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 사정에 밝은 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이 사실을 확인해줬다. 만약 인사비리 수사가 전 군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된다면 ‘국민의 정부’의 군 인사 실정(失政)이 일부나마 드러나리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추측이다.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인사는 만사의 근원이다. 합리적 기준이 없는 정실 인사는 지탄을 받고 조직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게 마련이다. 지난 5년 동안 우리 군 주변엔 과거 영남 정권에서 엿볼 수 있었던, 그러나 그 강도가 훨씬 심해진 지역편중 인사의 망령이 배회했다.
1999년 11월 국회 국방위 소속 허대범 한나라당 의원에게 한 통의 진정서가 날아들었다. 이 진정서는 육사 35기인 모 영관장교가 진급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작성한 것이었다. 11월5일 허대범 의원은 국회 국방위에서 이 진정서를 꺼내 들고 읽어내려갔다. 첫머리는 이랬다.
“금년도 진급심사는 한마디로 호남 출신과 그들에 빌붙어 진급한 장교, 일부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는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폭거임.”
상임위장은 곧 아수라장이 됐다. 여당인 국민회의 의원들은 “근거도 없는 괴문서로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며 허의원의 발언을 제지하는 한편 속기록 삭제를 요청했다. 여야 의원들간 말싸움이 이어졌고 결국 정회가 선포됐다.
비록 정치공방으로 유야무야되긴 했지만, 이 사건은 ‘국민의 정부’의 군 인사 난맥상, 특히 지역편중 인사 시비의 실상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이 진정서 내용은 국회 국방위는 물론 국방부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올랐으나 국방부의 ‘노력’으로 곧 자취를 감췄다.
지역편중 인사는 ‘국민의 정부’의 큰 오점으로 꼽힌다. 불균형과 차별을 바로잡는다는 취지에서 역대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당하고 피해를 입었던 호남 출신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한 것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것이 바로잡기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특혜와 차별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단계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의 지역편중 인사 실태는 그간 언론보도로 어느 정도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가장 지역편중이 심하다고 알려진 군 인사 실태는 구체적으로 드러난 적이 없다.
이는 물론 언론의 접근을 차단하는 군의 배타성과 보안성, 은폐성 때문이다. 철저한 상명하복을 바탕으로 한 군 특유의 위압적인 분위기 탓에 다른 조직에서는 종종 나타나는 내부 고발자가 드문 것도 한 이유다. 또 문제가 있어도 단합과 결속을 빌미로 쉬쉬하고 덮는 풍토가 그 어느 조직보다 강하다는 점도 실태 파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