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사 안 됐으면 춤꾼 됐을 것
- 노 대통령이 나보다 더 강한 원칙주의자
- ‘강효리’ 별명 개의치 않아
- 장관직 수행의 최대 걸림돌은 잠과 식사
- 검찰 개혁 마무리될 때까지 장관 하고 싶다
- 참여정부 인기 없는 이유는 일 못했기 때문
- 측근비리 특검 도입과정 지켜보며 혐오감 느껴
- 측근비리 특검, 상대방 약점 잡아 세 과시하는 것
- 검찰총장의 인사 협의 명문화 요구는 부적절
- 선거법 개정해 노동자 정치파업화 해결해야
- 상대에게 고통 준다면 사랑이 아니다
- 돈 열심히 벌어 50대엔 자유롭게 살 터
스산한 날씨였다. 바람이 가볍게 일었고 햇볕은 인색했다. 싸늘하지만 부드러운 12월의 공기가 목젖을 건드렸다. 강 장관은 인터뷰 장소인 환기미술관에 약속시간 5분 전에 도착했다. 청와대 뒤편 북악스카이웨이 근방에 있는 이 미술관은 우아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아서 좋았다. 마른 대지에 물을 뿌려놓은 듯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오직 새소리만이 태엽처럼 한낮의 적막을 감고 있다.
강 장관은 지난해 가을 이곳을 처음 알게 된 후 혼자 가끔 들른다고 했다. 무엇에 이끌렸냐고 묻자 “그림보다 미술관이 좋아서”라고 말했다. 말 맺음새가 간결하고 깔끔하다. 상대에게 틈을 허용하고 싶지 않아 하는 듯한. 단아한 기품이 배어 있는 얼굴이다. 마른 탓인지 인상은 생각보다 딱딱하고 날카롭다. 절제되고 응축된 힘이 느껴진다.
경내 찻집에서 작품집과 스카프를 둘러본 강 장관은 “건물이 참 좋더라구요”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정장에 걸친 망토가 그녀의 작은 체구를 부지런히 감쌌다. 3층짜리인 전시관 건물은 고풍스러운 계단과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곡선미가 일품이다. 맞은편 고목에 까치집이 보였고 그 너머로 북악산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강 장관이 감탄조로 말했다. “저기 새집 좀 봐요. 어떻게 저런 데 집을 짓고 살까.” 시골에서 자란 기자는 거기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가슴이 뜨끔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시골에서 산 적이 없냐”고 물었고 강 장관은 “서울에서 죽 자랐다”고 답했다.
강 장관도 그렇고 기자도 그렇고 이날 인터뷰는 조금 색다르게 진행하고 싶었다. 공식적이고 딱딱한 얘기보다는 정서나 가치관, 사생활 등 인간적 측면을 엿볼 수 있는 사적인 대화 말이다. 애초 강 장관에게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할 때도 그런 취지를 밝혔고 강 장관 또한 그에 호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검찰 개혁 문제나 현안인 특검 얘기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기엔 지난 10개월 동안 강 장관이 이룬 성과가 만만찮다. 게다가 강 장관과 정치권, 검찰의 관계는 또 얼마나 관심을 끌었던가. 그런 까닭에 인터뷰 약속이 이뤄진 후 강 장관에게 보낸 질의서에는 정작 이런 분야에 대한 질문이 잔뜩 적혀 있었다.
전시관을 둘러본 후 찻집에 다시 마주앉았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인터뷰 배석자도 없었다. 강 장관이 차를 샀다. 소리가 조금 낮으면 더 좋을 듯싶은 여가수의 재즈풍 노래가 나른한 주말 오후를 붙들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이날 인터뷰가 예정된 세 시간을 넘겨 서초동 약속장소로 향하는 강 장관의 차 안에서까지 진행될 줄은 두 사람 다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비공식적인 인터뷰로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질의서를 받아보고 놀랐어요.” 강 장관이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음악에, 풍경 좋고, 무슨 검찰 얘기를 하겠어요, 이런 데서. 검찰의 ‘검’자만 들어도 지겨워.”
“검찰 ‘검’자만 들어도 지겨워”
화랑에 왔으니 그림 얘기부터 해야겠다. 법무부는 최근 강 장관의 아이디어로 과천 청사 1동 2, 3, 4층 복도에 그림 85점을 전시했다. 유치원생, 소년원생, 교정시설 수용자들의 그림이 대부분인데 기증받은 기성 작가의 그림도 15점 포함돼 있다. 전시 제목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함민복 시인의 시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시예요. 개혁 개혁 하는데 시스템을 바꾸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문화적인 접근이에요. 일하는 것이 즐겁도록 공간환경을 꾸며주고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는 정서적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거죠. 또 하나 있어요. 교정시설에 있는 사람들한테 음악을 들려주는 거예요. 반경환 시인이라고, 클래식 음악에 일가견이 있어 책도 낸 분이죠. 옛날에 실형을 산 적도 있고. 그분이 한 달 동안 아침저녁으로 들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 곡목을 짜주셨어요. 이것을 곧 교정시설에서 활용하도록 하려구요. 딱딱한 교육도 필요하지만 정서적 접근을 통한 교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아직은 많이 미흡하죠. 시간도 너무 없었구요. 너무 일할 시간이 없어요. 지치고. 법무부 안에서 법무부 일만 하면 좋겠는데.”
-춤과 음악에 일가견이 있으시죠.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춤이고 그 다음이 노래예요.”
-노래,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죠. 잘은 못하지만.”
-애창곡은요?
“많죠. ‘고향의 노래’도 좋아하고. 가요는 김광석 것 좋아하고. 최근 CD 전집 사서 듣는데, 계속 들어도 편안한 특징이 있더라고요.”
2003년 11월29일 강 장관은 과천 청사에서 전국 일선 지검장들과 워크숍을 가졌다. 이날 회의가 끝나고 국무위원 식당에서 점심 먹는 자리에서 강 장관이 초청한 실내악단이 현악4중주를 연주한 것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반응이 좋았어요. 오신 분들도 좋아하고. 회의하면서 문화행사 하는 건 보편적인 거라 보거든요. 그런데 법무부나 검찰에서 그런 예가 없었는지 국무위원 식당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얘기하더라구요. 저는 참 좋던데요.”
-검사장들이 머쓱해하지 않던가요.
“좋아하시던데요.”
-익숙지 않을 텐데요.
“좋아했어요. 모르죠, 속으론 어땠는지.(웃음)”
-장관님을 보면, 몸 속에 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예술적 끼.
“누구나 다 있잖아요.”
-정열적인 끼가 느껴집니다. 내림인가요.
“예술적 재능이 유전되긴 했어요. 아버지가 음악 선생이었거든요. 바이올린 하셨어요. 손재주가 뛰어났지요. 자식들이 음악적 소질은 있는 것 같아요.”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습니까.
“북 두드리는 걸 좋아하는데, 하도 배우다 말고 배우다 말고 해서. 대학 2학년 때 탈춤반에서 활동했는데, 법대 왔으니까 이런 건 그만둬야 한다, 뭐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그만두고. 그런 식으로 20년, 30년 가버린 거죠. 전 타악기를 좋아해요. 장고도 배우다 말았는데. 북은 나중에 다시 배워야죠.”
-춤은 인간문화재한테 배우셨죠?
“계속 배우지 못해 아쉽죠. 85년에 처음 배웠는데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배우다 말고. 그 후에 또 한 차례 배우다 말고.”
-춤을 추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정신이 산만하면 춤을 못 춰요. 머리를 비워야 춤을 출 수 있어요. 너무 피곤하거나 신경 쓸 일이 많고 잡념이 있으면 못 춰요. 손발은 움직이지만 몸이 무겁죠. 오래 추다 보면 호흡이 저절로 배 밑으로 가라앉거든요. 명상 호흡법과 원리가 같죠. 명상 수준에 이르러야 제대로 몰입해 출 수 있어요.”
판사 시절 춤을 배우다 만 게 못내 아쉬웠던 강 장관은 변호사 개업 후 제대로 배우겠다는 의욕에 경기도 도살풀이 인간문화재인 김숙자 선생의 딸한테 1년 가까이 춤을 배웠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잘 늘지 않았다.
