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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불가론에서 영남후보론까지

李會昌 격파 노리는 DJ의 ‘와일드 카드’

이인제 불가론에서 영남후보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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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희(李奭熙) 한나라당 부산시지부 사무처장은 “DJ가 정치를 잘 풀어갔다면 이인제불가론이 부각되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까 ‘우리가 이인제를 찍어줘서 이 모양이 됐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설사 이인제 아닌 다른 후보를 민주당이 내놓더라도, DJ와의 관계가 독자적이고 완전 차별화되지 않는 한, 부산에서는 그저 DJ와 마찬가지로 배척될 것이라는 게 이처장의 주장이다.

대구·경북에서 이인제에 대한 반응은 더욱 차갑다.

경북대 캠퍼스에서 만난 K씨(37·공과대 박사과정)는 “정치인이 지조가 있어야 하는데 이인제씨는 철새처럼 이쪽저쪽에 붙은 것 때문에 싫다”고 말했다. K씨는 “세대교체란 것은 단지 나이가 젊은 사람으로 바꾼다는 말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지난 대선 때 참신한 이미지로 어필했던 그가 3김 못지 않은 구세대적 행태를 보여 실망했다”고 덧붙였다.

개인택시기사 이성구씨(64)는 “이인제에 대해 욕도 많이 하는데, 대구는 인물이 아니라 당을 보고 찍기 때문에 민주당이 다른 누굴 내놔도 맥을 못출 것”이라고 했다.

성철수(成喆壽) 민주당 경북도지부 조직부장은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위원의 신한국당 탈당에 대해 ‘신의론’을 들어 극단적이고 맹목적인 거부반응을 보인다”면서 “이위원이 정치력을 발휘하고 당이 호남색을 탈피하지 못한다면 지난 번에 그를 찍었던 중도개혁층과 젊은 층도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 대구시지부의 김성호(金盛浩)홍보부장은 “이 곳에서 지난 대선 때 이인제를 찍은 사람들은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자탄한다”고 말했다.

신영국(申榮國) 한나라당의원(문경·예천)도 대구·경북이 예부터 의리를 중시하는 고장이라는 점을 상기시킨 뒤 “이인제는 배신자라는 딱지 때문에 과거 DJ가 얻었던 표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사람의 말을 듣다보면 영남에서 나타난 이인제 비토정서는 과학적 이유보다는 ‘반 DJ’라는 맹목적 거부정서에 기반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정치적 절망감을 분출할 ‘가학대상’을 이인제라는 구체적 인물에서 찾았다고나 할까?

이인제 비토론을 강화하는 또다른 요소는 YS다. 이위원의 신한국당 탈당 및 민주당 입당을 놓고 ‘배신자’라고 낙인찍고 있는 YS는 이위원에 대해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과거 자신의 ‘정치적 아부지’였던 YS의 강력한 비토는 이위원에게 또다른 차원에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당내에서 이인제를 비토하는 사람들

이인제 비토론은 지역적으로 영남권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비영남권에도 ‘경선불복’ 등을 이유로 이인제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는 이가 적지 않다. 비영남권에서의 이인제 비토는 ‘민주당 입당’보다는 ‘경선불복’과 ‘탈당’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H교수는 “이인제의원은 이 나라 기득권층(Establishment)의 강한 비토를 사고 있어(대통령 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경선불복과 탈당이라는 명분상의 문제 말고도 ‘안정’ 이미지를 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DJ는 보수안정 이미지의 JP와 연대를 성사시켜 기득권층의 비토를 뚫고 나올 수 있었지만 이인제에게는 그와 같은 연대가 불가능하리라는 얘기다.

민주당내에도, 비토까지는 아니라도 광범위한 지지유보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지난 8·30경선에서 확인됐다.

김중권(金重權) 김기재(金杞載) 등 영남권 후보들은 하나같이 이인제보다는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과의 연대를 택했다. 게다가 한 최고위원이 56%를 득표한 반면 대권주자를 자처하는 이최고위원 득표율이 44%에 그친 것은, ‘박힌 돌’과 ‘굴러온 돌’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이회창 대항마’로서 이최고위원의 파괴력에 관해 아직 의구심을 가진 당원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동교동 신주류 가운데는 이최고위원에 대해 몇가지 이유를 들어 공공연히 ‘불가론’을 펴는 이도 있다. 대체적인 논지는 ▲이인제의 경선불복 딱지가 다음 대선에서 이회창의 병역비리보다 크게 먹힐 약점이라는 것과 ▲민주당 본류와 체질을 달리하고 개인적으로 튀는 성향의 이인제는 김대통령 임기말이나 집권 이후 김대중대통령을 위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할 사람이라는 것 등이다.

