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 대통령, 집권당 분당시킨 것 국민심판 받아야
-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총선 목표는 당연히 원내 제1당
- 열린우리당 외부 영입인사들은 급진개혁세력
- 민주당 전당대회는 인적쇄신의 출발점
- 민주당 계승한 우리는 DJ와 ‘역사적 인연’있다
- 한나라당이 당리당략 차원에서 제안한다면 대선자금 특검 응하지 않을 것
- 제왕적 대통령은 헌법 때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든 것
조 대표 취임 보름이 채 안 된 지난해 12월10일 국회 도서관 열람실에서 그를 만났다. 원래는 여의도 민주당사 대표실에서 인터뷰를 갖기로 돼 있었지만 “대표실은 손님이 자주 찾아와 산만하다”면서 그가 도서관 열람실로 자리를 옮겼다.
-‘조순형 효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무슨 ‘효과’라니요. 송구스러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정치적 자산)이 뭔지 몰라도 시대나 국민이 요구하는 지도자상이 과거와는 달라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당 위기를 극복했고, 당의 모든 구성원들이 단결해서 전당대회를 비교적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치렀고, 새로이 출발했고…, 뭐 이런 것들이 국민들로부터 평가를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 자신이 뭘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노 대통령 분당, 국민심판 받아야
역시 겸손은 조 대표 최대의 무기다. 자신을 내세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천성도 그렇거니와 정치인으로서 오랜 비주류 생활 끝에 터득한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민주당의 정국 대처가 옳았다는 뜻도 되겠네요.
“재신임 정국, 대선자금 정국, 특검 정국에서 우리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재신임 국민투표는 위헌이라 안 된다, 대선자금은 모든 당이 고백성사한 후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 사면은 있을 수 없다, 특검은 대통령 측근비리를 수사하는 것이므로 특검이 발동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우리는 헌법 절차에 따라 지체 없이 재의결해야 한다고 했고, 재의(再議) 표결 때 소속 의원 거의 전원이 찬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회 정상화를 앞당긴 것이지요. 이런 것들이 작용해 상승세를 낳았지만 문제는 이런 상승세를 앞으로 어떻게 유지해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봅니다.”
화제를 곧바로 총선으로 돌렸다. 어느 총선이 그렇지 않겠는가마는 17대 총선의 의미는 정말 각별하다. 작게는 노무현 정권의 명운을 결정하고, 크게는 한국정치의 판을 바꾸는 일대 전기가 되리라는 관측이 많다. 각 당은 몇 석이나 얻을 것인가, 지역구도는 타파될 수 있을 것인가, 정치의 질과 내용이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인가…. 조 대표는 대표경선 때 정견발표를 통해 ‘총선에서 반드시 제1당을 만들어 국정 난맥상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민주당에게 이번 총선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제1당 목표는 아직도 유효합니까.
“물론입니다. 현실적인 여건이 어렵기는 하지만 제1당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번 총선의 의미를 저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는 노무현 정권 1년에 대한 평가이고, 두 번째는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을 깨고 신당을 만든 데 대한 심판이고, 마지막은 정치개혁의 발판을 만드는 것입니다. 노 대통령이 민주당을 깨고 탈당한 것은 단순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분당, 탈당 같은 정치적 행위가 아닙니다. 정치도의와 윤리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대통령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당을 스스로 깨고 뛰쳐나간 것은 동서고금에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대선 때 지지자들은 노 대통령을 민주당 후보로 보고 표를 준 것입니다. 집권 초기, 내외적으로 나라 사정이 정말 안 좋을 때 집권당을 분당시킨 데 대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민주당을 지키기로 한 우리들의 선택에 대해서도 심판을 구할 것입니다. 정치개혁은 사회개혁 중에서도 가장 앞에 와야 할 명제입니다. 노 대통령도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을 내걸고 당선됐습니다. 지역구도를 깰 수 있는 사람이다, 가장 서민적인 정치인이다, 그래서 정치개혁도 앞장서서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해서 국민이 노 대통령을 선택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이 이인제 대세론, 이회창 대세론, 그리고 정몽준 돌풍을 모두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개혁 하라는 국민의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정치개혁 하면 상향식 공천부터 얘기하는 게 순서다. 학자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상향식 공천이 안 되고 밀실 공천이 되기 때문에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중앙당이 공천권을 틀어쥐고 있어서 정당의 민주화도, 정치판의 물갈이도 안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인식은 상향식 공천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능력 있는 신인들의 정치권 진입을 막는 암적 존재가 상향식 공천이다.