“96년인가 97년에 배웠는데, 영 안 되더라구요. 정신이 산만하니까. 변호사 개업한 다음 계속 돈 문제, 사건에 신경을 쓰다 보니 명상 수준에 이르지 못한 거예요. 처음엔 그냥 배우고 싶어 배웠는데 추다 보니 명상 효과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 같아요, 춤 배운 게. 사람들한테 권하고 싶죠. 차분해지죠, 이런 공간처럼.”
-현대 댄스와는 많이 다르죠?
“요즘 유행하는 검도나 단전호흡, 요가와 원리가 같다고 봐요.”
“기형도 시 좋아해요”
-첫 직업이 판사인데, 판사가 안 됐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대로 했다면 춤을 본격적으로 배우거나 그 주변을 왔다갔다했겠죠. 무용평론을 했던지.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죠. 대학교 1, 2학년 때는 불교와 신학에 관심이 많아 그쪽 책을 많이 봤죠. 그 후 사느라고 바빠 불경도 안 보고 절도 안 가게 됐지만. 지금 생각하면 30, 40대가 가장 세파에 시달리는 나이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 50이 지나 늙으면 옛날로 돌아가 명상도 하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저도 시집을 제대로 읽은 지 한 10년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난 또 시집을 냈다고 그러는 줄 알았네.(웃음) 국문과 나오면 다들 시집 안 내나.”
-아닙니다. 국문과 나왔다고 다 시집 내나요. 법대 나왔다고 다 사시 되는 것 아니듯.
“어떤 시, 누구 시 좋아해요? 나는 기형도 시 좋아해요. 특별한 느낌이 있는 시예요.”
-저는 예전엔 김수영을 좋아했고….
“저도 좋아해요. 대단한 시인이지요.”
강 장관은 문학 얘기를 더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갈 길이 먼’ 기자는 화제를 바꾸었다. 내심 나중에 틈 봐 다시 얘기해야지 하고는. 하지만 문학 얘기를 더 할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고, 기자는 후회했다. 특검 얘기를 덜 하더라도 문학 얘기를 더 하며 강 장관의 정서를 더 깊이 들여다봤어야 했다.
-법대는 어떻게 가게 됐습니까.
“고등학교 때까지 잘 모르잖아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 줄.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 줄을. 10대는 자기 확인을 잘 못하는 나이 아닌가요. 인생에 대해 종교에 대해 관념적인 번민은 많았지만 구체적인 직업 선택에 대한 계획은 없었던 것 같아요. 뭐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데생도 배우러 다니고, 사진도 찍고, 연애도 하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확인이 안 됐던 것 같아요. 미학 강의도 듣고, 종교학 강의도 듣고. 그때만 해도 서울대 법대에 여학생이 세 명 들어갈 때였으니까. 객관적으로 성적이 너무 좋았거든요. 집에서 기대가 너무 크고 법대 가라고 주문하니까. 판사 하라고.”
-성적이 좋은 게 문제였다?(웃음)
“공부를 너무 잘한 게 문제였죠.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닌데. 하여튼 1등을 너무 많이 한 거예요.(웃음) 그래서 법대에 들어간 거예요. 사실 갈등이 있었어요. 다른 것을 할까 말까. 10년쯤 지나니 갈등이 없어지더라구요. 예술도 현실 속에서 할 수밖에 없잖아요.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거고. 우리 삶이라는 게 직업을 통해 생계도 해결하고, 전문성도 갖추고, 신분도 보장받고, 사회에도 기여하고, 그런 구도잖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죠. 누구나 현실과 접점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법대 가서 법률전문가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죠.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죠. 다른 직업을 딱히 잘했을 것 같지도 않고.”
“나는 왜 빚만 있고 재산이 하나도 없을까. 참 특이한 일이죠. 경제활동을 그렇게 오래했는데. 신기하죠, 저 말이에요.”
-그런데도 사회생활 하는 데는 전혀 지장 없지 않습니까.
“지장은 없죠.(웃음) 화사하게 호화롭게 살고 있죠.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원.”
-많은 채무자들한테 희망을 주는 분이지요.
“호의호식에 호화롭게 사는데, 어떻게 재산은 하나도 없지.”
-매달 꼬박꼬박 갚고 있나요.
“은행 이자 부담하고 있죠. 원금은 못 줄이고 있고.”
-참 태평하시네요.
“(웃음) 성격이 태평하니 이렇게 됐겠죠, 그쵸? 내가 봐도 신기하긴 해. 어떻게 이 나이에 고급생활 하면서 재산이 하나도 없을까.”
-그게 어쨌든 전 남편 빚이라는 건데,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과도 그런 문제가 생기면 헤어지게 되나 보죠?
“사랑은 하는데 돈 때문에 헤어진 게 아니구요, 그 문제를 겪는 과정에 사랑이 깨져나간 거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지. 사랑한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없죠. 고통을 주는 거죠, 상대방한테. 내가 깨달은 것은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는 거예요. 결혼 전 연애할 때도 사랑과 고통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됐는데, 사랑한다면 고통을 줄 수 없는 거예요. 고통스러울 때는 이미 사랑이 아닌 거예요.”
“사랑한다면 고통 줄 수 없어”
강 장관은 “아 이게 사랑이 아니구나, 깨달았을 때 이혼을 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가해를 할 수 없는 거예요, 사랑이라는 건. 많은 사람이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을 감수한다고 착각하는 거지. 그걸 깨달았어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서로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게.
“종교적 생활 하는 사람들 봐요. 고통을 주지 않잖아요. 종교적 사랑이 충만하면 남한테 해도 안 끼치고.”
-남자라면 지긋지긋하십니까.
“아뇨. 한 사람과의 사랑이 실패한 문제지, 남자이기 때문에 싫다는 건 아니잖아요.(웃음)”
-살다 보면 생기는 문제니 사랑하고 있을 때는 예상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온전치 못한 사랑 속에서 살다 가는 거죠. 사랑이라는 게 있긴 있는데 가슴속에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잖아요. 보통은 그러다 가는 거 아니에요? 사랑이 찾아올 때는 행운이 온 거지.”
-외로움을 느낄 때는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그거 어떡해야 하나. 어떡해요?(웃음) 원래 다 고독한 것 아닌가.”
-누구나 고독하죠.
“그냥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대개는 관계에 의해 고독을 나누거나 덜거나 하죠.
“저는 깊이 천착하는 편이에요. 없애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파고들어 어디까지 가나 하면서. 그것이 인간의 원 상태라면 피하기보다는 수용해야죠. 그런 상태가 좋더라구. 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편안함을 주죠.”
시오노 나나미는 ‘남자들에게’라는 책에서 ‘자기 냄새를 피울 줄 아는 남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남자’를 매력 있는 남자로 규정했다. 이 얘기를 꺼내며 강 장관에게 물어봤다. 어떤 남자가 매력적이냐고.
“따로 생각해둔 바는 없지만 만나서 매력을 느낄 때는 있죠. 자기 나름대로 갖고 있는 완결성이랄까. 나는 순수한 사람이 좋더라. 마음이 맑은 사람 만나면 기분이 좋구.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만나도 재미없고, 시큰둥하고, 헤어져도 기분이 안 좋고.”
-전에 사랑했던 남자분들은 어땠어요.
“딱히 뭐 만족스럽지는 않았는데.(웃음). 사랑했다기보다도 사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진짜 사랑을 하셔야겠네요.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마다할 리가 없다니까. 제일 중요한 건데.”
-혼자 계시는 게 불편한 것 같지 않네요.
“아주 편안하고 좋아요. 공간이 넓어지니 너무너무 좋더라구요. 특히 목욕탕을 혼자 쓰니 좋아. 집에 목욕탕이 2개 있는데, 전에는 언니가 하나를 쓰고, 다른 하나를 남편과 같이 썼거든요. 근데 혼자 쓰니 너무 좋은 거예요. 방도 혼자 쓰고.”
