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호

“시장재출마? No! 대권도전? 노코멘트”

  • 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hwang@donga.com

    입력2005-04-06 1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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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장으로서 할 역할 다했다
    • 박정희 기념관은 기념 도서관으로
    • ‘추모의 집(납골당)’, 혐오시설 아니다
    • 서울 수돗물 문제없다
    • 수서사건의 진상
    고건 시장의 거취는 내년 서울시장 선거,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언론에는 이인제 노무현 김중권씨 등과 함께 민주당 대권후보군에 오르내리고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인기도를 비교하는 여론조사가 신문·잡지 지면에 자주 등장한다.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인터뷰는 시청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들며 이루어졌다.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인지라 1000만 서울시민들의 삶의 질과 관련된 정책을 중심으로 많은 질문을 준비했다. 저녁 자리의 대화라서 다소 산만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맥주 한잔을 반주로 곁들여 대화를 하다보면 그가 늘상 조심하는 정치 문제에 관한 솔직한 발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운 좋게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고시장은 30개에 가까운 항목의 질문에 답하느라 두 시간 동안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준비한 질문을 모두 마치고 폭탄주를 몇 순배 돌릴 때도 정치에 관한 발언은 무척 조심했다.

    고시장은 “서울시청에 출입하는 기자들에게 시정에 관해 중요한 정책을 발표해도 메트로면에만 나와요”라고 다소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것은 그가 선택한 불이익이다. 그가 해양수산부장관 시절의 노무현씨처럼 야당 총재를 향해 ‘대포’도 쏘고 대통령에 대해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펑펑 터뜨리면 신문 1~5면에 빈번히 등장하겠지만 중앙 정치와 관련한 이야기는 고시장 스스로 극력 피하고 있다. 그러니 메트로면에 나올 수밖에.

    이번 인터뷰도 판교 신도시, 상암동 개발, 원지동 추모공원, 수돗물, 아파트 재건축 등을 중심으로 진행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메트로 이야기만 잔뜩 하면 어떡하나 하고 내심 걱정했지만 큰 제목으로 뽑을 이야기를 몇 개 준비해온 것이 곧 확인됐다.



    “지방선거 출마 않겠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재출마와 관련해서 딱 부러지게 “할 일이 끝났다”며 “재출마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대선출마와 관련한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했고 원론적인 발언을 해놓고서도 쓰지 않겠다는 신사협정을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발언에서 향후 정치활동에 관한 확실한 언급은 없었지만 현명한 독자라면 어떤 감을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노코멘트’도 좋은 답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판교 신도시 건설 계획을 놓고 건설교통부와 경기도의 의견이 다르고 민주당 의원들도 편이 갈려 있습니다. 수도권 신도시 건설이 꼭 필요한 것일까요.

    “우리 국토의 가장 큰 문제가 수도권 과밀 현상입니다. 전 국토의 11%밖에 안 되는 수도권에 전 인구의 46.7%가 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어요. 이대로 놔두면 수 년 후에는 50%를 넘게 돼요. 도시국가를 빼놓고는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아주 비정상이에요. 국가적 차원에서 획기적인 인구분산 또는 인구집중 억제 정책을 써야 합니다. 판교의 사정이 어떻게 됐든 서울에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신도시를 세우면 분당 일산에서 보시다시피 엄청난 교통혼잡을 유발합니다. 일산 분당으로 인한 교통 혼잡 비용이 연간 3조원이라고 합니다.

    수도권에 신도시를 건설하려면 잠만 자고 빠져나오는 베드타운이 아니라 자족(自足) 도시가 돼야 합니다. 자족도시가 되려면 서울에서 40km는 떨어져야 합니다. 판교는 도저히 자족도시가 될 수 없습니다. 서울시가 건교부에 천안쯤에 신도시를 건설하라고 대안으로 제시했어요. 경부고속철도의 첫 번째 역이 천안입니다. 거기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더라도 자동차 대신에 경부고속철도를 이용하게 되니까 고속철 경영에 도움이 됩니다.”

    ―건교부에서도 판교 신도시를 위해 두 개의 도시 고속도로를 새로 만든다고 하는데 재원이 엄청나게 소요되겠지요.

    “고속도로는 아무리 많이 만들어봐야 소용이 없어요. 자동차 타고 들어오니까. 막히는 현상을 옮겨놓을 뿐이지요. 건설비용도 천문학적 규모입니다. 지하철 ·전철·광역전철 등의 네트웍을 형성해야 합니다.”

    ―시장 공관에 상암동 신도시 투시도가 걸려 있더군요. 상암동 신도시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지금도 자유로 일대가 출퇴근 시간대에 막힙니다. 월드컵 경기장이 생기고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서면 일산신도시와 인천공항으로 연결되는 자유로는 도로의 기능을 상실하지 않을까요. 교통대책을 어떻게 세워가고 있습니까.

    “상암동은 신도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당초 1만 가구가 들어서는 주택단지를 건설할 계획이었다가 3000 가구를 줄이고 그 면적에 정보통신(IT) 산업의 동북아 비즈니스센터를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월드컵 경기장 주변에 조성되는 디지털 미디어시티는 21세기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정보와 환경, 이 두 가지 개념을 통합한 서울의 관문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북아의 ‘허브(중추)공항’인 인천 신공항의 배후에 있는 이 도시에 세계 유수 IT 기업들의 동북아 비즈니스센터가 들어서게 됩니다.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뮬레이션 해보니까 약 8개 차로가 추가로 필요합니다. 모두 20개 차로를 인근에 신설 또는 확장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강남순환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제2 성산대교를 신설합니다. 새로운 간선도로가 하나 더 생기면 훨씬 나아질 것입니다.”

