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비자금 얘기를 하셨는데, 정치자금 수사 문제에는 늘 공정성 시비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솔직히 얘기해서 5년 동안 돈을 안 받는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1000만원만 받았어도 지금 김대중씨가 나를 그냥 두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재벌들을 만나서도 공언했던 것처럼 재임 5년간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받았더라면 내가 퇴임하고 나서 김대중씨가 내 뒷조사했을 때 어딘가에서 튀어나왔을 겁니다. 어떤 놈이 나한테 돈 갖다줬다고.
그것 때문에 우리 동창이며 후배들이 이리저리 불려다녔어요. 붙들려 갔다온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니까 검사가 심할 정도로 잠을 안 재우고 몰아치더래요. 그렇게 당하니까 거짓말이라도 하겠더라는 거예요. 줬다고 거짓말이라도 할 정도까지 갔다는 거예요. 내가 돈 받으려고 했으면 대통령 하기 전에도 받았는데 왜 안 받았겠어요. 그 사람들한테 제일 먼저 돈을 받았겠죠. 친하니까. (대통령이 나처럼)돈 안 받는 건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기 어려울 거라고 봐요. 선거가 여러 번 있었지만 나한테 직접 돈 받은 사람도 없어요. 과거에 내가 야당 총재 할 때는 당에서도 돈을 쓰고, 개인적으로도 돈을 주고 선거하니까 얼마씩 쓰라고 주기도 했지만….
그런데 요즘은 ‘정당귀족’이더군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돈이 나오도록 만들어주고, 몇백억원을 쓰고…. 과거에 이런 걸 상상할 수 있었어요? 내가 대통령 때 법을 고친 것 아닙니까. 야당한테 돈이 안 가고 너무 불공정했기 때문에 일본처럼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나눠주는 게 좋겠다 싶어서. 내가 야당 할 때는 사실상 공적자금으로 썼지. 내가 조달해 와서 출장 가는 사람 있으면 쓰라고 주기도 하고… 이런 식이었어요.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야당은 참 어려웠어요. 내가 아까 살아있는 게 용하다고 했잖아요.”
―김대중 정부 출범 2년이 지났습니다만, 그 동안 야당은 야당의 몫을 제대로 했다고 보십니까?
“내가 그래서 야당은 야당다워야 된다고 하잖아요. 싸워야 된다는 거죠. 내가 야당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작년 5월 일본 가는 길에 김포공항에서 테러사건이 났을 때였어요. 민주주의에 의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지낸 내가 그 꼴을 당했는데도 야당이 한 마디도 안 하는 걸 보고 저건 야당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김대중씨도 전직 대통령이 그런 일을 당했으면 문제를 삼았어야죠. 자기도 얼마 안 있어 그만둘 사람이니까. 철저히 조사해라고 해야 되지. 그런데 김대중씨는 그럴 사람이 못되니까 제쳐놓더라도, 야당은 당연히 그랬어야지. 일반 국민이 국제공항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해도 중대한 문제죠. 하물며 전직 대통령이 공항에서 그런 일을 당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건 야당이 아니라는 얘기죠. 내가 그때 한나라당은 2중대라고 했어요. 야당은 야당다워야죠. 내가 야당 총무, 총재를 15년 했는데, 그때는 단일 야당 아니요? 자민련 같은 당은 없을 땐데 참 무섭게 싸웠어요. 그래서 결국 박정희가 죽은 거예요. 나를 국회의원 제명 안 했으면 박정희는 안 죽었죠.”
“DJ 레임덕 심해질 것”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국당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그렇게 요청했는데도 확실하게 도와주지 않은 것은 그 당도 야당다운 야당이 못되기 때문이었습니까?
“나는 민국당과 한나라당 모두 초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선거 때 지방에 내려갈 생각도 있었는데 돌아가는 걸 가만히 보니까 내가 어디로 가면 그쪽 도와주러 가는 거라는 인상을 줄 것 같아 안 가기로 한 거예요. 한나라당에도 나하고 가까운 사람이 많이 있고, 민국당에도 민주주의를 위해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사람이 많이 있어서 내가 어느 당은 돕고 어느 당은 안 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거죠.”