인간적 정서에서의 흑백논리
독신인 강 장관의 언니는 1994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강 장관 부부와 죽 한 집에서 생활해왔다. 강 장관은 인터뷰 시작 전 미술관 경내를 둘러볼 때 독립하고 싶은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동네(부암동)에 한번 와보고 나서는 반했어요. 새소리 들리고 공기도 좋아 혼자 전세로 오고 싶은데 언니가 반대해요. 떨어져 지내기 싫다고.”
-학교 다닐 때나 판사 할 때 여성차별을 겪어본 적이 있나요?
“없다고 할 수 없죠. 심하게 겪은 건 아니지만. 그런데 저는 있을 수밖에 없어 있는 차별에 대해선 분노하지 말자는 입장이에요. 성차별을 인정하자는 게 아니라 성차별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화낼 필요는 없다는 거죠. 분노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냉정해져야지. 아까 말한 인간적 정서에서의 흑백논리와도 관련된 얘기예요. 피해를 입은 입장에서 분노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는 건 몹시 힘들죠. 그걸 이겨내면 이긴 거예요. 그 상태에서 벗어나면.”
-지금은 양상이 좀 바뀌었지만 초기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등 과격한 면이 있었죠.
“운동의 발전사로 봐야죠. 처음엔 분노하죠. 증오하고. 싸워나가고. 다치고. 그러다 평화가 찾아오고. 제 얘기도 분노하고 증오하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지점까지 가야 한다는 거죠.”
-페미니스트들의 주장 중 사회적 쟁점이 되는 것으로 간통죄 폐지, 낙태 권리, 일부일처제 반대 등이 있습니다. 장관님 생각은요?
강 장관은 간통죄 폐지와 관련해 “장관으로서 적절치 않은 발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말을 삼갔다. 대신 이에 대한 법리논쟁을 소개했다.
“반사회성의 문제죠. 간통죄 폐지론자들은 남녀의 성교 행위를 반사회성 범죄로 처벌하는 것이 형사상 범죄구성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보죠. 행위 자체엔 범죄성이 없다는 거예요. 반면 존속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그것이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이므로 범죄성이 인정된다고 보는 거죠. 폐지론자들은 이에 대해 가정을 지키는 문제는 서로 의무를 다하는 도덕적인 문제지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라고 보죠. 또 의사결정 자유를 침해한다는 견해도 있고.”
강 장관은 낙태 문제에 대해선 “인간 생명권과 관계된 것으로 법률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답이 없다”고 말했다.
-개인적 시간을 별로 못 갖죠?
“바쁘니까.”
-일요일은 좀 쉬세요?
“가끔은 일요일도 일해요. “
영화에 대해 묻자 얼마 전 ‘코난’을 재미있게 봤다며 웃었다. 또 ‘매트릭스’ 시리즈를 좋아해 1·2편을 다 봤고(2편은 중간부터 봤다고 함) 곧 3편을 보러 극장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3편은 워낙 기대치를 높여놓아서 그런지 재미없다는 사람이 많던데요. 저는 그런 대로 봤지만.
“찬반양론이 있데.”
“권력무상이에요”
-책은요?
“머리가 차져야 읽지. 머릿속에 빈 공간이 있어야 남의 것을 볼 거 아니에요. 거의 못 봐요. 원래도 많이는 안 보지만. 요즘엔 다 귀찮고 미련이 없네요. 책 읽고 싶은 마음도 없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네.”
-이러다 어느날 갑자기 그만두시는 것 아니에요?
“모르죠. 지금은 의무감을 느끼고 있는데, 더 있어야 한다는.”
-비가 적당히 내리고 누군가와 한잔 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는요?
“요즘 술 먹기가 싫어서요.(웃음) 그런 느낌 없는데.”
강 장관은 요즘 가까운 친구들도 얼굴 본 지 오래됐다.
“내가 지쳐 있고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가득 차 있으니 친구들도 재미없어 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차가 강 장관의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약속시간인 6시까지는 이제 10여 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강 장관은 “마무리 질문을 하게 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차를 약속장소 뒤편 골목으로 돌렸다. 차는 천천히 움직였다. 누군가가 강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옆에 앉은 탓에 강 장관의 얘기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됐다. 이광재, 안희정씨가 거론되고 ‘출금’ ‘알아보겠습니다’ 등의 말이 나온 걸로 미뤄 상대방은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아닌가 싶었다. 통화가 끝난 후 강 장관은 “권력이 뭔지. 권력무상이에요”라고 중얼거렸다.
-나중에 대선후보로 추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어쩌시겠습니까.
“내면에서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권력에 대한 욕망은 누구에게나 잠재돼 있지 않나요?
“전 없어요.”
강 장관이 단정적인 어투로 말했다.
“권력의 문제는 내가 평생 고민하는 화두 중 하나예요. 인간이라는 존재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자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게 권력의 문제, 자유의 문제, 사랑의 문제, 그런 것 아닌가요.”
차가 약속장소 앞에 되돌아왔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에요.”
차에서 내리자 세찬 바람이 달려들었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주말 오후 강남의 거리는 혼잡했다. 반대편 도로는 아예 주차장이었다. 정확히 6시에 차에서 내릴 요량인지, 강 장관의 차는 도로 한 편에 서서 비상등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소통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신호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강북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문득 쓸쓸함과 그리움이 밀려왔다.
환기미술관 앞에서. 강 장관은 “그림보다 미술관이 좋아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깔끔한 면이 있어요. 조 기자께선 아직 나이가 젊은데요. 이제 뭘 새롭게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은 나이인데.”
강 장관도 음악소리가 크다고 느낀 모양이다. 종업원에게 부탁해 음악소리를 조금 낮췄다. 법치주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우리 사회에는 실질적 법치주의가 정착이 안 돼 있죠. 게임의 법칙이 없고. 룰을 지키면서 전술전략을 써야 하는데 룰을 안 지키거든요. 제가 해야 될 일이나 참여정부의 역할도 법치주의의 정착이죠. 대통령 말씀이 잘 전달이 안 돼요. 공동체나 집단의 리더그룹, 특히 오피니언 리더들이 법에 의한 룰의 정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해관계나 역학관계에 의해서만 사물을 보니까. 법률가이시기도 한 대통령께서는 뭐든지 룰에 의해 얘기하는데, 사람들에게 이게 안 먹히죠. 무슨 엉뚱한 소리 하냐고.
특검도 마찬가지예요. 어저께도 아는 변호사님이 저한테 권한쟁의심판 청구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고 야단 치셨는데, 어떤 측면이 있냐 하면 검찰이 잘하든 못하든 한 나라엔 일반적인 수사 시스템이 있다는 거죠. 지금 수사를 하고 있어요. 근데 국회가 나서서 중단시켜 (수사권을) 가져간 거예요, 이번 특검이란 것이. (수사가) 끝났는데 이러이러한 점이 문제니 특별 기구를 만들어 대책을 세우자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수사 시스템을 중단시키고 특별 시스템으로 넘기는 거잖아요. 이건 국가 시스템을 흔드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께서 법무부 건의를 받아 ‘수사중인 사건이니 다시 한번 검토해달라’고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는 것은 합법적인 절차예요. 그런데 이게 정치적 역학관계로만 해석되잖아요.”
강 장관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강 장관보다 더 강한 원칙주의자다.
“저는 어떤 문제를 풀 때 꼭 원칙만 고집하지 않고 여론이나 역학관계를 감안하는 좀 온건한 입장이거든요. 성격 자체가 그래요. 그런데 대통령은 안 그러시거든요. ‘죽어도 나는 원칙을 지키겠다’고 하시거든요.(웃음) 저보고 ‘법무부가 훨씬 정치적’이라고 뭐라 그러신 적도 몇 번 있었죠. 그럴 땐 저도 혼란스러워요. 원칙만 갖고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인간관계를 감안하면서 균형점을 찾아야죠. 법치주의이면서도 인간적인 따뜻함과 정서가 살아 있는. 막스 베버가 정치 발전 단계에 대해 인치에서 법치로, 법치에서 다시 예술로서의 정치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제가 원하는 것도 한 단계 진전된 상태죠. 법만 요구하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죠.”
