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호

방학기|백지와의 승부, 그 절절한 경험

  • 글: 방학기 만화가 사진: 정경택 기자

    입력2003-07-30 17: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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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기|백지와의 승부, 그 절절한 경험

    아내는 가끔 타박하지만, 어수선함은 나만의 질서다. 물건들은 저마다 꼭 있어야 할 곳에 있음으로써 제 몫을 다한다.

    만화작가로 데뷔한 지 올해로 딱 30년이 됐다. ‘감격시대’를 신문에 연재하던 1980년대 초반 이사온 홍제동 집 2층의 서재는 나의 일터요, 내 주인공들의 요람이다.

    서재에는 30년 동안 그린 만화 작품뿐 아니라, 그 만화들을 탄생시키기 위해 모은 각종 자료들로 가득하다. ‘임꺽정’처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화를 그리려 민속극화를 모으고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용재총화’ 등의 서적을 읽었다.

    이 방에서 작업을 할 때 스토리 전개가 잘 되는 날이면 주인공들은 살아서 내 주변을 뛰어다녔다. 흰 종이에 이미 그림은 모두 그려진 듯했고, 나는 그저 신나게 붓으로 춤을 췄다. 때로는 작품 속에서 나는 냄새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 흰 종이는 좌절과 동의어였다. 백지 앞의 공포,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희열과 좌절. 꿈꾸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감정이 이 서재에 역사처럼 녹아 있다.







    방학기|백지와의 승부, 그 절절한 경험

    작품 구상이 순조로운 날이면 붓은 흰 종이 위를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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