당원들이 직접 투표로 후보를 뽑는다니, 이론적으로 보면 참된 풀뿌리 민주주의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지구당 당원이나 대의원들은 거의 대부분 현 위원장의 친인척이거나 위원장이 오랫동안 이런저런 인연으로 관리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을 상대로 경선을 한다면 정치 신인은 백전백패할 게 뻔하다. 과거 양 김은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현역 의원들을 강제로 주저앉히고 새 인물을 경쟁하듯 영입했다. 양 김은 그럴 만한 권위와 힘이 있었다. 양 김이 아니었다면 양식 있는 재야 출신들이 과연 지금처럼 금배지를 달 수 있었을까.
양 김이 물러난 지금 상향식 공천은 신인들의 무덤이다. 지구당 위원장인 현역 의원들은 죽을 때까지 의원직을 내놓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는 대대손손 물려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일부 의원들 사이에선 ‘이번만 무사히 넘기면 (상향식 공천이 완전히 굳어지는) 다음 총선부터는 공천 걱정을 안 해도 되니 10선도 문제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상향식 공천을 두고 이런 저런 걱정들이 많습니다.
“상향식 공천은 저희가 제일 먼저 주창했고 실천한 것입니다. 대통령후보를 경선으로 뽑은 것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미국식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도입해 성공한 거지요. 물론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지구당이 경선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신인들이 뚫고 들어가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상향식 공천은 대세이고 시대적 흐름입니다. 다만 말씀하신 그런 폐단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보완 장치를 갖출 생각입니다. 저희는 경선에 전 당원이 참여하는 방안, 당원과 일반 국민이 50%씩 참여하는 방안, 당원과 일반 국민의 참여에다가 여론조사를 추가하는 방안 등을 놓고 지구당들이 이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특히 여론조사를 추가하면 공정 경선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좋은 인재를 놓칠 경우에 대비해 중앙당에서 엄격히 심사해서 단수후보를 낼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에선 단수후보를 30%까지 내겠다고 합니다만 우리는 숫자까지는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기득권 안주할 수 없다
-공천 물갈이 폭은 어느 정도나 될 것으로 봅니까. 한나라당은 전체 현역의원의 35%를 갈겠다고 하고 영남은 절반을 바꾸겠다고 합니다만….
“숫자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희는 분당이 됐기 때문에 227개 지구당 중에서 78개 지구당을 빼고는 전부 해체됐거나 지구당 위원장들이 탈당한 상태라 상대적으로 물갈이 부담이 적습니다. 78개 지구당도 파격적인 방법으로 물갈이 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운동방식, 즉 특정인을 지목해서 누구누구는 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물갈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우선 저희 당이 감당을 못 합니다. 분당이 된 것도 인적쇄신 문제 때문 아닙니까. 물갈이는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이번 전당대회 경선도 인적쇄신의 출발이었습니다. 앞으로 지구당 경선, 총선도 있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기득권에 안주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몇 석이나 얻을 것 같습니까.
“의석수까지 전망할 수는 없고…. 분당으로 빼앗긴 정권의 절반을 총선을 통해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노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이기 때문에 지지자들이 표를 준 것입니다. 어떻게 지지자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당을 바꿀 수 있습니까. 헌법소원을 낼지 검토는 안 해봤지만 헌정질서 파괴행위입니다. 그래서 빼앗긴 정권의 절반을 되찾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심플한 메시지를 가지고 한나라당과 양당 대결구도로 몰아갈 생각입니다. 파괴된 일선 조직을 재건하고 수도권에서 좋은 인재들을 영입해서 경쟁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조 대표는 이 대목에서 다시 노 대통령의 탈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해할 만했다. 민주당이 분당된 채로 총선을 치르면 지지기반이 양분돼 한나라당만 어부지리를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은 정치에 식견이 없는 사람도 알 수 있는 일. 분당 이후 각종 여론조사가 이를 확연히 보여준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한나라당을 크게 앞서지만 나누면 어느 당도 한나라당과 게임이 안 된다.