노대통령의 고집
-어차피 수사가 끝난 다음 특검을 할 바에야 아예 처음부터 특검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죠. 이런 식으로 수사 도중에 특검 할 바엔. 그런데 정치권에서 진정으로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최도술 사건이 터질 때부터 그런 얘기를 했어야죠. 하지만 한나라당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 이후잖아요. 한 달 가량 간격이 있어요. 최도술 건이 터진 게 10월 초고 특검 얘기가 나온 게 10월 말이거든요.”
강 장관은 특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자신은 애초부터 특검 반대론자라고 했다.
“일반적 수사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데 주력해야지 문제가 있다고 자꾸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면 부작용이 생기죠. 설렁탕 집에서 ‘특’을 주로 팔면 보통 설렁탕은 없어져버리잖아요. ‘특’이 일반화되고 또 다른 ‘특’이 나오겠죠. 검찰이 수사를 잘못한다면 바로잡아주는 쪽으로 접근해야지, 이거 안 되겠다, 빼버려야겠다고 하면 곤란하죠. 그러려면 차라리 검찰 없애버리지, 특별검사가 다 하게. 그럴 순 없거든요, 국가기관이라는 건.”
-시민단체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특검제 도입을 요구해오지 않았습니까.
“나무가 제대로 못 자란다면 약을 뿌리고 고쳐줘야 튼튼해지죠. 다만 시간이 좀 걸려요. 50년 동안 쌓인 검찰 조직의 문제가 3개월 만에 해결되겠냐구요. 5년 이상 천천히 가야죠. 그런데 한국 사회는 그걸 못 참아요. 나무가 시들시들하면 당장 뽑고 새 걸 심으려 해요. 고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인내가 없어요. 법무부장관으로 온 이후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원래 제 생각이 그래요. 형사법 시스템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특가법이란 게 특별법이잖아요. 국가보안법도 그렇고. 이와 관련된 형법이 사문화되다시피 했지요. 가치가 인플레된 사회예요. 차분하게 원형을 찾기가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죠. 저는 그런 점에서 보수적인지도 모르겠어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해 특검 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우세하죠.
“국민 여론이 그렇다면 해야죠.”
강 장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검찰이 독립적으로 수사할 여건이 갖춰졌다고 보십니까.
“그것보다는 원칙에 반한다는 생각에서 (특검에) 반대하는 겁니다. 정말 목숨 걸고 수사하고 있는데 ‘너 안 되겠다’며 도로 빼앗는 꼴이잖아요.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수사검사들이 느낄 낭패감을 생각해봐요. 일반 국민의 시각과 전문가 시각엔 갭이 있어요. 검사들은 수사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어요. 수사에 대한 철학이랄까 방법론이랄까. 저는 여기 와서 그걸 이해했거든요. 여론이 일일이 전문가 영역에 개입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모양은 더 안 좋아진 것 같아요. 거부권이 행사되고 재의결되는 바람에.
“특별히 더 나쁠 게 뭐 있겠어요.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강 장관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결국 검찰과 특검을 경쟁시키자는 것 아니에요? 이제 대선자금 수사와 측근비리 특검 수사가 같이가게 생겼잖아요. 어떻게 할 거냐구요. 수사로 도배질하게 생겼는데. 세계적으로 이렇게 특검 하는 나라는 없어요. 특검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건 옳지 않죠.”
강 장관은 기자가 검찰이 최근 일부 인사를 대선자금과 관련 없는 개인비리로 구속한 것을 거론하자 “특검 얘기 그만하죠” 하며 말을 잘랐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혐오감을 느껴요. 외형상 특검법 발의는 합당하고 타당해요. 법률적 구성요소도 갖추고 있고. 검찰 인사권자의 주변 사람들 문제니까 다른 데서 수사하자, 좋아요. 그런데 이것을 도입하는 과정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구요. 그런 순수한 의도에서 특검을 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얘기하다 보니 기분 나빠지네요. 상대방 약점을 잡아 자기 힘 과시하는 것과 뭐가 달라요.”
“도대체 뭐가 정의냐구요?”
강 장관은 특검을 추진한 정치권을 강한 톤으로 비난했다. “기사엔 넣지 말라”며 거친 표현도 사용했다.
“도대체 뭐가 정의냐구요. 절차상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동기와 의도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건가요. 동기와 의도가 명백한데. 총선 때까지 특검을 끌고 가 시끄럽게 만들고 망신 주겠다는 건데. 도대체 측근비리가 있는 대통령이 나쁜 거예요, 그것을 이용하는 한나라당이 더 나쁜 거예요. 어떻게 생각해요.”
강 장관은 측근비리라는 용어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측근비리라는 것은 대통령 재임중 측근들이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말해요.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는 건 대선 때 일이에요. 측근비리라는 말 자체가 안 맞는 거죠. 우리 사회엔 이런 식의 용어 인플레가 많아요.”
“특검 얘기 너무 오래했죠” 하고 강 장관이 제지하지 않았다면 특검 관련 질문을 더 던질 뻔했다. 기분 전환도 할 겸 ‘부드러운’ 얘기로 넘어갔다.
-대중적 인기가 대단합니다.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되는 걸 보면.
“자꾸 드러나는 게 뭐가 좋겠어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기분 나쁠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공직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건 긍정적 측면이 있죠.
“나쁠 건 없지만 특별히 좋을 것도 없어요. 나하고 관련짓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효리요?
“인기를요. 어느 정도인지 실감도 잘 못하겠구요. 신문에 매일같이 사진이 나더군요. 공직자의 업무수행에 대한 국민의 평가라고 받아들이고 싶어요. 인기가 있으니 별명도 붙었겠죠.”
-화내셨다면서요?
“그건 공보관이 잘못 전달한 거예요. 강효리라고 해서 화낸 게 아니고 공식 업무수행을 다룬 기사에서 제목을 강효리라고 붙인 건 곤란하지 않느냐는 뜻이었죠. 그런 경우 외에는 맘대로 불러도 상관없어요.”
-드라마 ‘대장금’에 빗대 강장금이라고도 하지요.
“상관없어요.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되죠. 그 드라마, 초기에 한두 번 봤는데 눈에 띄게 재미있더라.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추리적인 요소가 있어요. 그래서 재미있는 거예요.”
-강 장관의 높은 대중적 인기를 두고 여성적 리더십이 한국 사회에 먹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더군요. 장관께서 생각하는 여성적 리더십엔 어떤 특징이 있나요.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본의 아니게 제가 그 변화의 한 축에 서 있는 거죠. 그런 거지, 그것이 저와 바로 일치된다는 느낌은 못 받고 있어요. 젊은 여성이 법무부장관에 취임했다는 게 일종의 사건이었던 데다 변화에 대한 요구, 특히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가 강했잖아요. 그것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게 아닌가 싶죠.”
-여성성이라는 걸 의식하는 편인가요?
“그냥 편한 대로 살아요. 좋아하는 대로. 더 좀 그러고 싶은데, 사실은. 직업이 하도 얌전하게 지내야 하는 직업이라 맘놓고 못 그러죠.”
-국회에서 화장하는 것까지 화제가 됐었지요.
“점심 먹고 와서 잠깐 카메라가 안 보이기에 얼른 콤팩트를 했는데 찍혔더라구요. 아직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해요. 그래서 실수를 많이 하는 거죠. 기도하는 듯한 모습도 찍히고. 맘놓고 킥킥거리다가 녹음 당하고. 좀 둔해요.”
-대중적 인기라는 게 공인들한테는 긍정적 부정적 양 측면이 있을 텐데, 관심이나 기대나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지 않겠습니까.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의식하지 않아요.”
-시민들한테 편지도 옵니까.
“그건 모르겠고. 오다가다 잘해주죠. 물건값도 깎아주고. 선물도 주고. 백 사면 지갑도 주고.(웃음) 고맙죠. 미장원에서 머리도 잘라주고 화장도 고쳐주고. 잘해줘서 고마워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daum) 카페에는 강 장관 팬클럽 모임이 8개나 있다. 그중 ‘강금실 법무장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 회원 수가 5000명을 넘는다.