―민국당 후보들이 처음엔 제법 많이 당선될 것처럼 봤는데, 실제로 득표전에서 힘을 못 쓰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내가 아, 이건(민국당은) 안 되겠다 싶었던 이유가 있어요. 조순, 장기표, 김상현… 이런 사람들이 싸워야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장수가 싸워야 된다는 겁니다. 장수는 싸우지 않고 졸병들더러 ‘너희는 나가서 죽어라’ 이래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서울에 나왔으면 관심이 확 쏠린다고. 조순 총재가 종로에 나왔으면 당선됐을 거요. 그렇게 되면 장기표씨도 되고. 내가 그때 가만히 보니 안 되겠다 싶더라고. 민국당 여익구씨가 우리집에 왔을 때 내가 (민국당은) ‘희망이 없다’고 했어요.”
―16대 총선이 끝나면 정치권이 뭔가 개편 바람을 탈 것으로 보십니까?
“상당히 급박하게 전개된다고 봐야죠. 우선 김대중씨만 해도 그래요. 이젠 민주당 사람들이 김대중씨와의 관계를 그렇게 죽기 아니면 살기로 유지할 필요가 없거든요. 김대중씨가 이제는 공천을 할 것도 아니고 2년 좀 더 지나면 대통령도 그만둘 건데, 자기(민주당 의원)들 임기는 4년이거든. 선거 끝나면 레임덕이 크게 옵니다. 과반수 의석을 유지해도 그럴진대 과반수도 안 되는 상황이라면…”
―JP와 DJ의 공조는 가능하겠습니까?
“그것도 어렵다고 봐요.”
―차기 대권 얘기도 슬슬 나오는데, 다음 대통령 주자는 누가 될 것으로 보십니까? 정권이 바뀔까요?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남 출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젠 우리가 바꿔보자’는 생각을 강하게 할 거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어느 정도 먹혀들 거고 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바꿔보자는 말씀은, 호남에 한 번 정권이 갔으니까 이번엔 다시…
“지역적인 얘기가 아니고, 정권을 바꿔보자는 얘기가 강력하게 나올 거라는 거지.”
―현실적으로 이회창씨나 이인제씨가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게 일반적인 얘기 같은데요.
“꼭 그렇게 생각할 건 없고, 상당히 많은 변화가 올 수 있어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가 1년 후에 있다든가 6개월 후에 있다든가 하면 모르지만, 아직 2년 반 이상 남았잖아요. 솔직한 얘기로 내가 대통령이 되기까지는 싸우고 또 싸워서 우리 민주주의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돼 있었잖아요. 그때 어떤 사람은 피해 다니기만 했죠. 일본 가서 1년 있고 미국 가서 3년 있고….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예요. 내가 김대중씨한테 200만표를 이겼어요.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을 선택하겠다고 생각한 거죠. 내가 그렇게 오래 싸워서 됐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잖아요. 김대중씨가 다시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민주연합론’은 야당 빼가기용 유혹
―김대중 정부 초기에 이른바 민주대연합론이 여권에서 거론됐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주체세력과 문민정부 주도세력의 연대가 실제로 안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내가 그걸 느꼈는데, 그 쪽에서 민주계 사람들한테 그렇게 유혹했습니다. 와서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전부 데리고 가려고 했어요. 그때 내가 정신 차리라고 안 했으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니까. 난 그 얘기 듣고 이 사람이 또 속인다고 생각했어요. 민주당에서는 그럴싸하게 민주계 사람들을 설득했어요. ‘그래도 우리는 과거에 민주화 운동도 같이 한 동지 아니냐, 그러니 같이 하자’고. 그럴 듯한 얘기거든요. 그렇게 해서 데리고 간 사람이 많았고, 나중에 가려고 한 사람도 많았다니까요.”
―결국은 현 정부의 액션이 진심이 아니었다고 받아들이신 겁니까?
“그 당시 한화갑씨가 전두환을 목포로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까. 그런 걸 갖고 ‘동서화합’이라고 하나요? 그런데 나한테는 작년 3월까지 청문회에 나오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무슨… 그게 다 김대중씨가 지시한 것 아닙니까. 김대중씨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어요.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내 말은 김대중씨한테 50%의 책임이 있다 이거에요.
지금 와서 IMF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기아자동차 문제만 해도 그래요. 이인제씨, 이회창씨 다들 가서 국민기업이니 살려야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때 제일 선두에 섰던 사람이 김대중씨예요. 기아 문제가 우리의 대외 신인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니까요. 기아 문제만 그렇게 안 됐어도 내 임기 중에 그런 일(환란)은 없었다니까요. 그게 IMF로 가는 결정적 요인이 돼버렸어요. 그래놓고도 몇 달이 지나니 그건 안중에도 없더군요. 김대중씨, 이회창씨, 이인제씨는 나라가 망하고 흥하고는 안중에 없고 그저 선거에서 한 표 더 오느냐 덜 오느냐 오직 이것 때문에 행동을 하는 거예요. 나쁜 사람들이더라고. 그때 이 사람들 정말 미쳤다 싶더군.”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2등을 하셨는데 그 다음 선거에서 대통령이 되셨고, 또 그때 2등이었던 김대중 후보가 그 다음 대선에서 당선됐습니다. 이걸 보면 2등 신드롬이란 게 있나 보죠?
