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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제거 DMZ, 인민군 남침루트가 될 것인가?

지뢰제거 DMZ, 인민군 남침루트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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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뢰 제거는 기술적으로나 안전상으로나,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의선이 복원된 후의 우리 방어 대책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대미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방어대책 보완을 서두른다면 경의선 복원은 통일로 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안보 전문가의 의견을 좀더 신중히 듣는다면 김대통령은 정전체제를 무너뜨린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가 있다. 그러나 그가 독선으로 흐른다면….
경의선 복원을 계기로 비무장 지대(DMZ·DeMilitarized Zone)와 민간인 통제구역에 매설돼 있는 지뢰 제거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의선 일대의 지뢰 제거는 정전 체제를 뒤흔드는 역사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사계(斯界) 전문가들은 “지뢰를 제거하면 북한이 쳐들어 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주는 것 아니냐?” “과연 지뢰를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느냐?” “지뢰 제거 후의 방어 대책은 있는가?” 등의 주제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지뢰 제거는 잘해야 본전”

군인들도 지뢰 제거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적인 토론일 경우 대부분의 군인들은 “지뢰 제거는 북한군에 남침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경의선 복구는 비무장 지대를 관할하는 UN군사령부와 미리 의견을 조율하지 않고 추진되었고, 전시(戰時)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미군(한미연합사)으로부터도 사전에 완전한 동의를 받지 않고 추진되었다” “이렇게 서둘다 지뢰가 터져 병사들이 죽거나 다치면 하루 아침에 모든 원성이 군부로 쏟아진다. 정치인들의 주장으로 시작된 사업인데, 그 책임은 군부가 뒤집어 쓰게 될 것 같다” “지뢰 제거는 잘 해야 본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군인들도 공적인 자리로 돌아가면 “(지뢰 제거와 노반공사를 맡은) 육군은 안전하게 지뢰를 제거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시민은 물론이고 군인들까지도 혼란스럽게 하는 경의선 복원과 지뢰 제거는 과연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것인가? 경의선 복원과 지뢰 제거를 둘러싼 논쟁은 안보는 물론이고 통일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아주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 한국 사회에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경의선 복구와 지뢰 제거 문제를 심층 분석해보기로 한다.

먼저 지뢰를 제거하면 북한이 쳐들어 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 아니냐는 논쟁부터 살펴보자. ‘경의선 복원을 위한 지뢰 제거는 인민군의 남침 통로를 열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주장은 지난 9월4일 지만원박사(池萬元·육사 22기)가 한나라당 의원을 상대로 한 강연회에서 거론하면서 표면화됐다. 지박사는 6공과 문민정부 시절 군사 비리를 맹공격한 인물.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쪽에서는 그의 의견을 경청해 정부를 비판한 적이 많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여당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지박사의 연설은 지뢰 제거에 부담을 갖고 있는 군부의 속내를 대변한 측면도 있어, 곧 바로 주목을 받았다(지박사 발표문은 그의 홈페이지 www. systemclub.co.kr로 들어가면 읽어볼 수가 있다).



“대통령까지도 의심해야”

육군 대령 출신인 지박사는 “개성-문산 축선에는 지뢰·대(對)전차 장애물·영구진지·대규모 병력이 밀집돼 있어 유사시 남침하는 인민군과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철로와 도로를 뚫어주면 지금까지 투자한 모든 방어시설이 의미를 잃게 된다. 서울은 불과 5시간 이내에 점령되고 5만 여명으로 추산되는 미국인과 일본인이 인질로 잡힐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이 5만 자국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북한과 전쟁을 벌일 수 있을 것인가? 전선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군은 총 한방 쏴보지 못하고 포위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의선 복구를 땅굴과 비교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20여 개의 땅굴에 대해 걱정해왔다. 땅굴에서는 시간당 5000여 명의 중무장 병력이 솟아나올 수 있으므로 20여 개 땅굴이라면 시간당 20여만 명이 침투할 수 있다. 반면 서부전선에 비상이 걸려 한국군이 완전 군장을 하고 진지에 도달하는 데는 4∼8시간이 걸리고, 동부전선에서는 10∼15시간이 걸린다. 이때는 이미 땅굴에서 나온 인민군이 한국군 진지를 넘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다음일 수 있다.

경의선과 도로를 개설하기 위해 지뢰를 제거하면 이는 수천 개 땅굴보다 더 무서운 속도로 군사력의 이동을 가능케 해준다. 1조원을 맴도는 예산이 들어가고 수백 명의 병사가 희생될 수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 급하다는 것인가? 이는 성주가 적장에게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주고, 길을 닦아주고, 성문을 열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조치라고 생각한다.