    ―상암동에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에 반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시장은 기념 도서관 형태가 좋겠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상암 신도시에는 공공 도서관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기념관이 아닌 공공 도서관 성격을 가진 기념 도서관이라고 한다면 서울시가 그걸 수용하겠다는 것이지요. 기념사업회가 국고 보조를 받고 모금한 돈으로 지어 서울시에 기부체납을 하고 운영과 경영은 기념사업회 책임으로 하는 조건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순수한 기념관은 경북 구미에 하는 것이 더 좋겠지요.”

    ―이 문제로 박근혜 의원과도 한 번 만났다고 하던데요.

    “이 문제만 가지고 만난 게 아닙니다. 상암동 기념 도서관이 결정되고 난 후 박의원을 만났을 때 얘기를 나눈 일은 있어요.”

    고시장은 내무부 새마을 담당관으로 박대통령의 농촌근대화운동을 실무 집행하는 자리에서 일했고 정무 제2수석 비서관으로 청와대에서 직접 모시기도 했다. 그로부터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발전을 이룩한 긍정적인 평가와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켰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혼재합니다. 박정희 기념관 추진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박대통령의 업적 중 경제발전을 평가하는 세력과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측면을 비판하는 세력이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의 기본 설계를 했고 저는 실시 설계를 한 실무 계획 책임자였습니다. 새마을운동의 추진상황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박대통령은 가난에 한이 맺힌 사람입니다. 가난 극복, 농촌 근대화 그리고 치산녹화(治山綠化)에 집념이 강했어요.

    1972년쯤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는 비행기로 한국에 들어오려면 영일만 상공을 통해 진입하는 노선이 유일한 국제선 항로였습니다. 당시 일본 국토는 푸르다 못해 검었습니다. 그리고 바다도 푸르고…. 그러나 비행기가 한국땅으로 들어오면 김동인의 소설제목 대로 ‘붉은 산’ 입니다. 물론 거기만 그런 게 아니고 국토 전체가 다 붉었습니다.

    박대통령은 외국 사람들 보기에도 창피하니 그 지점에 나무를 심어 푸르게 하라고 산림청에 지시를 여러 번 했는데 매번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새마을운동본부가 한번 해보라고 지시해서 제가 거기서 십장 노릇을 하게 된 거죠.”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이 확정돼 6년만에 달성됐다. 무단으로 나무를 베면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산림법을 갖고 있는 나라는 아직도 한국밖에 없다. 그만큼 산림녹화에 대한 박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

    박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더니 산림녹화와 관련한 일화로 대신해버렸다. 평가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은 딱 한 문장이었다.

    “그런 것 저런 것을 통해서 박대통령은 가난의 한, 농촌 근대화와 치산녹화에 대한 집념이 대단히 강한 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문제이고 직접 모시던 분이다 보니 이회창 총재 식으로 ‘경제 긍정, 민주주의 부정’의 모범답안도 말하기가 어려웠을까.

    ―상암동에 대해서 한 가지 더 여쭤보겠습니다. 환경단체들이 퍼블릭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데 거기에 골프장이 꼭 필요합니까. 참 골프는 칩니까.

    “지금은 골프를 안 쳐요. 전남지사로 있을 때 골프 치는 ‘별’이 10명쯤 됐습니다. 장군들은 일요일에 임지를 못 떠나요. 공군 비행장 활주로 가운데에 들어선 나인 홀 골프장에서 비상 대기 겸 골프를 치는 거예요. 도지사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끔 골프 스폰서라도 해달라고 해서 기관장들과 함께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스폰서를 했습니다. 그때 배워 핸디캡이 18까지 내려갔습니다.

    골프를 그만둔 것은 가뭄이 들었을 때였어요. 한해 비상 동원령을 내리면 공무원들은 비상근무에 들어가고 휴일에도 골프를 칠 수 없습니다. 내가 스폰서 하는 날이라 집에 가 옷 갈아입고 티오프 시간에 맞추느라 바삐 가는데 송정리 다리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있더군요. 양수기를 자전거에 싣고 가던 농민이 어떤 자동차에 부딪혀 넘어졌어요. 그 장면을 보고 ‘오늘 한해 비상동원령을 내렸어야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후 다시 골프를 치면 성을 바꾸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때부터 안쳤습니다. 지금은 테니스를 치는데 골프보다 훨씬 시간이 덜 듭니다. 1주일에 한 번은 테니스를 합니다.

    그 때만 해도 골프장이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골프장이 100개를 훨씬 넘잖아요. 그런데도 상류층의 전유물처럼 돼있단 말이에요. 사회적인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서도 서울에 퍼블릭 코스의 골프장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개인택시 기사가 쉬는 날에 1만5000원 내고 퍼블릭 코스에서 채를 휘둘러보고 ‘골프라는 게 이런 거로구나. 나도 한번 쳐봤다. 별거 아니구나’고 말할 수 있게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된다고 봅니다. 박세리를 꿈꾸는 꿈나무들이 연습하는 데도 필요합니다.

    관선시장 때 경마장이 과천으로 옮겨가고 서울시가 경마장 터를 물려받았어요. 경마장 트랙 안이 퍼블릭 골프장입니다. 서민들이 이용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데 뚝섬 개발계획에 따라 퍼블릭 골프장이 없어집니다.

    뚝섬 골프장을 상암동으로 이전하는 겁니다. 디지털 미디어시티에는 MIT 미디어랩을 비롯해 IT 기업들이 상당수 들어올 예정입니다. 거기 근무하는 외국인들을 생각한다면 퍼블릭 코스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이 골프장은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내 만든 반환경적인 골프장과는 전혀 달라요. 쓰레기 매립장을 녹화하면서 자연 생태로 복원하는 골프장을 만듭니다. 쓰레기 매립지는 다른 것도 못해요. 앞으로도 20년 동안 불균등 침하되거든요.