-인터넷 팬클럽 사이트에 들어가본 적 있습니까.
“어쩌다 한번요. 집에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아 자주 볼 수는 없고.”
-‘강금실 장관 5년 재임을 위한 모임’도 있는데요. 미국 클린턴 행정부 때 여성 법무장관인 재닛 리노는 8년간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 뜻대로 되겠어요?”
강 장관은 “법무장관이라는 자리가 이토록 많은 일을 하는 자리인 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여기서 잠깐 강 장관이 지난 10개월간 추진한 개혁 관련 업무를 살펴보자.
먼저 검찰 인사위원회 운영 개선. 자문기구에 불과하던 위원회를 심의기구로 격상해 실질적인 권한을 갖도록 했다. 또 검사장급 이상에만 해당되던 위원 자격을 평검사에게도 부여하고 외부인사를 2인 이상 참여토록 해 검찰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갖추게 했다.
다음으로 철저한 상명하복으로 검사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었던 검사동일체 원칙을 폐지했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규정을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로 개정했다. 또 위법하거나 부당한 지시에 대한 이의제기권을 신설했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준법서약서도 과감히 폐지했다. 아울러 인권보장기관으로서의 위상 확립을 위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제도를 개선하고 국선 변호 대상을 확대하는 한편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제도를 도입했다.
수사권 남용을 방지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검사적격심사제를 도입해 검사 임관 후 일정 주기마다 직무수행능력을 심사토록 했다. 말하자면 검사 재임용 심사인 셈이다. 또한 ‘제 식구 감싸기’ 시비에 휘말려온 감찰제도를 강화할 방침이다. 법무부 감사관실을 장관 직속 감찰실로 격상시키고 장관 자문기구로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대검 감찰부가 1차 감찰기구라면 법무부 감찰실은 2차 감찰기구가 되는 셈이다.
검사 직급 폐지와 단일호봉제 도입도 눈에 띄는 개혁방안이다. 검찰의 수직적 구조를 개선하고 검사의 신분보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현재 검찰총장-고검장-검사장-검사 4단계로 구성된 검사의 직급체계를 2단계로 축소, 고검장·검사장 직급을 폐지했다. 그에 맞춰 검찰총장을 제외한 모든 검사의 보수 체계를 단일호봉제로 변경했다.
“편하죠, 내일 당장 그만두면”
이 정도면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쌓인 과제들을 부임 1년도 안 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의 반발도 만만찮다. 그 탓에 강 장관은 지난 10개월 동안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현재 개혁업무를 총괄하는 부서는 정책기획단. 여기에 최근 검찰 내·외부 인사 13명으로 구성된 ‘제도개선연구팀’이 장관 직속기구로 발족돼 인사·조직 개편안을 연구하고 있다.
“하는 데까지 하다 가야죠. 일 자체는 재미도 있어요. 검찰 개혁과 관련한 제도개선 방안이 시행되고 정착되기까지는 몇 년 걸릴 것 같아요. 적어도 정착할 때까지는 지켜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교정행정도 개선할 게 많고. 그래서 주변사람들에게 오래 있겠다고 했는데, 사실은 내일 그만둬도 좋거든요. 편하죠 뭐, 내일 당장 그만두면. 가장 고통스러운 게 새벽에 일어나는 거예요.”
-보통 몇 시에 일어나시는데요.
“아침 약속이 있으면 7시 반에 나서야 되니까.”
-원래 야행성이신가 보죠.
“예.”
-그러면 보통 일이 아니네요.
“보통 일이 아니에요, 진짜로. 가을 들어와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고민이에요. 잠 때문에.”
-잠이 최대 걸림돌인가요, 장관직 계속하는 데.
“예. 잠하고 식사.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하니까. 아침 회의가 많으니 꼭 먹게 되죠. 점심때도 회의 끝나면 먹어야 하고. 저녁때 회식하면 또 먹어야죠.”
-식사량을 조절하시면 되잖아요.
“그게 안 돼요. 음식을 앞에 두고 안 먹을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이것 때문에 오래 못할 것 같아. 오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오래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어찌 보면 검찰 제도개혁은 이제 시작이거든요.”
-가장 큰 목표가 그것이군요, 검찰개혁.
“검찰개혁이 가장 중요하죠. 검찰이 제대로 돼야 나머지도 원활하게 돌아가죠. 2∼3년은 해야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힐 것 같아요. 검사들한테는 한 3년 하겠다고, 2006년까지 있겠다고 얘기했죠. 그런데 있고 싶다고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더라구, 와보니까.”
-우리도 이제는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장관이 나올 때가 됐지요.
“내가 검사들에게 2006년까지 있겠다고 얘기한 것을 대선 출마와 연결시키기도 하더라구요. 2007년 12월에 대선 있으니 1년쯤 전에 장관 그만두고 대선 준비한다는 거지.”
-그때 가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사람 팔자는 하늘의 뜻에 맡기는 게 좋아요.”
강 장관은 “내일 당장 그만둔다 생각하면 너무 즐거워요”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공직자 생활보다는 개인 생활이 훨씬 낫거든요. 놀아야죠. 놀 것 생각하면, 그만둬야죠.”
-몇 년 전 미국에서 한 장관이 아이들로부터 아빠 노릇에 충실해달라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사표를 내 화제가 됐죠.
“장관직에 업무수행 이상의 의미는 두지 말아야 돼요. 거기다 자신의 퍼스낼러티를 실으면 안 된다는 거죠. 내일 당장 그만둘 수 있을 정도로 태도가 객관화돼야 해요. 내가 장관이 됐으니까 무조건 오래 해보고 싶다는 태도는 촌스러운 것 아닌가요? 아까 인기에 대한 부담이 없냐고 물었는데 인기나 평가는 국민의 몫이고 나는 나대로 일을 하면 그만이에요. 인기가 떨어지면 할 수 없지, 내가 왜 부담을 가져요. 일 못하면 인기 떨어질 거고, 그럼 그만둬야지. 환기미술관에 와 즐기는 건 내 일이지. 하지만 공직이란 건 내 일이 아니잖아요. 국민의 일을 대신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 일 못한다는 평이 나오면 빨리 그만둬야지,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도록.”
최근 강 장관 관련 기사 가운데 화제가 된 것 중 하나가 민주당 추미애 의원과의 비교다. 강 장관이 나이와 사시기수로 1년 선배다.
-추미애 의원과 비교하는 기사를 보면 솔직히 기분이 어떠세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 뭐 언론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죠.(웃음)”
-기사거리 없으니까?
“글쎄, 언론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기사화되는 걸 보면.”
-자꾸 건드리니 추미애 의원 쪽에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던데요.
“총선 지나면 조용해질 거예요. (2004년) 2월15일 지나면. 2월15일이 총선에 출마하려는 공직자의 데드라인이거든. 그때 되면 안 나가는 게 확실해지니까 잠잠해지겠죠.(웃음) 어쩌려고들 그러는지 몰라, 내가 안 나가면. 그것 좀 물어보고 싶어요. 언론에선 어떻게 생각하는 거예요? 나갈 거라고 보고 있어요.?”
강 장관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기자가 “언론의 희망사항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자 또다시 “언론 나름대로의 사정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냐”며 한참 웃었다.
-예전에 국민회의에서 영입하려고 한 것은 사실인가 보죠?
“거짓말은 아니죠. 근데 나 궁금해. 나 안 나가면 어떡할라 그래요.”
강 장관이 또 웃어제꼈다.
-말씀하시는 게 꼭 나갈 것 같네요.
“아니, 재미있어서. (내가 나간다는 얘기를) 너무 퍼뜨려놓아서. 안 나가면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강 장관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안 나가면 안 나가는 대로 또 기사 만드는 거죠 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뭐 이렇게?”
-바람만 잡았다고.
“바람만 잡고….”
정계 소식통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이 최근 서울 강남 모 지역을 대상으로 강 장관 출마를 전제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나라당 중진인 모 의원을 더블 스코어로 눌렀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려주자 강 장관은 “우와, 진짜 인기가 있구나” 하고 즐거워했다.