이 가운데 ‘경선불복’ 문제는 특히 한나라당이 대(對) 이인제 제어전략으로 칼을 갈고 있는 타깃이다. 이회창총재의 한 측근은 “지난 대선 때는 이후보가 당선가능성이 없는 마이너 후보였기에 이 부분이 그다지 문제시되지 않았던 반면 민주당의 후보, 주요후보로 등장하게 되면 치밀한 검증을 받게 되어 커다란 감표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적을 옮긴 정치인들이 지난 총선에서 줄줄이 낙선한 점도 정치신의와 기본적 룰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준이 엄격해졌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이위원은 당 안팎에서 유포되고 있는 ‘이인제 불가론’에 적극 대응을 시도하고 있다. 이위원은 경선중이던 지난 8월19일 서울·경기북부 지역 합동연설회에서 ‘이인제 불가론’을 직접 거론하며 정면돌파 의지를 보였다.

“그럼 이인제 말고 누구 또 있어?”

이위원은 이른바‘제3후보론’과 마찬가지로‘이인제 불가론’ 역시 당내 일각에서 유력 대권주자인 자신을 흔들기 위해 제기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는 본래 ‘이인제만 상처내면 차기대선은 무혈입성’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측이 만들어낸 논리인데, 일부 당내 기득권세력이 자신들의 입지확보를 위해 이를 확산시키는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고 분개한다.

이위원측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들며 “이회창에 대해 이인제만한 경쟁력을 보여주는 이가 누가 또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위원이 선대위원장으로 뛰었던 16대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영남을 빼고는 전국에서 모두 한나라당을 이겼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총선 때 영남에서 민주당이 전멸한 것도 본질적으로 ‘반(反) 이인제’보다는 ‘반(反)김대중’정서 때문이라는 얘기다. 다음 대선은 DJ의 임기가 끝나는 것을 전제로 치러지는 선거여서 지역대립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을 것이며 충청권은 JP의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이인제를 대표주자로 인식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여권의 예비주자군이 5~6명으로 분산돼 있는데도 이인제가 이회창을 이기는 판이라면 여권후보가 이인제로 압축되면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셈법도 제시한다. 따라서 지금의 현상만 보고 ‘이인제는 안된다’고 단정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권최고위원도, 현재 공식적으로는 이인제는 민주당의 여러 카드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인제 외에 대안이 없다는 생각을 굳혀가고 있다. 당안팎에 500만의 자기 표를 갖고 있는, 국민들로부터 검증된 인물은 이인제뿐이라는 것.

박범진(朴範珍) 전의원은 “이인제가 이회창 대항마로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국민들의 평가를 당에서 외면하고 대안도 없이 자꾸 이인제를 상처내려는 것은 ‘이회창 대세론’ 확산에 일조하고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이라는 미래를 짓밟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전의원은 YS정권시절 민주계의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민주계는 어디까지나 YS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는데 자기들이 무슨 자생력이 있는 양 착각했다. 우리 당내 동교동계도 마찬가지다. 국민들 속에 뿌리박은 정치세력이 아니라 오직 DJ의 권력그늘 속에서 존재하는 것인데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 민주계도 현실적인 길을 모색했다면 오늘날 정치적 운명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즉 자기들은 뒤로 물러서서 DJ를 이길 후보에게 길을 내줬다면 오늘날 저렇게 지리멸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허망한 꿈을 꾸다가 결국 이회창에게 내쫓기는 망신을 당했다. 일부 민주계 중진은 자기가 집권해보겠다는 허망한 꿈을 꾸었다. 당내에서도 지지가 없는데 자기들이 무슨 대단한 세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호가호위하다가 YS의 임기가 종을 치면서 잔치는 끝났다.”

또한 이위원 측근들은 수치를 내세워 ‘이인제 불가론’을 반박한다.

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인제 찍으면 김대중이 (당선)된다’는, 한나라당의 지역감정을 앞세운 견제 속에서도 이인제는 영남지역에서 25%인 179만표를 얻었다는 얘기다. 이인제는 최소한 지난 대선에서 DJ가 이곳서 받았던 13%보다는 많은 표를 얻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위원의 한 측근은 “지금 영남에서 이인제를 폄하하는 이야기가 난무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이인제 위원을 소신껏 지지했던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다”면서 “이 위원이 힘있는 여당후보가 되기만 하면 순식간에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영 민주당 제5사무부총장은 “차기 대선에서 이인제가 당의 후보가 되면 반 DJ정서보다는 후보 자체에 대한 정서가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면서 “그때는 더 이상 호남당 DJ당이 아니며 그림 자체도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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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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