6·25 전사를 다시 읽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당시(6·25개전 초기) 국방부는 김일성이 지휘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계속해서 밀리고 있는데도 국방부는 승전보만 방송했다. 그러다 포성이 가까워지자 놀란 서울 시민들이 한강으로 달려나왔다. 이러한 시민들에게 국군은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방송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강 다리를 폭파해 다리 위에 있던 수천 명의 시민을 희생시켰다. 9만8000여 명이던 당시 한국군 중에서 불과 2만2000여 명만 한강을 건널 수 있었다. 한강다리를 폭파하라고 지시한 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것은 역사의 미스터리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그때를 연상케 한다.”

연설 결론부에서 지박사는 “안보는 단 1%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하는 주제다. 그래서 우리는 대통령까지도 의심해야 한다”라고 못박았다.

지박사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 이는 박용옥(朴庸玉) 전 국방차관이다. 박 전차관은 ‘경의선의 군사적 가치 논란’이라는 제목을 단 9월8일자 조선일보 기고문에서 ‘철도와 고속도로는 후방지역의 병력과 물자를 대규모로 전장(戰場)으로 수송하는 병참선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며, 철도와 고속도로는 전투지역이 아니라 후방 지역에서 이용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그는 ‘철도와 고속도로는 평지보다 높게 건설되기 때문에 (전투지역에서) 이곳을 이용하다 적의 기습을 받으면 이탈이 용이하지 않다(평지로 내려와 숨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뜻). 따라서 기계화부대는 전술적으로 철도와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적 기계화부대는 속도전이나 전격전을 펼치기 위해 고속도로를 이용해 빠르게 진격해 올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그들은 (고속도로에서 평지로의 이탈이 어려워) 아군 공격 헬기와 전투기의 양호한 표적이 될 것이다’라는 설명으로 지박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경의선과 같은 중요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군이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측은 살포식 지뢰를 대규모 보유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군사 보안 측면과 남북간 군사적인 긴장 완화를 위해서도 군사작전 문제가 지나치게 공론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결론지었다.

박 전차관의 글에서 주목할 것은 ‘살포식 지뢰를 대규모로 보유할 것이다’라고 한 부분이다. 보통 지뢰는 병사들이 땅에 매설하는 ‘매설식 지뢰’인데 반해, 살포식 지뢰는 155㎚포 등을 이용해 적 기계화부대의 기동로 앞에 대규모로 살포하는 지뢰다. 살포식 지뢰는 이 기사 후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복원된 경의선이 유사시 인민군의 공격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에 집중하기로 한다.

非山非野의 개활지

이번 사업은 지도에서처럼 ‘경의선 복원’과 한강변을 달려온 자유로와 통일대교에서 이어지는 ‘신(新)국도 1호선 건설’ 두 가지다(판문점을 향하는 원래의 국도 1호선은 통일대교에서 신국도 1호선과 갈라진다). 경의선과 국도 1호선, 그리고 신국도 1호선은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으로 둘러싸인 완만한 구릉지대를 지나고 있다. 평화시라면 이러한 비산비야(非山非野)지대에서는 최적의 경제 행위가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유사시가 되면 이곳은 하루아침에 참혹한 전쟁터로 돌변할 수가 있다.

6·25전쟁 때 일이다. 1950년 6월25일 새벽 인민군 1사단은 105전차여단 예하 203전차연대와, 인민군 6사단은 105전차여단 예하 206전차연대와 짝을 이뤄, 백선엽(白善燁) 대령이 이끄는 국군 1사단 지역으로 쳐들어왔다. 인민군 105 전차여단은 소련제 T-34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개성에 포진해 있던 전성호(全盛鎬) 대령의 국군 1사단 12연대를 압박했다(당시 개성은 38선 이남 지역이었다). 그러자 12연대는 견디지 못하고 개전 당일 개성을 포기하고 임진강 철교를 건너 문산 쪽으로 후퇴했다. 12연대가 건너온 임진강 철교가 이번 경의선 복구 작업에서 군과 철도청의 작업 영역을 나누는 분기점이 된 ‘자유의 다리’다.

12연대가 철교를 건너오기 전에 장치은(張治殷) 소령이 이끄는 국군 1사단 공병대가 임진강 철교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다가 12연대가 건너오자 즉시 발파 스위치를 눌렀다. 그런데 도화선이 끊어졌는지 임진강 철교가 폭파되지 않았다. 초장부터 당시의 방어작전계획 ‘육본 작전계획 38호’는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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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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