    쓰레기 동산 두 개 중에서 하나는 완전히 초지공원으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노을공원이라 이름 붙여 전망공원으로 만들면서 5만8000평만 골프코스로 만드는 거예요. 105만평 중에서 5만8000평입니다. 미국의 큰 공원에는 골프 코스가 한 두 개씩 있잖아요. 체육진흥공단은 퍼블릭코스와 같은 대중골프장에만 써야 하는 돈을 가지고 있어요. 그 돈을 쓰는 거예요.”

    고건 시장의 모친이 최근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시장의 어머니는 3년 전 고시장이 화장 서명운동을 하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당신도 화장을 하겠다고 유언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서 시립 벽제 승화원(화장장)에서 승화했다. 유골은 용미리 추모의 집(납골당)에 모셨다.

    ―서초구민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원지동에 추모공원을 짓겠다고 확정했습니다. 현지 주민들의 반발을 달래야 하고 어려운 일이 많을 것같습니다.

    “1998년 7월1일 민선시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해 8월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수도권에 있는 모든 공원묘지가 산사태를 당했습니다. 시립묘지도 피해를 입었어요. 이제는 매장 대신에 화장으로 장례문화를 바꾸는 시민운동을 전개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간부회의 석상에서 “나는 화장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유언하면서 시민운동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 즈음 SK그룹 최종현 회장이 작고했어요.

    빈소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 SK 손길승 부회장에게 그 얘기를 하니까 이건희 회장이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손길승 부회장이 그렇지 않아도 최종현 회장도 화장을 하기로 했다며 SK가 사회 환원 차원에서 일정한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고 그러더군요. 얼마 후 전문가와 시민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장묘개혁 국민협의회를 발족하고 부지 선정 작업을 했습니다. 13 군데 후보를 심사해 그중 두 군데를 추천했습니다.

    승화원과 추모의 집은 동서남북 권역별로 네 군데에 만들어야 합니다. 서부 권역 벽제와 대칭 방향에 있는 강남쪽, 동남 권역에 우선 순위를 두다보니 원지동이 1순위가 된 거죠. 주변지역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입는 인센티브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하려고 합니다.

    1998년에는 서울시의 화장률이 30%에 불과했어요. 지금은 50%를 넘었습니다. 화장 시설과 추모 시설이 부족합니다. 이대로 4, 5년 지나면 장묘 대란이 일어납니다. 시청에 출입하는 어느 기자가 친척 상가에 다녀온 얘기를 하는데 경상북도 산골 어느 공원묘지에 앉히는데 1500만원 들었다는 겁니다. 서민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이건 반드시 해야 될 일입니다. 추모공원은 옛날 화장장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완전 무연무취입니다. 세 번 연소하고 두 번 집진해요. 그러니까 연기가 없고 냄새도 없어요. 옛날 화장터 자꾸 생각하니까 반대하는 거죠. 눈으로 보여주고 설득하면 대화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002년 월드컵이 내년으로 다가왔는데요. 준비는 잘 돼가고 있습니까?

    “하드웨어는 잘 돼가고 있습니다. 상암 월드컵스타디움은 축구 전용구장으로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인 6만4600석입니다. 공정률이 90%를 넘어 10월에 준공합니다. 세계에서 최초로 월드컵 경기장 바로 밑에 지하철 역사가 있습니다. 이름도 월드컵 역이죠. 이미 개통됐습니다. 6개 방향에서 접근하는 도로도 확충 정비하고 있습니다. 인프라 면에서는 조금도 손색이 없어요. 또 올 11월이면 월드컵 경기장 정면 한강에 세계에서 제일 높은 202m짜리 분수가 솟아오릅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예요. 한일 두 나라가 공동개최하기 때문에 친절하고 질서 잘 지키기로 유명한 일본 국민하고 우리 국민하고 전세계인들이 와서 한 눈으로 비교 평가한다고요. 그래서 시민월드컵 친절 질서 청결 운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습니다.”

    ―서울시 수돗물은 안심하고 마셔도 됩니까. 최근 환경부에서 전국 7곳의 정수장과 가정에서 뇌수막염을 유발할 수 있는 엔테로 바이러스와 아데노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시는 서울대 김상종 교수를 고발하기도 했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안심하고 마셔도 돼요. 저는 집에서 페트 병에 상수도 물을 담아 마십니다. 수질을 끌어올리자면 수계 단위로 공동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주창해 한강수계관리위원회를 만들었어요. 서울·경기· 인천·충북·강원 5개 시도 지사와 환경부 장관이 포함되죠. 이 위원회에서 하류의 수혜자도 부담을 하는 ‘물 부담금’을 만들었어요. 그 돈을 상류 수질 정화 시설 보수에 다 투입해요. 공동 부담, 공동 노력, 공동 감시를 합니다.

    조금씩 개선된 수치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를 흐르는 한강의 수질도 분석해보면 전보다 개선됐어요. 원수(愿水)가 좋아졌다는 것은 생태적으로 느낄 수 있잖아요. 몇 년 전까지는 18종으로 줄었던 어류가 지금은 56종까지 늘었어요. 거의 원상으로 회복된 거예요. 은어도 찾아오고 숭어 쏘가리도 노닐고 학꽁치까지 올라와요.’

    “정수의 수질을 높이기 위해 활성탄을 많이 씁니다. 또 10여 개 항목에 불과하던 검사항목을 105개까지 늘렸어요. 내년까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 수치인 120여 항목까지 늘리려고 합니다. 미국 환경청 EPA가 인정하는 세포배양법에 의해서 18개월 동안 검사한 결과 한강의 원수에서는 소량의 바이러스가 나왔어요. 그러나 소독하고 살균한 상수도 정수에서는 바이러스가 없었어요.

