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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소장파 ‘13인의 반란’

민주당 소장파 ‘13인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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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야대치 정국 속에서 민주당 초·재선의원 13명이 당지도부의 당 운영과 정국대처 방식을 전면 비판하고 반성을 촉구한 이른바 ‘9·15 반란’은 우리 정당사에서 보기드문 사건이다. 이 사건의 전개과정을 추적해 봄으로써 우리 정당 민주화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8·30 전당대회가 끝난 민주당에서는 9월초 서영훈(徐英勳) 대표 및 당 3역 등 집행부의 유임 소식이 알려지면서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당의 선거비용 수사개입 의혹과 국회법 날치기 처리 등에 반발한 한나라당의 장외투쟁과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고 한빛은행 대출압력 의혹 등으로 국민적 불신이 가중되던 때였다. 특히 집권당의 책임을 질책하는 국민 여론이 높아가던 시점이었다. 더욱이 민주당은 면모 일신을 위해 집권당 사상 처음으로 최고위원들을 경선으로 뽑은 전당대회 직후였다.

당연히 지도부(집행부) 개편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던 의원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같은 기대가 무너졌다. 게다가 민심수습과 국회 정상화를 위한 새로운 비전제시도 없이 당지도부의 대야 강경노선만이 반복되자 초재선의원들 사이에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

이같은 불만기류에는 386의원 뿐만 아니라 연륜이 지긋한 초·재선 의원도 공감을 표시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일부 중진급 초·재선의원 가운데는 ‘요즘 386의원들은 뭐하고 있는 거야. 당과 나라가 이렇게 위기인데 목소리 하나 제대로 못내고…” 하는 식으로 안타까움을 표출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은 9월8일 헌법재판관 임명동의안을 단독처리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는 “한나라당이 합의된 의사일정을 무시하고 장외집회를 하겠다며 국회밖으로 뛰쳐나간 상태에서 사상 초유의 헌법기관 공백사태를 막기 위해 부득이하게 단독처리를 강행한다”며 의원들을 본회의장에 입장시켰다. ‘방해세력’ 없이 ‘순탄하게’ 동의안을 처리하고 본회의장을 나선 의원들 가운데 몇몇이 참담한 표정으로 얼굴을 맞댔다.



“당 지도부부터 생각을 바꿔 먹어야”

“도대체 이게 뭐야.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 거야. 한나라당은 야당이니까 그렇다 치고 정국을 풀어나갈 궁극적 책임을 진 집권당은 대체 지금 뭐하는 거냐고 지역구민들이 성화야.”

“맞아. 어떻게든 국회는 정상화돼야 해. 정국 정상화가 안되면 우리 당이 모든 욕을 뒤집어 쓸 거야. 우리당 지도부부터 생각을 바꿔 먹어야 해.”

이같은 대화를 주고받던 몇몇 의원들이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좀 더 구체적 방법을 얘기해보자”며 함께 의원회관으로 향했다. 장소는 502호 김태홍(金泰弘) 의원실. 김의원은 5공의 서슬이 퍼렇던 86년, 군사정권의 언론탄압 실태를 폭로한 소위 ‘보도지침 사건’으로 1년 가까이 감방 신세를 진 전력이 있다.

김의원 방에 모여든 사람은 김의원을 포함해 8명이다. 70년대 중반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성공회대총장 출신의 이재정(李在禎) 의원, YS 정권시절 김현철(金賢哲)씨의 YTN인사 개입을 특종보도한 신문기자 출신 김성호(金成鎬) 의원, 날카로운 시사토론 진행으로 명성을 쌓은 정범구(鄭範九) 의원, 재야 여성운동 외길을 걸어온 한명숙(韓明淑)의원, 김대통령의 비서 출신으로 청와대 상황실장을 지낸 장성민(張誠珉) 의원, 87년 5·3사태 주도로 현상금이 붙었던 재야출신 이호웅(李浩雄) 의원, 95년 전국 최연소 민선구청장(인천 부평구)을 기록했던 최용규(崔龍圭) 의원 등이 그들. 김대통령이 지난 총선때 야심작으로 투입한 ‘젊은 피’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국경색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여야 지도부에 다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지적하자” “당 지도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합의문을 내자”는 등의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당 지도부 개편을 건의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이 와중에 한 참석자는 “한나라당에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뜻있는 의원들이 있으니 기왕이면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여야 모두 반성하자”

접촉 창구는 정범구 의원이 맡았다. 정의원은 즉시 한나라당 안영근(安泳根)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야 출신인 안의원은 5년 위인 정의원을 평소 ‘형님’으로 부르는 사이. 두 의원은 지난 7월 중순 이종걸(李鍾杰) 김성호 의원 등과 함께 ‘공격수’ 또는 ‘거수기’ 노릇을 거부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그 직후에는 미국무성 초청으로 미국방문을 함께 하면서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 이후 두사람은 국회 파행 등 비정상적 정국을 함께 걱정해왔다.

이날(9월8일)도 안의원과 정의원은 전화 통화에서 “정말 큰일이다. 국회가 이래도 되는 거냐”는 걱정을 함께 나누다가 정의원이 안의원의 방인 의원회관 819호실로 직접 찾아갔다.

정의원: 여야 당 지도부가 국민들 소리는 듣지 않고 기선 싸움만 하고 있으니 우리들끼리라도 뭔가 방향을 찾아봐야 할 것 아닌가.

안의원: 맞습니다. 근데 이번 사태는 민주당 책임이 더 큰 것 같아요. 한빛은행 대출압력 의혹은 특검제를 하지 않으면 안풀릴 거예요.

정의원: (고개를 끄덕이며 양당의 지도부들이 좀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하는데….)

안의원: 물론 우리 한나라당도 사실 잘못한 게 없는 건 아니죠. 부정선거 문제, 한빛은행 대출압력 의혹 등을 우리가 문제삼지만 한나라당도 솔직히 과거(집권 시절)에 이런 잘못을 저지른 전력이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한나라당도 과거를 반성하고 민주당은 지금의 잘못을 반성해야 해요.

정의원: 그럼 우리 각자 자기 당에서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모아보도록 하지.

안의원: 그럽시다.

이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각자 소속당의 ‘동지’들을 규합하는 동시에 활발한 ‘여야접촉’을 벌였다. 여야 원내총무간 대화채널이 꽉 막혀 있던 시기에 여야 ‘반란군’끼리 대화를 나눈 것이다. 여야 접촉에는 김원웅(金元雄·한나라당) 김태홍(민주당)의원 등도 가세했다. 김태홍의원은 특히 곧 추석연휴가 시작된다는 점을 들어 여야의원들간 협의를 서두르자고 독촉했고 이견이 없을 경우 연휴 직전인 9월9일 합의문을 발표하자고 했다.

한나라당의원들은 여야 소장파간 합의문 초안으로 5개항을 작성, 민주당 의원들에게 제시했다. 5개항은 ▲국회법 개정은 양당이 향후 합의해서 처리할 것 ▲4·13총선 편파수사 문제와 한빛은행 부정대출 사건은 특검제 등을 포함한 가능한 방법을 모두 강구하여 진실을 규명할 것 ▲야당은 장외집회를 중단하고 등원할 것 ▲남북문제는 초당적으로 협력할 것 ▲양당 영수회담을 통해 신뢰를 회복할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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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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