“김대중씨는 내 다음에만 했죠.” ―이회창씨가 지난 번에 2등 했으니까 다음번엔 가능성 1위인가요?
“기회가 언제나 기다리는 건 아니거든요. 다음 선거에 지금은 흔적도 없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고 봐요.”
“지역주의는 DJ가 조장”
―이번 총선을 보면서 새삼 실감한 것이 지역주의인데, 이것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김대중씨가 철저하게 지역주의를 했잖아요. 인사에서 (호남이) 싹쓸이를 했지 않습니까? 나는 나름대로 지역주의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국무총리에 고건씨나 황인성씨를 임명한 것도 그런 차원이었고. 인사는 큰 테두리에서 했거든요. 경남고등학교는 명문고잖아요. 그곳 동창생들이 참 실감나는 얘기를 합디다. 전에는 정부종합청사나 부산시청에 가면 어디에서든 경남고 졸업생들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우연히 지나가다가도 아무개는 잘 있나 궁금해서 들어가 차 한 잔 마시곤 했는데, 지금은 (경남고 졸업생이) 한 사람도 없어서 가볼 데가 없다는 거예요. 그게 인생 아니겠어요. 여기 저기 친구도 있고 그래야 되는데…. (호남이) 싹쓸이를 한 거예요. 지역주의는 철저하게 김대중씨가 만든 거예요. 그에게 반사적인 표가 100% 나와요. 누가 안 시켜도 나와요. 이번에 영남 쪽에서는 김대중씨 욕을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당선되게 돼 있었던 겁니다.”
―지역주의의 책임을 따지자면 복잡해지겠지요. 어쨌거나 지역주의는 참으로 불행한 일인데,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푸는 방법은 없을까요? 어떤 사람은 내각제를 하나의 해결수단으로 제시하기도 하는데….
“제도 가지고는 절대로 안 됩니다. 15대 국회에서 무려 36명이 국민회의로 갔잖아요. 2공화국이 왜 망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내각제로는 절대 안되겠습디다. (내각제에서는) 국회의원들이 하루 아침에 오락가락 하는 겁니다. 조금 전에 신파를 했다가 금세 구파로 가고, 구파를 했다가 신파로 가고. 다 돈하고 관계있는 일인데, 아이고, 나라가 이래 가지고 되겠어요? 요즘 일어나는 일을 보면 그때하고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신념에 따라서 어디로 가고 이러는 게 아니더라고.”―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이른바 ‘3김시대’가 자연스럽게 종료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정치권에 ‘바꿔‘ 분위기가 보다 확산되고 세대교체 얘기도 더 많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나는 정치를 하면서 제일 먼저 세대교체와 40대 기수론을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노인’들한테 욕도 들어먹고 ‘구상유취(口尙乳臭)’라는 말도 들었지만, 세대교체 바람은 제일 강한 바람이라고 생각해요. 요 다음에는 세대교체 바람이 더 세게 불 거예요. 그건 누가 말리지도 못해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40대 초반에 대통령이 됐고, 고어나 부시도 이제 50대 초반이거든요. 영국의 블레어 수상도 그렇고, 러시아의 푸틴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영향을 받습니다. 세계의 큰 흐름이 있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대세가 이렇게 확 몰려오면 아무도 못 막아요.”
‘깜짝 놀랄 만한 후보’라고 안 했다 ―대통령 재임시절 차기 대권후보와 관련, ‘깜짝 놀랄 만한 젊은 후보’라고 언급하신 뒤에 공식적으로 그게 누구인지는 한 번도 확인을 안 해주셨는데….
“일본의 ‘주니치신문’에서 그렇게 썼는데, 사실은 그렇게 표현을 했던 게 아니에요. 그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한 게 아닙니다.”
―그 발언이 보도되고 나서 ‘놀랄 만한 후보’는 이인제씨인 것으로 회자됐고, 이인제씨가 그런 분위기에서 힘을 받은 것도 사실 아닙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인제씨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당도 지지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제2의 깜짝 놀랄 후보’ 바람을 피워 올리는 것 같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에이, 그거는 말 안할래요. 할 말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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