    김상종 교수는 세포배양법이 아닌 유전자 검색법에 의해 집안 상수도에서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상수도 담당자들이 고발한거죠. 유전자 검색법은 미국에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고발을 취하시켰어요. 김상종 교수도 몇 차례 만났어요. 환경단체가 참여해 3자가 공동조사를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서울시는 검사만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에요. 만약 바이러스가 나온다고 하면 시민들한테 이런 게 나왔으니 끓여마셔야 한다고 말할 거예요. 하지만 아직은 나오지 않았어요.”

    ―싸울 게 아닙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합쳐져서 수돗물의 질이 더 좋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건설교통부에서 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는데 가뭄을 겪고 나니까 댐건설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의 목소리가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한국은 몬순 기후라서 물을 받아놓을 그릇이 많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팔당호로는 2006년경부터 모자란다는 말이 나옵니다. 동강댐 건설은 환경론자들의 반대에 부딪혀서 취소됐는데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동강댐을 중단하기 전에 대안을 마련했어야 옳다고 봐요. 환경 피해가 많은 대규모 댐이 아니더라도 여러 개의 소규모 댐으로 건설한다든지, 뭔가 대안을 병행해서 검토했어야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하는데 가뭄이 드니까 반짝하다가 비오면 쏙 들어가죠.”

    ―강남구 청담·도곡지구 아파트 등에서 재건축 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저밀도를 고밀도로 재건축 하면 아파트 소유자, 건설업자에게는 이익이지만 교통·환경 문제가 생기는데요. 유서깊은 서구의 도시에는 수백년 지난 건물이 많은데 우리는 20년마다 아파트를 헐고 재건축해요.

    “저도 공감해요. 지난 30년 동안 고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택이 엄청나게 모자라니까 주택문제를 과밀개발로 해결했습니다. 용적률을 비정상적으로 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업지역에 들어서는 주상복합아파트는 용적률이 1000%까지 됩니다.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상복합아파트도 주거용 용적률을 적용하도록 바꿨어요. 일반 아파트도 용적률은 250%로 묶었습니다. 전에는 300∼400%였습니다.

    연탄 땔 때 지은 저밀도 노후 아파트는 도저히 그대로 둘 수가 없어요. 재건축이 불가피해요. 13∼18평형을 재건축하면서 개발이익이 많이 남는 큰 평형만 짓지 않도록 작은 평형 30%를 채우도록 의무화했지요. 고밀도는 아니고 중밀도로 했어요. 재건축을 일시에 하면 전세대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시기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에 2000만 인구가 몰려 사는데 이 정도로 교통 소통이 되는 건 지하철 덕분입니다. 어려서 박정희 대통령이 1호선 지하철 구간을 시승하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나는데 이제 8호선까지 완공됐지요. 9호선 건설 계획은 어떻습니까.

    “1호선부터 8호선까지는 우선 교통난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 있는 지하철 건설을 못했어요. 9호선은 김포에서부터 고속버스터미널을 거쳐 강남까지 역마다 유치선을 만들어 완행은 비켜서 있고 급행은 그냥 지나가도록 준 급행노선을 만듭니다. 제대로 하려면 3개 노선을 만들어 하나는 왕복이고 하나는 급행으로 가고 오게 만들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것까지는 못해요. 앞으로 광역전철은 그렇게 건설해야 한다고 봐요. 신분당선은 가능할 겁니다.

    1989년 서울시 등록 자동차 대수가 100만대를 넘어섰습니다. 지금은 240만입니다. 100만대를 넘는 시점에 제가 국무회의에서 이대로 놔둬서는 대도시 교통이 마비될 터니 서울에 2기 지하철을 만들자고 제안했지요. 1기 지하철은 국고에서 하나도 안 도와줬는데 2기 지하철 때는 25% 국고보조를 받았지요. 어느 대도시나 순환도로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개를 만들기로 하고 내부순환도로는 서울시가, 외곽순환고속도로는 중앙정부가 만들기로 했습니다. 외곽순환고속도로는 길이가 길지만 대부분 땅값이 싼 그린벨트 지역으로 돌게 돼있어요. 40km내부순환 고속도로 건설은 관선시장 때 시작해 민선시장 때 완공했습니다. 노선을 정하려고 남산에 다섯 번정도 올라갔어요.

    대도시 내부 고속도로는 엄청난 토지보상비 때문에 잘못하면 10조원으로도 모자라요. 서울시내 도로는 건설비용의 95%가 토지보상비입니다. 고민하다가 하천을 이용할 생각을 했습니다. 성산대교에서 홍제천으로 가고 정릉에서는 터널을 뚫고 정릉천 안암천 중랑천으로 이어지면 한강 변까지 나간단 말입니다. 1990년에 착공했어요. 1조1천억원 밖에 안들었어요. 하천에 기둥 세워 그 위에 고가 고속도로를 만드니 땅 값이 거의 안들어갔어요. 땅을 사들여 건설했더라면 10조원은 들어갔을 거예요. 도쿄는 순환도로가 없어요. 강북에 하나 만들었으니 강남 순환 도시 고속도로도 곧 착공할 겁니다.

    ―부패척결 운동을 꾸준히 벌였는데 민원부서의 돈봉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십니까. 이 자리에서 고발하는 건 아닙니다만 사업하는 친구한테 들었는데 아직도 돈 달라고 요구하는 서울시 공무원이 있다고 합니다.

    “효과를 내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고…. 부패를 원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행정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터넷 온라인 민원처리 공개시스템을 만들어 서울시청이나 구청에 인허가 신청을 할 때에는 신청 하자마자 그것이 인터넷에 공개 됩니다. 이튿날 두드려보면 계장이 결재해 과장 책상 위에 가있다, 다음날에는 국장 결재 났으니까 와서 찾아가라, 이런 식이지요. 민원처리의 과정과 절차가 리얼타임으로 인터넷에 공개되기 때문에 옛날처럼 서류를 책상 서랍 속에 넣어놓고 민원인이 찾아오기를 기다릴 수 없어요. 민원인이 급행료 줄 이유가 없습니다.”

