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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평양에 가시면 납북가족들 찾아오셔야 합니다”

“대통령님, 평양에 가시면 납북가족들 찾아오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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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문제 또한, 비록 그 유형은 특수하지만 분단 상황이 낳은 이산가족 문제다. 그러나 여러 이산가족 유형 가운데 하나임에도 바로 그 유형의 특수성 때문에 이 문제는 남북한 당국 모두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또 이 문제는 남북관계에서 우선 풀어나가기 쉬운 것부터 접근하려는 남북한 양측의 ‘의제 기피심리’와 부담감 때문에 서로 밀쳐 놓는 사이에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고황(膏)처럼 굳어버린 측면도 있다.

이산가족 문제는 본질적으로 월북·월남자와 그 가족의 문제다. 이중 월남자는 남파공작원·빨치산 출신 ‘억류자’(비전향 장기수)와 자진 월남자(피란민과 탈북 망명자 등)로 나눌 수 있다. 북한은 이중 후자는 ‘조국을 등진 배신자’일 뿐 이산가족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즉 북한에서 ‘월남 이산가족’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월북자는 자진 월북자와 납북·억류자로 나눌 수 있다. 이중 미귀환 납북자와 미귀환 국군포로, 그리고 자기 의사에 반해 억류중인 북송 일본인처 등이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 문제는 자진 월북(북한측 표현은 ‘의거 입북’)이 아닌 후자의 경우 북한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남한에서 ‘전쟁중 북한에 체포·억류된 국군’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는 국군포로라는 개념이 북한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있다. 북한에서는 그 대신 ‘해방전사’만 있을 뿐이다. 해방전사는 ‘아무것도 모르고 남한의 군대에서 종사하다가 포로가 된 후, 북한이 진짜 조국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귀화한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북한 당국은 “공화국에는 남조선 당국이 주장하는 소위 국군포로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송 일본인처’는 1959년 12월 재일 조총련의 북송사업에 의해 재일동포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 여성들을 말한다. 1800명 ‘북송 일본인처’ 문제는 북·일간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 초기단계부터 현재까지 중요 현안이 되어 왔다. 북송 일본인처 가운데 일본 땅을 밟은 사람은 15명뿐이다. 그것도 잠깐의 방문만 허용되었을 뿐, 북한 당국이 귀환을 허용한 사례는 전무하다.



이 기사의 주제인 내국인 납북 억류자는 더 민감한 문제다. 대부분이 순수한 민간인인데다 선박·항공기 납치와 관련돼 있고 심지어 공작원 양성을 위한 고교생 납치 같은 반인륜적인 테러·납치 사례도 있어 북한으로서 이런 유형의 납북 억류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테러 지원국’ 명단에 올려줄 것을 자청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납북자 문제는 남한의 ‘통계수치’로만 존재할 뿐 북한은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군포로 11명 귀환, 납북 귀환자는 전무

99년 3월15일 정원식 대한적십자사총재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각국 적십자사, 국제사면위원회(AI: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등 인권 관련 비정부간 국제기구(NGO)에 서한을 보내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의 조속한 송환을 위해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 서한은 정전협정 이후 북한에 납북된 한국 국민 3756명 중 어부 407명을 비롯해 454명이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며, 신원이 확인된 국군포로 470명 중 231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히고 있다. 그후 99년 9월30일 당시 임동원 통일부장관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신원을 확인해 명단을 확보하고 있는 생존 국군포로 숫자를 244명으로 정정했다.

그러나 납북자 문제는 국군포로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간헐적으로 열린 남북대화에서 직접적인 의제로 다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 남북한은 양측 총리가 합의·서명하고 92년에 발효한 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교류협력 부속합의서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규정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한 남북한간 ‘인도적 사안’의 협의·해결을 남북적십자사에 위임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 11차 본회담은 열리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함께 협의·해결하거나 국군포로를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에 포함시켜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시도도 못하고 있다.

