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S-DJ 연합은 늦었다” “지방선거는 호남 빼고 다 이긴다” 서대표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김대중 정권이 반신불수 상태에 빠졌으며, 정계개편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대표는 한때 앙숙이었던 이회창 후보와 극적으로 화해한 비화와, 전당대회에서 민정계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K의원의 실체도 털어놓았다.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하신 소감부터 말씀해주시죠.
“6·13 지방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한나라당 당원들의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전당대회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막중한 책임을 느낍니다. 앞으로 당의 면모를 일신하여 정치개혁을 바라는 시대의 요구와 부패한 정권을 심판하라는 국민의 바람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제가 경선과정에서 ‘장수론’을 제기했어요. 대의원들에게 ‘양대선거를 잘 이끌어줄 용감한 장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그게 적중한 것 같아요. 4월4일 서울시장을 추대하는 행사에 가서 이번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박수가 엄청나게 쏟아지더라고요. 그때 감이 팍 왔습니다. 전당대회 하는 날은 제가 넥타이까지 풀고 와이셔츠 바람으로 호소했잖아요. 제가 여섯 번째로 연설했는데, 연단에서 내려오니까 다들 ‘확실하다’고 그러는 거예요. 대의원들이 ‘양대선거에서 이기려면 서청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경선의 숨은 공로자 K의원
―이회창 후보가 서대표를 지원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글쎄요. 그랬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어요. 선거 며칠 전에 K의원이 50여명의 의원들한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서의원이 돼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정말 한사람도 거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미래연대도 처음에는 저를 0순위로 찍었다고 하고….”
―K의원에게 술 한잔 크게 사야겠습니다.
“아까 의원회관으로 찾아갔어요. 술을 사야 되는데 워낙 바빠서 대신 밥을 샀어요. ‘의원님 고맙습니다’ 하면서.”
―서대표와 이후보가 가까워진 계기가 무엇입니까. 1997년 신한국당 경선 때는 서대표가 정발협 간사장을 맡았다가 이수성 고문을 지지했고, ‘YS 인형’ 사건이 터지자 이회창 후보와 감정적으로 부딪친 일까지 있었는데….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때문에 한나라당이 어려웠잖아요. 그때 이총재가 나보고 ‘서의원이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줘야겠소’ 하더라고요. 그런데 중앙당 선거에 집중하다 보니 내 독이 깨지는 걸 몰랐어.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잖아요. 초반에 표차가 벌어져서 집에 가서 술 한잔 마시고 잤는데, 당에서 나오라는 거야. 밤 12시30분쯤 역전됐거든.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이총재가 대단한 거야. 총재가 당사에서 당선자 이름 옆에 꽃을 달아주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뭐가 좋아서 꽃을 다느냐. 지금 본부장이 떨어질 판이니까 좀더 지켜보자’ 그랬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내가 상대 후보를 이기니까 꽃을 달기 시작했답니다. 다음날 총재가 조찬을 함께 하면서 ‘고생하셨습니다’ 하는데, 그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더라고요. 그래서 ‘총재님 제가 대통령이 되시도록 돕겠습니다’라고 했죠.”
서대표의 정치적 뿌리는 상도동이다. 그는 1980년대에 민추협에서 활동했고, 김영삼 총재 비서실장을 거친 뒤 문민정부에서 정무장관을 지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한나라당내 민주계 인사의 일부가 이회창 후보 쪽으로 기울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면서도 서대표에 대해서는 애정을 보여왔다. 김 전대통령은 서대표가 전당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자 곧바로 축하전화를 걸었고, 바로 다음날 부부동반 식사모임을 주선했다. 이런 돈독한 관계 때문에 한나라당에서는 서대표가 상도동과 이회창 후보의 관계를 복원시키는 가교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 전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
“옛날 3당통합 얘기도 하고, 민추협 얘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가 1등을 해서 그런지 김 전대통령이 기뻐하시더라고요. 마지막에 제가 ‘밖에서 기다리는 기자들에게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했더니, 김 전대통령이 ‘한나라당 잘 되겠네’ 하시는 거예요. 그랬더니 손명순 여사가 옆에서 ‘그걸로 발표해요’ 하셨고요. 그래서 김 전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얘기를 공개한 거죠.”