“노는 게 꿈이야, 진짜로”
-열린우리당의 구애 공세가 대단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도 않아요. 하도 내가 시큰둥하니까. 이해를 하시죠, 제 성격을.”
-공식 제의는 없었나요.
“예. 괜히 그러는 거죠.”
강 장관의 제의로 차를 더 시켰다. 이번엔 기자가 샀다. 머리 스타일이 화제에 올랐다.
“파마머리 때문에 난리가 났었지요. 동네 미장원 갔다왔냐, 웬 아줌마냐 하며. 저는 미장원에 가면 따로 주문을 안 해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미용사가 알아서 해주거든요. 지난번엔 미용사가 한번 심하게 볶은 거지.”
-삶의 계획표라 할까, 나는 몇 살 때 뭘 하고 뭘 성취하고, 이런 계획표를 작성한 적이 있습니까.
“한번도 없었구요. 아무런 계획 없이 사는 사람이에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획 세우면 얼마나 좋겠냐만. 여기서 이제 잘 해봐야지 하고 맘 먹으면 꼭 다른 데로 옮기게 되더라고요. 판사 시절 초기엔 갈등이 많았는데 10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지요. 비로소 법률 전문가로서 기량도 쌓고 정진하겠다고 맘먹었는데 그때부터 가세가 기울어서 등 떠밀리다시피 개업을 하게 됐어요. 비참하게 개업한 거예요.”
1981년 사시에 합격한 강 장관은 2년 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로 부임했다. 이듬해인 1984년 운동권 출신으로 출판업을 하는 김아무개씨와 결혼했다. 변호사 개업을 한 것은 1996년. 남편의 출판사가 부도난 것이 원인이었다. 두 사람은 2000년에 협의이혼했다.
“빚 때문에 허덕지덕 변호사 하다가 로펌으로 옮겨가 대표까지 맡았죠. 원래 제 성격이 사교적이지 못해요. 개인 변호사 시절엔 민변을 통해 인권 분야 일만 했을 뿐 거의 대외활동을 안 했죠. 그런데 로펌 대표가 되니 비즈니스 관계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했어요. 다보스포럼도 다니고 경제인들도 만나고 골프도 했죠. 2003년 들어와 이제 본격적으로 잘해보자고 맘먹고 영어도 시작하고 골프도 죽어라 배우고 있는데….”
-영어회화요?
“그래요, 영어회화. 해야만 하니까. 외국 손님 만날 때도 많고. 그런데 갑자기 장관으로 오게 된 거예요. 여기서 열심히 해봐야지 하면 꼭 옮기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지금 자리는 좀 다르죠. 언제 그만둘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여기는 임기가 하루 이상 5년 미만이잖아요. 로펌 대표 할 때도 소원이 50살까지 돈 열심히 벌어 빚도 갚고 외국에 나가 공부도 하고 노는 거였어요. 노는 게 꿈이야, 진짜로. 지금도 이 꿈엔 변함이 없어요. 50살 이후엔 정말 다르게 살고 싶어요. 60, 70살 돼서 다른 생활 한다는 건 말이 안 되고요.”
-구체적으로 생각해둔 게 있습니까.
“생각중이에요. 일단 직업은 안 가질 생각인데.”
강 장관은 혼잣말처럼 “생각중”이라고 되뇌었다.
-그러려면 돈을 엄청 벌어야 할 텐데요.
“어떻게든지 생활은 할 수 있으면서 노는 방법을 찾아야죠. 법률가말고 딴 것. 지금은 방향만 생각해둔 상태죠.”
-자유롭게 사는 것?
“일단 자유롭게 사는 것.”
-춤도 마음대로 추고.
“응. 맘대로 추고. 잘 아시네.”
-연애도 하시고.
“마다할 리는 없죠.”
강 장관이 크게 웃었다.
-때가 있잖아요.
“때가 있으니 더 늦기 전에. 50대에. 60대는 너무 늦잖아.”
강 장관의 대중적 인기가 높아지게 된 데는 국회의원들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의원들은 국정감사와 대정부질의 때 강 장관을 유난히 자주 야단치고 호되게 추궁함으로써 그녀의 존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장관들이 본 업무 외에 시달리는 게 많죠. 특히 국회에 불려가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죠?
“굉장히 많이 차지하죠.”
-지난번 국감 때 김기춘 의원이 강 장관께 퀴즈를 냈죠?
“초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이름.”
-그때 어떠셨어요. 당황했을 법한데.
“당황했다기보다는 답을 모르니까.(웃음) 지금도 몰라요.”
-심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까.
“모르겠어요.(웃음)”
-그럼 “코미디야, 코미디”는?
“한심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때 (의원들끼리) 주고받은 말 자체가 정말 웃겼어요. 그래서 웃은 거예요. 말이 너무 웃겨서.”
2003년 11월14일 강 장관은 문제의 ‘코미디’ 발언 때문에 국회 법사위에 나와 의원들에게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잘못한 건 사과해야죠. 그런데 또 사과 너무 자주 한다고 (웃음) 법사위 의원 한 분이 야단치시던데요. 법사위 계신 분들은 남다르게 느껴져요. 묘하데요, 그게 참. 예결위 있다가 법사위 가면 꼭 고향에 온 기분이 들고. 의원들이 야단 치는 것, 다 일리가 있어요.”
-예를 들면요.
“대법관 자문회의 도중에 퇴장한 것 때문에 많이 혼났지요. 법사위에서 잘못한 게 없다고 대답했더니 다들 제가 잘못했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듣고 보니 제가 잘못한 것 같더라구요. 일종의 비판기능이죠, 견제기능이고. 굉장히 도움이 되죠, 업무 점검하는 데.”
-대체로 수긍하신다는 거죠?
“틀린 말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의례적인 사과가 아니고요?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해서 사과한 거예요. ‘코미디야 코미디’도 내가 혼자 한 말이지만 그게 공개되면 실수가 되는 거잖아요. 거짓말로 사과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왜 만날 나는 사과만 하냐고”
강 장관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혼잣말처럼 말했다.
“근데 사과를 너무 자주 하는 건 문제네. 사과할 일이 많으면 안 되지 않나.(웃음) 이상하네. 거짓말로 사과한 적은 없는데, 웬 사과가 그리 많았지. 그럼 안 되잖아. 왜 맨날 나는 사과만 하냐고.”
-저는 장관께서 어떤 의도를 갖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요.
“어떤 의도가 있어요?”
-적을 무력화시키는 방안이 아닌가, 사과로써.
“전혀.”
-특유의 여성성으로.
“고도의 정치적 전략 아니냐고? 전혀 그런 것 없어요. 일할 때도 없고. 국회 갈 때도 없고. 가능하면 진심으로 살려고 노력해요.(웃음) 모든 사람한테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죠. 성격이 그렇다 보니 공사 분간이 없어 보이죠. 그래서 사과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고.”
-장관이 몸담고 있는 참여정부 지지도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낮은데, 원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첫째는 일 못하는 것이고요.(웃음)”
-대통령이 들으면 섭섭해하겠는데요.
“솔직하게 말해 사실인 걸 어떡해요. 말하지 말까, 그러면.”
-아니, 말씀하세요.
“참여정부가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법치주의에 부합할 만한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봐요. 일 처리하는 데 원숙함을 보여주지 못했고 기량도 떨어졌죠. 또 하나 원인이 있다면 법치의 형식은 갖춰졌지만 실질적 법치가 구현될 기반이 약하다는 점이죠. 그 점에서 참여정부는 소수자정부로서 상당히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죠. 참여정부가 가진 원칙과 철학이 바람직하다면 잘 못해도 조금 기다려주고 격려해줘야 하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이 기회에 너 죽어라 하고 두들겨 패잖아요, 맘에 안 드니까.”
강 장관은 잠시 쉬었다가 말을 계속했다.
“원래 못할 때는, 인기 없을 때는 남 탓하면 안 되거든요. 자기 탓을 해야지.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과 제 생각이 맞지 않을 때가 종종 있어요.”
-예를 들자면요?
