편파성 없이 정성을 다할 것이라는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이것은 존재의 조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노장관은 특히 ‘지역통합을 매개할 수 있는 존재’에 은근히 방점을 두는 인상이다. 이것은 노장관이 그 동안 걸어온 정치적 진로와 맥이 닿아 있는 발언이다. 노장관은 지난 14대,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바보’ 소리를 들어가며 영남권에서는 ‘야당’일 수밖에 없는 민주당으로 출마했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영호남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도전한다는 게 그의 변(辯)이었다.
그의 ‘뜻있는 모험’을 격려하기 위한 열성 팬클럽도 활약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노의원이 석패한 직후 그를 지지하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장 영화배우 명계남)가 그것이다. ‘노사모’는 ‘아름다운 바보 한국인,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고 사랑합니다’는 문구로 시작되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구축해놓고 있다. 또한 ‘노사모’는 정치인들의 인기도를 가상공간에서 주식형태로 사고파는 ‘포스닥’에서 노장관의 주가를 ‘황금주’로 만들기 위해 ‘노사모 펀드’ 활동도 펼치고 있다. ‘무현짱’(노사모가 부르는 노장관의 애칭)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일종의 ‘작전’ 군자금 모금활동인 셈이다. ‘노사모’는 12월16~17일 무주에서 ‘겨울캠프’를 여는 등 노무현의 ‘도전’을 적극 밀고 있다.
다음 대선에서도 노장관은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모험’을 시도할 것인가? 차기 대선 역시 지역구도가 엄존하는 가운데 치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영남출신인 그가 호남을 기반으로 출발한 새천년민주당의 차기 대통령후보로 나선다면 영·호남을 하나로 묶는, 즉 지역통합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노무현 대망론’에 기대를 거는 이들의 주장이다. 말하자면 후보에 따라 지역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호남에서 비토가 분명한 이회창총재와 영남에서 비토가 강한 이인제 위원이 대결하게 되면 지역주의가 다시 살아날 것이고, 영남에 기대고 있는 이총재와 영남 출신인 노무현이 맞붙을 경우 지역주의가 희석될 것이라는 논리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선거전략 차원에서도 민주당이 영남 출신 후보를 낼 경우 호남 유권자들은 어차피 민주당 후보니까 찍을 것이고 10년간 대통령직을 ‘빼앗겼던’ 영남 유권자들도 당에 관계없이 지지할 동기를 갖게 되므로 ‘영남후보 노무현’이야말로 민주당의 재집권 가능성을 가장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어디까지나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바보 노무현’을 미는 팬클럽까지 생기고 젊은 층과 보이지 않는 대중 사이에 노무현에 대한 잠재적 지지가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실의 정치세력 내지 우리 사회 주류층에서는 노무현이라는 존재가 어디까지나 비주류요 ‘실험정신’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YS와 명분없이 만날 수 없다
─민주당이 차기 대선에서 영남 출신 후보를 내면 영남의 극단적인 민주당 거부정서를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는 이른바 ‘영남후보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영남후보론이라고 하면 또 하나의 지역주의같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 하면 정권을 또 한 번 잡느냐의 문제를 뛰어넘어 정권을 잡아서 어떻게 국민통합적인 정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를 고려하고 다음 대선에 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남후보론도 그 수준에 이르러야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 것이지 단순히 선거전략상의 고려라고 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노장관은 이런 맥락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관한 비판을 덧붙였다.
“이총재가 틈만 나면 영남에 가서 지역주의에 호소하는 정치를 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닙니다. 대선전략상 성공적이지도 못할 거예요.”
─김영삼 전대통령도 자주 ‘영남의 지지를 받는 후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차기 대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김전대통령을 만나볼 의향이 있습니까?
“김전대통령이 만나고 싶어할 것 같지 않은데요(웃음). 잘 아시다시피 야당시절 나는 김전대통령과 나름대로 인연을 맺었고 한보청문회 당시에도 김전대통령을 비난한 일이 없어요.
하지만 나는 YS가 영남에서 일부 정서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아무 계기도, 명분도 없이 가서 도움이나 받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강자라면 YS를 포용하러 갈 수도 있겠죠. 그러나 나는 아직 YS보다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작은 존재입니다. 또 YS도 제가 먼저 머리를 조아리고 찾아가지 않는 바에야 나한테 관심이 있겠습니까?”
노장관은 현재 YS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정치인 접촉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처지다. ‘자원봉사자’들이 여론주도층 인사들에게 노장관의 동정이나 관련기사모음 등의 정보를 이따금 e-메일로 제공하는 게 ‘정치활동’이라고 할 정도다. 노장관은 지난 10여년간 운영해온 지방자치연구소와 후원회 사무실을 통합, 지난 9월 여의도에 사단법인 ‘지방자치경영연구원’을 열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쪽 금강빌딩 3층에 자리잡은 ‘자치경영연구원’ 멤버들은 과거 노장관 보좌관이나 비서 출신이다. 주변에선 당연히 대선후보 경선을 겨냥한 실무팀으로 보고 있다. 노장관측도 굳이 ‘정치적 임무’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다만 노장관은 최근 이 참모들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국민의 위기감이 심화된 상황에 다른 정치인들처럼 장관업무보다 다른 데에 신경을 쓰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나름의 이미지 관리 전략이랄 수 있다. 그러나 노장관은 경선출마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뜻밖에 분명한 의지를 밝히고 나섰다. “아직은 장관 업무에 충실할 때”라는 이전까지의 전제보다는 ‘출마한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고 나선 점에서 태도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앞으로 여권내 차기경쟁구도가 단순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경선에 출마하실 거죠? 노장관은 젊은 층 사이에 인기 있을지 몰라도 당내에서 대의원들 사이에는 아직 대권주자로 확고히 인식돼 있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데….