―김 전대통령은 아직 이회창 후보에 대한 감정이 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김 전대통령이 어떻게 움직일 것으로 전망합니까.
“글쎄요. 대표로서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모든 지략을 짜내야겠죠. 어떻게든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으니까요. 그건 김 전대통령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아직 껄끄러운 부분이 남아있지만, 앞으로 소상하게 말씀드리고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김 전대통령이 애정을 갖고 있으니까 잘 될 것으로 봅니다.”
―김 전대통령은 올 대선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수차례나 공언했습니다. 서대표는 그 사람이 누구라고 보십니까.
“지방선거 전에는 절대로 말씀 안 하신다고 했으니까 기다려 봐야죠. 저는 당연히 ‘한나라당을 지지해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릴 거고요.”
-박종웅 의원의 부산시장 출마 여부를 놓고 벌어졌던 상황을 돌이켜보면, 김 전대통령이 노무현 후보에게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간단치 않아요. 속사정은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르거든요. 제가 YS의 의중은 누구보다 잘 알아요.”
서대표를 인터뷰한 5월16일 아침, 정치권에서는 예민한 ‘사건’이 터졌다. 자민련 함석재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난 것이다. 함의원의 지역구는 공교롭게도 서대표의 고향인 충남 천안이다.
함의원은 “자민련의 집권 가능성이 없다”는 명분을 제시했지만, 정치권에서는 그가 조만간 한나라당에 입당할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자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해도 너무 한다”며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나섰다. 함의원의 탈당은 일단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관계를 급속도로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6·13지방선거에서는 두 당이 ‘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민련이 본격적인 붕괴 국면에 들어섰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도 신문 보고 알았어요. 예전에는 함의원과 좋은 관계였는데 요즘에는 통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양반이 왜 탈당했는지, 앞으로 진로가 어떻게 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말하기가 어렵네요.”
―김종필 총재는 수차례에 걸쳐 한나라당에 협조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회창 총재는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거절했습니다. 앞으로 양당의 관계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임동원 장관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두 당이 연대한 적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민생문제나 법안 등을 중심으로 자민련과의 정책공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민주당이 대전·충청지역에 후보자를 내지 않으면서 자민련이 그쪽으로 가까워지는 것 같지만, 지방선거가 끝나면 다시 논의가 오갈 것으로 봅니다.”
―자민련에서 앞으로 추가 탈당자가 나올 것으로 봅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보가 없어요.”
―자민련 내에는 JP와의 인간적 관계 때문에 지방선거까지만 탈당을 보류하고 있는 의원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이 이들을 영입할 계획은 없습니까.
“미래를 추측해서 얘기할 수는 없죠. 제가 대표라고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면 최고의원들과 상의해야겠죠.”
요즘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정계개편론’이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경선과정에서부터 민주화세력 결집론을 주창하더니, 5월15일 부산시장후보 추대대회에서는 한나라당 민주계를 겨냥해 “민주계가 세우려 했던 민주정권의 역사가 한나라당에서 실현되고 있느냐”며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다. 한편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보혁구도에 호감을 보이면서, 이인제 박근혜 정몽준 의원까지 염두에 둔 ‘IJP’연대 또는 ‘4자연대’를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김종필 총재가 제시한 보수와 개혁으로의 정계개편을 어떻게 봅니까.
“저는 안될 거라고 봐요. 왜냐하면 민주당이 도덕적으로 너무 큰 상처를 입었거든. 한마디로 민주당은 무너지는 집이에요. 그런 집에 누가 이사가겠습니까? 한나라당 의원들이 정신이 나갔습니까? 부정과 비리로 멍들어있는 정당에 왜 갑니까? 지금 집권 가능성이 제일 높은 정당은 한나라당입니다. 혹시 들어간다면 예전에 정치했던 사람들이나 정치 지망생들이겠죠.”
