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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후계자’ 김정일이 협상테이블에 나선 이유?

‘은둔의 후계자’ 김정일이 협상테이블에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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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정상회담은 서로가 뜸들이지 않고 ‘화끈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만큼 이번 정상회담을 대하는 김정일의 관점 역시 우리가 미처 예측하지 못하는 ‘게임’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김정일은 남북 정상회담을 놓고 도대체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까? 》
다소 엉뚱한 이야기부터 먼저 해야겠다. 지난해 6월 서해 북방한계 선 부근에서 남북간에 교전이 있었다. 결과는 아는 대로 씩씩한 우 리의 신세대 군인들이 압승을 거뒀다. 서해교전은 우리 해군전사에 ‘연평해전’으로 기록됐고, 이 ‘해전’은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러면 완패를 당한 북한은 이 서해교전 결과를 어떻게 보았을까. 당시 짤막하게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우리는 엄청난 인내심을 가 지고 참아왔으나 남조선과 미군이 끝까지 도발을 감행해와 이를 단 호히 응징했다”고 언급돼 있다. 최근 탈북한 사람들은 모두 서해교 전을 북한의 압승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새삼 거론할 게 못 될지 모른다.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상대방에게 완전히 지기 전까지는 서로 자기가 이기고 있다 고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중요한 것은 북한이 왜 도발을 감행했느냐 하는 점과 서해교전의 결과를 김정일은 어떻게 계산했을까 하는 점이다.

서해교전과 김정일의 계산법

김정일의 ‘서해교전 대차대조표’는 과연 어떠했을까. 이를 이해하 려면 서해교전을 단순히 서해상에서 일어난 남북간의 ‘국지전’으 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동북아 전체의 군 사 역학관계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김정일은 서해교전이라는 국지전에서는 패했지 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체 국가운영 관점에서 보면 적 지 않은 실익을 챙겼다고 볼 수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 북한을 둘러싼 급박한 대외정세 하에서 김정일의 머리를 짓누 르고 있던 것은 대강 네 가지였다. 첫째, 코소보 사태에 보여준 미 국의 태도였다. 코소보 사태는 미국이 언제든 국제분쟁에 끼어들 수 있고,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 무렵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금창리 핵시설 의혹 문제가 불거져 있었 고, 미사일 협상이 진행중이었다.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7이 남 한 언론에까지 공개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미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을 결정할 페리 보고서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정해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북한의 체제생존과 직결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김정일로서는 핵이나 미사일과는 전혀 관계 없는 문제를 들고 나와 외곽에서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에 담긴 진 의를 탐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둘째, 미국과 일본 간에 새로 맺어진 신안보조약이었다. 신안보조약 에서 김정일이 궁금해한 점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제한된 범위에 서나마 과연 단독으로 군사 지원행동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 다.

셋째, 김정일은 새롭게 짜인 미·일 안보조약에 따른 중국의 대응 태도가 궁금했다. 즉 한반도 유사시 중국의 대응과 전통적인 조·중 관계를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넷째, 김대중 정부가 펼치는 햇볕정책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햇볕정책이 흡수통일을 위한 전술인지, 진짜 남북 평화공존 평화교류 정책인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 다. 또 그동안 남측이 지속적으로 증강해온 군사력이 과연 어느 정 도 되는지도 시험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정전협정 이후 계속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는 서해 북 방한계선 문제를 건드린 것은 김정일로서는 북방한계선에 대한 미국 의 공식 정책까지 점검해볼 수 있는 절묘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 다. 물론 2억 달러짜리 꽃게 어장도 놓칠 수 없는 외화벌이 수단이 었다.

북한의 북방한계선 도발은 김정일의 이러한 복합적인 계산 아래 나 온 매우 조심스러운 응수타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화끈한’ 합의의 이면

그러면 서해도발을 통해 김정일은 무엇을 점검할 수 있었을까?

첫째, 미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이 적어도 미·북간의 전쟁까지 염 두에 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북방한계 선이 ‘공해(公海)’라는 미국의 견해를 알았고, 따라서 클린턴 정 부 하에서는 자기네 체제 유지에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 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서해교전과 함께 태평양 주둔 미 항공모함이 발진함으로써 남 북간의 분쟁은 역시 남한 단독으로는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일본은 여전히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묶여 있 고, 따라서 한·미·일 공조체제가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셋째, 한반도 문제를 보는 중국의 태도는 남북 어디에도 경사되지 않고 객관적이라는 사실을 점검할 수 있었다. 따라서 김정일은 전통 적인 조·중관계의 복원이 가장 시급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 다(이는 곧 경제지원 문제를 포함하여 포괄적인 조·중관계 복원을 위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중으로 이어진다).

넷째, 비록 서해교전에서 패퇴해 망신을 당하긴 했지만 김대중 정부 의 햇볕정책을 시험할 수 있었고, 또 김정일이 마음먹기에 따라 햇 볕정책을 둘러싸고 남한 내 국론분열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점을 부수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섯째, 북방한계선 문제를 지속적으로 건드림으로써 이 해역에 대 한 영유권 문제를 미·북간의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방향으로 몰 고갈 수 있고, 아울러 이 해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의 수위를 계속 높여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23일 북한의 해군사령부가 ‘서 해 5도 통항질서’를 발표한 것은 지난해 북측이 일방적으로 그어놓 은 북방한계선에서 한 단계 수위를 높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총체적으로 놓고 보면, 서해교전에 따른 김정일의 계 산이 결코 손해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하면서 다소 엉뚱한 이야기부터 늘어 놓는 이유는, 남북관계에서는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그 이면을 추적해보면 중층적이고 다의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 경 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분단 50년만에 첫 남북간의 정상 회담이고 보면 그 의미는 매우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김정일이 예상 외로 짧 은 기간 내에 수락한 것도, 총선기간에 정상회담 일정을 발표한 것 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분단 50년 동안 당국자 회담은 적지 않았 지만 정상회담이 합의된 것은 무산된 김영삼 대통령·김일성 주석간 의 합의 외엔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서로가 뜸들이지 않고 매우 ‘화끈한 ’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만큼 이번 정상회담을 대하는 김정일의 관점 역시 우리가 미처 예측하지 못하는 ‘게임’ 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하고, 또 이에 충분히 대비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김정일은 왜 그토록 빨리 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들였을까?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을 놓고 도대체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까. 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주판알을 튕길 것이며, 어떤 대차대조표를 작성 하고자 하는 것일까.

망명한 황장엽씨는 그간 언론을 통해 김정일의 특징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중 주목되는 대목이 “다른 것은 몰라도 김정일이 이해타산 을 하는 데는 매우 빠르고 정확하다”는 증언이다. 94년 그 어려운 정세 하에서 미국과 제네바 협정을 이끌어내고 경수로 건설을 받아 낸 배후 인물도 김정일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김정일이 이번 정상회담을 받아들일 때에는 이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이해타산’을 끝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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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우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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