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5일의 합동유세에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병역을 기피했다는 선전 에 대해서는 연단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가락이 절단되었던 내 오른발을 기자들과 유권자들에게 공개했다. 세금에 대해서는 검사생 활 2년 8개월과 변호사 생활 4개월의 소득에 대해 1272만원을 납부했 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파출소로 연행되어 조사받았던 사건에 대해서는 당 시 함께 조사를 받았던 현직 검사의 실명을 공개하였다. 그동안 뿌 려졌던 유인물 수거한 것을 유권자들 앞에 들이댔다. 상대후보가 유 세차로 흑색선전했던 장소와 그 내용을 지목했다. 누가 흑색선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유권자들에게 물었다.
합동유세의 결과는 성공이라고 평가받았다. 모두 납득했을 뿐 아니 라, 내 말을 들은 일부 여성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양 말을 벗어던졌다는 것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그 후로는 상대후보 의 흑색선전이 거의 먹혀들지 않게 되었다.
나는 흑색선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하였지만, 다른 지역구의 후보들, 특히 정치신인들의 경우 흑색선전 때문에 억울하게 패배한 경우도 적 지 않을 것이다. 선거를 혼탁한 비방전으로 몰고가는 낡은 정치의 대 표적인 악폐가 흑색선전이었다.한심한 것은 여당의 중앙당 부대변 인이 경합지역의 야당 후보들을 지목하여 마약사범이니, 파렴치범이 니 하면서 비방성명을 냈다는 것이다. 두고두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 이다. 여당이 마약사범이나 파렴치범이라고 비방성명을 냈던 그 후보 들은 대부분 당선되었다.
선거운동은 유권자에게 지지의사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다. 조직을 통한 지지자 확보나 홍보를 통한 지지자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후보자와 유권자 간의 직접 접촉이다.공천을 받은 후 지구당이 정비되기 까지는 지역의 주요 인사들과 기존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후보를 알리 고 적극 활동을 호소했고, 선거운동기간이 다가오면서는 유권자들과 의 무차별적 접촉의 비중을 높여나갔다. 내 경우는 활동기간이 짧아 이름에 대한 인지도 자체도 낮았지만, 이름은 알더라도 직접 얼굴 접 촉이 되지 않은 많은 유권자들로부터 “얼굴도 본 적 없는데 어떻게 찍어”라는 반응이 있었다. 당연한 이치다. 또한 내 경력을 아는 사람 들 가운데는 잘 나가는 모범생이었으니 인간미는 없지 않을까 하는 선입관을 가진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는 대면접촉을 최대한 늘려야 했다.
지역 순방 - 만보계로 3만보
그래서 선거운동이 시작된 3월 28일부터 초반 1주일 가량을 대면접 촉에 집중하기로 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유권자들을 찾아다녔다. 새벽에는 야산과 공원 약수터, 출퇴근 시간에는 지하철역 버스정류 장, 낮에는 상가 노래교실 스포츠센터, 식사시간에는 식당, 밤에는 호프집, 일요일에는 교회 등 유권자들이 있는 곳은 샅샅이 찾아다녔 다. 만보계를 차고 다녔는데 하루에 3만 보를 걸은 날도 있었다.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악수를 하고 대화를 하다 보니, 일정 기간 이 지나서는 악수하는 손의 느낌과 표정만 보아도 그 사람의 성향을 직감할 수 있게 되었다. 중심집단에서는 지역감정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했지만, 주변집단에서는 완화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 었다.
상대 후보 지지층이 강한 지역을 다닐 때에는 상대측 핵심 인물들이 “왜 내 땅에 와서 돌아다니느냐”는 식의 지극히 배타적이고 어이없 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상대편 인물들이나 사무실에 도 찾아가서 인사를 했고 상대편 운동원들에게도 일일이 악수를 청 하고 인사를 하였다. 반응이 차갑건 어떻건 상관하지 않았다. 그 정 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 는 생각이었다.
공천 직후 사무실 마련과 유급당직자 정비, 지구당개편대회비용 등으 로 자금이 소요되었다. 이는 선거비용항목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선 거비용은 우리 선거구의 경우 1억 2000만원 가량으로 책정되어 있었 는데 법정홍보물, 유세차량, 유급선거운동원 등에 소요됐다. 30대의 정치신인으로서는 감당하기 벅찬 규모였다. 그러나 후원회 개최와 자발적으로 활동해주는 사람들 덕에 당초의 예상을 약간 넘는 수준 에서 전체적인 과정을 치렀다. 흔히 이야기되는 ‘30당 20락’이라 는 이야기는 내 경우에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선거브로커에 대해서는 진작에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경 우에는 아예 상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몇 표 가지고 있 다고 하면서 거래를 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으나 아예 만나지 않았다. 몇 명이 모여 있으니 식사값을 내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일절 응하지 않도록 하였다.
자금, 브로커, 유권자가 바꾸어야 할 몫
다행히 우리 지역구는 유권자들의 의식 수준이 높은 편이었고, 자발 적으로 뛰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브로커나 밥값을 내라는 유혹에는 거의 시달리지 않았다. 그러나 유권자들을 접촉하고 다니다 보면 식 사값을 달라, 막걸리 값을 달라, 어떻게 빈 손으로 왔느냐, 술값을 계산해 달라는 등의 요구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요구를 받을 때마다 “선거기간에는 금지되어 있다”고 이야기 하고 돌아섰지만, 그들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할지는 정확히 헤아릴 수 없다. 후보자에게 뭔가 얻어내보자는 심리는 유권자가 바꾸어야 할 몫이고, 이러한 심리에 편승하거나 조장해온 낡은 정치풍토는 바 뀌어야 할 부분이다.
한 사람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마음고생, 시간과 자금이 소요된다. 그것을 생각해서라도 국 회의원들이 진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기간을 통해 정치개혁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욕구를 절감할 수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그러한 기대를 안고 당선된 만큼 국민의 마음 속 소리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정치를 해나가 지 않으면 곧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 선이 끝이 아니라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것을 거듭 새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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