“경선을 과거의 틀로 생각하면 맞지 않을 거예요. 지금 대의원들에게 유인물을 보내고 접촉하고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봐요. 79년 5·30전당대회의 신화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김영삼총재가 무엇으로 이겼습니까? 그 당시의 상식으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이변을 일으킨 것입니다. 지금 여당이 됐지만 우리한테는 면면히 흘러내려오는 정통 야당이라는 자부심과 믿음이 있어요.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때그때 인기에 영합하는 행동과 깜짝쇼를 하게 되는 겁니다. 나는 그 동안 정치를 하면서 이익에 따라 줄서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정통 야당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나갈 것입니다. 우리 당에는 그런 정신을 갖고 있는 대의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어요.
저는 장관직을 그만두고 나면 유력후보로서 나서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당에 경선은 분명 있고 경선에서 저는 분명 유력한 당선후보 중에 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노동자-정부 협력적 파트너십 필요
─순간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다고 말하셨는데요.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요구하는 야당측 목소리가 높지만 해수부는 이를 끝내 거부하고 있습니다. 장관의 소신일 수도 있겠지만 부산에 기반을 둔 정치인으로서 곤혹스럽지 않나요?
“부산에 세 번이나 내려가서 해수부를 부산으로 옮길 수 없다고 정면으로 설득하고 선언했습니다. 현재 많은 지방조직이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해수부 본부는 정책기능을 하는 400명 단위의 작은 조직입니다. 정부의 예산도 따야 하고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다른 부처와 업무도 협의해야 합니다.
이걸 따로 떼서 부산으로 내려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중앙행정과 정치의 기능을 갖고 있는 이 본부를 부산으로 내려보낸다면 1년도 못 돼서 해수부의 기능과 힘은 현저히 약화될 겁니다. 우선 예산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중요한 많은 결정에서 빠지게 돼요. 따라서 부산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합니다. 지금은 중앙부처 하나 내려온다고 해서 산업이 따라오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대중이 정치인 노무현을 기억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88년 국회 청문회에서 초선의원으로서 날카로운 두각을 나타낸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80년대 말 노동자 파업사태 때 노동자 편에 서서 활약한 것도 일반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구조조정의 거센 바람 앞에서 저항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노장관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변론자로 남아 있을까?
─노장관은 과거 노동문제에 관한 한 상당히 친(親)노동자적인 인상을 남겼죠. 그런데 최근의 노사관계는 과거와는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어떻습니까. 요즘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는 노동자들이 일방적으로 매를 맞는 관계였어요. 보호수준이 낮은 법적 권리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던, 탄압을 받는 시기였어요. 그래서 일단 그런 법적 권리를 강화하고 지켜내는 게 그 당시의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합법적 권리를 보호하고 법적 보호수준을 높이는 데 활동 목표를 두었던 겁니다. 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하고 각성수준을 높이게 도와준 거죠.
그런데 얼마 있다 보니까 그쪽(노동자)에서 나를 비판하기 시작하고 별로 도움을 청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자기들 맘에 들지 않는다고 날보고 ‘보수야당’ 물러가라고 얘기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미 노동자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조직화를 논의하는 수준까지 와 있으니 저 같은 사람이 필요없게 된 거죠. 이런 상황에는 내가 특별히 나서서 도와줄 일이 없다는 겁니다. 다만 옛날의 인연이 있으니 내가 좀더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은 있겠죠. 최근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움은 우리가 이해할 수는 있는 대목이 있어요. 하지만 너무 정부와 대결각을 긋기보다는 전략적으로 협력 파트너십을 구하면서 나아가야 할 때라고 봐요.”
─이런 질문이 어떨지 모르지만 노장관은 사법고시에 합격한 변호사 출신이지만 정식 학력으로는 상고 졸업이잖습니까? 우리 사회의 주류랄까 주도층은 대개 세칭 일류대학을 나온 그룹이어서 그런 점에서 애로사항이 없지 않을 거라는 시각도 있는데요. 특히 앞으로 정치지도자로 나서려면 그런 게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요?
“물론 그런 게 콤플렉스가 되지 않겠느냐는 소리도 들어요. 하지만 나는 이게 강점이 될 수도 있다고 봐요. 특히 주류라는 기득권세력이 출신학교 등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우리 사회와 나라를 몰고 가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국민적 바람을 받들어 녹이는 데에는 그런 네트워크에 얽혀 있지 않은 사람이 자유로울 수도 있다는 거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저는 그런 학교문제니 그룹이니 하는 데에 무관심한 편이에요. 나는 장관이 된 후 인사를 할 때에도 어느 학교 출신이 많으니 적으니 하는 소리들은 기본적으로 무시하고 능력 위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