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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불가론에서 영남후보론까지

李會昌 격파 노리는 DJ의 ‘와일드 카드’

이인제 불가론에서 영남후보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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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여론조사 기관이 내부적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회창 이인제 등 5명의 예비주자를 대상으로 한 대권지지도 조사에서는 이회창총재가 이인제위원을 2% 앞섰으나 단둘의 맞대결 구도에서는 이인제위원이 2~3%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인들 중 거의 유일하게 차기 대권도전이 사실상 확정된 이총재가 아직 ‘One of Them’에 불과한 이인제를 따돌리지 못하는 이유는, 국민들이 이총재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이총재 지지율은 한나라당 텃밭인 영남에서도 40%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수년간 정치지도자 위치에 있어왔지만 반DJ정서에 의존하는 외에 자신의 고정표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이인제위원이 당내경선을 앞두고 ‘대권론’을 쳐들고 다닌 시점도 이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무렵이다.

이런 상황에 다음 대선에서 세대교체와 3김청산 등을 요구하는 ‘바꿔’열풍과 ‘21세기형 북풍’이랄 수 있는 남북관계 진전, DJ와 김정일의 노벨상 공동수상, 그리고 월드컵 바람까지 불 경우 이총재의 입지는 더욱 불리해진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여권의 비선라인에서는 최근 이와 같은 여건들을 검토한 끝에 차기 대선구도와 관련한 비밀보고서를 작성, 핵심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 내용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내년 8월까지 영남세력의 독자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한화갑최고위원이 9월6일 ‘한나라당 양분론’ ‘제3세력 대두론’을 제기한 것과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총재가 아직도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영남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 이것이야말로 여권이 바라는 최상의 대선구도라 할 수 있다. 특히 민주산악회 재건 등으로 차기대선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적극 준비하고 있는 YS측 움직임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끄는 대목임에 틀림없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이총재의 핵심측근은 “영남분열을 노리는 여권이 음모를 꾸미겠지만 이미 야권분열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영남사람들의 피해의식과 반여정서 때문에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측근은 “여당이 이인제로도 확실한 승산이 안 보이고 달리 마땅한 주자도 내놓기 어려우니까 판 자체를 다시 짜보려 온갖 수단을 동원하려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부산의 중진 박관용(朴寬用)의원도 “민주당은 영남권에서 제3의 정치세력이 나오길 희망하겠지만 영남유권자들은 민주당을 이롭게 하는 그런 당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회창이 썩 내키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나라당의 영남권 의원들이나 비주류들이 탈당해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다. 박의원은 “다만 이총재가 끝내 지도력 흡인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내부에서 다른 ‘대안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은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바짝 엎드려서 달릴 때다”

김대통령의 차기구도 관리와 관련한 둘째 핵심요소는 40년 정치인생의 산물인 동교동계를 임기후까지도 유지발전시키는 것이고, 셋째 요소는 한나라당 이회창후보와 대결할 경우 승산이 높은 후보를 양성하는 일이다. ‘유지계승’과 ‘대선승리’,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한화갑 이인제의 양대세력이 상호견제케 하는 세력균형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최고위원 경선결과는 이와 같은 DJ의 바람이 그대로 관철된 것이다. 김대통령은 우선 동교동계의 차세대 간판으로 한화갑의원을 직접 만나 최고위원에 출마케 했다. 한위원이 1위를 한 것은 임기중반 이후 생길 수 있는 레임덕을 막고 당을 무난하게 관리·통제하려는 김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위원과 연대한 김중권 전청와대비서실장이 2위와 큰 차이가 없는 3위에 당선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다가 임명직 최고위원에 자리잡은 권노갑위원 역시 막후조정자 역할을 부여받고 있고 그의 지원에 힘입어 이인제위원이 ‘대권주자형 최고위원’으로 운신하고 있다. 결국 민주당의 그림은 철저히 김대통령의 구상대로 그려진 셈이다.

