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대통령, 좋은 분이라 생각하지만 오해받을까 이런 얘기도 못해
- 검찰 정치적 중립화에 현 정권 역할 컸다
- 우리보다 ‘높은 분’들의 반발이 수사에 최대 걸림돌
- 공무원 외 다른 직업도 생각할 때 됐다
그는 “나는 수사 실무 책임자일 뿐이다. 검찰 조직이 하는 일을 개인이 하는 걸로 보지 말아달라. 개인적으로 주목받는 게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입을 열었다.
“그동안 서민의 편에 서서 수사를 해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질연탄 사건을 비롯해 학원비리 사건, 시내버스 비리 사건, 바다모래 불법채취 사건 등에 대한 수사가 다 그런 것이었습니다.”
빨리 몇 마디 하고 끝낼 요량인 듯 그는 전혀 다른 성격의 얘기를 끄집어냈다.
“과거에 두 차례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지만 불만은 없었습니다. 외부에 그런 표시를 한 적도 없고. 지금은 이 자리에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정하게 수사하고 있다, 우리는 나오는 대로 다 한다, 이걸 꼭 써 주십시오.”
무슨 선언문을 듣는 듯한 기분이다. 이제 질문을 던질 차례다.
-주변에서 이 질문을 꼭 던지라고 하더군요. 도대체 안대희는 무슨 배짱으로 그토록 마구 일을 벌이냐고요.
“사심이 없기 때문에. 욕심이 없기 때문이에요. 이 자리 끝난 다음엔 뭘 하겠다든지 하는. (서울지검) 특수부장 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제발 ‘서민’이라고 쓰지 마세요. 난 잘 살아요. 부자입니다. 53평짜리 아파트에 살아요.”
일부 언론의 오보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들렸다. 그의 말마따나 그가 살고 있는 서울 홍은동의 S아파트는 53평형이다. 하지만 서울의 다른 지역을 생각하면 평수에 비해 값이 많이 싼 편이다.
-시세는 낮잖아요?
“시세는 2억8000 정도 하지.”
-강남에 산 적은 없습니까.
“아주 오래 전에.”
그가 틈을 봐 또 한 마디 했다.
“덧붙여 얘기하면 총장님이 검찰을 바로세우려는 바른 마음을 갖고 바른 길로 이끌어주니 그게 큰 힘이 되고 있죠. 보호막이 돼 주니 검사들도 종전과 달리 굉장히 원칙적으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그 중간에 내가 있습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조직 분위기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겁니다.”
-정권 초기엔 대통령과 검찰간에 갈등이 심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이 검찰을 공격하고, 검사들도 반발하고.
“지금도 갈등 양상 아닙니까. 정치적으로 이상하게 해석해서 그렇지. 대통령 측근들 수사를 계속하는데 갈등이 없을 수가 없죠. 그런데 측근수사를 하는 것에 대해 대통령이 좋다 나쁘다 입장을 표명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대로 일하는 거고.”
-검찰이 진정 정치적으로 독립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그럼. 그건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지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현 정권도 기여한 바가 크지 않나요.
“그렇죠. 그런데 내가 그런 얘기를 하면 국민들이 또 오해할까봐….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것 자체가 오해를 부를 거요.”
-젊은 검사들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예.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칙대로 가는 거죠. 독립을 강조할 필요도 없고. 법률대로 하는 거지요. 범죄 혐의 있으면 수사하는 거고.”
-수사와 관련해서는 청와대와 완전히 단절됐나요?
“그렇죠. 법무부 외에는 통로가 없죠. 법무부 장관에게는 주요 사건들을 보고 드려야 하니까. 그 외 다른 통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지난번 국감에서 함승희 의원이, 전직 국정원장이 SK측으로부터 수십억대의 돈을 받았다고 폭로했는데….
“그런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선을 긋긴 했지만 그는 “진행중인 수사와 관련된 사항은 얘기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내사는 했다면서요?
“아니오. 사건에 대해 자꾸 물으면 (얘기를) 더 못합니다.”
-그 건에 대해 들은 얘기가 있어서요.
“그렇다 하더라도 안 됩니다. (그 건에 대해서는) 모르겠어요.”
그가 슬쩍 말을 돌렸다.