“특검이 그렇잖아요. 북송(대북송금) 특검이 도입될 때 저는 국회에 재의 요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대통령께서 그냥 수용하셨죠.”
-그 뒤에 특검을 연장할 때는 그 반대였죠? 장관은 특검이 끝까지 마무리해야 한다고 연장을 주장했고….
“(연장)해야 한다고 건의했는데 반대하셨죠. 그럼에도 대통령을 굉장히 존경하고 신뢰해요. 참 특이한 분이에요. 나름대로의 정치철학을 갖고 진실만을 말하거든요. 정치꾼적인 발언을 전혀 하지 않으세요. 잘 되도록 도와드려야 하는데, 마음이 무겁죠.”
-인터넷에 이런 얘기가 있던데요. 노 대통령이 인기가 없으니 강 장관이 더 인기가 있는 거라고.
“그런 측면도 있다고 봐요. 왜냐하면 법치주의를 원칙으로 삼는 정부에서 대통령 인기가 낮으면 각료들한테 인기가 쏠릴 수 있죠.”
거울 앞에 선 강 장관. 50대엔 춤도 추고 연애도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지난번에 검사들한테 이메일 편지를 보내신 게 화제가 됐는데 나중에 쑥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까.
“그런 생각 안 했는데.(웃음)”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던데요.
“그래요?”
-검사들에게 친근감과 애정을 표시한 건 충분히 이해되지만….
“다시 한번 읽어볼게요.”
-그 편지를 두고 말이 많더라고요.
“과하다고?”
-그렇죠. 평소 검찰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그런 글을 많이 올렸던 것 같던데요.
“그럴 수 있겠죠.”
-민변 소속의 인권변호사 출신이 어떻게 검사들에게 그토록 강한 호감을 표시할 수 있냐는 거죠.
“정서적 측면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봐요. 나쁜 사람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는 게 아닌가요. 몇몇 동료·후배 변호사들도 그 문제로 저를 비판하더라구요. 부정적 측면이 크다고.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매우 실망하고 있다고. 그 비판은 충분히 공감해요. 다만 이성의 공간에서 누군가에 대해 좋다 나쁘다 하는 평가와 인간적 측면은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서의 흑백논리가 존재하는 사회는 굉장히 편협한 사회이고 갈등 해결이 잘 안 되는 사회죠. 근데 그건 일반적 얘기고요. 제가 원래 성격이요, 성향이나 입장으로 사람을 가르지 않고 생각이 어떻든 직업이 어떻든 봐서 좋으면 좋아해요. 아마 과하다 생각됐다면 느낌이 강렬했기 때문일 텐데.”
-취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문제삼는 건 표현이에요. 조금 절제했으면 좋았겠다 싶던데요.
“취향이 그런 걸 어떡해요. 내 글이 원래 그런데요.”
-사신이라면 또 다른데, 공개됐으니….
“공개를 전제로 한 건 아니잖아요. 남의 편지 들여다보고 욕하는 것과 똑같아요.”
-대상이….
“대상이 뭐 어때서요. 남이 편지 쓰든 말든 왜 밖에서 문제삼죠. 검사가 어때서요. 얘기해보세요.(웃음)”
-다수를 상대로 한 거니까.
“나는 그냥 내키는 대로 한 건데. 그러니까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인가봐, 상식으로 볼 때. 그런 것 아니에요?”
-답장 많이 왔죠?
“많이 왔죠.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사신 오간 걸 들여다보고 감 내놔라 콩 내놔라 하는 건 웃기는 일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맞죠. 그런데 공개가 됐으니까.
“검사들이 또 쓰라고 하는데 어떡하지. 또 공개될까봐 못 쓰겠네. 연하장을 쓸까.”
-비판적인 견해를 보낸 검사는 없었습니까.
“비판하는 사람이 답장 보내겠어요. 가만히 있지.”
실내 음악이 언제부터인지 피아노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요란하지도 착 가라앉지도 않은, 편안한 느낌의 곡이다.
부임 초기와 달리 현재 검찰에는 강 장관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검사가 많다는 게 중론이다. 일부에서는 강 장관의 조직 장악력에 의문을 표시하지만 새 정부 출범 직후 소용돌이쳤던 검찰 조직이 안정을 찾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제가 들은 얘기로는 검사들의 반 정도는 강 장관께 호감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만난 한 검사는 “반 되려면 멀었다. 이제 30% 정도”라고 깎아내리더군요. 어떻게 느끼세요, 검사들과의 관계?
“초기와는 많이 달라졌죠. 그때는 살벌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구요. 일단 내가 신경 안 쓰게 되고 편안해진 게 바뀐 거죠. 자기와의 싸움이 가장 중요해요. 상대방이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에 개의치 않고 마음이 편한 상태가 된다는 게 중요하죠. 그래야 자유로워지죠. 결국 사람한테 자유라는 건 마음의 구애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은데요.”
-송광수 총장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과 보신탕집에서 만났을 때 폭탄주를 대여섯 잔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그 정도 먹었죠.”
-원래 폭탄주를 좀 하셨나요?
“그 전에도 먹었는데, 요즘은 안 먹어요. 힘들어서. 와인만 먹어요.”
-그날 회동 결과는 만족하세요?
“내 마음의 문제죠. 만족하냐 아니냐를 떠나.”
-송총장과 따로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그 얘기는 안 하는 게 좋겠어요.”
강 장관은 “그러니까 검사들에게 메일 보낸 것, 보신탕집 회동… 전부 사건이구만. 사건에 관심이 많구만” 하면서 약간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비쳤다.
-딱딱한 얘기를 조금 더 해야겠는데, 송광수 총장이 장관과의 인사협의를 명문화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지요.
“나올 수 있는 얘기죠.”
-그거, 계속 갈등이죠?
“갈등이랄 것까진 없구요. 총장님하고도 얘기를 충분히 했어요. 과거에 인사 난맥상이 있었기에 장관이 가진 인사권―엄밀히 얘기하면 인사 제청권인데―에 대한 견제랄까 인사권을 공정하게 하기 위한 장치는 필요한 거죠. 그 방법의 하나로 검찰에서는 총장 협의 명문화 얘기가 나오는 거고.”
-장관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 혼자 결정할 순 없죠. 왜냐하면 인사위원회를 심의기구화했잖아요. 또 청별 보직인사는 지검장에게 맡기는 등 인사권을 분산하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어요. 지금은 인사제도의 틀을 어떻게 짤 것인가, 그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상황이에요. 협의권만 딱 떼내 생각할 단계가 아니죠.”
-지검장한테 인사권을 나눠준다는 얘기는….
“지금은 법무부가 ‘서울지검 형사1부’까지 발령을 내요. 그러지 말고 ‘서울지검’까지만 발령을 내자는 거죠. 부 배치는 검사장한테 맡기고. 지금도 평검사 보직인사는 검사장이 하는데 부장급 이상은 법무부에서 하거든요. 인사위원회 심의기구화도 선례가 없어 어떤 식으로 갈 건지 답이 안 나와 있는 상황이에요. 인사위원회에 총장을 대리한 대검차장이 참석해요. 고검장, 지검장 대표, 부장검사 대표도 오죠. 평검사 대표도 와요. 그러면 인사위원회에서 심의하는 건 뭐고, 총장 협의는 또 뭐냐는 거지.”
-인사위원회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뒤에서 장관이 인사권을 주무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아닐까요.
“장관이 갖는 게 당연하지.”
-당연하죠. 그런데 과거 관행으로 보면 총장 몫이란 게 있다는 거죠.
“과거 관행이란 게 실은 파워게임이었어요. 총장한테 굉장히 많은 부분을 준 적도 있고 하나도 안 준 적도 있죠. 그러면 협의권을 명문화하면 그 몫을 줘야 하나. 협의권 명문화에 인사권 일부를 주는 게 포함되나요. 협의라는 게 뭔데. 정치적 발언이라고 봐요. 의미가 명확하지 않잖아요. 뭐를 말하는 걸까요 협의라는 게. 협의의 명문화가.”