    “갤럽을 시켜 조사를 해봤더니 민원처리 인터넷 온라인 공개시스템은 상당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위생 건축 소방 세무 등의 5대 분야에서 돈을 줬다는 사람의 비율이 적게는 13∼38%에서 1년만에 7.9%, 2년 후에는 6.7%로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특수한 경우 같은데 주로 사업소 계통에 아직 비리가 남아 있습니다. 공사 감독이나 준공, 대금 지불에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남아있는 것이죠. 대금 지불은 그날 신청하면 그날 주도록 했습니다. 이걸 각 실·국·사업소별로 전부 체크해요. 곧 좋아질 겁니다.”

    혜화동 서울시장 공관에는 지자이렴(智者利廉)이라는 글씨가 걸려있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율기(律己)편에 나오는 글귀다. ‘율기’란 자기를 규율한다는 의미다. 군자까지는 안 되더라도 현명한 사람은 청렴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이롭게 된다는 의미다. 돈 몇 푼 받으면 언젠가는 밝혀져 패가망신하니 절대 불리하고 청렴한 것이 이롭다는 것이다. 다산이 쓴 것을 고시장이 좌우명처럼 공직자들한테 강조한다. 그는 청렴에 관한 고사로 두 가지 예를 든다. 하나는 팔마비(八馬碑)고 다른 하나는 지자이렴이다.

    “전남도지사를 할 때 도지사 판공비가 참 적었어요. 그것만 가지고는 기자들 밥도 제대로 못사고 경조금도 제대로 못줘요. 지사로 내려갔더니 가친이 친척들을 불러모아놓고 매월 얼마씩 거두어 판공비하라며 나한테 보내주는 거예요. 그걸로 급한데 썼습니다.

    그 무렵 순천시에 있는 팔마비를 보았습니다. 승주부사 하던 사람이 아주 청렴하고 선정을 베풀었어요. 한양으로 영전돼 가면서 말 일곱 마리를 받아 가족들이 타고 서울에 갑니다. 웬만한 사람이면 말을 그대로 가졌을텐데 그는 말을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여덟 마리를 보내요. 오다가 새끼를 한 마리 낳은 것입니다. 그래서 팔마비예요.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자기는 고위 공무원이라 봉급도 많고 명예도 있으니 청렴한 것이 이익이겠지만 하급 공무원은 뭘 바라고 청렴할 것이냐고 반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돈 몇 푼 받아가지고 늘 불안하고 스트레스 받고 건강 나빠지고 언젠가는 밝혀져 처벌받으니 지자이렴을 지키라는 이야기지요. 어떠한 정치적인 압력이나 이권청탁을 받더라도 내가 방파제 노릇을 할테니 여러분도 돈 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복마전’이라는 얘기를 없애버리자고 약속했어요.”

    ―다른 부처 공무원이 구속되면 그렇지 않은데 서울시 공무원이 구속되면 꼭 신문 제목이 습관처럼 서울시 복마전으로 나옵니다. 서울시 공무원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것같아요.

    “강원룡 목사께 들었는데 복마전이라는 말이 총독부 시절부터 있었대요. 경성부(京城府)는 복마전이라는 것이지요. 나는 지자이렴을 지킨 분들한테는 인사로 보상해줍니다. 청렴한 사람을 승진시키는 원칙을 지킵니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라는 말은 맞지만 거꾸로 상정하불탁(上淨下不濁)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상정은 하불탁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못됩니다. 솔선수범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민선시장으로 취임해 시작한 게 투명행정 시스템입니다.”

    ―한보사건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슬아슬 하지 않습니까. 몇 푼이라도 받았으면 그때 가는 것 아닙니까.

    “내무부 지방국장 시절 적십자 회비를 우리 산하 조직이 징수해서 적십자사에 보냈어요. 대한적십자사에 서영훈 사무총장이 고맙다고 표를 하나 줬어요. 표를 돌려줬더니 ‘이거 별거 아닌데…’ 하며 미안해하더라구요. 그래서 ‘죄송합니다. 제 나름대로 공직 철학이 있습니다. 그걸 지키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분이 나를 어디다 소개할 때는 지금도 그 얘기를 합니다. 얼마전 그 표가 무슨 표였냐고 물었더니 양복표였데요. 구두표인 줄 알고 반려했는데 양복표라고 그랬으면 받았을텐데… 하고 농담을 했습니다. 나는 야당 국회의원 아들로서 관리를 시작하지 않았어요. 이건 자기 생존의 법칙 비슷한 걸로 봐도 될 거예요. 부친이 윤보선 대통령 후보가 이끄는 강경 야당의 사무총장이었거든요. 이러다보니 내가 고시 합격한 수습 사무관인데 수습을 안 떼어줘요. 1년 반이면 보직을 줘야 되는데 2년이 되어도 안줬습니다.

    고시장의 부친 고형곤 박사는 대학총장을 역임한 한국 불교철학계의 석학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서울대 철학과 사제이기도 하다. 서울대 교수를 하다 윤보선씨가 이끄는 민정당에 참여해 국회의원,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등을 역임했다. 고박사는 올해 100세서 네 살 모자란 96세이지만 요가를 하고 틈틈이 독일어 원서를 읽을 만큼 정정하다.

    ―박정희 대통령도 강경 야당 사무총장의 자제라는 걸 알았을까요.