편의에 따라 DJ를 중심축으로 한국정치의 인구지형을 살펴보면 3공 이후 반 DJ와 친 DJ의 비율은 대체로 6대4를 유지했다. 전체 유권자의 60%는 반 DJ, 40%는 친 DJ 지지성향을 보였다는 얘기다. 친 DJ 40%면 전체의석 273석의 109석쯤 된다. 결국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109석을 놓고 나눠먹기를 해야 한다. 절반씩 먹는다고 하면 54~55석을 얻는다. 두 당 중 어느 한 당이 독식하지 않는 한, 지역구도에 기초한 정치판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한, 이 계산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총선에서 민주당이 70여석, 열린우리당이 30여석 정도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어떻든 분당은 민주당으로선 치명적이라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열린우리당과의 통합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요.
“통합을 안 하고 그냥 가면 한나라당 의석이 늘 가능성이 많겠지요. 그러나 저는 우리 국민이 어리석지 않다고 봅니다. 정치적 식견이 매우 높습니다. 한나라당 의석이 이미 과반수를 넘었는데 의석수를 더 늘려주겠습니까. 줄면 줄었지 늘지는 않을 것입니다. 1988년 13대 총선을 보세요. 1987년 12월 대선에서 YS, DJ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쉽게 당선되자 집권당인 민정당은 이어 있을 13대 총선에서 너무 압승을 거둘까봐 오히려 걱정했습니다.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것 같다는 전망이 나와 집권 여당 측에서 오히려 총선 분위기를 과열시키지 말자는 얘기가 나왔으니까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총선구도 역시 양 김의 분열로 여당은 하나인데 야당은 DJ의 평민당과 YS의 민주당으로 갈려 있었거든요. 민주진영의 고민은 컸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헌정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로 나타났습니다. 평민당 70석, 민주당 59석, JP의 공화당 35석을 합쳐 164석(전국구 포함)으로 민정당의 125석보다 39석이나 많았던 것입니다. 평민당과 민주당 의석만 합쳐도 민정당보다 4석이나 많았습니다. 국민이 노태우 정권을 견제하라고 총선에선 야당에 표를 몰아줬던 것입니다. 물론 그때는 양 김이라는 강력한 정치지도자가 영남과 호남이라는 확고한 지역기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소야대가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해도 정치사적 선례에 비춰볼 때 이번 선거에서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봅니다. 그렇더라도 재통합이나 연합공천은 어려울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민주당에서 간 사람들과는 혹 얘기가 될지 모르나 외부에서 영입된 개혁세력들과는 얘기 자체가 안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사회개혁을 원하는 급진개혁 세력입니다. 중도개혁인 우리 민주당과 가치관부터가 다릅니다. 그들 역시 우리를 부패한 기득권 세력으로 보지 않습니까. 노 대통령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고요.”
총선에선 역시 정치개혁이 화두가 될 것 같다. 정치개혁을 실천하기 위해서 각 당이 얼마나 진지하게 노력했느냐가 유권자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연말 대선자금 정국 속에서 정치개혁 입법이 채 마무리되지 못했지만 각 당과 중앙선관위,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등은 나름대로의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초점은 역시 ‘돈 안 드는 선거와 투명한 정치자금’의 구현에 모아진다.