“할 일이 너무 많이 밀려 있습니다. 국민들은 빨리 결과를 내놓으라 하는데. 외국의 경우 이런 종류의 큰 수사가 완료되는 데는 2년쯤 걸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몇 달 안에 끝내야 해요. 그래서 검사들과 직원들이 휴일도 없이 쉬지도 못하고 강행군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실무책임자로서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사실 걱정스럽죠.”
-정치권의 특검 논쟁을 어떻게 보십니까.
“내가 얘기할 게 아닙니다.”
-검찰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듯싶은데요.
“말을 안 하겠습니다.”
그는 “수사중인 사건이니까…그 정도로만 얘기하고 이제…” 하고 인터뷰를 끝내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검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습니까.
“자연스럽게 검사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딱히 언제라기보다는.”
그는 대학 3학년 때 사시에 최종 합격했다. 그 기수의 최연소 합격자다.
-대학 입학해서는 고시만 팠습니까.
“이것만 얘기할게요.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데모가 워낙 잦아 휴강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와중에 우연히 법서를 구해 읽어본 것이 고시공부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변의 선배들이 여러 해 동안 고생하는 것을 보고 ‘이거 빨리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 빨리 붙었죠. 사시에 빨리 붙은 것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어요. 학문 깊이가 얕다고 생각해 꾸준히 공부해 왔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모자라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사시공부한 사람보다는 못하지 않나 싶어서요.
일찍 되다 보니 나이에 걸맞지 않은 경력을 갖게 됐습니다. 많이 조심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분들에게는 기분 나쁘게 보일 측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출발점이 그렇다 보니 개인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런 걸 자꾸 의식하게 되니 행동도 부자연스럽고 갭을 느끼게 됐죠. 마음은 아래로 가는데 보직은 위로 가고. 공식적으로는 의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신경이 쓰였죠.
하지만 나이가 어린 것이 갖는 장점 중 하나는 지금도 젊은 평검사들과 소주 한 잔 하면서 자연스럽게 얘기가 통한다는 점입니다. 기자들과도 (나이가 많은 경우보다) 더 가까이 지낼 수 있고요. 형식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대화를 나누는.”
-고교 시절엔 웅변반과 독서반에서 활동했던데요.
“나는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모자란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직업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에선 나 같은 관리 책임자보다는 일선 수사검사가 중요하죠.”
-안부장에 대해 수사만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평도 있는데요.
“전혀 안 그래요.”
그가 정색을 했다.
“따뜻한 휴머니티 없이 어떻게 수사를 합니까. 인간애가 수사의 출발점이죠. 그런 게 없다면 공명심 수사죠. 사회에 대한 애정, 국가에 대한 애정 없이 수사하는 것이 수사만능주의죠. 그런 건 위험해요. 그런데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한국사회에 그만큼 수사할 게 많기 때문이죠. 개선해야 할 구조적 모순이 많다는 겁니다. 수사만능주의라고 비판하는 데에는 수사를 무서워하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1997년에 서울지검 특수1부장으로서 설계감리비리 사건을 수사하다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바로 이런 논리로 질책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증거 잡기가 참 힘듭니다. 증거가 있는 수사를 안 한다는 건 법을 다루는 법률가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죠. 물론 그분(김태정) 생각도 틀리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인생관의 문제겠죠.”
-안부장 주변에서는 그 사건이 향후 안부장의 인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던데요.
“그 사건만이 원인은 절대 아니죠. 그때 김총장은 격려금도 줬습니다. 수사 잘했다고.”
-혼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격려했다는 얘기인가요.
“예.”
대통령과 가까운 분 수사 편치 않아
안중수부장은 “혼자 불평한 거지, 공식적으로 총장한테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답변에는 아픔이 배어 있었다.
“(검사장 승진에서 두 차례 탈락한 것은)제가 모자라고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겠죠.”
-어쨌든 그때는 사표 낼 생각도 했었지요.
“지나간 얘기는 하지 말죠. (사표) 안 냈으면 그만이지.”
-노대통령과 사시 동기잖아요.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서로 잘 몰랐나요.
“특별히 인연은 없었습니다. 좋은 분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이런 얘기도 오해받을까봐 못하겠다니까.”