    “끝까지 몰랐을 거예요. 돌아가실 때까지 나도 그런 얘기를 안했으니까. 제가 청와대 정무 2수석을 할 때 정수직업훈련원은 기능올림픽의 메달박스였습니다. 애로사항이 뭐냐고 하니까 애들이 점심 먹고 잠깐 운동할 수 있는 운동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뒷동산이 한일합섬 김한수씨 땅인데 운동장으로 쓴다고 그러면 기부할 의사가 있다고 그래요. 그래서 대통령 결재를 받고 김한수씨에게 고맙다고 전화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는데 15분만에 헐레벌떡 달려왔어요. 그리고는 땅을 받아줘서 고맙다고 돈봉투를 줘요. 돈봉투가 왔다갔다 하다가 내가 언성을 높이게 됐습니다. 바깥에 다 들렸지요.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나중에 보니 뭔가가 있었던 것같아요.

    그러고 한 1주일 후 어디서 리셉션이 있었는데 대각선 방향에 김한수가 있더군요. 큰 홀인데 눈이 마주쳐 손이나 잡아주려고 열심히 사람들을 헤집고 끝까지 갔는데 피했어요. 그 때부터 고민한 것이 거절의 수사학입니다. 청수무어(淸水無魚), 맑은 물에 고기가 없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별별 수사학을 다 연구했어요. 완전히 뇌물조가 있고 인사조가 있습니다. 명절 때 떡값이라고 하지만 순수한 떡값이 어디 있어요. 성격이 혼재되어 있는 거지. 그래도 인사조로 오는 것에 대해서는 뜻만 고맙게 받습니다만 제가 지금 어려운 게 없으니 나중에 술 사달라고 연락하죠.”

    거절의 수사학을 말하다가 한보사건과 관련해서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비화가 튀어 나왔다.

    “정태수씨가 손을 주머니에 넣고 뭘 꺼내려고 하길래 호통을 쳤지요. ‘어디서 그따위 버릇이냐. 날 어떻게 보느냐.’, 사람이 능글능글하대요. 얼굴은 벌개지면서도 입은 웃어요. 그렇게 능글능글 하더라고….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해봤으면…. 아주 단호하게 거절한 뒤 청와대 수석으로부터 당시 주무국장인 김학재 도시계획국장을 바꾸라는 압력이 들어왔습니다. 검찰 간부로부터는 김학재 국장을 바꾸지 않으면 수사를 벌이겠다는 압력이 들어왔습니다. 검찰 간부한테 그랬어요. 그 사람이 도시계획국장으로 온 지 석 달밖에 안됐는데 그 사람은 내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고 그 사람이 잘못한 게 있으면 내 잘못이니까 나를 조사하라고 했지요. 그로부터 두 달 후에 개각이 있고 내가 그만뒀어요. 도시계획국장을 바꾸라 해서 안 바꿨더니 시장을 바꾼 거지요. 그 때 이임식에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약속을 잘 지켜줬다, 앞으로도 지켜주기 바란다.’ 그게 내 이임사의 요지였습니다. ‘내가 방파제 노릇을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막았다.’ 수서라고 딱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이 돈 받고 건설업자를 봐주려는데 서울시장이 말을 듣지 않아 비서실과 검찰을 동원해 압력을 넣은 것이 수서사건의 진상인 셈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역대 정권에서 장관을 세 번 했고 국무총리, 국회의원, 민선시장, 관선시장을 역임했습니다. 역대 정권이 행정 능력을 높이 산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군사정권이고 민간정권이고 가리지 않았다는 비난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어느 특정 정권에 충성했다면 다른 정권에서는 나를 안 썼을 거예요. 나는 정권에 충성한 일은 없고 전문 행정가로서 나에게 일이 맡겨지면 국민을 위해서 봉사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부든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징발해가는 거예요. 징발 당해 그 문제 해결하고 나면 할 일 다 했으니 나가라 하고 퇴출이지요. 민과 관을 나처럼 많이 왕복한 사람이 없어요. 5회 왕복했어요. 1980년까지는 직업관료였고 5·17비상계엄 확대 조치에 찬성할 수 없어 사표를 내던지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왔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관에 있었던 기간은 8년이고 12년은 민에 있었어요. 민에 있었던 기간이 더 길죠. 오히려 민과 관 사이를 왕복했다고 표현할 수 있어요. 민과 관을 왕복해보니까 자기가 있던 자리를 민에 와서 되돌아볼 수가 있고 그 다음에 관에 들어가서 그걸 다시 고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그는 이 대목에서 서울시장 선거 때 한나라당 최병렬 후보로부터 받았던 공격을 다시 해명하면서 5·17 비상계엄 확대와 관련한 비화를 일부 털어놓았다.

    “5·17 때 도망 운운하는 얘기는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서슬이 시퍼런 군부 하에서 사표를 내던지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나오는데 어디로 도망을 가요. 5·17을 앞두고 최대통령은 석유 외교하러 중동에 갔어요. 그 때 시위가 굉장히 악화되면서 안개정국 얘기가 나왔어요. ‘투명하게 밝혀라.’ ‘비상계엄 해제해라.’ ‘전두환 신현확 물러가라.’ 이런 주장이었습니다. 그전에 수석회의에서 비서실장이 전두환 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 겸임 얘기를 해요.

    중앙정보부장은 법적으로 겸임이 불가한 자리입니다. 나는 그건 안된다고 반대했어요. 그것을 수석회의가 무엇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의견만 얘기했어요. 결국 나중에 발령이 나 겸직이 됐어요. 이런 상황에서 정무수석 비서관으로서는 대통령이 돌아오시면 정국 해법에 대해서 건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개정국 얘기가 나온 건 과도기간을 너무 길게 잡았기 때문이지요. 과도기간을 단축하고 개각을 하자는 내용을 분명하게 담았어요.