김대통령은, 경선을 치르며 권노갑 당시 상임고문과 한화갑후보가 권고문의 이인제 지원문제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했을 때 침묵을 지켰다. 차기 민주당의 주도권을 둘러싼 동교동 내부의 미묘한 갈등은 본질적으로 ‘동교동 유지’와 ‘대선승리’라는 두 축의 갈등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느 쪽 편을 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동교동계의 한 핵심인사는 “김대통령은 후계구도가 확정될 때까지는 특정인이 역할을 독점케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이는 ‘견제와 균형’을 통한 분할통치라는 김대통령 특유의 용인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이인제불가론’이 아니라 ‘이인제 1등 불가론’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임기가 2년 반이나 남은 시점에 특정 대권주자가 ‘1등’으로 나서면 힘이 너무 쏠리고 국정운영이 안 되며 본인도 사방에서 견제받아 상처를 입고 말 것이다. 굳이 대권주자 1등 자리를 확인하려 서둘다가는 상처를 입게 된다. 지금은 내부에서 권력투쟁하거나 소모전을 펼 때가 아니다. 바싹 엎드려서 대권예비후보 중 상대적으로 앞서 달리다가 경선이라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1위로 올라서는, ‘아름다운 승부’를 거쳐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관심을 모으고 폭발력도 극대화할 수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이회창과 차기 경쟁력을 비교할 때 경제와 남북문제에 관한 식견이 중요해질 것”이라면서 “민주당 후보는 지금 그 경쟁력을 축적하는 일에 주력할 때”라고 말했다. 결정적 시기에 여권이 그동안의 성과물을 후보에게 몰아주면 일거에 후보의 무게가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대통령의 경쟁억지 전략이 반드시 성공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집권당 사상 처음으로 경선 구성된 당지도부인 최고위원들이 언제까지나 차기를 향한 경쟁을 인위적으로 억제당하고 있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최고위원 진영은 차기후보 가시화가 지연되는 데 대해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레임덕은 안에서부터

모 최고위원의 핵심측근은 “자꾸 레임덕을 걱정하는데 레임덕은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 안에서 온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앨 고어 부통령이 일찌감치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후보로 부각됐지만 고어 때문에 클린턴대통령의 레임덕이 왔느냐는 식이다. 레임덕을 의식해 적절한 차기주자를 부각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 임기말이 다가오면 필연적으로 관계 경제계 등에서 ‘다음은 누가 대통령이냐’를 살피게 돼 있으며 여당의 다음주자가 보이지 않으면 이회창총재 쪽에 확 붙어버릴 거라는 우려도 한다. 이른바 ‘대세론’의 위력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측근의 말.

“레임덕의 억제와 관리만 중요한가? 대통령이 관리하기 좋은 구도를 갖추었다고 해서 정권재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후보군이 여럿 생기면 솔직히 당내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에 맞서야 할 시기인데,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선결과에 발목을 잡혀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 진정 강한 여당이 뭔가. 호남색과 뿌리를 두텁게 한다고 강한 여당이 되나. 강한 여당은 정권창출 가능성을 보여줄 때 가능하다. 지금 그런 것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당이 무력해지고 밖에서도 집권당을 우습게 아는 거다.”

또다른 최고위원은 “특정한 2인자를 좀처럼 키우지 않는 것은 김대통령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차기를 뛸 가능성이 있는 인사는 대표 총리 주요장관직 등에서 의식적으로 배제하는 것 같다. YS만 해도 이회창 이수성 이홍구 김덕룡 최형우 등 차기감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주요 포스트에 앉혀 검증받게 하고 국민에게 무게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당직마저도 전당대회 이후에도 철저히 동교동 가신들 위주로 유지했고 대표도 ‘관리형’인 서영훈 대표를 유임시켰다. 자꾸 레임덕을 걱정하는데, 정치학자들 중에는 임기말 레임덕이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를 걱정하거나 인위적으로 막으려 애쓰기보다 적절히 활용·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소리들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국정운영에서 확실한 성과를 거두게 되면 차기를 노리는 사람들이 김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대통령이 현재까지 차기주자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한마디로 “당과 국민에 헌신하고 이를 통해 당원과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사람”이다. 과연 누가 이 기준에 합당하다고 인정받게 될지는 아직 의문부호로 남아 있다.

다만 김대통령의 기준을 따르더라도 정부와 당의 관계, 대야관계, 정책관계에서 당 최고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제 몫을 해내는 것이 차기에 도전하려는 예비주자들 앞에 놓인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그들의 문제해결 능력, 정치력을 지켜보며 나름대로 평가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동아 200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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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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