―‘IJP연대’는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합니까.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힘드네요. 연대는 가능하겠지만, 정당으로서 힘을 쓰지는 못할 겁니다. 이인제씨는 경선을 치르면서 힘을 완전히 잃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파괴력이 생기겠습니까? 아마 의미없는 연대에 그치겠죠.”
―노무현 후보가 한때 제안했던 ‘신민주대연합론’은 사실상 상도동과 동교동의 화해를 의미합니다. 민추협에서 활동한 분으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나는 그 말에 별로 감흥이 생기지 않아요. 신민당이 정권을 눈앞에 두었을 때 김대중씨가 탈당해서 평민당을 만들었잖아요. 그것 때문에 민주화세력이 정권을 놓쳤고. 그때부터 동서갈등이 심해졌어요. 애초에 평민당을 만든 것부터 잘못인데, 지금 와서 무슨 명목으로 다시 민주화 세력이 모입니까? 그건 말이 안되는 얘기죠. 민주계가 여당할 때는 평민당 세력이 엄청나게 공격했고, 지금은 그 반대가 됐잖아요. 예전에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다지만, 감정적인 골이 아주 깊어요. 그건 노무현이가 외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노무현이가 뭐가 대단하다고.”
―YS와 DJ가 의기투합할 가능성은 이제 없다는 얘기입니까.
“너무 늦었어요.”
서대표는 5월15일 취임 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서대표는 권력형 비리사건과 관련해 “김대중 대통령이 스스로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에서는 서대표의 발언이 정치공세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나라당이 김대통령을 게이트 정국의 한 복판으로 끌어들여 지방선거 국면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로 보는 것이다.
―기자회견의 톤이 예상보다 강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톤이 높은 게 아니라 기자들이 그렇게 받아써서 그렇죠. 기자회견 내용 중에 새로운 건 하나도 없습니다. 최규선 녹음테이프도 그렇고 다 나온 이야기인데, 지금껏 핵심을 찔러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입니다. 대통령이 관련됐다면, 더욱 철저히 밝혀야죠. 저는 일련의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통령을 조사하지 않으면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런데도 청와대 정무수석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에게 걸린 것을 가지고 왜 그러느냐?’고 말하잖아요.
나도 한때 김대중 대통령을 모셨던 사람입니다. 나도 그분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지금 제가 대통령 잘못되라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이 사과 한번만 하면 국민들도 이해할테니 제발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 대변인을 시켜서 변명하니까 문제가 계속 커지는 거예요. 국정조사를 정치공세라고 몰아붙이는 게 말이 됩니까? 정치공세는 루머를 가지고 몰아붙이는 거지만, 우리는 지금 사실을 말하고 있잖아요. 어떻게 현직 총경이 외국으로 도망을 갑니까. 오죽 했으면 ‘대통령 하야하라’는 말이 나옵니까.”
―청와대는 서대표의 발언이 경제와 월드컵 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죠. 그러기에 왜 원인을 제공해? 월드컵이 열리니까 수사도 하지 말라고? 그건 말이 안되는 논리야. 나도 월드컵 걱정하고 경제도 걱정해. 그래서 월드컵이 시작되면 장외투쟁은 자제할 생각이요. 하지만 무조건 문제를 덮을 수는 없잖아요. 한나라당은 월드컵 기간에 국회를 열고 합법적으로 대응할 겁니다.”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도 조사해야 한다고 맞불을 놓았습니다.
“나는 노무현 후보를 참 딱하게 봐. 아주 안타깝고 애처로워. 여당 대통령후보가 TV토론에 나와서 싸우는 건 좋아. 하지만 근거도 없는 걸 가지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정말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다수 국민들은 정쟁에 비판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와 조건 없이 만나 ‘큰 정치’를 논의할 생각은 없습니까.
“저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고 협상을 통해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나름대로 정치력을 발휘해왔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비리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먼저 민주당의 자세 변화를 촉구합니다. 저는 원칙이 지켜질 수 있다면 누구라도 만날 겁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안됩니다.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정쟁으로 호도하려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의미가 없어요.”