    정치적 해결방안에 대한 건의서를 만들어 비서실장한테 올렸더니 비서실장이 전달하겠다고 했습니다. 건의를 올렸으니까 뭔가 하회가 있겠지 하고 기다렸어요. 시차 때문에 주무시는 가보다 생각했지요. 잠깐 다녀오려고 청량리 부모님 댁에 갔는데 중앙일보 청와대 출입기자 성병욱씨가 나한테 전화를 했어요. 그 때 학생들은 이틀 동안 데모를 안하고 이화여대에 총학생회장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지요. 성기자가 이화여대에 군을 투입하라고 지시했느냐고 물었어요.

    국보위 참여 권유 거절해

    그 전화를 받고 야 이건 일이 났구나 하고 헐레벌떡 들어왔어요. 현관으로 올라가는데 보니까 벌써 별을 단 차들이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비서실장실로 갔더니 이미 수석들을 소집했더군요. 조금 기다리니까 비서실장이 자세한 얘기는 안하고 군부에서 건의를 해 비상계엄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하면서 국가보위상임위원회 운운하는 건 유보시켰다고 하더군요.

    완전히 군정으로 가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건의한 것하고 전혀 반대 방향이란 말이야. 명색이 정무수석인데 사전에 한마디라도 상의를 해야지요. 가슴에서 불끈하고 불덩이가 치솟아 올라오는데 그 안건을 의결하는 국무회의에 나 보고 가보라 그래요. 그 때까지는 비서관이 연락관으로 갔는데 이건 중요한 안건이니까 수석이 가라고 해요. 화가 나서 ‘내가 왜 그런데 가냐’고 해놓고서 신관에 있던 내 방으로 내려와 서류 챙기고 사표 써 올려보냈습니다. 그래도 공무원이라 국무회의에 가라던 생각이 났습니다. 참 쩨쩨하지. 법무비서관 김유후씨가 연락이 돼서 오늘 비상 국무회의에 임석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고 장위동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보나마나 외부에서 연락오면 자꾸 권유할테니까 ‘나는 없다’ 그러고 전화 안받고 집에 있었죠.

    광주사태 때 김수환 추기경이 내가 아직도 수석비서관으로 있는줄 알고 전화를 했어요. 같이 전화에다 대고 울먹이면서 얘기를 했어요. 신문도 사전 검열받아 내가 사표 냈다는 게 보도되지 않고 정보원들이 만든 정보가 판을 칩니다. 고수석이 김대중씨한테 고급정보를 제공하다가 연행 됐다는 정보가 유포되는 거예요. 그건 아니거든. 나는 떳떳하게 내 발로 걸어나온 사람입니다.

    각 신문사 정치부에 전부 전화를 해 ‘나 여기 건재하다. 내가 누구한테 고등정보 주다가 연행됐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다. 나는 내 의사에 따라 사표내놓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위에서 회유하려고 사람 몇을 보냅디다. 내 밑에 있던 김태호(현 의원)씨를 보냈어요. 다음에는 총리 행정실장하던 서석준씨를 보냈지요. 서씨는 내가 정무2수석일 때 경제수석으로 친했지요. 서울대 정치과 동기생이죠. 2층에서 수염도 안깎고 책을 보고 있었는데 와서 보고 웃고 얘기를 하는데 어 하면 아 하고 다 아는 처지지요.

    가보라 그래서 왔다며 어떡할 것이냐고 묻길래 ‘나는 찬성할 수 없어 사표 내고 내 발로 걸어나왔는데 빨리 사표 수리해달라 그래’라고 말했지요. 이 친구가 나름대로 권유 좀 하려다가 안되겠으니까 갔습니다. 그러고 최대통령한테서 직접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최대통령이 할 얘기는 뻔하지요. ‘계속 나와서 도와달라.’ 제가 이 상황에서는 도와드릴 일이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그 양반 특이한 스타일이 마음에 안들면 결정을 하지 않고 ‘음’ 하고 그냥 대답이 없어요. 그래서 그때 해답을 내가 마련해가지고 갔어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 하겠습니다. 사표 수리해주시고 국토개발연구원에 연구하는 방이나 하나 마련해주십시오’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연구원에 고문이라는 자리가 나 때문에 생겼습니다. 거기서 국토정책, 주택정책에 관한 책을 섭렵하고 좋은 기간을 몇 달 보냈지요. 얼마 있다가 고명승(전 보안사령관)씨가 찾아왔습니다. 요주의 대상에서 회유 대상으로 바뀐 것이지요. 그 때 모든 신문이 국보위가 잘한다고 썼어요. 어떤 신문이고 마찬가지 였어요. 세종로에 전부 깔아놓고 보세요. 나는 나름대로 사표 내놓고 고민할 때인데 신문에는 잘한다는 소리만 나왔어요.

    고명승씨는 내가 청와대 정무 2수석일 때 경호실 처장이었어요. 경호실장 차장 차장보 그 다음에 처장이지요. 나한테 와서 지금 한참 개혁이 돼가니까 국보위 상임위에 참여해야 될 것 아니냐. 누구, 누구, 누구, 당신, 이런 사람들이 국보위 상임위원회를 이끌어가야 될 것 아니냐고 그래요. 회유대상으로 권유를 받은 거지요. ‘지금은 내가 도울 일이 없소. 나는 행정밖에 모르는 사람이요. 나는 정치를 몰라요’ 이렇게 사양했습니다. 나중에 헌정체제로 넘어가면서 김경원 비서실장이 만나자고 그러더군요. ‘얘기를 듣자니 당신은 행정을 한다고 그랬지 않느냐. 헌정체제로 넘어갔으니 행정을 도와달라’고 해서 교통부 장관을 맡았습니다. 왜 사표를 내고 나간 사람이 교통부장관을 했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내가 재야에 운동 할 사람은 못되고 외국에 유학이나 떠나든지 했어야 할 텐데 그 길은 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말하자면 헌정체제니까 전문 행정가로 참여한 것이지요. 그에 대해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면 나는 그렇게 얘기가 돼요. 도망갔다는 것은 무언가 무서워서 도망갔다는 얘기인데, 그때는 군이 무서우면 도망을 못가야 맞습니다. 그렇잖아요? 그건 도망이 아닙니다. 시국관의 차이지요. 나는 찬성할 수 없고 그 일에 동참할 수 없으니까 발을 뺀 겁니다.”