-인사에 대한 검찰의 불만과 불안을 나타내는 발언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럴 이유가 뭐 있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기업을 보면 노사간 협의라는 게 있잖아요. 협의만 돼도 어느 정도 견제가 된다고 보거든요.
“저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법률상 협의의 개념이 살아 있는 곳이 노동조합밖에 없는 것 같아 연구해보려구요. 합의라고는 할 수 없는 것 아니에요. 인사권이 장관한테 있으니.”
“억압하면 화염병 나오는데”
-노사관계에서도 노상 다투는 게 그거잖아요. 단체협상할 때 노조는 합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 하고 회사는 협의 수준을 유지하려 하고.
“이렇게 하면 되지 않나. 인사안을 만들어 (총장에게) 보여주고, 가능하면 그쪽 의견을 받아들이고. 이게 협의 아닐까. 모르겠네.”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 중 하나가 공권력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과 야당은 화물연대 파업, 조흥은행 파업, 한총련 문제, 양대 노총 시위, 부안 사태 등 힘과 힘이 부딪치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공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고 비판해왔다.
-법질서에 관해 몇 가지 묻겠습니다. 공권력 약화로 인한 국가질서의 혼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무엇이든 공권력으로 제압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죠. 그 단계를 뛰어넘었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우리 머릿속에 과거의 망령이 살아 있다고 봐요. 용어의 오·남용도 문제고.”
-정부가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다 보니 점점 행동강도나 요구하는 바가 커진다는 비판이 있죠.
“그렇다고 억압을 하겠어요. 억압한다고 해결되나요. 억압하면 화염병 나오는데.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큰 원인 중 하나가 실정법이 굉장히 무시당해왔다는 거예요. 정부로부터도 실질적 정의가 무시당하고, 노동자나 정부에 대항하는 세력도 실정법은 지킬 필요도 없는 것처럼 무시해왔고. 법에서만 해결방식을 찾아선 안 된다고 봐요.”
-해결책을 찾는 게 쉽지 않아 보여 걱정스럽습니다.
“정부는 노사정 합의 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데, 우선 우리 사회가 매우 비정상적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파업이 이렇게 많은 나라가 없어요. 노동자가 이렇게 많이 구속된 나라도 없고요. 파업 나면, 물론 공권력이 제압해야겠지요. 악순환이죠. 공권력 투입,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국민들 의식 속에는 우르르 몰려가 막 때려잡는 공권력만 있거든요. 아무리 답답해도 법절차라는 게 있는데. 저도 고민이에요, 파업 문제는.”
-우리 사회의 법질서 의식이 어느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건가요.
“불가피하긴 한데 다른 해결방식을 찾아야지. 정치파업화됐거든요, 지금은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게 왜 생겼는지 알아보고 풀어줄 건 풀어줘야지.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국회가 (의석 배분이) 국민의 지지도에 맞게 구성되는 게 맞지 않나요. 선거법을 바꿔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합리적 정책대결의 공간에서 정치적 주장을 하도록 하는 게 근본 해결방식이 아닐까요.”
“친척 중에 송씨 있냐”
외국인 노동자 불법체류와 중국 동포의 국적 요구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다가와 “문 닫을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오후 5시였다. 강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 “단속만으로는 안 된다”면서도 “불법체류를 마냥 내버려둘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인권 문제를 제기하자 “인권만 강조해서는 일이 풀릴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인권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책의 문제죠. 인구 문제, 영주권 허용 문제, 고용허가 문제 등 여러 측면에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해요.”
강 장관은 약속이 있다며 일어설 채비를 했다.
-얘기 좀더 해야 하는데요.
“약속한 세 시간이 지났는데. 다른 약속이 있어서요.”
-처음에 전시관 둘러보고 사진 찍는 데 잡아먹은 시간은 빼야죠.
“서초동 가야 하는데. 차에 타실래요? 차 타고 가면서 하죠.”
기자는 길이 많이 막히길 바라며 강 장관의 차에 올랐다. 앞 좌석엔 비서가 탔다. 강 장관은 “특검 얘기하느라 시간 낭비했다”며 특검 얘기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송두율 얘기는 피곤하시죠?
강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진짜 궁금하거든요, 송두율 문제는. 장관님이 애초 관용적인 말씀도 하고 해서.
“나도 모르겠는데, 지금은. 하도 볶여서 생각도 하기 싫은데.(웃음) 심지어는 친척 중에 송씨가 있지 않냐는 얘기까지 들었잖아요.”
-국회의원이 그런 질문을 했던가요.
“예.”
-정말 수준 낮은 질문이네요.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겠죠. 정치인들 수준 욕하는 것에 나는 별로 동의 안 해요. 자기네는 뭐 얼마나 고상하다고 만날 정치인들 욕하나.(웃음)”
강 장관이 변호사 시절 수임한 사건 중 가장 특기할 만한 게 작가 장정일씨의 음란문서제조죄 사건이다. 문제가 된 작품은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내게 거짓말을 해봐’이다. 온통 섹스 얘기인 데다 직설적인 성기 표현과 포르노를 무색케 하는 성행위 묘사로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검찰에 제재를 권고해 사건화됐다.
장정일을 위한 변론
-저도 그 책을 봤는데 거의 포르노에 가깝지 않나요.
“독일에서는 포르노라 해도 음란물은 아니라고 봅니다. 포르노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는 거죠. 그 사건에서는 포르노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사법처리 대상이냐 아니냐가 관건이었죠. 이제는 검찰이 사법처리 한다고 하면 내가 안 된다고 반대할 수 있겠어요.(웃음) 그때는 변론하는 입장이었고 지금은 지휘감독자인데.”
-결국은 표현의 자유 문제인데, 검찰의 잣대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검찰이 앞으로 업무 전문성을 갖추는 것과 관련된 문제예요.”
-검찰에서는 구속을 안 시키면 자기네가 할 일을 제대로 안 한 걸로 여기는 풍토가 있는 것 같아요.
“구속재판 문제는 워낙 오래된 문제예요. 불구속재판으로 가야 하는데, 쉽지 않죠.”
-검사들 의식도 문제 아닌가요.
“국민들도 구속돼야만 처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니.”
2001년 출간된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라는 책은 여러 작가들이 장정일의 작품세계에 대해 평한, 일종의 장정일론이다. 이 책에는 당시 ‘지평’ 대표변호사였던 강 장관의 변론기 ‘장정일을 위한 변론’도 실려 있다. 법적인 분석 외에 문학적 해석도 곁들였는데 그 수준이 웬만한 문학평론 뺨친다.
강 장관은 이 글에서 ‘재판 당시 내가 도달한 생각의 끝지점은 장정일의 소설이 표현에서 외설(음란)이기는 하지만 예술이므로 형법에서 말하는 음란에는 해당할 수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있는 다음의 글이 눈길을 잡아끈다.
‘나는 모든 사물과 사람을 그의 이름으로 부르고―우리 사회 호칭의 복잡한 권위적 구조, 성기를 공개적으로 그 이름으로 부르지 못하는 은폐성을 생각해보라―가능한 한 육체가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놓여 원하고 충족하고 사랑하며 서로가 타인의 육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 아마도 이것은 나만의 꿈이 아니며 삶에 지친 몸을 달래는 모든 사람이 밤마다 혼자 잠들면서 꿈꾸는 사회일 것이다. 앞선 사람인 작가로서 그와 같은 꿈에 도전한 장정일을 위하여, 이 사회의 모든 장정일을 위하여 나는 변론하고 싶다.’
“나는 왜 재산이 없지?”
강 장관은 재산 공개 때 9억원대의 빚을 신고해 화제가 됐다. ‘지평’ 퇴직금 등으로 일부를 갚아 현재는 6억원 가량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빚 갚으려면 멀었죠?
“예. 빨리 (장관) 그만두고 빚 갚아야죠. 미련이 없어요.”
강 장관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소 지친 기색이다. 강 장관은 현재 언니와 함께 서울 강남의 64평형 빌라에 살고 있다. 지난해 강 장관이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강 장관의 언니는 동생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명의로 돼 있는 이 집을 시가에 조금 못 미치는 6억5000만원에 내놓았다는데, 아직 팔리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