서대표는 지금 중대한 정치적 시험을 치르고 있다. 1964년 중앙대 총학생회장 시절 6·3 데모를 주동하다 포고령 위반으로 투옥된 것이 최초의 시련이었다면, 1980년 ‘조선일보’ 기자로 5·18 광주민중항쟁의 현장을 솔직하게 보도하지 못한 것은 일생일대의 상처로 남아 있다. 정계에 입문한 뒤 몇 차례 구설수에 휘말리긴 했지만, 서대표는 당정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5선의 관록을 쌓아왔다. 천신만고 끝에 제1야당의 당권을 거머쥔 서청원. 목전에 다가온 양대선거의 결과는 또 한번 그의 정치역정을 바꿔놓을 것 같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광역단체장을 몇 곳이나 장악할 것 같습니까.
“지금 분위기가 너무 좋습니다. 오늘도 제가 보고를 받았는데, 3개 지역을 빼면 다 이길 것 같아요. 호남에서만 우리가 열세고.”
―여론조사를 보면 서울 경기 제주 등도 박빙이던데요.
“밑바닥 정서는 달라요. 앞으로 시간이 더 남아 있으니까,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치권을 강타한 노무현 바람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아직도 노무현 바람이 남아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노무현씨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은 어떻게든 정권을 연장해보려는 민주당 정권의 계산된 논법에 의한 것 아닙니까? 거품은 반드시 빠지는 법입니다.”
―노무현 바람은 인터넷과 젊은층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층의 정치열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순수하게 이루어진다면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젊은이들의 정치의식도 높아질 수 있겠죠. 다만 그것이 특정한 사람을 위해서 조직적으로 일방적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설득을 강요하는 문화라면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자칫 순수한 사람들까지 물들인다면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이회창 후보가 여러 모로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서대표께서는 이후보에게 어떤 것들을 주문하실 생각입니까.
“이후보는 바깥에서 아는 것보다 훨씬 정이 많은 분입니다. 그 양반이 20대에 판사가 되었기 때문에 사교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에요. 원래 법관이라는 게 그래야 생명이 길잖아요. 정도를 걸어오다 보니 농담도 잘 못하고 그런 거죠. 하지만 그동안 참 많이 노력했어요. 의원들하고 만나서 폭탄주 먹고, 소주도 마시고, 농담도 받아주고….”
1997년과 2002년 5월은 한국현대사의 상처로 남을 듯하다. 1997년에는 김영삼 전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2002년엔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김홍걸씨가 검찰에 구속됐다. 서대표는 5년 전 대통령의 수비수로 뛰었지만 현재는 공격수로 변신했다. 서대표는 기막힌 역사의 아이러니에 대해 “그저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오늘(16일)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이 검찰에 출두할 때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정말 불행한 일이 또 찾아왔구나 뭐 그런 느낌이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비극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별도의 법적인 장치들을 마련했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앞으로 당 차원에서도 그런 걸 준비할 예정입니다.”
―상도동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김영삼 대통령은 현철씨가 구속되자 망연자실한 나머지 국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건강까지 악화된 상태라서.
“지금 대통령은 도덕적 통치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어요. 김대중 정권은 정치적 반신불수 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 당이 대통령의 2선후퇴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겁니다.”
―2선후퇴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만 담당하고, 중립내각을 구성해서 실권 총리에게 맡기라는 거죠.”
서대표의 정치적 좌우명은 ‘겸손’과 ‘정직’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목에 힘이 들어가거나 진실에 충실하지 않으면 정치적 수명이 오래갈 수 없다”는 말을 두 번이나 강조했다. 다분히 특정 정치인을 겨냥한 발언처럼 느껴졌다. 이순신 장군을 다룬 김훈씨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용감한 장수론’의 힌트를 얻었다는 서대표. 그는 2002년 대선정국에서 한나라당이라는 ‘거북선’을 타고 거대야당을 진두지휘하는 ‘이순신’을 꿈꾸고 있었다.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