사시 17회 최연소 합격자인 안중수부장과 검정고시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은 나이 차이가 8세나 된다.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수사를 하면서 많이 괴로웠겠습니다. 그 일로 노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이 나오고….
“바로 그런 게 검찰의 어려운 입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동기생임을 떠나 대통령과 가까운 분을 수사한다는 건 편치 않은 일이죠. 그런데 이건 개인적 소견이고. 공식 입장은 범죄가 되면 누구든 수사한다는 거죠.”
-갈등과 부담이 컸을 것 같은데요.
“얘기하기 곤란합니다. 공무원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하는 일로 해야 되지 않습니까. 심정에 대해선 물어볼 필요가 없죠.”
-공무원 이외에 다른 직업은 생각도 안 해봤습니까.
안중수부장은 “이제 생각할 때가 됐지, 이제는” 하며 허허 웃었다.
“이 말을 행여 정치와 관련시키지는 말아요.”
-유명세를 타고 국민적인 관심이 커지면 자신의 뜻에 상관없이….
“그게 싫다는 거지. 조직이 하는 거지 내가 하는 게 아니란 말이죠. 조직적으로 검찰을 이해해야지. 솔직한 얘기로 이 자리는 의무밖에 없는 자리라고. 뭘 누리는 자리가 아니고. 그렇게 부담스러운 자리라고.”
-입이 무거운 편으로 알고 있는데, 해외 빌딩 얘기는 어떻게 하게 됐지요.
“분명히 ‘소문’이라고 했죠. 정치자금 수사 결과가 일부 나오긴 했지만 정치인들이 거액을 챙기는 문제점을 간과하지 말라고, 개인적으로 얘기한 겁니다. 외국에선 실제 그런 소문이 돌아요.”
-그 문제와 관련해 검찰에서 구체적인 얘기가 나오는 것 같던데요.
“수사중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습니다.”
-대선자금 수사에 임하는 각오가 어떻습니까.
“각오야 강하지. 얼마나 증거가 뒷받침되느냐가 관건이지요. 최선을 다해서 수사하고 있습니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거취 문제를 고민할 수도 있겠네요.
“그럼요. 그런 각오로, 굉장히 굳은 각오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에서 원안대로 대선자금 수사를 포함하는 특검법을 밀어붙였다면 송총장과 함께 사표 내려 했다면서요.
“아니에요. 그런 가정을 갖고 얘기할 순 없지. 우린 열심히 하는데요, 뭐.”
-수사하는 데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입니까.
“각 당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사의도를 오해할 때가 참 힘들어요. 우리는 법규정에 의해 수사하는데 (정당들은)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고, 반발하고. 우리보다 높은 분들이 그러니 힘들죠. (수사) 결과를 보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대선자금 수사는 정치적인 수사라 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정확히 말하면 총장과 나와 수사검사들이 비정치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정치적인 수사를 할 수 있는 거요.”
“나는 새가슴, 그릇이 작아요”
말투와 표정에서 그가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무후무한 일 아닌가요. 집권 1년 만에 여권의 대선자금을 수사하는 건.
“초유의 일이죠.”
-재벌들이 비협조적이죠?
“그런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 수사와 관련된 것이니.”
-현대 비자금 수사에 대해 물어보는 건 괜찮습니까.
“공판 중이니 얘기 못합니다.”
-노대통령 측근 안희정씨에 대해 두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법리적으로는 무리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죠. 또 한쪽에서는….
“쇼한다고 그랬죠. 두 번이나 낸 것은 그 사건에 대해 누군가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을 강하게 표시한 거죠. 사실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했을 때 좀 섭섭했죠.”
-안부장의 결벽증에서 기인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었는데요.
“그렇게 볼 수 있을까요.”
그는 “더 이상은 고문”이라며 “이제 정말 일해야 한다”며 인터뷰를 끝낼 것을 제의했다.
-새가슴이라면서요?
“아, 참새가슴이지. 키도 작고. 그릇도 작고. 조그만 사람이라니까.”
-일처리를 세심하게 한다는 뜻에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릇이 작아 그런 거예요. 나는 작은 사람이요. 내 본분을 알아요. 그러니 인터뷰도 제대로 못하지. 큰 사람이라면 대범하게 할 텐데.”
안중수부장과의 인터뷰는 이것으로 끝이 났다. 물어볼 것이 많았지만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