-백화제방을 방불케 하는 정치개혁 논의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정치자금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분야들은 제도적으로 거의 다 잘 돼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실천입니다. 법을 제대로 지키면 될 텐데 안 지키면서 법과 제도 얘기만 합니다. 물론 법이 현실과 유리됐다면 고쳐야겠지요. 저는 앞으로 정당 내부의 선거도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보 경선이나 당직 경선은 외부에서 규제 감독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사법기관이 개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당 내부의 선거가 정당 밖의 선거를 선도해야 할 텐데 오히려 타락 선거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당내 정치의 과잉’이 문제입니다.
당직이라도 하나 하려면 각종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이곳저곳에 얼굴도 비쳐야 하고, 이러니 무슨 정치개혁이 되겠습니까. 미국에는 전국위원회만 있지 중앙당 조직이라는 것이 없어요. 당내 정치를 축소하고 ‘원내 정치’로 가는 것이 정치개혁의 핵심입니다. 지구당 폐지의 경우 현 정당법상 지구당이 정당 설립요건으로 돼 있기 때문에 정당법을 바꾸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는 어렵고, 17대 총선 이후에는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DJ, 흔쾌히 ‘모두 오라’ 했다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과 정치개혁 방안을 놓고 토론한 적이 있는데 유 수석은 지역구도 타파를 개혁의 핵심으로 보더군요.
“저희들이 분당을 반대한 것도 분당이 오히려 신(新) 지역주의를 고착화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역구도 타파에 당장 묘안은 없습니다. 중대선거구제에 권역별 정당명부제를 통해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소선거구제를 지지하고 있고, 또 국회 임기 말에는 선거구제를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는 틀린 것 같습니다. 17대 국회가 구성되면 그때부터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국회 도서관 의원열람실에서 인터뷰 중인 조순형 대표. 그는 어떤 정치인보다 정치현안에 대한 소신이 분명했다.
“지지 기반인 호남을 확고히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DJ의 암묵적 지지를 받아내기 위해 간 것은 아닙니다. 50년 전통의 민주당 대표 자격으로 인사드리러 간 것입니다. 제 선친께서 민주당 창당 초기 대표최고위원도 하셨고…. 민주당을 계승한 저희는 말하자면 DJ와 ‘역사적 인연’이 있는 거지요. 저희들이 찾아가겠다고 하자 DJ가 흔쾌히 ‘모두 같이 오라’고 했는데 이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봅니다.”
-올해 정국도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노 대통령이 재신임 국민투표 제의를 철회하면 국정운영에 협조하겠다고 했는데.
“재신임 국민투표 방안 자체가 위헌적 발상인 데다가 사회, 정치 불안의 근원입니다. 재신임받으면 국정 쇄신하겠다고 했지만 (불가능한) 재신임을 기다리지 말고 국정 쇄신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내각과 청와대부터 전면 개편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바꿀 수는 없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라고 제의하는 것입니다. 측근 비리는 특검에 맡기기로 했으니 지켜봐야 하겠지만 대선자금 비리는 성격상 특검이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수사 결과 형평성이 현격히 결여됐다면 대선자금 특검도 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당리당략 차원에서 검찰 수사를 모면하기 위해서 들고 나온다면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고보조금 30%는 정책개발에 쓸 터
-한나라당이 개헌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고 있습니다. 최병렬 대표는 2007년까지 분권형 대통령제로 권력구조를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지난 대선에서 저희 당이 공약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16대 국회에서 개헌은 불가능합니다. 17대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겠지요. 단임제의 폐단도 없지 않지만 저는 헌정의 안정을 위해 자주 개헌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모두 9차례의 개헌이 있었고, 한 권력구조가 10년 이상 지속된 적이 없습니다.