    ―시장 선거에 재출마하실 의사는 없으십니까?

    “국무총리 그만두고 나서 몸 담았던 대학교에 석좌교수로 가기로 해 강의 원고 준비하다가 서울시 민선시장 후보로 영입됐습니다. 1989, 1990년 시장을 하면서 벌여놓은 일이 많았습니다. 2기 지하철 5·6·7·8호선 160km와 내부순환고속도로 착공 등입니다. 이런 거 저런 거 그때 못한 일이 있습니다. 민선시장으로 돌아가서 그 일을 마무리하면 참 보람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서울시장에 출마했습니다. 지금 민선 시장 3년을 하면서 그 일을 대충 마무리 해갑니다. 제가 해야 할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재출마 안 합니다.”

    ―서울시장 재출마 안한다고 박아도 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취소하면 안 쓰겠습니다.

    “안 나갑니다. 그대로 써주세요.”

    인터뷰를 하기 전에 정치와 관련한 질문은 될수록 삼가기로 신사협정을 했다. 그래도 항간에 관심이 많은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어떤 것은 물었다는 것조차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대단한 질문도 아니고 소주집에서 흔히 나오는 대권후보로서의 경쟁력과 서울시장 이후의 행로에 관한 것이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관련한 이야기를 이리저리 돌려서 거듭 물었지만 아주 짧게 말하고 쓰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신사협정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떤 경우가 오더라도 지역전쟁의 선봉장이 될 생각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지역전쟁의 선거 양상으로 갈 것이 틀림없다는 전제 하에서는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진퇴를 결정할 때 나름대로 내 철학과 소신에 따랐습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최근에 비즈니스 위크지에 ‘아시아 50인’으로 선정됐고 싱가포르 리콴유 전 수상에 이어 세계투명성기구가 주는 세계 청렴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을 지낸 분들 이상으로 영예를 누리시는데요. 기분이 좋겠습니다.

    “그런 건 아니고…. 지난 3년 동안 나와 시청 공무원들이 정말 새로운 행정 혁신 시스템, 투명한 행정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것에 대해 국제적으로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우리 서울 시민들의 보람이고 시청 전 공무원들의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일산에 삽니다. 지난 겨울 폭설이 연거푸 왔을 때 고양시 쪽에는 눈이 그대로 있고 서울 시계로 들어서니까 다 치웠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시가 조금 다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면찬같아서 쑥쓰럽습니다만…. 폭설이 오던 날 서울시에서 지하철 공짜로 타라고 했지 않습니까. 논설위원실에서 어떤 위원은 서울 지하철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데 괜히 인기 정책 펴는 것 아니냐고 하고 어떤 분은 도로교통이 막혀 지하철로 유도하는 것을 나쁘게 볼 필요가 있느냐 하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서울에 눈 오는 날은 시청 공무원들이 밤 새는 날입니다. 강화도 관측소에 CCTV를 집결해놨어요. 강화도에 눈이 오면 두 시간 후 서울에 눈이 옵니다.”

    ―동쪽에서도 올 수 있잖아요.

    “아니에요. 절대로 동쪽에서 오지 않고 서쪽에서부터 옵니다. 태백산맥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기류가 이렇게 돼있어요. 과거에는 장비가 부족했어요. 관선시장 할 때 서울시 전체에 유니목이라는 제설차가 두 대 있었어요. 샘플로 보여주는 것 뿐이지 실용성이 없었어요. 지금은 구청에 제설차가 두 대씩 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 외부에서 빌려옵니다. 눈오는 며칠을 위해 차를 365일 보유하는 것은 낭비입니다. 뒷골목 내 집 앞은 각자 해결하고 4차선 이상 간선도로는 다 치우겠다는 것이 목표예요.

    위성도시에서 서울 시계를 넘어오는 분들은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거에요. 공짜 지하철을 시행한 날은 눈이 엄청나게 왔어요. 강설이 시간당 5cm정도였어요.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우리 제설 능력으로는 치우질 못해요. 눈이 녹고 얼면 층이 되거든요. 아무리 치워도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쏟아졌어요. 그래서 시민들이 차를 놓고 갈 수 있도록 서울시가 관할하는 노상 주차장은 주차료를 받지 않고 두 지하철공사 사장, 인천시장, 철도청장과 협의해 지하철 요금을 무료로 했습니다. 그날 결손액이 한 2억원 됩니다. 차를 안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전부 지하철로 몰리면 표 사려고 장사진을 서고 표를 넣어야 나가니까 얼마나 혼잡하겠습니까. 유리창 깨지고 난리 나면 유리창 값만 해도 2억원은 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결과는 흑자가 됐어요. 그날 차를 놓고 간 사람들이 이튿날 아침에 전부 지하철로 출근했어요. 수입이 5억원 늘었어요. 그러니까 2억원 손해보고 이튿날 3억원 더 번 거예요. 예측한 것은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그랬어요. 이런 것이 바로 가슴이 통하는 행정이 아니겠습니까.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시민들의 고충을 시가 같이 느끼는 행정 말입니다.”

    오후 7시에 시작한 식사를 겸한 인터뷰 자리가 밤 11시경 끝났다. 그는 영업시간을 넘겨 자리를 지켜준 종업원들에게 2만원씩 팁을 주었다.

    “판공비가 모자라서 많이는 못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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