이처럼 납북자 문제는 국군포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잊혀진 존재’였다. 그러나 국군포로 문제의 경우, 미흡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성과가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잊혀진 존재’였던 국군포로 문제를 일깨워준 것은 바로 국군포로 자신들이었다. 53년 포로교환 이후 40여년 만인 94년 10월 조창호 소위가 ‘기적’처럼 귀환한 이후 지난 3월말 귀환한 김길호씨(71)에 이르기까지 국군포로 귀환자는 11명으로 늘어났다. 또 이들이 재북 국군포로들의 참상에 대해 증언한 것을 계기로 6·25 전쟁 기간에 북한 당국에 의해 생포된 국군포로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었고 정부는 국군포로 송환 문제에 비로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따금 탈북, 귀환하는 국군포로와 달리 민간인 납북 억류자 중에는 귀환자가 단 1명도 없다는 데서도 납북 억류자의 존재가 북한에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납북자 문제의 거론 자체를 금기시하는 북한의 태도와 국군포로와 달리 탈북 귀환자가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크다. 그리하여 똑같이 분단 상황이 낳은 이산가족이지만 납북자 문제는 남북한의 이산가족 문제 협상에서도 제외된 채 ‘잊혀진 존재’가 된 것이다. 물론 그 가족들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지만.

미귀환 납북자의 네 가지 유형

전반적인 납북자 실태가 처음 공개된 것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도 1년 뒤의 일이다. 국가정보원은 99년 3월 휴전 이후 처음으로 자체적으로 파악한 미귀환 납북자 454인의 명단을 공개했다(국정원 자료를 인용한 언론 보도 시점은 그보다 앞선 1월말이었음). 그 이후 정부는 국정원 자료를 근거로 추가 확인작업을 거쳐 그 결과를 지난 1월 통일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북한인권백서 2000’에 등재해 처음으로 ‘미귀환 납북자 454인’의 존재를 공식 확인했다. 통일연구원은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납북 억류자가 북한에 더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납북자 유형은 크게 ▲해상에서 조업중 납북된 어부 ▲해상에서 납북된 해군 함정 승선자 ▲공중에서 피랍된 항공기 승무원 ▲기타 해외근무 또는 국내외 여행중 공작원에 의한 납북자로 분류할 수 있다. ‘납북 및 납북 억류자 현황’ 도표에서 보듯이, 이 가운데 납북 어부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총 납북자(3756명)의 97.5%(3662명)가 어부이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3255명 88.9%)은 송환되었다. 가깝게는 95년 5월30일 제86우성호의 어부 8명을 강제 납북했다가 7개월여 만에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미귀환 납북 어부는 407명으로 여전히 미귀환 납북자의 절대 다수(89.6%)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납북 억류기간은 짧게는 13년(87년 1월15일 피랍 동진27호 선원 12명)에서부터 길게는 45년(55년 5월28일 피랍 대성호 선원 10명)에 이르고 있다.

역시 해상에서 피랍된 해군 방송선 I-2정의 경우, 승선자 20명이 70년 6월5일 납북된 이후 20명 전원이 선박과 함께 억류중이다. 한편 69년 12월11일 탑승객으로 가장한 ‘고정 간첩’에 의해 피랍된 강릉발-서울행 대한항공(KAL) YS-11기의 경우, 피랍 두 달 만에 승객 39명은 송환되었으나 성경희씨(당시 28세) 등 승무원 4명과 승객 8명 등 12명은 현재까지 강제 억류중이다. 이들 가운데 KAL기 스튜어디스였던 성경희·정경숙씨 등 일부는 대남 방송 등에 ‘활용’되고 있으며 더 이상 가치가 없는 나머지 사람들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 인권단체가 확인했다.

마지막 유형은 해외근무 혹은 국내외 여행중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되어 북한에 송환된 경우인데 이들 가운데서도 23명 중 15명이 억류중이다. 전 수도여고 교사 고상문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고씨는 78년 4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연수중 여권을 분실해 택시를 타고 한국대사관으로 가다가 택시 기사의 착오로 북한대사관에 들어가 북한 공관원에 의해 강제 납북되었다. 또 최근 사례는 95년 7월9일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안승운 목사로 그는 납북되어 5년 동안 억류중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탈북 망명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런 유형의 납북 억류자 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늘어났다기보다는 탈북자들이 이런 유형의 납북 억류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71년 4월 가족과 함께 실종된 주서독 한국대사관 노무관 유성근씨(당시 48세)의 경우 부인 정순섭씨와 두 딸 경희(7)·진희(1)양과 함께 서베를린을 여행하다 북한 공작원에게 강제 납북되어 30년째 억류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77∼78년 고교생 신분으로 여름방학 때 실종된 김영남, 이민교, 최승민, 이명우, 최진표 등 5명도 남파 공작원들의 증언에 의해 납치 억류 사실이 추가로 확인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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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당 da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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