현행 헌법은 6·29 민주항쟁의 산물이자, 장기집권의 폐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산물입니다. 지금까지 15년간 지속됐으며 대통령이 4명 나왔습니다. 우리 헌정사에 15년간 지속된 헌법이 없습니다. 30년쯤은 해봐야 합니다. 제도적으로 보완하면서 가면 됩니다. 제왕적 대통령이 나오는 것은 헌법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내각구성도 헌법상 권한이 총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총리가 대폭 쇄신을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고건 총리에게 ‘왜 대통령에게 재신임 철회를 건의하지 못하느냐’고 나무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특검법안 거부권도 대통령의 고유권한이 아닙니다.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동의, 즉 부서(符書)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누가 부서를 거부한 적이 있습니까. 대통령이 인사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루라도 장관을 더 하려고 거부를 못하는 것 아닙니까.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이 헌법상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얘기가 계속되면서 조 대표를 ‘쓴 소리’나 잘하는 정치인으로 알면 안 되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됐다. 정치 현안에 관한 한 그는 필자가 만난 어떤 정치인보다 정리가 잘 돼 있었고 소신이 분명했다. 민감한 현안에 대해선 세세한 내용과 숫자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가 주요 정책에 대한 그의 생각은 거의 알려질 기회가 없었다. 5선 의원에 국회 교육위원장과 법사위원장을 지낸 중견 정치인이지만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릴 노력을 거의 안 한 탓일 것이다.
-대북정책을 비롯한 국정 현안에 대한 대표의 견해를 듣고 싶어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민주당의 노선과 같습니다. 6·15 선언을 지지하고 DJ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뭐 이런 정도지요. 다만 햇볕정책 추진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나 야당의 초당적 협력을 얻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북한 인권, 탈북자 납북자 문제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거론해야 됩니다. 이라크 파병은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약속한 만큼 지켜야 합니다. 한미동맹은 국가의 생존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경우에도 전투병과 비전투병의 비율, 주둔지역 등에 대해선 국회 진상조사단의 보고와 한미간 논의 등을 통해 결정해야겠지요. 민생과 경제에 대해선 당의 정책이 있으니 구체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고…. 다만 정책정당을 지향하기 위해 이번에 정책위원회를 중앙당에서 분리해 원내대표 밑에 두기로 했습니다. 국고보조금도 30%는 정책개발에 쓰도록 돼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나아질 것입니다.”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스스로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정치력 포용력 친화력이 리더십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저도 사무총장을 비롯한 여러 당직을 했는데 당대표로서는 성품이나 친화력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위기 상황에선 원칙과 정도에 기초한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 저 같은 사람이 당대표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원칙, 정도, 도덕성에 기초한 지도력이 뭔지 고민해보겠습니다. 또 민주당이 집단지도체제니까 상임중앙위원들과 잘 협력해야겠지요. 1985년 12대 총선 때 처음으로 출마하라는 권유를 형(조윤형 전 의원)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았을 때 제가 한사코 사양했던 것은 정치자금을 만드는 기술도 없고, 남에게 부탁 한번 못하고, 사람을 잘 사귀는 친화력도 없고 해서였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할 자리는 아니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 운이 좋아서였습니다.”
-특별히 사표로 삼을 만한 분이라도 있습니까.
“14대 교육위원회에 속해 있으면서 우연히 다산 정약용을 접하게 됐는데 지금도 다산에 심취해 있습니다. 최근에도 다산 연구가인 박석무 전 민주당 의원이 다산에 관한 책을 한 권 보내줘 숙독하고 있습니다. 박 의원이 편찬한 다산의 서간문집 ‘유배지에서 온 편지’는 벌써 여러 번 읽었습니다. 경세가(經世家)로서 다산이 강조했던 부정부패 척결은 오늘에도 시대적 요구가 되고 있습니다. 틈나면 남양주 다산 묘소에도 가봅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된 이후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차기 대권을 꿈꾸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점일 것입니다. ‘대통령은 하늘이 낸 사람’이라는 등식이 깨졌다고 생각해서일까요.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행동반경을 넓히기 위해 분주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해줄 고언이 있다면.
“본인이 뜻을 세우고 노력해야겠지만 저는 꼭 ‘대통령 되기’를 목표로 삼지는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대통령은 자연발생적으로 추대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에 목표를 두고 일거수 일투족을 거기에 맞춰나가는 것은 오히려 나중에 국가지도자가 되는 데 장애가 된다고 봐요. 굳이 지녀야 할 덕목을 든다면 균형감각, 도덕성, 열정 또는 의지 정도가 되겠지요. 언제나 평상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